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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와 아내의 월하노인이 되었다-91화 (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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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모든 의식이 나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털썩’ 하며 넘어지는 소리에 나는 애써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의사의 말을 들은 후, 샤오잉은 충격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상태였으며 내가 의식을 되찾았을 땐, 주치의가 샤오잉을 부축하는 것이 보였다.

이때, 내 뇌는 충격에 순간 멈추며, 쓰러지는 그녀를 의식하지 못했고 받쳐 줄 수 없었다.

나 또한 잠깐이지만 기절한 것이다.

다만, 나는 떠나려는 의식을 억지로 부여잡고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지금 아버지와 샤오잉 곁에는 내가 필요해...

애써 정신을 차리며 현실을 직시하려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흐르는 눈물만은 멈출 수 없었다.

옆에 있던 다른 의사와 간호사들이 쓰러진 샤오잉을 부축하여 재빨리 빈 병실로 옮겼다.

나는 그런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샤오잉을 부탁만 하였을 뿐, 함께 동행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주치의에게 아직물어볼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나요?"

나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주치의에게 물었다.

나는 여전히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흠….아직은 아니지만, 거의 비슷합니다.

아버님의 두개골 골절과 상처 부위에 생긴 혈종(hematomas:혈액응고)은 잘 제거되었습니다.

다만 당신 아버지는 깨어나지 못하고 깊은 혼수상태에 빠지셨습니다."

의사는 오랜 수술로 인해 몹시 지친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깨어날 가능성은 있나요?"

" 네... 하지만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셔야 합니다.

만약 아버님이 일주일 안에 깨어나지 않는다면, 저는 당신에게 포기하라고 권하고 싶군요….."

의사는 수 시간에 걸친 수술로 몹시 지친 듯, 선고와도 같은 이 말만을 남기곤 느린 발걸음으로 휴계실을 향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애써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이럴 때 일수록 내가 강해져야 한다.

나까지 쓰러져 버리면 아버지에게는 정말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는다.

잠시 후, 수술침대에 누운 아버지가 간호사들의 손에 이끌려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나는 뻣뻣하게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간호사의 뒤를 따랐다.

아버지의 머리에는 두꺼운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고 얼굴에는 산소마스크가 쓰여져 있었다.

또, 이마에는 뇌파 감지기로 보이는 전선들이 이곳저곳에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머리가 골절되면서 두개골에 혈액이 고여 지름 1㎝의 구멍을 뚫어 혈종을 제거해야 했다.

만약, 혈종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점점 커져 결국에는 뇌신경을 압박하게 되고 사람을 뇌사에 빠뜨리게 만든다.

지금, 죽은 듯 창백한 아버지의 얼굴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편안해 보였다.

지금 죽은 듯 누워 있는 사람이 어머니의 병원비와 내 교육비에 많은 빚을 지시고도 꿋꿋히 버티시던 아버지가 맞나요?

나는 더 이상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는 울컥 쏟아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이제 깨어났을지도 모를 샤오잉에게 가기 위해 중환자실에서 몸을 돌렸다.

아버지의 비보(悲報)를 듣는 순간 샤오잉은 충격에 정신을 잃었고 간호사들의 부축을 받아 다른 병실로 옮겨졌었다.

내가 샤오잉이 누워 있는 병실에 도착했을 땐,  샤오잉은 이미 깨어 있었다.

다만, 그녀는 병원 침대에 등을 대고 누운 채, 흐릿한 시선으로 병원 천장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녀의 눈은 마치 죽은 듯 생기가 없었고 내가 병실에 들어갔을 때조차도 미동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없이 그녀가 누워 있는 침대 옆으로 다가 가 의자에 앉았다.

나는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오직 행동으로만 그녀를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다.

"아버님이 언제 깨어나실 거라고 하나요?"

샤오잉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샤오잉도 깨어나자마자 의사와 간호사들에게서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전해 들었을 게 분명했지만, 나는 그녀의 이런 물음이 놀랍지는 않았다.

"모르겠어…. 오직 하늘만이 알겠지.

당신 몸이 좋아지면 주치의한테 가서 자세히 물어보자.

우선은 쉬어….

지금 주치의도 수술에 지쳐 있어서 쉬는 중이야.”

나는 샤오잉을 위로한 뒤,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잠시 병원 밖으로 나갔다.

샤오잉과 나는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한 입도 먹지 않았고, 잠도 거의 못 잔 상태였다.

지금 우리는 몸도 마음도 극도로 지쳐 있었다.

샤오잉의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건강식을 산 다음, 나는 잠시 집에 들러 생필품을 챙겼다.

지금 아버지는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반드시 곁에서 지켜야 하기에 생필품도  필요했다.

비록 병원에 간호사들이 있긴 하지만 가족이 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다.

모든 걸 준비한 후, 병원으로 돌아와 보니 병실에선 샤오잉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샤오잉이 어디로 간 거지?

설마 아버지를 보려고 중환자실에 간 건 아니겠지?

나는 얼른 짐을 챙겨 들고 아버지가 계신 중환자실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가 계신 중환자실에 도착한 나는 병실문에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 안에 있는 샤오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와 조용히 내가 가지고 온 물건 들을 보호자용 침대에 올려 놓았다.

아버지가 계신 중환자실은 독립 병실이어서 다른 환자는 없었고, 작지만 가족들이 쉴 수 있는 침대도 갖춰져 있었다.

독립 병실인 만큼 환경은 매우 좋았지만 비용 또한 그에 비례해 만만치 않았다.

다만, 비용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일하는 전력회사에서 이미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아버지가 ‘자살’하려 했다는 것을 유서를 통해 밝혔지만 지금은 나와 샤오잉만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회사 사람들은 아버지가 방심하여 미처 대피하기도 전에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라고만 추정했다.

게다가 아버지가 머물던 집은 오랜 세월 동안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그탓에 이번 폭풍을 견디지 못했다고 여겼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회사에서 모든 책임을 져야 했고, 다행히 전력회사의 태도 또한 나쁘지 않았다.

"샤오잉, 뭐 좀 먹자."

나는 초췌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샤오잉에게 작게 속삭였다.

"먼저 씻고 올께요."

내 말을 듣고도 한참을 말이 없던 샤오잉이 간신히 입을 떼며 말했다.

샤오잉은 내가 집에서 가져온 세면도구들을 챙겨 들곤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비록 여자가 남자와 달리 항상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샤오잉이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가는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씻을 마음조차 없을 게 뻔했다.

다만, 나와 얼굴을 마주하기 전, 자신의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던 것 뿐이다.

샤오잉은 한참을 씻은 후, 병실에 돌아왔고, 그제서야 우리는 간단하게나마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비록 우리 둘은 아주 조금밖에 먹지 않았지만 먹기 전보다는 한결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이 무렵, 주치의가 아버지의 병실을 찾아왔다.

"의사 선생님, 저희 아버지가 깨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나요?"

난 아직까지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싶은 마음에 주치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현재 상태는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연세도 많으신 데다가 몹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로 오랜 시간동안 악천후와 추위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깊은 혼수상태입니다만 즉사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식은 없지만 아직 식물인간 상태는 아닙니다.

간단히 설명해서 식물인간은 기본적으로 뇌가 멈춘 상태를 의미합니다.

뇌가 멈추면 뇌파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뇌파란 신경 신호를 대뇌피질에 기록할 때마다 발생하게 되는데, 당신 아버지의 뇌에서는 약하지만 뇌파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는 약하지만 그가 외부자극에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점점 약해지고 있어서, 특별한 반전이 없다면, 약 일주일 후에는 뇌정지 상태에 이를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 경우 가벼운 병증이 식물인간이며, 심한 경우에는 뇌사에 이르게 됩니다.

그 경우 의학계에서는 보통 죽은 사람이라고 판단합니다.”

의사는 아버지의 옆에 놓인 검사 장비를 유심히 바라보며 나와 샤오잉에게 아버지의 정확한 상태를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수술로 뇌신경을 압박하고 있던 혈종이 제거된 상태라 당신 아버지의 상태가 지금보다는 호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환자의 의식이 깨어나야 하는 게 맞습니다.

다만 지금의 환자 상태와 다년간의 경험에 근거한 저의 판단은 ‘환자가 스스로 의식을 닫은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즉, 그건 환자가 스스로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뇌는 오묘해서, 생존 욕구가 강한 사람의 경우 왕왕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중병에서도 그 사람을 회복시키곤 합니다.

또, 반대로 생존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경우, 가벼운 질병에도 사람은 종종 죽음에 이르기도 합니다.

물론, 이건 제 추측에 불과하며 당신 아버지가 꼭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이런 장비로는 환자의 생각까지 읽을 수는 없으니까요.”

의사의 말은 복잡했지만 나는 그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한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아버지는 삶에 대한 욕망, 즉 생존욕이 없어서 스스로 의식을 차단한 상태였다.

아마도, 죽음 만이 모든 괴로움과 슬픔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그의 잠재의식이 그가 깨는 것을 막는 것이리라.

비록 의사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의사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침내 아버지의 모든 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옆에서 의사의 말을 듣고 있던, 샤오잉은 눈물마저 말라버린 듯, 자신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아마 그녀의 생각도 내 생각과 같을 것이다.

다만 그녀는 후회와 자책으로 가득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라 속으로 삭히고 있을 뿐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검사할 것입니다.

보호자 분들은 매일 환자의 몸을 마사지 해 주십시요.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경우,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이 서서히 경직되어 굳게 됩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매일 그리고 자주 마사지를 해주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이 맞을 수도 있으니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자극을 받아 정말 깨어날 지도 모르니까요.

요컨대, 만약 환자의 상태가 제가 추측한 것과 같은 상태라면, 굳게 닫힌 환자의 마음을 열어 주세요.

그가 삶에 대한 강한 희망을 갖게 된다면 그는 분명히 깨어날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의사는 서둘러 병실을 나갔다.

나는 의사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아버지의 닫힌 마음을 열수 있는 사람은 오직 샤오잉 뿐이라는 걸…

만약 샤오잉이 아버지의 닫힌 마음을 풀 수만 있다면 아버지는 깨어날지도 모른다.

샤오잉도 자신만이 아버지의 닫힌 마음을 풀 수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겠지?

샤오잉이 아버지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을까?

혹, 그녀와 단판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건 아닐까?

그 경우 나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하지?

"진청…,만약에 일주일 후에도 아버님이 깨어나지 못해서, 식물인간이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아버지의 치료를 계속할 건 가요? "

이때 샤오잉이 먼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결국, 내가 이 가족의 기둥이기에 나의 결정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계속 치료를 받아야지.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는 한, 깨어날 확률이 만분의 1일 지라도 나는 절대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무런 고민 없이 나의 결정을 말했지만 그건 나의 가장 진실한 마음이기도 했다.

내 결정을 들은 샤오잉은 내가 혹시 치료를 포기할까 봐 두려웠던 모양인지 잠시 안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내 마지막 말에 담긴 의미를 곱씹는 듯 보였다.

"당신은…. 정말,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를 용이가 있나요?"

한참을 망설이며 고민하던 샤오잉이 나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그녀의 표정은 차분했고 매우 자연스러웠지만, 눈빛만은 확고한 결기로 빛나고 있었다.

이 순간, 불현듯 나는 샤오잉이 아버지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리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난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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