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3화 (3/237)

# 3화.

***

충렬이 한창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지하 성당에 불이 들어왔다.

파밧!

파바밧!

오래된 고성의 복도와 같은 장소. 그곳에 충렬이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벽에 걸려 있던 횃불에서 일순간 불이 타올랐던 것이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주변엔 흙이 새어나오는 낡은 벽이다.

그러나 불이 밝혀졌다는 것에 의문을 떠올릴 시간은 없었다.

그와 함께 무미건조한 음성이 이어서 들려왔다.

[이곳은 예전에 팔라딘들이 수련을 하던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팔라딘들은 모두 떠나갔고]

[현재는 지구에서 온 ‘도전자’들의 입문을 위한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도전자라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뚱딴지같은 소리다. 하지만 충렬은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우선은 숨을 고르며 다음 설명을 기다렸다.

[앞으로 당신은 많은 도전을 하게 됩니다.]

[도중에 사망하게 된다면 ‘도전자’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며]

[어딘가의 주민으로 배속됩니다.]

‘그럼 죽어도 진짜로 죽는다는 소리는 아닌가.’

그래서일까? 도중에 보았던 묘비들에서는 심각한 글귀를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자신이 진짜 죽는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럴지도 몰랐다.

‘하긴, 진짜로 죽는다면 어딘가에 자신의 묘비를 세우는 시간 따위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당장에 죽는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생각을 이어나갈 무렵. 음성도 이어졌다.

[도전자의 목표는 ‘신좌’입니다.]

[‘도전자’가 되어 신의 자리에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지금 도전을 포기한다면 곧바로 무작위의 지역으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주민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말에 의문이 들었다.

“흐음. 그 지역들 중 하나에 지구도 포함되어 있는 건가?”

혹시나 싶었다. 어딘가의 주민이라고 했으니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소리인지를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것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충렬이 품는 의문에 답변이 돌아왔다.

[불가능합니다. 이미 지구의 수명은 20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지구의 인간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이고, 도전자들 중에서 신을 뽑아 종족을 다스리게 할 예정입니다.]

[20년이 지나기 전에 지구의 모든 인간들은 이곳 행성. 헬리오스로 이주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보다 친절한 설명이었다. 성당에 들어오기 전까지 협박했던 녀석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급한 것은 여전했는지 녀석은 재차 물어왔다.

[신좌에 도전하시겠습니까?]

녀석의 물음에 충렬은 곧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솔직히 귀찮은 일은 질색이었다. 편하게 사는 것이 장땡이라는 주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도전 따위는 개나 줘버릴까라는 생각이 일순간 크게 들어왔다.

하지만 반대로 궁금했다. 갑작스런 신좌로의 도전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를 말이다. 거창한 목표 따위는 없었다. 무언가 열심히 해본다는 것이 귀찮기는 했지만.

‘갈 수 있는 곳까지는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어차피 지금 포기하나, 나중에 ‘사망’으로 인해 도전자의 자격을 상실하나. 그 결론이 똑같다면.

‘도전해 보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물론 귀찮은 것은 싫었지만 궁금한 것은 더욱 참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손해 보는 짓은 더더욱 싫었다. 무엇을 손해 보게 되는지 녀석이 말을 해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충렬의 감이 일종의 경고를 주었다.

‘당장 말은 공평하게 들릴지라도 괜히 도전자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닐 터.’

지금 괜히 포기를 해서 나중에 후회를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당연히 어설픈 행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왕 하는 것. 멍청한 선택만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게임처럼 즐겨주지.’

어차피 이곳으로의 이주가 정해진 것이라면, 그리고 진짜로 죽는 것이 아니라면 그래도 할만은 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경험은 늘 재밌는 것이었으니까.

결론을 내릴 즈음이었다. 충렬이 생각을 이어가는 것을 기다리기가 힘들었던 탓일까? 더 이상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재촉이 이어졌다.

[30초 이내에 도전 여부를 결정해 주십시오.]

[대답하지 않는다면 도전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

물론 충렬은 녀석의 말이 끝나기 전에 대답해 주었다.

“도전한다.”

***

충렬이 도전이라는 결론을 내리자 응답이 왔다.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카타콤에 마련된 시스템이 당신을 안내할 것입니다.]

짧은 말과 함께 목소리가 바뀌었다. 말하는 녀석이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지금까지 들려왔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아닌, 음산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목소리만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시야에 떠오른 문구도 함께였다.

[카타콤]

[지하 1층 - 선택의 시간]

[당신은 이곳에서 3분 동안 총 3가지의 단어를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당신의 성향을 알아보기 위함이오니 심사숙고하여 선택해 주십시오.]

[시간을 초과하게 될 시에는 도전자의 자격이 박탈됩니다.]

이전과 달리 더욱 기계같이 구는 시스템이었다. 녀석은 충렬에게 머뭇거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단지 시야 상단에는 남은 시간을 표시할 뿐이었고.

[남은 시간: 2분 59초.]

주변으로 수많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수많은 단어들이 나타난 것이다. 단어들은 충렬의 주위를 감쌌다.

<순수> <의지> <믿음> <사랑> <분노> <영혼> <자연> <강철> <지식> <평온> <축복> <권력> <탐욕> <야생> <과학> <마법> <생활> <소환> <정령> <보급> <모험> <격투> <은밀> <복수> <약탈> <살인> <명분> <정의> <창조> <추적> <보호> <방어> <조화> <사냥> <잠행> <수호> <요리> <치유> <예술>…….

단어들은 너무나 많았다. 각자의 단어들을 모조리 읽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내, 충렬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글자들의 크기가 제각각 다른데.’

당장 자신의 전방을 포함해 자신을 둘러싼 높이의 글들은 글자 크기가 비슷하며 제법 컸다. 그러나 아래를 내려다볼수록 단어들의 크기는 줄어들었다. 무릎 쪽에 위치한 높이의 글들은 두 눈으로 집중해도 읽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선택을 잘 하라고 했지.”

문득 성당으로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묘비가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특히 성향의 선택을 잘 해야 한다는 글. 그 글귀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고르는 단어 3가지로 인해 직업이 생기는 것이 분명하다.’

그 외에도 떠오르는 정보가 있었다.

‘잘못 선택하게 된다면 크게 후회한다는 내용이었어.’

하지만 시스템은 생각을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남은 시간: 1분 30초.]

이전 녀석과는 달리, 경고조차 없었다. 문득 남은 시간을 보던 충렬은 빨리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솔직히 큰 글씨들이 안전빵 같아 보이긴 한데 말이지.”

하지만 마음에 드는 단어가 없었다. 무릎 위치까지 있는 작은 단어들이 마지막이었고, 그 이상으로 단어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단어들까지 대충 훑어보았다. 하지만 딱히 두 눈을 씻고 찾아봐도 결국은 마찬가지였다. 마음에 들어오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흠… 이래서야 그냥 막 정해 버릴지도 모르겠는데…….”

선택의 길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갈팡질팡하다가 물을 먹게 된 것일지도.’

여기서 더 우물쭈물 거린다면 자신도 마찬가지일 터.

[남은 시간: 30초.]

남은 시간을 확인한 충렬이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위해 목을 앞뒤 옆으로 풀었다.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데 머뭇거릴 시간조차 주지 않는군…….’

그러던 그때였다.

잠시 생각을 위해 목을 뒤로 살짝 꺾었을 때. 자신의 머리 위로 매우 작고 희미한 글씨가 하나 보였다. 주변에 다른 단어들은 없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거처럼 작고 희미한 단어가, 조심스럽게 떠올라 있을 뿐이었다. 눈을 제대로 뜨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불멸>

그 단어를 본 충렬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뭔가 이거는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당장에 선택하기 위해서 입을 연 것은 아니었다.

“부, 불멸……?”

하지만 단어를 잠시 말하는 것이었음에도 시스템은 곧바로 선택을 했다고 간주했다.

[‘불멸’을 선택하였습니다.]

[나머지 단어들도 선택하여 주십시오.]

[남은 시간: 24초.]

시스템의 응답에 충렬이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뭐야. 단어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선택되는 것이었어?’

왜 이전에 보았던 묘비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등의 기록이 있었는지 이제야 더욱 이해가 되었다. 여기서 입을 잘못 놀리다간 결국 그 단어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충렬은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뜻하지 않게 뭔가 좋은 단어를 건진 것이 분명했다.

‘머리 위에 희귀한 단어가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아래에도……?’

머뭇거림은 없었다. 충렬은 재빨리 아래를 바라보았다. 무릎 아래로는 더 이상의 글들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제자리에서 발을 옆으로 움직이니.

예상대로 숨은 단어가 하나 나타났다. 정말 웃기게도 발밑에 숨어 있었다.

불멸과 상반된 단어.

<죽음>

둘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가 않았지만 충렬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고 발견하기가 매우 힘든 단어가 분명하니 일단은 선택하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죽음……!”

그러자 시스템이 말을 이어왔다.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어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남은 시간: 12초.]

천장과 바닥. 그 두 곳을 보았다. 혹시나 싶어 또 다른 숨겨진 장소가 있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새로운 단어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전방에 여러 글들 중, 구미가 생기는 단어가 존재하기는 했다.

<소환>

“분명 저 단어를 선택한다면 군단처럼 소환물들을 부릴 수 있겠…….”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솔직히 다른 끌리는 글들이 없다면 선택할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시스템은 전혀 의외의 답변을 알려왔다.

[‘군단’을 선택하였습니다.]

본래라면 ‘소환’이라는 단어가 선택되었어야 될 터였다. 그렇지만 소환이라는 단어를 내뱉기 전에 ‘군단’이라는 단어를 내뱉었고. 시스템은 전자의 단어를 인식했다.

[축하드립니다.]

[드러나지 않은 단어.]

[‘군단’을 개방하였습니다.]

시스템의 말에 충렬의 입이 얼어붙었다.

‘……!’

설마 보이지 않던 단어조차 선택할 수 있던 것이었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충렬이 놀라거나 말거나 시스템은 말을 이어갔다.

[이후 도전자들의 선택지에 ‘군단’이 추가됩니다.]

동시에 군단이라는 단어가 충렬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어딘가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군단’이라는 단어는 충렬이 선택했던 ‘불멸’, 혹은 ‘죽음’보다 그 크기가 작았다.

동시에 충렬은 깨달았다.

“사람들이 선택한 빈도수에 따라 글자 크기가 변하는 것이었군.”

아마도 그 생각이 정답일 터였다. 물론 충렬이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거나 말거나 시스템의 음성은 계속되었다.

[당신이 선택한 단어가 재능으로 등록됩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누구도 얻어가지 못한 직업]

[‘네크로맨서’에 최초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네크로맨서라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직업이었다. 충렬이 어처구니없게 직업을 습득할 사이, 시스템은 직업에 대해 설명해 왔다.

[본래 네크로맨서는 불멸을 다루기 위해 시체를 연구하던 술사였습니다.]

[시체들을 연구하던 술사들은 이후 네크로맨서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런 그들이 모여 네크로 시티를 만들며 거대한 집단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직업이었는데 시스템은 직업의 기원까지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렇게 네크로 시티에서는 불멸에 대해 연구했지만, 오랜 시간을 연구했음에도 결국 그 답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거듭된 연구 끝에 그들은 마침내 시체에 대해 완벽한 해부학 지식을 가질 수가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죽지 않은 시체를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네크로맨서를 따르는 시체들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동시에 막강한 주술사로서의 힘이 더해지니 개개인의 무력은 결코 한 나라의 전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직업에 대한 기원은 딱히 들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렇지만 듣지 않는 것보다는 좋으리라. 자신의 직업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차후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몰랐다.

[비록 강력한 힘을 갖게 된 네크로맨서들이지만 그들은 결코 악하지 않습니다.]

[그저 불멸에 관한 연구를 할 뿐인 순수한 술사들의 집단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그들의 길에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네크로맨서들의 염원을 부디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스템은 계속해서 충렬에게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지금부터 ‘상태창’의 이용이 가능합니다.]

‘상태창이라고?’

그저 상태창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충렬의 눈앞으로 정말로 상태창이 나타났다. 마치 게임에서 캐릭터의 상태창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충렬의 상태창은 매우 빈약했다.

<상태창>

이름: 이충렬

직업: 풋내기 네크로맨서

재능: <죽음><군단><불멸>

그렇게 충렬이 자신의 상태창을 살펴볼 때였다. 아직도 시스템의 음성은 끝나지 않았다.

[최초의 직업을 얻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스킬북 외에 하나가 추가로 지급됩니다.]

[스킬북의 표지에는 스킬 관련 재능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무뚝뚝했던 시스템이 맞나 싶을 정도로 녀석은 친절한 설명을 이어왔다.

[당연히 자신의 재능에 속한 것들만 익힐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재능이 표시되어 있지만 마찬가지로 무관한 재능도 함께 표시되어 있다면 습득을 할 수가 있음에도 대신 위력은 약해집니다. 차후에 얻을 스킬북에 대하여 참고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충렬에겐 두 권의 책이 주어졌다.

[‘<불멸>의 스킬북’을 획득하였습니다.]

[‘<죽음>과 <군단>의 스킬북’을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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