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충렬이 등을 돌리는 와중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등을 돌리기 전, 마렉의 거품 무는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끄르륵…….”
마렉은 큰 소리를 외치려고 했는지 입을 크게 뻥끗거렸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식도를 타고 넘어오는 혈액으로 인해 그의 목구멍은 진즉 막혀 버린 지가 오래였다.
그런 그의 앞에는 웨인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랬다. 마렉을 저렇게 만든 인물은 웨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무너져 가는 마렉의 앞에 서 있었고 웨인의 손엔 마렉의 것으로 추정되는 심장이 들려 있었다.
순간적으로 발생한 어이없는 상황에 충렬이 멍하니 볼 즈음. 웨인은 자신의 손에 들린 마렉의 심장을 강하게 쥐었다.
콰직.
그와 동시에 그대로 쓰러지는 마렉.
털썩.
레일리는 마렉의 죽음에 당황했는지 크게 비명을 질렀다.
“뭐, 뭐 하는 짓이에……!”
그러나 그녀는 이내 스킬을 사용한 후유증 때문인지,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단지 자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감쌀 뿐이었다. 좋지 않은 상태에서 소리를 지르니 통증이 발생한 탓이리라.
“으윽……!”
웨인은 그런 레일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충렬은 도와줄 수가 없었다. 웨인과 레일리의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기 때문이다. 충렬은 레일리에게 적의가 없음을 나타내 주고자 거리를 벌린 것인데, 상상치 못했던 웨인이 오히려 일을 벌였다.
그렇게 웨인이 다가오자 움직이기 힘든 상태임에도 분명한 레일리가 공포에 깃든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왜… 도대체 왜……!”
그녀의 물음에 웨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충렬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 직업은 광인이다. 스킬은 2개를 가지고 있고 그 스킬은 바로 ‘살육’과 ‘적출’이지.”
왜 갑자기 자신의 소개를 하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충렬은 놈의 행동을 무심히 지켜보며 침착한 자세로 냉정을 유지했다. 나서서 레일리를 도와주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웨인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특히나 놈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안 된다.’
충렬이 자신을 지켜보거나 말거나 웨인은 레일리에게로 걸어갔다.
뚜벅. 뚜벅.
웨인이 가까워질 때마다 레일리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갔다. 그러나 충렬은 정말로 그녀를 당장에 구해줄 수가 없었다. 사실 충렬은 자신의 선택지에서 그녀를 구한다는 경우를 이미 배제한 상황이었다.
지금부터는 스스로의 목숨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위험한 놈을 만나 버렸군.’
그렇게 충렬이 웨인에 대해 대비를 할 즈음. 놈은 무방비한 레일리의 앞까지 결국 도착하고 말았다. 레일리의 앞에 도착한 웨인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스킬의 후유증으로 인해 레일리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아악!”
충렬은 그런 놈의 행태를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웨인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레일리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충렬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살육은 패시브 스킬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죽이는 데 성공하면 스킬의 후유증이 그 즉시 사라지지.”
그러더니 그는 놀고 있는 나머지 손으로 레일리의 가슴에 가져다 대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적출은 살아서 숨을 쉬는 대상을 그 즉시 죽일 수 있다.”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설명을 끝낸 그가 스킬을 사용했다.
“적출.”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레일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마치 두부 안으로 파고들어 가는 이쑤시개처럼, 그 어떤 저항도 없이 손쉽게 레일리의 가슴으로 파고들어간 것이다.
푹.
동시에 넣었던 팔을 다시 빼내는 웨인. 그러자 섬뜩한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푸슉.
레일리의 몸에서 손을 빼낸 웨인의 오른손 위에는 그녀의 심장이 들려 있었다. 물론 오랫동안 들고 있을 생각이 없었는지 놈은 들고 있던 심장을 강하게 쥐었다. 이미 심장을 적출한 상황에서 레일리는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굳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좋았지만, 그러한 그의 행동은 일종의 의식에 가까워 보였다.
콰직.
그와 동시에 웨인은 잡았던 레일리의 머리채를 놓았다. 그러자 죽은 레일리의 육체 또한 더 이상은 무게중심을 유지하지 못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털썩.
순식간에 마렉과 레일리를 처치한 웨인이 입을 열었다. 그는 충렬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여기 있는 시체나 던져주고 조용히 올라가도록 하지.”
그것은 협상처럼 보였지만 일종의 경고였다. 자신은 스킬을 사용함에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으니 응하지 않겠다면 죽이겠다는 협박 말이다.
하지만 충렬은 웨인의 의도를 이미 모조리 파악하고 있었다.
놈이 곧바로 덤비지 않은 이유는 뻔했다. 마렉과 레일리의 스킬을 받은 충렬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것이리라. 만약 마렉과 레일리의 버프를 충렬이 받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곧바로 덤볐겠지.’
충렬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처음에 보였던 존댓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야,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디?”
웨인의 말이 진심이라고 해도 충렬은 놈의 협상에 응할 생각 따윈 없었다.
‘어차피 죽이려고 했으면서. 괜한 시간을 끄는군.’
놈의 두 눈은 이미 핏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단지 충렬의 몸에 굳건한 방어와 실드가 적용되어 있으니 잠시 떠본 것뿐이리라. 그리고 그런 충렬의 생각은 정답이었다.
“쯧. 곱게 죽여주려고 했더니.”
그렇게 말하며 웨인은 곧바로 달려들 자세로 바꾸었다. 놈의 빠른 태세 전환에 충렬이 고개를 저었다.
‘어지간히 자신의 스킬에 자신이 있나 보군.’
저 자신감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스킬 두 개를 가지고 시작한 경우라면 다른 사람이 얻지 못한 직업을 처음으로 골랐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웨인의 말을 들어보니 놈의 스킬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나 제법 잘 통할 스킬이었다.
충렬은 상단에 표시된 시간을 보았다.
[출입구가 부서질 때까지 남은 시간: 1분 37초.]
‘1분 안에 끝내야겠군.’
그리고 입을 열어 지원군을 불렀다. 웨인의 스킬에 당하지 않을 지원군을 말이다.
“해골 병사 소환.”
그런데 해골 병사를 소환하려던 그때였다. 시스템이 아주 놀라운 정보를 알려왔다.
[근처에 사용할 수 있는 시체가 존재합니다.]
[시체를 이용한 스킬의 사용은 부작용을 현저히 감소시킵니다.]
[시체를 활용하시겠습니까?]
[시체 목록]
[풋내기 프리스트 ‘마렉’]
[풋내기 엘리멘탈리스트 ‘레일리’]
순간 데프론을 소환하려고 했던 충렬이 멈칫했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런 기능도 있었군.’
때문에 곧바로 대답했다. 방금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었기에 꺼림칙하다는 죄책감은 없었다. 지금은 당장 눈앞의 적을 신경을 써야 할 때였다.
“마렉과 레일리의 시체를 사용한다.”
어차피 해골 병사는 2명까지 소환이 가능했다. 그래서 마렉과 레일리의 시체를 동시에 사용한다고 말했고, 예상대로 스킬은 발동되었다.
물론 중간에 걱정되는 시스템의 설명이 생겨나기는 했다.
[직전에 발생된 시체이기에 그들의 영혼이 아직 떠나지 않고 머물고 있습니다.]
[그들의 허락이 있어야 당신은 도전자들의 시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마렉이 당신의 스킬을 받아들입니다.]
[안식을 거부한 풋내기 프리스트 ‘마렉’이 당신의 부름에 일어섭니다.]
[레일리가 당신의 스킬을 받아들입니다.]
[죽음을 거스른 풋내기 엘리멘탈리스트 ‘레일리’가 당신의 부름에 일어섭니다.]
그렇게 스킬을 발동시키자 충렬은 알 수 있었다. 정말로 시체를 사용하니 스킬의 부작용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두통이 여전히 발생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감기가 걸렸을 때 골이 살짝 울리는 정도였다.
그러나 충렬은 부작용에 대한 것보다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흠… 시체에게 스킬을 적용했을 때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인가?’
아마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의 영혼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반대로 말하면 영혼이 머물지 않는 시체는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겠지.’
어쨌거나 마렉과 레일리는 다행히 충렬의 스킬을 받아들였고, 곧이어 살가죽과 분리된 해골 2기가 일어섰다.
스스스슥.
그렇게 서서히 일어서는 2기의 해골.
충렬의 해골임을 증명하는 듯, 그들의 이름이 각자의 두개골 위에 표시되었다.
<안식을 거부한 마렉>
<죽음을 거스른 레일리>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축하드립니다. 실제 시체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당신은 새로운 병종을 탄생시켰습니다.]
[네크로맨서의 업적을 발생시킨 당신에게 스킬을 부여합니다.]
[패시브 스킬 ‘스켈레톤 스페셜리스트’를 습득하였습니다.]
[스켈레톤 스페셜리스트 - 패시브: 새로운 병종을 등록하거나 등록된 병종을 소환할 수 있게 도와준다. 랭크는 올릴 수 없다(현재 등록된 병종: 보병, 암흑사제, 마법사).]
그리고 새로운 스킬로 인해 기존 스킬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새로운 병종의 탄생으로 ‘해골 병사 소환’ 스킬이 ‘해골 병력 소환’으로 이름이 변경됩니다.]
[해골 병력 소환 - E랭크: 고유의 병종에 해당하는 관련 장비를 장착한 해골 병력을 소환한다. 최대 2개체까지 유지 가능(D랭크까지 700카르마 필요).]
제법 길었던 시스템의 설명이었다. 그렇지만 충렬은 단번에 그 모든 설명을 이해하며 눈앞의 적을 주시했다.
그렇게 해골로 부활하게 되면서 마렉에게는 뼈로 만든 둔기가, 레일리에게는 뼈로 만든 완드가 각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해골 2기가 등장했기 때문일까? 당장에라도 덤비려던 웨인은 충렬이 해골을 2기 소환하자 놀란 눈빛을 보였다. 어지간히도 당황을 했는지 스스로가 말을 더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부, 분명 스킬은 하나라고 하지 않……!”
충렬은 그런 그를 보고 피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나라고 그걸 곧이곧대로 말을 했을까 봐?”
그러면서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저놈 죽여.”
그러자 충렬의 명령을 받은 마렉과 레일리가 움직였다.
[<안식을 거부한 마렉>이 전투 모드에 돌입합니다.]
[<안식을 거부한 마렉>이 ‘웨인’을 목표로 합니다.]
[<죽음을 거스른 레일리>가 전투 모드에 돌입합니다.]
[<죽음을 거스른 레일리>가 ‘웨인’을 목표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