# 15화.
‘아예 작정하고 덤벼드는군.’
서로가 전면전을 치르기에는 이른 시기였다. 그런데 이제 겨우 2일째가 시작된 이때에 몰려올 생각을 하다니. 한가롭게 사냥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카밀라, 저들의 위치는 어딥니까?’
[황야 지역에 막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황야 지역이라.’
충렬은 재빨리 미니맵을 살폈다.
‘황야 지역을 지금 지나는 것이라면 저쪽 캠프에서 이쪽 캠프로 일직선으로 오는 것인데…….’
첫날부터 계획하여 오기 시작했다면 정확했다. 시간상 그럴 수밖에 없는 거리였다.
‘그렇다면 저들의 이동 경로는 뻔하다.’
황야 지역을 지나 이쪽 캠프로 오려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지역이 있었다.
바로 ‘죽은 자들의 늪지대’다.
그곳은 사냥터가 아니었다. 그저 늪지대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죽은 자들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간단했다. 까딱 잘못한다면 늪지대에 빠져 익사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가 분명했다.
‘묘비에서도 그쪽 길은 무조건 피하라고 했지.’
지형 자체가 험난했다. 묘비에서 본 바로는 발을 헛디디는 순간, 늪이 자신을 끌어당긴다고 생각될 정도라고 했다.
솔직히 저들이 늪지대를 피하여 돌아서 진격한다면 반나절이라는 시간을 소모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저쪽에서는 늪지대를 돌아서 오지는 않을 테지.’
만약 늪지대를 돌아가지 않고 지날 수만 있다면 서로의 캠프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할 수가 있었다. 아마 저쪽에서도 시간을 단축시키려 할 테니 강행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가능성이 높은 것이 아니라 확실했다.
‘저들은 반드시 늪지대를 지날 터.’
그만큼 늪지대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었다. 돌아서 이동하면 무척이나 오래 걸릴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늪지대만 무사히 통과한다면 이쪽 캠프와의 거리는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니 전면전을 선택한 이상, 저들은 무조건 늪지대를 통과하려 할 터였다.
그리고 그 말인 즉, 저들이 늪지대를 돌파하는 순간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전면전의 시작이라는 소리다. 저들이 넘어오는 순간 충렬과 이쪽 캠프의 인원들은 전면전을 피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최대한 적들의 숫자를 줄여야겠군.’
그러지 않으면 도무지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미리 저들의 숫자를 줄이지 않는다면 이쪽 캠프의 확실한 열세였다. 그렇지만 혼자서 적들 모두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잠시 뒤, 생각을 정리한 충렬이 카밀라에게 말했다.
‘카밀라.’
[네?]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
카밀라에게 계획을 설명하자 그녀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녀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모여서 방어만 행하기에는 분명히 무리라는 것을 말이다. 다행히 충렬의 생각에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그 전략에 감탄하며 모두가 즉시 움직였다.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충렬 씨가 알려준 방향으로 사람들이 이동을 시작했어요.]
‘벌써요?’
[네, 다들 충렬 씨의 의견에 적극 찬성했거든요. 어쨌거나 그쪽 근처로 가야 할 사람들이 도착하면 바로 소식을 알려 드릴게요.]
‘예.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카밀라와의 연락을 끊은 충렬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충렬은 소환한 해골들과 함께 늪지대로 부리나케 달려가는 중이었다. 지금이라도 뛰어 간다면 저들이 늪지대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도착할 수가 있으리라. 당연히 도착한다고만 해서 끝은 아니었다. 미리 도착해서 잠복해 있어야 했다.
‘이제부터는 내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충렬은 이대로 늪지대로 향해 적들의 숫자를 줄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된 목표는 그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충렬의 역할은 정해져 있었다. 때문에 무리는 절대 금물이었다.
‘놈들의 이동 경로를 약간 바꾸어야 해.’
아군 캠프의 사람들은 일정한 지역에서 대기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곳으로 적들을 유인해야 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적들의 위치를 알려줘서 그들이 오게 될 예상 경로에서 대기하게 하던가 말이다.
어쨌거나 결론은 하나였다. 아군은 늪지대의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적들이 늪지대를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 말이다.
그렇게 계획은 간단했다. 아군이 늪지대 밖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적들이 늪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그들을 요격하는 것이었으니까.
당연히 습격에 모든 전력을 쏟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쪽의 숫자가 너무 불리했으니 말이다. 최대한 타격을 입힌 뒤, 치고 빠져야 했다. 한곳에서 일전을 벌이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디까지나 적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했다.
‘특히 적들의 발을 묶어 시간만 끌 수 있다면 이득이다.’
그래서 캠프에 방어를 할 인원들은 따로 남겨두고, 기동성을 가진 이들만 따로 나서게 했다.
당연히 시간을 끌면 유리해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미 저들의 의도를 알아낸 이상, 너무나도 효율적인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참. 카밀라, 그나저나 한스는 잘 출발했나요?’
[네. 빈집털이는 자기한테 맡겨달라더군요. 강인한 지구력 덕분에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해요.]
‘그래도 무리하지는 말라고 일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쪽도 방어 인원을 배치해 두었을지도 모르니까요. 만약 도착하게 된다면 상황을 지켜보다가 잠입하라고 전해주십시오.’
[알겠어요.]
‘그런데 아마 저쪽에 방어 인원은 없을 겁니다. 본진을 포기하고 전부다 몰려왔을 가능성이 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시간만 잘 끌면 저희 쪽은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낼 수가 있겠어요.]
‘그런셈이죠.’
[어쨌거나 빠른 판단으로 이런 계획을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충렬 씨.]
그런 카밀라의 칭찬에 충렬이 머쓱해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무쪼록 적들이 오면 그 위치를 계속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저희 쪽 사람들을 예상 경로에 잘 매복할 수 있도록 해놓을게요.]
‘예. 만약 매복할 장소가 여의치 않다면 알려주세요. 적당한 경로로 유인해 오겠습니다.’
[네, 몸조심하세요.]
그랬다. 저쪽에서 전력을 다해 이쪽으로 덤벼오니, 적들의 캠프는 빈집일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혹시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 충렬은 한스를 따로 보낸 것이었다. 제일 좋은 것은 적들을 상대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
해가 높이 떠있는 너무나 밝은 낮. 주변엔 기다란 갈대들이 즐비했다. 그 배경만 보자면 아름다운 자연 속에 속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밝은 배경은 거기까지였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순간, 경악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의 늪이 늪지대의 사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평범한 검은색은 아니었다. 마치 공장에서 버린 폐수같이 더러워 보이는 검은색이었다. 심지어 그 외에도 늪은 불길한 것들을 잔뜩 품고 있었다. 각각의 늪에는 사람의 뼈인지, 혹은 동물의 뼈인지 모를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조각들이 간간히 보였다. 그렇게 시각적으로 구토를 유발하는 늪지대에 한 사람이 도착했다.
“휴, 드디어 다 왔네.”
그는 바로 충렬이었다. 충렬은 늪지대에 도착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의 늪으로부터 고기 썩은 냄새가 강하게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 역겨운 냄새가 충렬의 코를 마비시켰다.
“이게 뭔 냄새야?”
그러거나 말거나 시스템은 충렬이 정확히 늪지대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죽은 자들의 늪지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실수로라도 걸음을 잘못해 늪을 밟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늪을 빠져나오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으며 충렬은 코를 막으며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억울함의 핫플레이스였는지 제법 묘비들의 숫자가 많았다.
-아, 제기랄. 존나 어이없게 죽어버리네. 미끄러져서 죽음;
-ㅋㅋㅋ여기 물맛 애지고요~ 지렸구요~
-니가 더 애지고, 지리고, 레릿고!
-미친놈들, 익사하면서 정신줄 놨냐?
지금은 딱히 참고할 만한 묘비가 없었다. 충렬은 대충 현재 위치를 기억하며 미니맵을 살폈다.
‘어쨌거나, 더럽게 넓은 지역이군.’
드넓은 늪지대 구역이었지만 충렬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미니맵에는 현재 자신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주변 환경을 살피던 충렬은 그 즉시 자리를 옮겼다.
***
현재 충렬은 늪지대의 한 곳에서 해골들을 배치시키고 있었다.
“야, 데프론. 넌 저기로 들어가. 보병 둘은 각각 저기랑 저쪽으로 가고. 마렉은 이쪽 늪으로 들어가라.”
충렬이 하는 짓은 다소 엽기적인 짓이었다. 바로 늪으로 해골들을 걸어 들어가게 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듣는다면 절대로 엽기적인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매우 타당하다고 말하기에도 모자라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충렬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실험해 본 결과, 과연 해골들은 늪의 영향을 덜 받았다. 특히 최대 장점은 호흡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느리더라도 늪 속을 이동하거나 여유롭게 빠져나올 수가 있었고 충렬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랬다. 이는 언데드의 특성을 잘 활용한 것이었다. 충렬은 해골들을 길목에 잠수시켜 놓고 지나가는 적들을 괴롭혀 줄 생각이었다.
‘흐흐. 갑자기 해골이 튀어나오면 깜짝 놀라겠지?’
사악한 생각이었지만 충렬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벌써부터 음흉한 미소를 지어갔다. 물론 해골들을 정말로 등장시켜 전투를 시킬 생각은 없었다. 늪지대의 각 길목은 너무나 좁았다. 그래서 길목 근처의 늪에 해골들을 숨겨두고 적이 지나는 순간. 그 순간에 상대를 끌어내려 늪에 빠지게 만들 속셈이었다.
상대의 발목을 붙잡고 당기기만 해도 되었다. 언데드가 아닌 사람이 늪에 빠진다면 알아서 사망할 것이었으니 말이다. 간단히 말해 ‘물귀신 작전’이었다.
그렇게 해골들을 각각 배치한 충렬은 레일리와 함께 그 장소를 벗어나기로 했다. 레일리의 역할은 따로 있었다. 충렬은 그 장소를 벗어나며 숨어있는 해골 넷을 향해 당부했다.
“레일리가 마법을 갈기면 작업을 시작해라. 알겠지?”
그러자 해골들이 늪에서 머리만 내놓은 채로 이빨을 부딪쳤다. 아마도 알아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이리라.
따닥. 딱. 따다닥.
타이밍을 알려준 충렬은 레일리와 함께 장소를 이동했다. 그렇게까지 먼 곳으로 이동한 것은 아니었다. 거리가 멀어지면 해골들이 역소환될지도 몰랐고, 더군다나 레일리의 마법 스킬 범위에 닿아야 하는 거리여야만 했다. 때문에 그리 멀지도 않으면서 제법 발견되기 힘든 장소로 충렬과 레일리가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