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충렬의 명령을 받은 해골 병사 데프론이 움직였다. 목적지는 길을 지난 건너편 공동이었다. 데프론은 평범하게 걷는 모양새로 가고 있었다. 해골 병사라고 속도가 느린 것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과 비슷한 속도로 걷는데, 단점이라고는 걸을 때마다 약간의 소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달그락, 달그락.
뼈로 만들어진 해골 병사 아니랄까 봐 움직일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고블린들의 신경을 긁었던 탓일까? 데프론이 건너편 공동에 다다를 즈음. 그곳에 있던 고블린들에게도 반응이 왔다. 놈들은 좁은 길목에서 해골 하나가 나타나자 잔뜩 경계하며 소리를 질렀다.
키아악!
키아아아!
해골 병사도 그런 녀석들에게 마찬가지로 화답해 주었다. 녀석은 성대도 없으면서 고함을 지르려는지 입을 크게 벌리며 비웃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내었다.
겔겔겔.
그러면서 고블린을 향해 짓쳐들기 위해 준비했다. 데프론은 오른손에 쥐고 있던 본 소드를 살며시 앞으로 가져갔다.
스윽.
자세가 변한 데프론의 움직임은 이전과 달리 조심스러웠다. 두 눈은 가장 가까운 고블린의 두개골을 향하고 있었다. 충렬은 데프론의 뒷모습만이 보였다. 그렇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데프론의 전투를 느긋하게 지켜보기로 했다.
‘자, 그럼 감상해 볼까?’
솔직히 묘비에서 보았던 공략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고블린을 유인하여 좁은 길목에서 하나씩 상대한다는 방법 말이다. 그 방법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효율적인 사냥을 할 수도 있었을 터. 그러나 충렬은 그러지 않았다.
‘해골 병사의 전투력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먼저다.’
때문에 다른 명령은 나중으로 미루었다. 그저 놈들에게로 가서 상대하라는 명령만을 주었다. 그리고 데프론은 충렬의 명령을 충분히 따르기 시작했다. 사지로 내몰았음에도 반항하는 기색이 없는 걸로 보아 자신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먼저 움직인 것은 고블린이 아닌 데프론이었다. 데프론을 발견한 고블린들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상황. 그래서일까? 데프론은 소극적으로 대처하기가 싫었는지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고블린을 향해 돌진했다. 갑작스럽게 지목이 된 고블린은 비명을 지르며 마주 달려들었다.
키아아악!
다행히 둘의 전투를 방해하려는 다른 고블린과는 아직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둘이 전투를 벌이는 장소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다른 고블린이 합세하려면 대략 5초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당장 둘의 전투는 1 : 1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데프론과 고블린이 서로 충돌하기 직전, 시스템이 충렬에게 알려왔다.
[<망국의 병사 데프론>이 전투 모드에 돌입합니다.]
[<망국의 병사 데프론>이 ‘고블린’을 목표로 합니다.]
***
서로가 달려들었지만 공격에 먼저 성공한 것은 고블린이었다. 녀석은 자신의 작은 덩치를 이용했다. 상체를 숙이며 데프론의 하체를 들이박은 것이다. 동시에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퍽.
하체가 부딪치자 데프론의 몸뚱이가 순간 기울었다. 고블린은 그 순간을 이용해 더욱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결국 두 다리를 고블린에게 내어주게 된 데프론. 무게중심을 잡지 못한 탓일까? 전혀 버티지 못한 채로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털썩.
데프론을 넘어뜨린 고블린이 그 위에 올라탔다. 승리를 확신하는 듯, 놈은 기쁨의 괴성을 질렀다.
키아아아!
설마 데프론이 선공을 저리 쉽게 내줄 줄이야. 너무나 간단하게 당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생겨났다. 그러나 넘어진 데프론은 도리어 비웃음을 흘렸다.
겔겔겔.
오히려 의도한 바였을까? 고블린이 승리라는 확신에 도취되어 있을 사이. 데프론의 손에 들려 있던 본 소드가 솟구쳐 올랐다.
올라탄 고블린이 곧바로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면 당할 수가 없는 단조로운 움직임이었다. 조금만 주의를 가져도 피할 수 있는 매우 정직한 공격이라는 소리다. 그러나 승리를 확신한 고블린은 여유를 부렸고,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 순간. 놈은 자신의 턱 아래로 본 소드가 찔러오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국 턱 아래로 찔러 들어간 데프론의 본 소드는, 고블린의 머리를 간단히 꿰뚫었다.
푹.
베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본 소드였다. 하지만 살가죽을 찌르고 뚫기에는 충분히 뾰족했다. 그렇게 머리가 꿰뚫린 고블린은 단번에 사망했고, 그와 동시에 상단에 표시된 고블린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처치해야 하는 몬스터 : 평범한 고블린(49/50)]
그리고 고블린이 사망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12 카르마를 습득하였습니다.]
카르마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았다. 시스템의 설명이 있었으니까.
[카르마는 ‘헬리오스’의 화폐를 의미하지만 단순한 화폐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는 카르마의 보유량은 이후 상태창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카르마에 대해 설명을 들은 충렬은 다시 데프론의 전투에 집중했다.
어쨌거나 단순한 일격이었지만 치명적인 공격에 고블린이 손쉽게 절명했다. 순간 데프론이 당하는 줄로만 알았던 충렬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히 놀랬네.’
그런 충렬의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데프론은 재차 움직였다. 움직이는 모양에 감정이라곤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기계처럼. 데프론의 움직임은 부지런하게 이어졌다.
녀석은 고블린에게 박힌 본 소드를 뽑아내더니,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고깃덩이를 옆으로 밀쳐냈다.
뇌를 손상당한 고블린의 육체는 별다른 저항 없이 옆으로 기울며 쓰러졌다.
털썩.
자신의 승리가 기뻤을까? 데프론은 천천히 일어서며 이빨을 부딪쳤다.
따닥. 딱. 따닥.
데프론과는 반대로 살아 있는 고블린들의 경계는 한층 강화되었다. 단숨에 동료가 죽었던 탓이 분명했다. 놈들은 겁을 먹었다. 숫자는 고블린들이 많았음에도 놈들은 겁이 많았다. 처음과 달리 쉽사리 달려들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고블린들의 모습에 데프론이 비웃었다. 실제로 비웃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겔겔겔겔.
고블린들이 달려들지 않고 포위망을 늘려갈 즈음, 먼저 달려든 것은 데프론이었다. 마치 양 떼에 달려드는 늑대처럼 말이다.
데프론에게 두려움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당연했다. 데프론은 언데드였으니까.
***
용감하게 달려든 데프론이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고작 3마리밖에 처치하지 못한 것이다.
[처치해야 하는 몬스터 : 평범한 고블린(46/50)]
그래도 상관없었다.
“대충 데프론의 전투력은 확인했다.”
그렇게 충렬은 데프론이 역소환된 것을 알자마자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데프론이 사라졌음에도 고블린들이 이쪽으로 오지 않는 것을 본다면, 역시나 안전하게 이곳에서 소환만 하면 되었다.
“해골 병사 소환.”
그러나 2번째로 소환 스킬을 사용하자 시스템이 물어왔다.
[어떤 해골 병사를 소환하시겠습니까?]
[무작위, <망국의 병사 데프론>]
무작위에 관해서 궁금하긴 했다. 그렇지만 충렬은 그다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데프론을 소환한다.”
[<망국의 병사 데프론>을 소환합니다.]
***
처음엔 몰랐지만 건너편 공동에는 고블린 50마리가 전부 모여 있었다. 너무 넓은 공동이었기에 당장 보이는 고블린이 몇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관은 없었다. 끊임없이 데프론을 출격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두통의 발생 때문에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은 충렬의 편이었다. 딱히 언제까지 처리하라는 제한 시간 따위가 없었으니 말이다.
[처치해야 하는 몬스터 : 평범한 고블린(4/50)]
이제는 고작 4마리가 전부. 저 정도의 숫자라면 충렬이 나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할 정도다.
“슬슬 전투를 끝내볼까?”
마지막에 남은 녀석들은 직접 처리해 볼 생각이었다.
‘뒤에서 몸만 사리기보다는 그래도 직접 처리해 보는 경험도 있는 것이 좋을 테니까.’
진짜로 생명체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의 두려움 따윈 없었다. 어차피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사실 충렬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상황을 냉정하게 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어쨌거나 고블린은 4마리 정도가 남았다. 그러나 충렬은 당장 나서지 않았다. 아직 데프론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데프론이 역소환을 당하게 된다면 나선다.’
현재 보이는 데프론의 몸은 이미 걸레짝이 되었다. 직전까지 덤비는 고블린들의 수가 너무 많았던 탓인지, 데프론은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여서 집단 구타를 당하는 중이었다.
퍽.
퍼벅.
고블린들의 주먹과 발길질이 데프론에게 적중당할 때마다. 데프론의 뼈들이 하나둘씩 부서졌다.
빠각.
빠가각.
이미 데프론의 하반신은 모조리 박살 난 상황이었다. 본 소드 또한 손에서 놓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애처롭게 저항하는 데프론이었다. 하지만 맨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달려드는 고블린들에게 무의미한 반격만 이어갈 뿐이었다.
데프론을 구타하는 고블린의 숫자는 4마리뿐이었다.
녀석들은 동족들이 죽었다는 사실도 잊었다. 그저 데프론의 뼈가 부러질 때마다 즐거워했다.
킥킥킥.
키칵칵.
심지어 장난기 많은 한 녀석은 데프론을 천천히 죽일 심산이었는지, 혹은 괴롭히며 죽일 작정이었는지 데프론의 남아 있는 손부터 발길질을 해대었다.
퍽.
뜻이 통한 몇몇 고블린들도 함께 데프론의 양손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퍼버벅.
두꺼운 뼈가 있는 곳과 달리 연약했던 손가락의 뼈마디들이었다. 때문에 데프론의 손가락 뼈마디는 산산히 부서져 곧 조각으로 변해야 했다.
빠가가각.
그렇게 차근차근 데프론을 짓밟아가는 고블린들. 벌써 몸체의 50%가량을 잃은 데프론이었다. 그렇지만 녀석은 아직 죽지 않았다. 오히려 손이 박살나면서 무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손목에 위치한 뼈마저 부러질 즈음. 날카롭게 박살난 팔뼈가 뾰족하게 변했다.
공격할 수단이 생기자마자 데프론은 자신의 날카롭게 변한 팔뼈를 이용했다. 방심한 고블린을 향해 공격해 들어간 것이다. 해골을 부수는 행위에 즐거워하던 고블린은 데프론의 은밀한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키키킥.
녀석은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로 날카롭게 찔러오는 뼈를 보지 못했고, 비웃음 가득하던 소리가 비명으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데프론의 오른팔 뼈가. 자신을 짓밟던 고블린의 사타구니를 향해 들이쳤다.
푹.
아까웠다. 데프론이 노린 것은 고블린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길이가 짧아 놈의 생식기를 찌르는 것에 그쳤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고블린에게는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생식기를 포함해 하복부를 그대로 찔려 버린 고블린 녀석은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키에에엑!
하지만 공격에 성공시킨 데프론도 더 이상 움직일 수는 없었다. 악에 받친 고블린들 중 하나가 데프론의 두개골을 부수었기 때문이다.
빠각.
두개골이 박살나자 데프론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망국의 병사 데프론>이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합니다.]
[<망국의 병사 데프론>이 역소환됩니다.]
그렇게 결국 남은 고블린은 멀쩡한 3마리와, 고통에 이기지 못하여 바닥을 구르는 1마리. 총 4마리가 전부였다.
***
숫자가 적은 고블린들을 처리하는 것은 정말 쉬웠다. 체격 차이에서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고블린을 직접 상대해 본 충렬은 어이가 없음에 탄식을 내뱉었다.
‘뭐야, 이런 녀석들을 가지고 그렇게 힘겨운 전투를 했던 건가?’
처음엔 고블린들을 상대하던 데프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충렬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고블린이라는 종족 자체가 허약했다. 당장 충렬의 주먹과 발차기에도 강한 충격을 받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괜히 조심스럽게 접근했군.”
직접 상대하려고 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 때문에 공격 한 번은 허벅지에 허용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공격적으로 나가자 고블린들은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 평범한 성인 남성에 불과한 충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블린들의 입장에서는 이기기가 힘든 상대였다.
“물론 놈들의 숫자가 많았다면 당하는 것은 나였겠지만.”
하지만 숫자가 적은 고블린은 전혀 상대가 되질 않았다.
어찌되었거나 충렬은 멀쩡한 고블린 3마리쯤이야 금방 처리했다. 그리고 아까 데프론에게 생식기를 찔려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는 고블린을 향해 걸어갔다.
“저 녀석에겐 그 스킬을 사용해 볼까.”
사타구니 사이에서 연신 피가 흘러나오는 고블린은 충렬이 다가옴에도 인식하지 못했다. 고통이 너무 심했던 탓인지 오로지 괴로운 신음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키에엑! 키아아악!
그러거나 말거나 충렬은 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아직까지 써보지 못한 스킬을 사용했다.
“라이프 드레인.”
그러자 시스템이 알려온다.
[대상의 신체에 접촉하십시오.]
충렬은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했다. 놈이 발악할 것을 대비해 무릎으로 고블린의 상체를 짓누르며 동시에 녀석의 양팔을 자신의 손으로 압박한 후.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혹시나 싶어 자신의 두통에 대비하며 말이다.
“라이프 드레인.”
[고블린의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청량감이 몸을 휘감았다.
‘뭐지 이건?’
스킬을 사용하면 두통이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겨났다. 그러나 라이프 드레인은 달랐다.
‘두통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고?’
분명 묘비들을 봤을 때 스킬을 사용하게 된다면 신체에 부작용이 발생했다. 특히 대표적으로 두통이 있었다. 그런데 라이프 드레인은 그런 부작용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고블린의 생명력을 흡수하면 할수록 몸에 활력이 넘쳐났다.
‘이거 의외의 소득인데?’
처음에 고블린으로부터 당했던 허벅지의 상처도 이미 복구된 지 오래였다. 그렇게 충렬이 라이프 드레인에 대해 감탄할 사이였다.
드디어 지하 2층에서의 일이 끝나갔다.
한번 사용하면 지속되는 스킬이었는지 붙잡힌 고블린의 생명력은 계속해서 충렬에게 옮겨갔고, 곧 미라처럼 말라 버린 고블린이 사망했다.
[9 카르마를 습득하였습니다.]
[처치해야 하는 몬스터 : 평범한 고블린(0/50)]
[모든 고블린을 처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