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입문
***
협곡 중에서도 생기를 찾아볼 수가 없는 죽은 협곡. 주변에 보이는 나무들은 생기가 빨리듯 모조리 비틀려 말라 버렸다.
어두컴컴한 하늘의 달빛만이 주변의 전경을 비추어주고 있었는데, 누워 있는 청년의 몸으로 달빛이 환하게 스며들었다.
청년의 정체는 이충렬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동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으… 보일러가 꺼졌나. 왜 이렇게 춥지…….”
그러면서 이불을 더욱 끌어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손에 이불이 잡히는 일은 없었다.
“흐음… 자면서 이불을 밀쳤나.”
충렬은 서서히 눈을 떴다. 움직이기가 귀찮았지만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피부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몸이 더욱 차가워지기 전에 이불을 덮어야 했다. 그래서 눈을 뜨며 이불을 찾으려 했지만.
“이불이 어디갔…….”
주변에 보이는 것은 온통 을씨년스러운 광경뿐이었다.
“뭐, 뭐야. 꿈인가?”
온통 말라비틀어진 나무와 나뭇가지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보이는 수많은 묘지들. 엄청난 숫자의 묘비들이 자신의 주변으로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갑작스레 보이는 광경에 충렬이 의문을 가졌다.
“하하, 요즘 게임을 너무 많이 했나. 별 이상한 꿈을 다 꾸네.”
혹시나 싶어 볼을 꼬집어보았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던 탓일까? 명백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야.”
슬슬 위화감이 일어났다. 스산하게 부는 바람이 피곤에 적셔 있었던 정신을 서서히 깨워주었다.
“설마… 내가 이동된 것인가?”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이야기.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몰랐다. 누군가는 외계인에 납치가 된 것이라고. 혹은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주변에는 외계인의 모습도, 또는 그 뜨거운 지옥의 용암도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충렬은 알 수가 있었다. 자신도 지구가 아닌 이상한 곳으로 이동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하… 뭐야. 결국 나도 이렇게 되는 건가.”
언젠가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다. 지구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매달 1일. 착실히 어딘가로 이동되었으니까. 그렇지만 그 시기가 오늘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다행이네. 당장은 목숨이 붙어 있는 것 같으니까.”
도대체 어디로 이동된 것인지는 도무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숨을 쉴 수가 있고 온 몸에 감각이 있는 것을 보니 죽은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왜 소환된 것일까? 아니면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질 무렵이었다.
충렬의 머릿속으로 무미건조한 음성이 들려왔다.
[성당으로 이동하십시오.]
“……!”
갑작스런 음성이었다. 그렇지만 충렬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경계가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훑으며 일어섰다.
‘흠…….’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무언가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온통 정적에 잠겨 있었다. 충렬이 대략 5분간 주변을 자세히 살펴볼 무렵. 머릿속에서 또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약간의 경고가 첨가되어 있었다.
[성당으로 이동하십시오.]
[10분 내로 이동하지 않을 시에는 당신의 육체가 소멸하게 됩니다.]
[육체가 소멸하게 될 시에는 지금까지 경험한 장소들 중 한곳에 자신의 묘비를 세우게 됩니다.]
[혹은 다른 사람의 묘비에 추가로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충렬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제기랄, 일단은 움직여야 하나.’
어떻게 자신을 죽인다는 소리인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이상한 장소로 자신을 끌고 온 존재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이곳에서 버텨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우선은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그나저나 성당은 어디 있다는 거지?’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성당으로 보이는 건물은 없었다. 온통 묘비들뿐.
충렬의 바로 앞에도 묘비가 하나 있었다. 묘비에는 수많은 글들이 써져 있었다. 영어부터 시작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등등.
“응?”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르는 글자들이 쓰여 있었음에도 충렬은 묘비에 적힌 글들을 읽을 수 있었다.
-미친, 성당 못 찾아서 여기서 죽음.
-헐 님아, 레알 극혐이요.
-ㅋㅋㅋ 2번째 댓글아. 너도 여기서 죽은 거 아니냐?
-ㅇㅈ.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는 글이었다. 그러나 충렬은 거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경고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당신의 육체가 소멸할 때까지 9분 남았습니다.]
잠시 묘비에 적힌 글을 살필 뿐이었는데, 1분이라는 시간이 지나 버렸다.
‘일단 성당이라는 곳부터 찾아야 하겠는데.’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성당으로 보이는 건물은 없었다.
[8분 남았습니다.]
충렬이 이리저리 더욱 둘러보는 사이 카운트다운은 계속되었다.
[7분 남았습니다.]
시간이 무려 3분이나 지났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기만 했는데도 시간은 무척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지만 도무지 성당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작은 건물의 잔해마저 찾기란 불가능했다.
[5분 남았습니다.]
결국 5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 이제 5분만 지나면 자신이 죽게 될지도 몰랐다.
‘아니, 죽는 것은 정말 확실하다.’
애초에 이런 곳으로 끌려온 이상. 더 이상 머뭇거리면 안 되었다.
시간은 점점 촉박해져갔다. 그렇지만 충렬은 냉정하게 현 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어디에 힌트라도 있을 텐데…….’
그리고 결국 떠올렸다. 어디에서 힌트를 얻을지 말이다.
힌트를 얻을 곳이라고는 역시나 묘비밖에 없었다. 충렬은 아까 보았던 묘비 대신, 다른 묘비를 살펴보았다. 갑작스럽게 이상한 장소로 끌려왔기에 멍하니 있을 법도 했다. 그러나 충렬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며 움직였다.
“젠장. 제발 단서라도 있어라.”
그렇게 다른 묘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자신의 생각은 정답이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이전과 달리, 이번 묘비에서는 제법 정보로 사용할 만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초반에 길치인 뉴비들을 위해 글을 남긴다. 성당의 위치는…….
-? 왜 여기서 글이 끊김?
-글자 수 제한 극혐;
-쯧쯧. 성당 위치도 못 찾냐? 내가 이어서 설명한다. 성당은…….
-아, 답답 보스들 설명 때문에 헤매다가 죽었다.
물론 당장 쓰일 수 있을 만한 정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에 묘비들의 숫자는 많았다. 충렬은 멈추지 않고 다음 묘비를 향해 나아갔다.
“빨리 다른 묘비부터 살펴야겠어.”
그리고 방금과 달리 더욱 도움이 되는 글귀를 발견했다.
-묘비들 사이. 지하로 들어가는 문. 성당 입구.
글자 수의 제한을 고려한 것인지, 간결한 글귀가 남겨 있었고, 그 밑으로 수많은 글귀가 이어졌다.
-꿀팁 감사합니다.
-덕분에 성당 찾음요. 지하 2층에서 죽었지만.
그 외에도 제법 의미심장한 글귀들이 존재했다.
-ㅅㅂ. 1층에서 성향 선택 잘해라.
-나도 선택 잘못해서 똥 같은 직업 걸림.
-저도요. 덕분에 죽고 여기에 댓글 남깁니다.
하지만 충렬에겐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다른 글귀들을 살피기엔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다.
[3분 남았습니다.]
남은 시간은 겨우 3분. 묘비에 적힌 글로 인해 성당의 입구가 어딘지는 대강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묘비들 사이의 비어 있는 공간. 다른 묘비들이 들어서지 못해 드러난 공간이 있었다.
‘아무래도 저곳이 성당의 입구가 분명하다.’
3분이 남은 시점에서 걸어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부터 뛰어간다고 해도 아슬아슬한 정도다.
그럼에도 충렬은 자세를 잡았다.
‘괜히 우물쭈물 거리며 늦게 갈 이유는 없지. 목적지를 정한 이상 빠르게 가봐야겠어.’
그리고 성당의 입구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왜 이곳으로 이동된 것인지,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우선은 명령대로 움직여 주기로 했다. 혹시나 싶어 가는 도중 보이는 묘비들의 글귀도 재빨리 스캔하는 중이었다.
-지하로 들어가는 곳이 성당 입구임.
-자존심 부리지 말고 어서 들어가길.
-난 뻥인 줄 알았는데 시간 지나니까 진짜 죽네;
뛰는 도중 보이는 글귀들은 충렬이 향하고 있는 곳이 정답이라는 듯이 알려주었다.
“헉헉!”
이렇게 열심히 뛴 지가 얼마만일까?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주변을 차지하는 묘비들이 금방 지나쳐갔다.
잠시 뒤, 발에 땀이 나도록 뛴 결과가 결실을 맺었다. 때마침 전방에 보이는 커다란 구멍. 그와 함께 음성이 들려왔다.
[1분 남았습니다.]
“흐아. 심장 터지겠네.”
대강 200미터 정도 남은 거리였다. 멀쩡했다면 충분히 도달할 수가 있는 거리지만 쉬지 않고 뛰었기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빌어먹을! 평소에 운동이나 좀 해 놓을걸.’
그리고 대략 50미터를 남겨 놓았을 때.
[20초 남았습니다.]
‘다행히 늦지는 않겠는데.’
그러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충렬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렇게 잠시 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10초 남았습니다.]
계단은 그리 높지 않았다. 10걸음 걸으면 충분히 내려갈 수 있을 정도다. 계단의 끝에는 어두컴컴한 입구가 보였다.
“제기랄!”
그래도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렸던 탓일까? 충렬은 그대로 넘어지며 뒹굴었다.
쿠당탕!
계단을 뒹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다.
[5초.]
[4초.]
[3초.]
[2초.]
그렇게 계단의 맨 아래에 도착했을 무렵.
[1초.]
무미건조한 음성이 반겨왔다.
[성당에 무사히 도착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자리에 드러누운 충렬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아. 하……. 썩을. 죽겠네.”
거친 호흡을 내뱉는 충렬의 이마엔 어느새 땀방울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