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넓은 경기장의 구석에 다리가 부서진 사내 하나가 있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도망치려 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의 두 눈에 떠오른 실핏줄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
“끄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도망을 치지도, 소리도 지를 수가 없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육중한 크기의 마렉이 웨인을 향해 둔기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마렉의 둔기는 정확히 웨인의 턱에 적중하였다.
퍼억!
강력한 타격음과 함께 웨인의 턱이 단번에 으스러졌다. 그 과정에서 정신을 잃었던 탓일까? 숨은 쉬고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웨인을 향해 공격을 이어간 존재는 레일리였다. 해골 마법사가 되면서 스킬이 바뀐 것인지, 레일리는 살아생전에 보여주지 못했던 공격 스킬을 기절한 웨인에게 사용했다.
[<죽음을 거스른 레일리>가 ‘웨인’에게 ‘파이어 볼트’를 사용합니다.]
시스템의 음성과 동시에 레일리의 앞에 기다란 고드름 크기의 불 마법이 생성되었다. 언데드가 되면서 스킬 사용에 따른 부작용이 없어진 것인지, 레일리는 별다른 괴로움 없이 웨인에게 스킬을 사용하였다.
불타고 있는 파이어 볼트는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는 웨인에게 쉽사리 적중되었다. 너무나 날카롭기 때문이었을까? 파이어 볼트는 웨인의 왼쪽 눈에 푹,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적중되었다.
왼쪽 눈이 관통되자 웨인의 몸이 움직였다.
들썩.
엄청난 충격에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인 것이리라. 그럼에도 레벨을 가진 도전자답게 그의 목숨은 아직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끈질긴 목숨은 계속될 수가 없었다. 파이어 볼트의 효과는 이제 막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웨인의 눈알에 박힌 파이어 볼트는 이내 타올랐다. 그랬다. 웨인의 얼굴은 곧 화마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화아아악!
그와 함께 웨인의 얼굴이 구워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치이이익.
얼마 동안 구워졌을까?
이내 그가 죽었음을 시스템이 알려왔다.
[당신은 머더러가 된 도전자 ‘웨인’을 처형했습니다.]
[추가 카르마가 주어집니다.]
그렇게 충렬이 얻어간 카르마는 상상치 못한 양이었다.
[62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뜻밖의 수확에 충렬이 놀라했다.
“620이나?”
다른 도전자를 죽이면 카르마를 얻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생각 외로 이렇게 많이 얻어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전에 고블린을 처치했을 때도 얻어간 카르마는 기껏해야 10카르마 안팎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사람을 죽인 녀석을 없애니 추가로 카르마를 준 것 같은데.”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어느덧 거대 유충이 출입구를 완벽히 부수었기 때문이다.
쿠쾅쾅!
쿠구구구구궁!
[거대 유충이 출입구를 부수었습니다.]
[녀석을 처치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살아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며 경기장 내부로 진입한 유충. 녀석이 날카로운 괴성을 질렀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이런.”
아직 충렬에겐 보호 버프가 여전히 적용되어 있었다.
[‘굳건한 방어’가 적용 중입니다. 남은 시간: 4분 59초.]
[‘실드’가 적용 중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에게 버프가 적용되어 있다고 해도 유충을 상대하기엔 무리로 보였다.
‘이걸 어쩐다…….’
자신이 소환할 수 있는 해골들이 유충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일단 체급부터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탓에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곧 충렬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떠올랐다.
“소환한 해골들이 보유한 스킬을 볼 수가 있나?”
그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가능합니다. 해골들의 상태창을 개방하겠습니다.]
아까 레일리가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생긴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소환물들의 상태를 보는 기능이 있었다. 더욱이 신기한 점은 소환되지 않은 데프론의 상태까지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해골 상태창>
이름: 데프론
숙련: F등급 - 82.9%
직업: 보병
스킬: 없음.
이름: 마렉
숙련: F등급 - 1.4%
직업: 암흑사제
스킬: [데스 힐링 - E랭크: 지목한 언데드를 치유한다.]
이름: 레일리
숙련: F등급 - 1.1%
직업: 마법사
스킬: [파이어 볼트 -E랭크: 파이어 스피어의 열화판이다. 그러나 위력은 약하지 않다. 적중당한 대상을 불태워 지속적인 피해를 입힌다.]
마렉과 레일리의 상태창을 재빨리 살필 무렵 시스템이 알려왔다. 새로운 것을 알려올 때는 그래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해골의 스킬은 당신의 강함에 따라 랭크가 달라지거나 새로운 스킬이 추가가 됩니다.]
[혹은 해골의 전투 경험이 많을수록 숙련도가 쌓여 등급이 상승하여 강해지게 됩니다.]
시스템의 설명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데프론의 숙련 퍼센트가 저렇게 높았던 것이었군.’
2층에서 엄청나게 굴렸으니 말이다. 대충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야 할지 상상이 갔다. ‘최대한 해골들을 굴려야 내가 강해질 수가 있다.’
그렇지만 시스템의 친절함에 반해 생각 따위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느덧 저 멀리서 유충이 뾰족한 괴성을 흘리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아아아아아!”
마렉과 레일리의 스킬을 알게 된 충렬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머릿속에는 이미 유충에 대한 공략쯤이야 떠오른 지가 오래였다. 남들에게는 분명 유충을 상대하는 것이 힘겨울 시간이었을 터였다. 다 같이 힘을 합쳐 죽자 살자 하며 악착같이 덤벼야 잡을까 말까 할 정도로 보였으니까.
하지만 놈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속도를 보던 충렬은 더 이상 겁을 먹지 않았다.
‘녀석이 저 정도의 스피드를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사냥이 가능하다.’
꿀렁. 꿀렁.
물론 꿀렁거리면서 오는 유충이었음에도 그 속도는 느리지 않았다. 성인 남성이 전력을 다해 뛰는 속도에 약간 뒤처지는 속도였다. 그렇지만 충렬이 힘을 다해 뛰면 놈과의 거리를 충분히 벌릴 정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굳이 내가 미끼가 될 생각은 없다.”
이미 계획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마렉, 놈의 시선을 끌면서 도망쳐라. 레일리는 마법으로 놈을 요격하고.”
***
거대한 경기장. 그 안에서는 일종의 술래잡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단순한 술래잡기는 아니었다. 붙잡히는 순간 박살이 나버릴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술래잡기였으니까.
절반 정도가 까맣게 타버린 유충이 마렉을 열심히 쫓아가고 있었다. 얼마나 분노에 차 있었는지 거대 유충은 연신 괴성을 질렀다.
키아아아아아!
도망을 치는 마렉의 상태도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다. 유충에게 몇 대를 얻어맞은 것인지, 갈비뼈 부분이 제대로 박살 나 있었다.
그 때문일까? 거대 유충으로부터 열심히 도망가고 있던 마렉이 스킬을 사용했다.
[<안식을 거부한 마렉>이 스스로에게 ‘데스 힐링’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스킬의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안식을 거부한 마렉>의 박살난 갈비뼈가 복구됩니다.]
순간 마렉이 처량한 눈빛으로 충렬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충렬은 마렉의 눈빛을 애써 무시했다. 언제 올라간 것인지 오히려 관중석에 앉아 열심히 마렉을 응원했다.
“파이팅! 조금만 더 뛰어!”
충렬이 보기에 거대 유충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가 않았다.
‘놈은 지쳤다. 조금만 더 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겠어.’
솔직히 지금도 무시무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유충이었다. 하지만 충렬이 보기에는 달랐다.
‘놈의 움직임에는 힘이 실려 있지가 않아.’
그렇게 점점 유리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살필 때, 마렉을 쫓던 거대 유충에게 레일리가 스킬을 사용하였다.
[<죽음을 거스른 레일리>가 ‘거대 유충’에게 ‘파이어 볼트’를 사용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이글거리는 불이 뾰족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곧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파이어 볼트.
파이어 볼트는 만들어지자마자 레일리의 인도에 따라 움직였다. 목표는 거대 유충의 몸뚱이였다. 화살보다는 느리지만 비슷한 속도로 날아가는 파이어 볼트가 거대 유충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푹!
옆구리에 날카롭고 뜨거운 것이 파고들자 거대 유충이 잠깐 움찔거렸다. 그러나 말 그대로 잠시였다. 녀석은 다시금 눈앞에서 잡힐 듯 말 듯 도망가고 있는 마렉을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놈은 다시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옆구리에 파고든 파이어 볼트가 타올랐기 때문이다.
화아아아아악!
그로인하여 놈의 옆구리는 잘 익어가기 시작했다. 철판에 바비큐를 굽는 소리가 들렸다.
치이이이익!
피부를 뜨거운 불로 지지면 얼마나 아플까? 아마 간단하게 아프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리라. 그것은 거대 유충도 마찬가지였다. 계속된 화상에 결국 거대 유충이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키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자신에게 이러한 고통을 안겨준 존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해골 마법사 레일리에게로 어그로가 옮겨진 것이다.
물론 가만히 두고 볼 충렬이 아니었다. 지구에 있을 때도 평소 자취방에서 온갖 게임을 하던 충렬이었다. 거대 유충의 어그로를 다시금 돌리는 것은 누워서 만화책을 보는 것보다 쉬웠다.
“마렉아, 때려라.”
그러자 한창 도망을 치던 마렉이 등을 돌렸다. 지금까지 도망을 쳤던 굴욕을 갚겠다는 것일까? 마렉은 한 손에 들고 있던 둔기를 쥐어 잡고서 거대 유충에게 달려들었다.
***
결국 끈질긴 협공에 버티지 못한 것은 거대 유충이었다. 지쳐 버린 놈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간신히 일어서려고 꿈틀거리던 유충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육중한 몸뚱이가 옆으로 기울어지며 바닥을 강타했다.
쿠웅!
동시에 녀석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발생했다. 결국 승자는 마렉과 레일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둘을 부린 충렬의 승리였다. 앉아서 명령만을 내리던 충렬이 쓰러진 유충을 보더니 말했다.
“쉽네.”
충렬의 대답에 어이없음을 느꼈던 것일까? 저 멀리서 마렉과 레일리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이빨을 부딪쳐 갔다.
따닥. 딱. 따다닥.
하지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제는 해골에 불과한 둘이었으니까. 충렬은 그저 쓰러진 유충을 감상하며 시스템의 음성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5초 뒤,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정말로 거대 유충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거대 유충’을 사냥함에 있어서 기여도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며 1,000 카르마가 지급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였다. 그저 특성을 얻기 위해 놈을 사냥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1천 카르마나 받게 되었다.’
본래라면 얻지 못할 보너스였다. 그런데 웨인 덕분에 새로운 병종도 얻고 막대한 카르마를 얻어가게 되었다.
‘고마운 녀석이었군.’
충렬은 피식 웃으며 시스템이 말하는 것을 조용히 듣기로 했다. 보너스는 보너스였고 이제는 본래 주어지는 보상의 차례였기 때문이다.
[‘거대 유충’의 사냥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직업 고유의 특성 중에서 하나가 개방됩니다.]
[특성 ‘죽음을 버티는 자’를 습득하였습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이 의문을 품었다. 특성의 이름만 들어서는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버티는 자?’
당연히 특성이 궁금했던 충렬은 곧바로 특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죽음을 버티는 자: 스스로의 죽음에 임박했을 때, 죽지 않고 언데드로 되살아나게 된다. 하지만 언데드 상태일 때는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며, 또다시 죽음이 닥쳐오면 정말로 사망하게 된다. 안전한 상황을 오랫동안 유지하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다. 레벨에 따라 변하게 되는 모습이 달라진다.]
‘이런 미친……!’
특성을 살펴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특성이란 것이 이렇게 엄청난 것일 줄이야 몰라서였다.
‘목숨이 하나 추가되었잖아!’
만약 거대 유충을 처치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면?
‘두고두고 후회를 할 뻔했다.’
설마 했는데 이런 특성을 얻어가게 되다니. 유충을 사냥하고자 했던 결정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충렬이 감탄할 시간도 없이 시스템이 알려왔다. 이제는 이 장소를 떠나야 함을 말이다.
[도전자들의 캠프로 가기 위한 포탈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알려주었다. 지금까지 충렬이 겪은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수고하셨습니다.]
[튜토리얼을 완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