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나와 샤오잉은 손을 들어 올리려는 아버지의 모습이 환각인 줄 알고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지켜 볼 뿐이었다.
어쩌면 이런 우리 두 사람의 반응은 아버지가 정말 ‘깨어나실’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몇 차례 기침을 한 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미동하지 않으셨다.
마치 방금 전 그의 행동이 정말 환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먼저 반응한 사람은 샤오잉이었다.
그녀는 황급히 일어나더니 몸을 돌려 문을 향해 달려갔다.
이 때, 나도 샤오잉의 반응에 놀라며 한 걸음 발을 움직이다 가 간신히 발을 멈출 수 있었다.
침착해지자,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 져야 해.
만약 이때 내가 뛰쳐나가면, 샤오잉을 어떻게 대한단 말인가?
난 흥분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샤오잉은 문으로 달려가다 뭔가를 떠올렸는지 다급히 몸을 돌리며 아버지에게로 돌아왔다.
곧,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카테터를 집어 들곤 아버지의 음경에 조심스럽게 삽입하려 했다.
나는 샤오잉의 이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소변 카테터가 빠져 있는 걸 의사와 간호사가 보게 된다면 샤오잉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샤오잉은 흥분과 긴장감에 쉽게 진정되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손이 너무 떨려 아버지의 요도구에 카테터의 입구를 맞추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잠시 후, 그녀는 아버지의 요도구에 카테터를 삽입할 수 있었다.
카테터를 삽입한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카테터를 요도구에 삽입할 때, 그 통증은 일반인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한다.
지금 샤오잉의 신경은 온통 카테터를 삽입하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다만, 조급한 마음과 손이 떨려 힘조절을 할 수 없었는지 카테터의 관이 요두구에 잘 들어가지 않는 듯 보였다.
그때, 시체처럼 누워 있는 아버지의 미간이 고통에 잔뜩 찌푸려졌다.
아버지는 혼수상태에서도 두 손을 말아 쥐며 온몸으로 고통을 호소하였지만, 눈을 감은 채,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셨다.
가까스로 카테터의 삽입을 마친 샤오잉은 서둘러 아버지의 몸을 이불로 덮었다.
그녀는 문 밖으로 뛰어나간 다음 빠르게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최대한 빨리 당직 의사와 간호사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샤오잉의 발소리가 빠르게 멀어져 간 후에야, 나는 저린 발을 움직여 커튼 밖으로 몸을 빼낼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를 한 번 바라본 뒤, 살금살금 병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 내 발걸음은 매우 조심스러워 설혹, 아버지가 깨어 계신다고 해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라 믿었다.
나는 샤오잉이 잠시 자리를 비운 이 시간을 이용해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병실을 나온 나는 당직실과 반대 방향인 계단을 향해 내달렸다.
이때, 병원 복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병원 건물 뒤편으로 뛰쳐나온 난, 화단에 앉아 저린 발과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면서도, 아버지가 걱정되어 당장이라도 병실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
의사가 아버지의 병실에 도착했을까?
아버지가 정말 깨어나신 걸까?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주머니에서 희미한 불빛이 반짝이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불빛은 매우 약했지만, 조용하고 어두운 밤, 그것은 내 호주머니 안에서 유난히 밝은 빛을 뿌렸다.
이때 주머니 속에 휴대전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휴대전화를 무음로 조정하다 보니 전화 벨소리를 들을 수 없던 탓에,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 액정이 요란하게 깜박인 것이다.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니, 샤오잉이었다.
나는 긴장감에 떨리는 호흡을 진정시킨 후, 전화를 받았다.
"진청!... 진청!.. 아버님이…..의식을 되찾았어요.
의사는 아버지가… 곧 깨어나실… 거래요…..
주치의도 ...지금 ..온대요...."
전화를 받자마자 샤오잉의 흥분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너무 설레서 흥분한 나머지 그녀는 모든 단어들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것만으로 그녀가 지금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정..….정말? 알았어, 나도 바로 병원에 갈게..."
나는 놀란 듯, 몇 초간 대답하지 않다가 깜짝놀란 척, 이렇게 대꾸한 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너무 길어지면, 내 결점이 드러날 것 같았다.
회사에서 병원까지는 대략 3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약 20분 후, 나는 아버지의 병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가면서도 걱정과 초조함을 느꼈다.
그건 꾸며낸 감정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의 안위가 정말 걱정되었다.
이제서야 나는 아버지의 병실에 '떳떳하게(名正言順)'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병실 앞에 도착하자 샤오잉이 들뜬 모습으로 아버지의 병상 옆에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마음을 추수릴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설레고 기쁜지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당직 의사와 간호사는 아버지 옆에 놓인 의료장비를 주시하며 주치의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째든, 주치의는 이미 퇴근하여 집에서 쉬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도착하기 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헉....헉....어떻게 된 거야?"
나는 급하게 뛰어오느라 거침 숨을 몰아쉬면서도 샤오잉에게 물었다.
이때의 내 모습은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정말 급하게 뛰어왔고, 아버지가 걱정되어 서둘러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오늘 밤 오지 못해서… 저 혼자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는데….
40분 전쯤 갑자기....
아버지가 기침을 하셨어요.
그리고, 조금이지만 손도 움직이셨구요.
저는 서둘러 당직 의사와 간호사에게 이 상황을 보고했어요.
당직 의사도 주치의에게 곧장 보고했어요.
주치의도 급히 병원으로 오고 있대요.
주치의가 전화상으로 저에게 아버지가 깨어났을 수도 있다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당신한테 전화해서 알린 거예요"
샤오잉이 이렇게 대답했을 때, 그녀의 눈엔 한 가닥 부자연스러운 기색이 스쳐지나 갔지만, 그녀는 재빨리 자신의 결점을 감췄다.
다만, 그녀를 배신한 것은 그녀의 말투였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샤오잉은 이렇게 거추장스럽고 장황하게 설명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버지가 깨어나셔서 너무 흥분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하더라도....
우리는 더 이상 한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고 주치의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20여분이 더 지나서야 주치의가 병실에 도착했다.
그는 당직 의사와 함께 아버지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진찰이 끝난 후, 그는 우리에게 아버지가 의식을 되찾았으며 내일 정오 무렵이면 깨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소식에 서로의 몸을 얼싸 안으며 기뻐했고 샤오잉은 내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었다…...
다음날 정오에 아버지가 마침내 눈을 뜨셨다.
아버지는 여전히 산소마스크를 쓴 상태였고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그는 힘들게 눈을 떠 나와 샤오잉을 바라보며 손을 미세하게 움직일 뿐이였다.
나와 샤오잉을 바라보는 그의 눈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와 우리를 다시 만난 게 기쁜 듯 한 줄기 행복이 맺혀 있었다.
다만, 그 기쁨이 지나가자 아버지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창백하고 핏기 없는 얼굴로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이 정말 안쓰럽고 가여웠다.
샤오잉과 나는 병상 양쪽에 서서 아버지의 두 손을 잡고 그를 위로하였다.
"아버지,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신 거예요?
저희는 생각하지 않으신 거예요?
저와 샤오잉이 얼마나 괴로웠다고요.”
나와 샤오잉의 눈에선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아버지 또한 계속 눈물을 흘리셨다.
이 때 나는 다른 모든 생각을 잠시 멈춘 채, 뜨거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런 나를 대신해 샤오잉이 소독용 티슈를 집어들어 아버지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요 며칠 동안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세요? 아버지, 전 단 한 번도 당신을 탓한 적이 없었어요.
비록,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제가 결혼했을 때,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셨지만, 당신을 탓한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어머니를 치료하느라 저축한 돈이며 빚까지 잔뜩 지신 걸 제가 다 아는데….
아버지, 다른 건 다 말하지 않을게요.
이 말만 들어주세요.
저는 여태껏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없어요.
당신이 왜 그랬는지 제가 알아요.
그리고 다 이해해요. "
이때 나는 아버지에게 건 낼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려 한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단지,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며, 비난한 적이 없음을 그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말에 담긴 ‘함축된 의미(含義)’를 이해하는 것은 오직 그의 몫이었다.
"이번엔 천만다행으로 깨어나실 수 있었지만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제가 불효자에요.
저는 당신이 그렇게 괴로워하는 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일만 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회복되면, 샤오잉과 제가 당신과 함께하며 노년의 행복을 누리실 수 있도록 할께요.
제가 뭐든지 다 드릴께요.
당신이 원하는 건 제가 줄께요…..
당신이 행복하게 살아 갈 수만 있다면, 아들이 어떤 대가라도 치를께요.
어머니도 떠나셨는데 당신 마저 일찍 떠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내 얼굴에 갖다 대자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며 여러 번 눈을 깜박거렸다.
그건 나에게 전하는 그의 대답인 셈이었다.
이때, 샤오잉은 아버지의 흐르는 눈물만 닦아줄 뿐,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생환'을 말없이 기뻐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매우 빨리 회복하셨다.
매일 나는 서둘러 일을 마친 후,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아버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샤오잉 또한 긴 휴가를 얻은 후라, 종일 병원에 머물며 아버지를 돌보았다.
전력회사도 아버지가 깨어나셨다는 소식에 매우 기뻐하였다.
또한, 전력회사는 아버지의 회복을 돕기 위해 전문 간병인은 고용해서 나와 샤오잉을 돕게 했다.
간병인이 있어서 나와 샤오잉의 압박은 많이 줄어 들었다.
아버지가 의식을 되찾은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못하셨다.
그는 우리에게 무슨 말부터 건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나와 샤오잉을 보기 위해 가끔 눈을 떠,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 보곤 했다.
이때,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는데, 의사는 이것이 정상이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약 반달 후, 아버지는 산소마스크를 떼고 유동식(流食:미음, 갈분죽, 스프류)을 먹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진 후, 그는 계속 링거로 영양분을 공급 받았었다.
그 후, 유동식을 먹을 때, 아버지가 조금 밖에 드시지 않으면 나는 그때마다 ‘잔소리(埋怨)’를 해야만 했고 그는 그런 나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을 뿐 대꾸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안색은 나날이 좋아졌다.
이젠 식사를 마친 뒤엔, 내 부축을 받아 조금씩이지만 걷기도 했다.
이 시간 동안, 나는 매일 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나는 아버지가 깨어난 뒤에야 정신을 차린 것이다.
하늘이 내게 준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만 했다.
아버지가 큰 재난에서 겨우 살아나셨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는 오직 아버지가 빨리 회복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5일 후, 의사는 아버지의 몸이 퇴원해도 될 정도로 회복되어 집에 돌아가 몸조리해도 된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더 이상 입원하여 많은 병원비를 굳이 지불할 필요도 없었고, 동시에 병실도 모자라서 독립 병실을 비워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해서 샤오잉과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올 수 있었다.
지금 아버지의 침실 협탁에는 우리가 갖다 놓은 약들로 한가득이다.
모처럼 아버지는 오랜만에 자신의 침대에 누워 편히 주무시고 계신다.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아버지의 몸이 회복될 것이다.
아버지의 안색은 나날이 좋아지셨다.
다만,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워, 샤오잉과 단둘이 있게 되면 조금 어색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낮 시간엔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밤이 되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다.
그에 반해, 샤오잉은 여전히 장기 휴가 중이라 종일 집에서 아버지를 돌볼 것이다.
오늘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고 나서 내가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잠시 한가해지자 나는 집에서의 상황이 문득 궁금해졌다.
아버지의 몸은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간 들뜨기 시작했다.
내가 없는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재빨리 집에 설치한 감시 영상을 실행시켰다.
오후 2시가 막 지나 있었고, 내가 퇴근하기 까지는 4시간이나 남은 시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