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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을 삽입한 뒤, 감시 프로그램을 실행하자 집안의 전경이 모니터 화면에 나타났다.
집안의 모든 것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맨 처음 거실과 우리 침실의 감시 영상을 열었지만 샤오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샤오잉은 틀림없이 아버지의 침실에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두 곳에서, 샤오잉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재빨리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당분간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간신히 억제하며 아버지의 침실 영상을 실행시켰다.
영상 속에는, 침대에 누워 계신 아버지 옆에 다소곳이 앉아 아버지에게 죽을 떠먹여 주고 있는 샤오잉의 모습이 보였다.
이것을 보자 나는 약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두 시가 넘었는데, 아버지가 왜 이제서야 식사를 하시는 거지?
잠시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지만, 아버지의 상황을 고려해 보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퇴원 후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주무시고 계셔서 제때에 식사를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버지는 배가 고프실 때만 일어나 식사를 하신다.
여전히 죽이나 미음 등의 유동식을 드시지만, 종종 침대에서 나오셔서 걷기도 하셨다.
다만, 몸은 많이 약해진 탓에, 평소처럼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아버지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신 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샤오잉과 아버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낮에는 수시로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왔고 밤에는 내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 두 사람은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애석하게도, 낮 시간동안 샤오잉과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지금 내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그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었다.
"됐어. 샤오잉, 이제 배부르단다."
이런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아버지의 말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버지는 몇 숟가락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부른 모양이었다.
"아버님, 여전히 너무 적게 드셔요.
회복 중에는 많이 드셔야 돼요."
샤오잉은 그릇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입가를 닦아줄 요량인지 바로 티슈를 집어 들었다.
다만, 티슈가 아버지의 입가에 닿으려 하자 아버지는 손을 들어 샤오잉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에는 부끄러움과 어색함이 서려 있었다.
"내가 할게.
샤오잉… 나도 이젠 많이 나아서 입 정도는 혼자 닦을 수 있어.
사실, 식사나 다른 것도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고 말이야.”
아버지는 샤오잉의 휴지를 빼앗아 스스로 입가를 닦았다.
나는 샤오잉의 시중을 거절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샤오잉에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그 두 사람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전으로 돌아 간 것 같았다.
“아버님, 당신은 큰 병에서 이제 막 회복하신 상태에요.
병이 완전히 나을 때까진 제가 돌보는 게 당연해요.”
샤오잉은 아버지의 이런 거절이 익숙한 모양인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부드럽게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고 후, 샤오잉은 항상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했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엔, 조금도 힘들어 하거나 귀찮아 하지 않고 그를 누구보다 극진하게 간호했다.
나는 그런 샤오잉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마음속에선 이미 아버지에 대한 앙금이 사라진지 오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이라면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아버지는 샤오잉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말없이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이며 애써 샤오잉을 외면하려 했다.
샤오잉은 아버지가 입가를 닦던 휴지를 집어 휴지통에 버린 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런 비유가 그다지 적당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마치 사랑스러운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처럼 온화하고 자상했다.
이때, 샤오잉의 눈에 맺힌 따뜻함은 예전 같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잠든 척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샤오잉의 눈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지금, 그녀는 애써 자신을 외면하려는 아버지의 태도에 대해서는 어떠한 불만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되려 더 위안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은 멈춘 듯, 느리게만 흘러갔다.
눈을 감으며 애써 샤오잉을 외면하던 아버지는 그녀가 자신의 방을 떠나지 않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조금 긴장한 듯, 호흡이 점차 빨라졌으며, 두 손은 자신도 모르게 꽉 움켜 쥐고 있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자 아버지가 혼수상태에서 깨신 후, 두 사람이 병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내가 없는 낮 시간에도 병원에선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어색함이 감도는 지금처럼 정상적인 소통을 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내 생각엔 아버지가 깨어난 이후 샤오잉과 거리를 두셨던 것 같다.
근데, 혼수상태였던 아버지가 과연 샤오잉의 고백을 들었을까?
기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줄곧 궁금해 했던 것이다.
비록, 샤오잉도 정확히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자신을 피하는 아버지의 행동에서 뭔가를 눈치 챈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가 혼수상태에서 샤오잉의 고백을 들었을 것이라 믿는다.
비록 다 듣지는 못했겠지만…….....
천천히, 샤오잉의 눈에 미안한 듯 연민의 정이 맺히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그때의 일을 떠올렸던 것처럼 그녀 또한 그때의 일들을 떠올린 것 같았다.
두 눈 가득 미안함과 연민의 정을 담은 샤오잉이 천천히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갔다.
샤오잉이 자신의 손을 움켜쥐자 아버지의 손은 격렬하게 떨렸지만, 샤오잉의 손을 뿌리치진 않았다.
그는 샤오잉이 자신의 손을 잡도록 내버려 두었다.
호흡이 점점 가빠지며 불규칙 해졌지만 아버지는 계속 잠든 척하며 눈을 뜨지 않았다.
그때, 샤오잉의 다른 손이 천천히 아버지의 얼굴을 향해 내뻗어졌고, 곧 머리에 닫자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친자식에게 자애를 베푸는 듯, 혹은 사랑하는 애인을 대하는 듯 그녀의 눈빛은 복잡했다.
아버지의 몸이 조금씩 떨렸다.
그는 샤오잉에게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며 무언가를 견디는 듯했지만, 제지하지 않고, 샤오잉의 ‘애무(愛撫)’를 묵묵히 받아들였다.
"아버님, 병원에 있는 동안 저희는 줄곧 깊은 소통을 나누지 못했어요.
저는 지금 아버님에게 특별한 질문을 하고 싶어요.
그러니, 자는 척 하지마세요, 아셨죠?
우리....이제 얘기 좀 해요."
샤오잉은 한 손으로는 여전히 아버지의 손을 꼭움켜 쥐고 있었지만, 그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거두었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잠든 척하는 아버지의 행동을 꼬집어 말했다.
"무...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니?"
한동안 잠잠히 계시던 아버지도 더 이상 잠든 척 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마지못해 대꾸했다.
다만, 그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다.
"아버님…깨시기 전에, 뭔가 느끼신 거 없나요?
혹은, 제가 당신한테 한 말을 듣진 않으셨나요?"
샤오잉은 이미 마음의 결정과 준비를 끝마친 것마냥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곧장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런 질문은 오래전부터 아버지에게 물어보려 했던 것 같았다.
샤오잉의 이런 질문에 듣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
병원에선, 샤오잉과 아버지는 내가 없을 때에도 깊은 교류를 가지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아마도, 샤오잉은 퇴원 후, 단 둘만이 남게 되는 시간을 노려 아버지의 정신이 '또렷한' 상태에서 그와 '결판'을 지으려 했던 모양이다.
"아…..무슨... 소리야….내가 깨어나기 전이라니?
흠… 난.... 난...아무것도 못 느꼈어.
계속...잠만 잤잖니?
계속 잠들어 있다가….. 갑자기 깨어났기 때문에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어.
정말, 나한테 무슨 말을 한 거니?"
샤오잉의 갑작스런 물음에 아버지는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 아버지의 당황하는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는 대답하는 와중에 몸을 약하게 떨었을 뿐만 아니라, 횡설수설하며 더듬거렸다.
그건 자신의 뻔한 거짓말에 켕겨 하는 모습이 분명했다.
아아... 우리 아버지는 정말 정직하고 어리숙한 사람이다.
샤오잉을 마주한 그는 어떻게 거짓말을 해야하는지 몰랐다.
샤오잉처럼 눈치가 빠른 사람이 어찌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가?
"정말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하셨고, 제가 당신께 한 말도 듣지 못하셨나요? "
아버지의 당황하는 표정을 본 샤오잉의 얼굴이 뭔가를 확신한 듯 맑아졌다.
동시에 그녀는 약간 능글맞은 눈빛으로 그런 아버지를 계속 추궁했다.
"정말... 아니야...”
아버지는 샤오잉의 추궁하는 눈빛을 도저히 마주볼 수 없었는지 자신의 시선을 좌우로 피하며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려 했다.
이것은 거짓말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시 한번 다급하게 거짓말을 내뱉는 아버지의 모습에 샤오잉은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손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풀은 다음, 아버지의 머리를 두 손으로 움직여 자신과 얼굴을 마주보게 했다.
동시에 샤오잉은 몸을 천천히 앞으로 기울여 코끝이 서로 닿을 만큼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아버지의 얼굴에 근접 시켰다.
아버지는 샤오잉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몹시 어리둥절 해하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는 오직 당황한 눈빛으로 샤오잉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버님…제 눈을 똑바로 보세요.
제가 한 말을 정말 못 들으셨나요?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신 거예요?"
샤오잉의 목소리는 마치 최면을 거는 듯, 아버지의 귀에 속삭이 듯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