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14화 (14/237)

# 14화.

죽은 자들의 늪지대

***

정말 운이 좋았다. 충렬은 그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마지막 순간 레일리의 희생이 없었다면 자신은 진즉에 사망하고 말았으리라. 아라크네의 마지막을 보니 언데드로 부활을 한다고 해도 생사를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폭파로 발생한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독에 대해 면역인 언데드조차 단번에 녹여 버릴 만큼 매서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이상 독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덕분에 충렬의 앞을 막아선 레일리는 진즉에 역소환이 되었다.

어쨌거나 위급한 순간은 넘겼다. 당연히 해골에 불과한 레일리가 완벽히 충렬의 몸을 가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잠깐의 틈만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충렬이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충분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많은 상처가 생겼지만 다행히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만약 레일리가 제때에 충렬에게 달려오지 않았다면 충렬의 모험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으리라. 상상만 하여도 끔찍했다.

‘설마 언데드도 단번에 녹여 버릴 정도의 맹독이었다니.’

그래도 결국 사냥엔 성공했다. 그리고 그 보상은 매우 달콤했다.

[아라크네가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숲의 주인, ‘맹독의 아라크네’의 사냥에 기여도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보상으로 2,000카르마가 주어집니다!]

역시 보스급의 몬스터를 사냥하니 주어지는 카르마의 양이 달랐다. 평균 20 정도의 카르마를 주던 코볼트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물론 보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직 남아 있었다.

[메말랐던 숲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아갑니다.]

[숨어 있던 숲의 정령들이 당신의 행동에 경의를 표하며 자신들이 보유한 보물 중 하나를 바칩니다.]

그러더니 충렬의 앞으로 숨어 있던 정령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령들은 땅속에서, 혹은 나무속에서 스르륵 하며 나타났다. 정령들의 형체는 없었다. 그저 빛이 뭉쳐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를 유지하며 이리저리 떠다닐 뿐이었다. 그렇게 여기저기에서 나타난 정령들이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뒤, 모두 힘을 합쳐 무언가를 질질 끌고 충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령들이 끌고 온 것은 작은 보따리였다. 자신의 앞에 놓인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충렬이 아이템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정령의 주머니: 어깨나 허리춤에 메고 다닐 수 있는 주머니다. 정령의 힘이 깃들어 있어 내부 공간은 당신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넓다. 많은 양의 아이템을 보관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인벤토리 같은 것이 없어서 불편했던 충렬이었다. 그런데 마침 쓸 만한 아이템이 나온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아이템을 넣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충렬은 바닥에 널브러진 무기들을 주워서 담기 시작했다.

직전에 아라크네를 사냥했지만 충렬은 쉬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아이템을 모두 주워 담는 순간, 또다시 근처의 지역으로 사냥을 갈 것이었다.

***

특성자들과 비특성자들 간의 경쟁이 시작된 지도 벌써 1일째가 지나 2일째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카밀라는 사냥을 시작하기 전, 일행들의 소식을 하나씩 물어갔다. 혹여나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말이다.

‘한스, 그쪽은 상황이 어때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그나저나 충렬이란 자식, 대단하던데? 혼자서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하고 말이야.]

‘그 이야기는 저도 들었어요. 보스급 몬스터 사냥에 성공한 사람은 충렬 씨밖에 없더라구요. 그나저나 비특성자들의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죠?’

[그래, 이쪽 근방은 너무나 순조로워.]

‘알겠어요. 그럼 수고하세요.’

카밀라는 한스를 시작으로 일행들의 소식을 차례로 물어갔다. 본래라면 딱히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이상,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어젯밤부터 밀려드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라도 그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상함을 느끼게 된 이유는 별것 없었다. 미니맵 옆에 표시된 사람들의 숫자가 문제였다. 그 숫자의 변동이 마음에 걸렸던 탓이다.

[특성 보유자: 20명]

[비특성자: 83명]

특성을 보유한 자신들의 진영에서는 그 누구도 목숨을 잃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안심해도 되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기에는 무언가 찜찜했다. 더군다나 같은 진영의 그 누구도 저들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비특성자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자기네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은 아닐 텐데.’

상식적으로 그것은 손해를 보는 짓이었다. 뭐, 동료를 죽이고 카르마를 얻으려 그럴 지도 몰랐다. 그러나 카밀라는 절대 그 때문에 비특성자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어. 몬스터를 사냥하다 제 딴에 죽은 것인가?’

그런 것치고는 순자가 너무 일정한 속도로 줄어들었다. 너무나 일정해서 더욱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일행들의 안부를 물어본 결과, 모두가 아무 일도 없다고 하니 애써 불안감을 떨쳐낼 뿐이었다.

“휴, 그래. 딱히 나쁜 소식이 들려온 것도 아니고. 사냥이나 가자.”

괜히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한 카밀라가 사냥에 나섰다.

***

카밀라가 몬스터의 사냥을 위해 나서고 2시간 뒤였다. 한창 사냥에 열중하던 그녀에게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카, 카밀라! 여기 헤르메다! 큰일 났어!]

헤르메라면 몽크를 직업으로 삼은 사내였다. 그는 현재 황야 지역에서 동물형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캠프에서 제일 먼 지역으로 사냥을 갔던 헤르메는 일행들 중에서 제법 강한 측에 속하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다급한 그의 목소리에 의문이 생겼다. 혹여나 사냥을 하다가 다친 것일까? 때문에 의아해진 카밀라가 사냥을 멈추고 그에게 대답했다. 그가 위험하다면 근처에 위치한 다른 동료들에게 알려주어야 했다.

‘헤르메 씨, 무슨 일이신가요?’

그러나 헤르메가 알려준 내용은 카밀라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지금 전부 다 캠프로 모여! 놈들이 몰려온다!]

‘놈들이 온다고요?’

[미친놈들이 성장은 포기하고 단체로 쳐들어오고 있어! 이대로라면 캠프까지 금방 도착한다고!]

그의 말에 카밀라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설마 성장도 포기한 채로 들이치다니. 지금까지 비특성자들의 인원들이 왜 일정한 속도로 줄어드는지 알 수 있었다. 무리하게 이쪽으로 진격을 했으니 그런 것이었다. 캠프에서 멀어질수록 나타나는 몬스터는 강해졌다. 최종적으로 지도의 중간에 위치한 몬스터가 가장 강했는데, 비특성자 놈들은 성장을 포기하고 무작정 진격하여 몇몇의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면전을 할 셈이구나!’

드디어 알 수 없는 불안감의 의문이 풀렸다. 그러나 풀린 의문에 만족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한꺼번에 적들이 들이닥치는 것이라면 정말로 위험했다. 서로 레벨도 비슷한 처지에 맞붙게 된다면 숫자가 적은 이쪽이 월등히 불리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전면전을 치르려는 녀석들을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쪽이 피해보았자 캠프에 마련된 수정탑이 파괴된다면 끝이었다. 이쪽의 패배라는 소리다.

‘일단 헤르메 씨. 무사히 캠프로 귀환하세요. 다른 사람들을 빨리 복귀시킬게요.’

***

한편 그 시각, 독안개의 늪을 정화시킨 충렬은 이제 다른 곳을 사냥터로 삼았다. 목표로 잡은 곳은 근처에 위치한 놀들의 터전이었다. 득템에 눈이 뒤집힌 충렬은 장비 아이템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이곳을 선택한 것이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보스급의 몬스터는 없었지만, 기본적인 장비 아이템들을 약탈하기엔 제격인 장소였다. 놀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은 무기뿐만이 아니었다. 무기를 제외하고도 각종 방어구들을 가지고 다녔기에 충렬은 거의 아이템을 쓸어 담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충렬은 눈앞에 발가벗겨진 놀 워리어를 보며 휘파람을 불렀다.

“휘유~ 너 이 자식, 제법 좋은 것들을 많이 들고 다닌다?”

놀 워리어의 얼굴은 피떡이 되어 있었다. 그런 놀의 주변으로는 흉험한 안광을 보이는 해골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해골들의 기세에 놀은 꿈쩍도 하지 못했다. 이미 반항이라는 것을 잊었는지 무릎을 꿇은 채 사시나무 떨듯 공포에 질려 있을 뿐이었다.

놈에게서 더 이상 빼앗을 것은 없었지만, 충렬은 아직 놀을 죽이지 않았다. 몇 번 두들겨 맞은 놀이 알아서 반납한 장비들을 하나씩 수거하고 있을 뿐이었다.

[놀 워리어의 철제 갑옷: 전사 놀에게 주어지는 철제 갑옷이다. 상체를 보호하는 데 탁월하며 무척이나 튼튼해 그 어떤 공격에도 잘 부서지지 않는다. 그러나 통짜 철로 만들었기에 무겁다.]

[놀 워리어의 철퇴: 전사 놀이 사용하던 철퇴다. 너무 무거워서 일반인은 들 수가 없다.]

[놀 워리어의 철제 장갑: 전사 놀이 애용하는 철제 장갑이다.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이 장갑을 착용한 채로 적을 때리면 둔기와 비슷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내 모든 아이템을 수거한 충렬이 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충렬이 놀을 살려둔 이유는 간단했다. 놀은 자신보다 강자에겐 겁이 많았다. 그리고 생긴 것과 달리 놀들은 서로 떨어져 생활했기에 다음 타깃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였다.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놀을 보며 충렬은 씨익 웃었다.

“야, 너보다 좋은 아이템 들고 있는 놈 어딨냐? 제대로 말하면 살려줄게.”

그러자 신기하게도 놀은 한쪽 손을 어디론가 가리켰다. 그러면서 애처롭게 충렬을 향해 눈물을 글썽이며 바라보았다. 살려달라는 것이리라.

“끼잉. 끼이이잉.”

하이에나를 닮은 녀석의 표정은 너무나 간절했다. 그러나 거기에 동정심을 가질 충렬이 아니었다. 목적을 달성한 충렬은 녀석을 향해 지었던 미소를 싹 지우며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 해골들에게 말했다.

“처리해.”

그랬다. 목적을 달성한 이상 놀의 목숨은 여기까지였다. 충렬은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놀들을 사냥해 왔다. 놀들은 의리도 없는지 본인의 목숨이 위급해지면 곧바로 동료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놈들이었다.

“뭐, 내 말을 알아듣는 것 자체부터가 신기했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충렬이 등을 돌리자 곧 뒤에서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끼아아앙……!”

그리고 시스템의 음성이 이어서 들려오는 것은 덤이었다.

[31카르마를 습득하였습니다.]

“역시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지.”

사냥감에 불과한 몬스터와의 약속을 지킬 생각 따윈 없었다.

그렇게 놀을 마무리 지은 충렬은 상태창을 살펴갔다.

“상태창.”

그러자 아라크네를 상대할 때보다 한 단계 오른 레벨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심지어 직업의 명칭도 상승했다. 물론 풋내기에서 초보로 바뀐 것뿐이지만 말이다.

<상태창>

이름: 이충렬

레벨: 4 (다음 레벨까지 4,000카르마 필요.)

직업: 초보자 네크로맨서

재능: <죽음><군단><불멸>

딱히 스킬은 살피지 않았다. 스킬은 어차피 그대로였다. 레벨을 먼저 올리고 스킬은 아직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유 카르마는 1천을 넘겼다.

[보유 카르마: 1,770]

그러나 여기서 조금 더 모을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카르마가 모이면 해골 스킬을 올릴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충렬이 상태창을 살필 사이, 기쁜 소식은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들려왔다.

[마렉의 숙련도가 100%에 도달하였습니다.]

[마렉에게 새로운 능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레일리의 숙련도가 100%에 도달하였습니다.]

[레일리에게 새로운 능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의 목록을 살펴보시겠습니까?]

충렬은 먼저 마렉부터 살피기로 했다.

“마렉부터 보여줘.”

[원하시는 옵션을 선택하십시오.]

시스템은 충렬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나열했다. 그런데 데프론 때의 경우와는 다르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옵션을 살펴본 결과 그나마 제일 유용해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

“마렉은 다크 블레싱을 선택한다.”

[<다크 블레싱>: 대상에게 어둠의 축복을 내려 공격력을 강화시킨다.]

동시에 시스템은 마렉의 성장을 알려왔다.

[마렉의 숙련 등급이 상승하였습니다.]

[현재 마렉의 숙련: E등급]

[마렉이 보유하고 있던 ‘데스 힐링’이 D랭크로 상승됩니다.]

[마렉이 ‘다크 블레싱’을 배웠습니다.]

[소환자의 소환 스킬과 마렉의 숙련도에 따라 다크 블레싱의 초기 랭크가 E랭크로 시작됩니다.]

[다크 블레싱 - E랭크: 대상에게 어둠의 축복을 내려 공격력을 강화시킨다.]

그다음으로는 레일리었다. 한창 레일리의 추가할 능력을 살피던 충렬이 고른 것은 다음과 같았다.

[<파이어 스피어>: 파이어 볼트를 계속해서 부풀려 거대한 스피어로 만들어 던진다. 목표물과 충돌하면 주변 일대를 화마로 뒤덮는다. 다만 시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레일의 숙련 등급이 상승하였습니다.]

[현재 레일리의 숙련: E등급]

파이어 스피어의 경우도 곧바로 E랭크로 시작했다. 그리고 레일리의 파이어 볼트는 D등급이 되었고 말이다.

그렇게 대충 상태 점검을 마무리 짓고 다시 사냥에 나서려 할 때였다. 기쁜 소식이 있다면 나쁜 소식도 있는 법. 충렬이 다시 사냥에 나서려고 할 때, 카밀라로부터 긴급한 연락이 왔다.

[충렬 씨! 지금 비특성자들이 단체로 몰려오고 있어요! 방어하러 오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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