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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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시야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지하 광경과는 전혀 달랐다. 공간 규모부터 엄청난 크기를 가진 지하 3층은 축구를 위한 월드컵 경기장 규모다. 심지어 관중석마저 존재했다. 물론 관람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 공간의 중앙에 충렬이 소환되었다. 충렬뿐만이 아니었다. 근처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 또한 존재했다. 충렬까지 합치면 총 4명이었다. 온몸에 문신을 한 백인 남성 하나에 모델 같은 기럭지를 가진 여성 하나. 그리고 1미터 90은 넘을 정도로 건장한 체격의 흑인 남성까지. 모두가 20대 정도로 보이는 인물들이다.
‘드디어 처음으로 사람들을 마주치는군.’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살며시 거리를 벌렸다. 그들 역시 충렬처럼 묘비의 글을 보았을 거고, 혹여 죽임을 당할까 봐 경계하는 것이리라. 역시나 이들도 지하 2층을 지나쳐 온 인물들답게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서로를 경계하거나 말거나 충렬은 당장 일어난 변화를 인지했다.
‘흠, 그러고 보니 데프론은 자동으로 역소환이 되었네.’
아마 지하 3층으로 이동되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상황을 살필 사이, 입을 먼저 연 것은 흑인 남성이었다. 신기하게도 그가 말하는 언어는 충렬도 처음 듣는 것이었지만 그 의미가 이해되었다.
“나는 쓸데없는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 카르마를 얻자고 뒤통수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먼저 입을 연 흑인 남성의 의견에 금발의 백인 여성이 동의했다.
“동의해요. 얼마나 강력한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르고. 서로 협력하죠. 저는 레일리예요.”
레일리가 자신의 소개를 하자 흑인 남성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난 마렉이다. 그쪽은?”
그러면서 그는 백인 남성에게 턱짓했다. 그러자 그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온다. 그는 길게 말하는 것이 싫었는지 간단히 이름만을 내뱉었다.
“웨인.”
그렇게 서로 이름을 알게 된 셋이 일제히 충렬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충렬은 그들의 시선을 마주보고 있지 않았다. 경기장의 한쪽 끝에 마련된 장소. 선수 대기실 같은 곳으로 시선이 가있었다. 그곳에서는 무언가가 튀어나오려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일단 대답은 해줘야 했기에 충렬이 입을 열었다.
“이충렬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지금은 자기소개 따위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겠는데요?”
충렬의 말은 정말이었다. 한쪽 끝에서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하는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충렬이 말을 끝내자마자 지축이 울렸다.
쿠구구구구구구궁.
돌로 만들어진 한쪽 관중석에 미약한 진동이 일었다. 나오려는 입구가 좁았는지, 대기실에서 완전히 나오지 못한 녀석은 입구를 부수고 나오겠다는 듯이 몸부림쳤다. 때문에 발생하는 진동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녀석의 크기는 심상치 않았다. 대충 크기를 가늠해 보아도 고속버스 2대 정도는 합친 정도의 덩치였다. 그런 녀석이 사람이 다닐 법한 출입문을 지나치려 하니 그곳의 입구가 무너지려는 것이다.
어쨌거나 충렬의 경고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녀석을 발견한 모두가 놀란 눈치였다.
“저건 뭣……!”
“저렇게 크다고?”
그러나 놈에 대해서 파악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일행들이 놈에 대해 완전한 인식하기도 전에, 시스템이 녀석에 대해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카타콤]
[지하 3층 - 거대 유충.]
그런데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시스템의 음성도 급박해졌다.
[카타콤의 지하 3층에는 거대한 유충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어떤 몬스터로 성장할지 모르는 거대 유충.]
[녀석은 추후 얼마나 위험한 몬스터로 변할지 도무지 감을 잡기가 힘듭니다.]
[추후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놈을 제거하십시오!]
하지만 시스템이 제시한 길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놈을 상대하기가 무리라고 생각되면 당신들 중 하나가 제물이 되십시오.]
[녀석이 출입문을 부수어 진입하기 전까지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든, 죽어 있는 시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포만감을 느끼게 된 녀석은 한동안 잠잠해질 테고]
[다른 도전자들이 와서 처리할 것입니다.]
[출입구가 부서질 때까지 남은 시간: 5분.]
그렇게 도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다.
녀석을 사냥하던가.
혹은 자신들 중에서 한명을 희생시키던가.
하지만 이어지는 보상에 충렬은 생각을 굳혔다.
[제거 성공 시 보상: 직업 고유 특성 개방, 도전자들의 캠프로 진입.]
[제물을 바쳤을 때 보상: 도전자들의 캠프로 진입.]
‘무조건 제거하고 가는 것이 좋겠군.’
사냥에 성공하는 것하고, 제물을 바치는 것하고는 보상이 달랐다. 더군다나 사냥을 성공했을 때 주는 보상인 직업 고유의 특성 개방. 그것은 허투루 넘길 만한 것이 아니리라.
‘이번에 잘못된 선택을 하면 나중에 충분히 뒤쳐질지도 모른다.’
즐겜 유저와 같은 마음으로 임하는 충렬이었다. 그러나 괜히 지금 편하자고 나중에 고생할 것 같은 길을 걸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충렬은 손해 보는 행동을 싫어했다.
‘직업 고유 특성이니 무언가 특별한 기능이 있겠지.’
말 그대로 직업의 고유 특성을 개방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스킬로 구할 수 없는 것을 얻게 될 터.
‘무조건 거대 유충을 사냥한다.’
그렇지만 한눈에 보아도 유충을 상대하는 것은 쉬워 보이지가 않았다. 몬스터를 공격할 무기조차 없었다. 때리면 허약하게 쓰러지는 고블린의 경우와는 달랐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때린다고 하여도, 거대 유충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지는 의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순간 일행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협력하자고는 했지만 시스템의 설명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경계는 한층 더 심해졌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할 때, 이번에도 마렉이라는 흑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자기가 가진 스킬부터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러자 레일리가 불신의 눈초리로 응답했다.
“당신을 어떻게 믿고 저의 스킬을 말하죠?”
레일리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마렉이 먼저 말했다.
“그럼 나부터 말하지. 내 직업은 프리스트다. 공격 스킬은 없어. ‘굳건한 방어’라는 버프 스킬 하나야. 물리적 공격에 대한 피해를 대폭 감소시켜 준다. 타인에게 걸어줄 수도 있고.”
마렉이 자신의 스킬을 말하자 조용히 있던 웨인이 입을 열었다. 그는 말을 길게 이어가기가 싫었는지 핵심만 말했다.
“직업은 밝히지 않겠다. 보유 스킬은 ‘함정 설치’고 적을 일정 시간 이동하지 못하게 한다.”
마렉과 웨인의 스킬을 듣던 레일리는 인상을 구겼다.
“그러면 우리들 중에 공격적인 스킬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건가요?”
그러면서 그녀도 순순히 자신의 스킬을 밝혔다. 다른 사람들이 스킬을 말했기 때문인지 더 이상 꺼려하지는 않았다.
“저는 엘리멘탈리스트라는 직업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가지고 있는 스킬이 ‘실드’밖에 없어요. 물론 타인에게 사용할 수 있고요. 마렉 씨랑 비슷한 스킬이네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동시에 충렬을 바라보았다.
“당신은요?”
하지만 충렬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역시 스킬 2개를 가지고 시작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인가.’
저들이 거짓말로 하나만 말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일단은 나도 하나만 말해야겠군. 숨겨진 카드는 항상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충렬도 당장에 사용할 만한 스킬을 말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라이프 드레인이었다. 어차피 해골 병사는 저 멀리 보이는 유충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소환에 대한 것은 숨기기로 했다.
물론 라이프 드레인에 대한 것도 온전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저들이 스스로의 스킬을 말했다고는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생각은 없었다.
“라이프 드레인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의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뽑아내서 죽이는 스킬이죠.”
상대의 생명력을 뽑아낸다는 것만 말했다. 뽑아낸 생명력으로 스스로가 회복할 수 있다는 기능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무려 <불멸>에 속하는 스킬이었다. 불멸 자체를 재능으로 가진 이가 극소수일 테니, 이정도로만 말해도 의심은 받지 않을 터였다.
어쨌거나 충렬이 자신의 스킬에 대해 설명하자 레일리라는 백인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유충을 공격할 수단이 존재하네요.”
마렉도 충렬의 스킬을 듣고선 만족한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최대한 저 동양인 친구에게 버프를 몰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저 친구를 보호하면서 우리가 유충의 시선을 끌도록 하지.”
그러자 레일리라는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해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유충을 쓰러뜨리려면 그것이 최고의 선택이네요.”
웨인은 대답이 없었지만 마렉과 레일리의 생각을 들은 충렬이 속으로 생각했다.
‘유충을 사냥하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서 다행이군.’
고블린에게 사용했을 때는 그 효과가 확실했던 라이프 드레인이었다. 거대 유충에게도 제대로 통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적어도 피해는 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어차피 그것도 직접 써봐야 아는 것이겠지만.’
결론을 내렸다면 머뭇거림은 없었다. 어차피 유충에 대한 공격은 자신이 직접 해야 했다. 더군다나 마렉의 굳건한 방어와 레일리의 실드까지 합쳐지면 어느 정도는 유충의 공격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견디지 못한다면 후퇴하면서 기회를 엿보면 되었다. 레벨이 2정도 되니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다. 유충이 덤빈다고 해도 이를 악물고 노력한다면 몇 번 정도는 피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생각을 정리한 충렬이 대답했다.
“그럼 지금 저에게 버프를 몰아주십시오. 곧바로 앞장설 테니까.”
그러자 마렉이 거리낌 없이 입을 열었다. 충렬이 버프 스킬을 받고 도리어 공격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별다른 의심 없이 충렬에게 버프를 사용해 주었다.
“굳건한 방어.”
마렉이 스킬을 사용하자 반투명한 살색의 방패가 생겨났다. 그러더니 충렬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온다. 그가 보유한 스킬을 거짓말하지 않았는지, 정말로 있는 그대로의 버프 스킬이 발동되었다.
[‘굳건한 방어’ 효과가 발생하였습니다.]
[10분 동안 받는 물리 피해를 약간 경감시킵니다.]
그러나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일까? 마렉이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크윽. 30초만 쉬었다가 출발하기로 하지. 스킬을 사용하면 골이 너무 울려서 말이야.”
뭐 상관은 없었다. 아직 상단에 표시된 남은 시간은 넉넉한 편이었으니까.
[출입구가 부서질 때까지 남은 시간: 3분 20초.]
하지만 마렉의 경우와는 달리 레일리는 약간의 눈치를 보았다.
충렬은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충렬이 정말로 유층을 사냥하려고 하는 것인지 의심이 가는 것이리라. 물론 그녀가 의심을 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와의 거리를 벌릴 뿐이다.
“뭐 스킬을 써주지 않아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난 저 녀석을 꼭 사냥해야겠거든요.”
그러면서 충렬은 정말로 앞장서 걸어갔다. 일행들보다는 유충에게 더욱 가까이 위치한 장소로 말이다. 충분히 멀리 거리를 내어 주었다.
그러자 의심이 많던 레일리도 결국 자포자기를 하는 심정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일단은 믿어볼게요. 실드.”
그녀가 스킬을 사용하자 반투명한 푸른 막이 충렬의 주변을 감쌌다.
[‘실드’ 효과가 발생하였습니다.]
[실드는 일정 피해를 대신 흡수합니다. 최대치를 초과하면 실드는 파괴됩니다.]
물론 마렉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스킬을 사용하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안하지만 저는 40초 정도만 기다려 주세요.”
당연히 30~40초 정도가 지난다고 해도 스킬을 사용한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조금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라는 소리겠지.’
그렇게 무방비하게 변한 레일리는 연신 고통이 가시길 기다리는 중임에도 충렬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충렬은 무방비해진 일행을 덮칠 생각이 없었다.
‘걱정이 많은 여자군.’
그러는 와중에도 유충이 튀어나오려는 입구는 여전히 박살이 나는 중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충렬은 일행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유충이 나오려는 입구를 바라보았다.
쿠콰쾅!
쿠쿠쿠쿵!
유충은 하루빨리 나오고 싶다는 듯이 연신 입구를 들이 박았다. 곳곳에 보이는 균열은 곧바로 출입구가 부서지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아직 시간적 여유는 조금 있으니 유충의 특징에 대해서나 살펴볼까?’
때문에 충렬은 유충의 움직임에 예의주시하며 남은 시간을 살펴갔다.
[출입구가 부서질 때까지 남은 시간: 3분 7초.]
그런데 그때였다. 유충에 대해 살피고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충렬의 뒤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푸슉.
충렬의 몸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마렉이 위치한 곳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에서 장기를 뽑아내는 소리와 같았다. 실제로는 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충렬의 무의식은 위기의 경종을 울렸다. 그랬기에 아주 작은 민감한 소리에도 충렬의 귀는 크게 반응했다.
‘설마……?’
위기감을 느낀 충렬은 재빨리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