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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의 손에서 담배 파이프를 빼내려 했지만 아버지가 꽉 움켜쥐고 있어서 꺼내기 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간신히 담배파이프를 꺼내고 나서, 나는 샤오잉에게 담배파이프를 건내 주었다.
샤오잉은 말없이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아버지의 담배파이프를 받아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병원에 도착한 뒤, 아버지는 바로 응급수술에 들어 갔고, 나와 샤오잉은 애타는 마음으로 응급실 밖 의자에 앉아 결과를 기다렸다.
지금도 샤오잉은 내 어깨에 기대어 흐느껴 울고 있었는데 너무 많이 울어서 벌겋게 부어 오른 그녀의 감긴 눈 사이로는 하염없는 눈물만이 흘러내릴 뿐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이때, 나는 아버지의 품에서 담배파이프를 꺼낼 때, 함께 발견한 종이가 생각났다.
그것은 비닐 봉지에 겹겹이 싸여 있었고 아버지의 옷 안주머니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이 종이를 몰래 숨겼었다.
왜냐하면 그 종이를 본 순간, 이것은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남겨둔 것이며, 유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방구조대는 이미 철수했고, 회사의 담당자도 회사로 돌아간 뒤라 나는 이 틈을 타, 종이에 적힌게 무엇인지 보려했다.
겹겹이 포장된 비닐봉지를 뜯어내자 마침내 누렇게 색이 바랜 종이 한 장이 나타났다.
복잡한 기분으로 천천히 그것을 펼쳐 보았다.
나는 아버지가 이 종이에 무슨 내용을 쓰셨는지 아직까진 확신할 수 없었다.
열어보니 눈에 익은 글씨채가 종이 위에 적혀 있었다.
나는 깊게 심호흡한 뒤,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적힌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진청아, 너가 이 편지를 보게 될지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구나.
아마 너가 이 편지를 보았다면, 난 이미 살아있지 않을 거란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면, 너가 이 편지를 볼 일도 없었겠지….
만약, 이 편지를 보게 되더라도 이 애비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동안 정말 힘들었단다.
너의 엄마가 죽은 후, 줄곧 힘들고 괴로웠었지.
비록, 너와 샤오잉이 나에게 매우 효도하고 있으며, 하오하오 또한 귀엽고 착하게 자라나고 있지만, 너의 엄마가 죽은 이후,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갈 아무런 의욕을 찾을 수 없었단다.
어쩌면 내가 너무 부정적이고 나약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지금은 죽음만이 이 괴로움에서 벗어 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란다.
내 삶은 한평생 고난과 괴로움으로 가득했지만, 너와 샤오잉 그리고 사랑스런 손자가 있어서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단다.
하지만 이 반평생 동안, 나는 스스로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을 끝내 떨칠 수가 없구나.
난 결국 너의 엄마를 지키지 못했고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만들었지.
그리고 너가 결혼할 땐, 가진 것이 없어 너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단다.
결국 난 아버지로써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어...
요컨대, 나는 아내에게도 좋은 남편이 아니었고 너에게도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단다.
그동안 그런 생각들이 내 마음을 괴롭고 우울하게 만들었느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지금에 와서는 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단다.
살아서, 나는 더 이상 내면의 괴로움과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없구나.
그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던 이때, 회사에서 폭풍이 와, 장신섬을 한시적으로 떠나달라는 연락이 왔단다.
나는 이것이 모든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단다.
나는 감히 스스로 목숨을 끓을 용기도, 그렇다고 다시 살아갈 용기도 없어서 이 모든 것을 하늘에 뜻에 맡기기로 했단다.
만약 내가 섬에 머물렀음에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너는 이 편지를 볼 수 없을 거야.
그건 하늘이 나의 죽음 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겠지.
그러면 나는 또 어떻게든 살아 갈 생각이란다.
하지만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그것은 하늘이 나를 벌주려는 것이고, 나 또한 모든 괴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나의 삶과 죽음은 하늘의 뜻에 판가름이 날 거란다.
진청아… 내 침실 서랍속에 서류 봉투가 하나있단다.
그리고, 그곳에는 보험 증서가 들어 있을 거야.
3년 전에 가입한 것이고 보험수익자는 바로 너란다.
가입 당시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피보험자는 계약이 발효되고 나서 2년 후에 자살을 하더라도 보험금 전액을 보상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단다.
그러니, 내가 자살을 했다 하더라도 보험계약은 유효할 거야.
구체적인 보상 금액이 얼마인지는 나도 정말 모르겠구나.
너는 나보다 많은 사회경험과 법률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그때가 되거든 보험회사와 직접 이야기해보도록 하거라.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농촌 신용협동조합의 통장이야.
그건 지난 몇 년 동안 너가 내게 준 용돈과 생활비를 몰래 모아둔 것이란다.
비록 그 안에 있는 돈이 얼마되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 또한 너에게 사죄하고 푼 내 마음의 일부야.
그걸 너와 샤오잉이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샤오잉은 좋은 여자야.
너희 둘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부디 그녀를 저버리지 말거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저승에서도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하오하오도 건강하게 잘 키우렴.
아쉽게도, 나는 그가 성인이 되서 대학에 합격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을 볼 순 없겠지만…..
용서해 줘, 진청아.
난 너에게 자격 있는 아버지가 절대 아니란다.
난 너, 그리고 너의 엄마에게 부끄러운 삶을 살았어.
이만 줄이마….’
이 짧은 ‘유서’를 읽고 나자, 내 눈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려 이미 잔뜩 구겨진 유서 위로 뚝뚝 떨어졌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의 유서를 몇 번이나 접었다 펼치며 반복해서 읽었다.
샤오잉도 내 몸의 떨림을 느꼈는지 감긴 눈을 힘겹게 뜨더니,
망연자실 울고 있는 내 모습과 손에 꽉 움켜 쥔 아버지의 유서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샤오잉이 눈을 뜬 것을 보곤 말없이 아버지의 '유서'를 그녀에게 건내 주었다.
아버지의 유서를 묵묵히 읽던 샤오잉의 눈에선 금세 맑은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고, 편지를 쥔 손과 입술도 약하게 떨렸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지금 그녀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속죄하고 계신다.
비록 유서엔 샤오잉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지만, 나는 아버지가 '유서'로 나에게 속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 그리고 나에게 남긴 보험과 통장을 통해 자신의 죄를 나에게 고백함과 동시에 속죄하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의 삶은 외롭고 쓸쓸하기만 했다.
외로움 삶 속에서 샤오잉만이 그의 유일한 삶의 원동력이었는데 그것은 그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샤오잉의 거절은 삶에 대한 의욕을 완전히 꺾게 만들었다.
관계를 맺은 후에도 그는 양심의 가책과 비난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만 했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만든 것은 샤오잉을 마음속 깊이 사랑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자신의 며느리이며 결코 가질 수도, 가져서도 안 되는 여자이다.
이러한 우울과 괴로움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희망마저 완전히 끊어버린 샤오잉의 결정에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자 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자신과 샤오잉의 비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아마 그는 샤오잉의 명예(名譽)를 지키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그는 나와 샤오잉의 관계가 자신으로 인해 멀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아울러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들에게 좋은 모습으로만 남길 바란 것이다.
그렇게 그는 샤오잉과의 비밀을 영원히 관 속에 가져가려 했다.
마침내 아버지의 유서를 다 읽은 샤오잉은 유서를 나에게 건낸 후,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통곡하듯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른 병실의 의아한 눈초리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내 울었다.
병원에서는 매일매일 삶과 죽음의 희비가 엇갈리듯 이루어 지기에 의사나 간호사는 샤오잉의 그런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아버지의 유서 뒤에 감춰진 의미를 나 또한 이해할 수 있는데, 샤오잉이 어떻게 그걸 이해하지 못했겠는가?
이 순간 구슬프게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가 아버지를 완전히 용서했으며 조금도 미워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녀는 후회하고,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다만, 나는 그녀의 지금 속마음이 무엇일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다....나 때문이야....,나 때문에…, 아버지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나 때문이야.….만약, 내가 그러지만 않았다면….”
샤오잉은 쪼그려 앉아 울면서 넋 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것은 혼잣말 같기도, 스스로를 꾸짖는 말 같기도 했다.
샤오잉의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아버지가 아직 수술실에 계신다는 생각조차 잠시 잊을 만큼 긴장되었다.
샤오잉의 마지막 한마디는.....
마치 아버지와의 비밀을 나에게 고백하려는 전조가 아닐까?
샤오잉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나에게 털어 놓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모른 척을 해야할까?
아니면 이 모든 걸 내가 계획했다는 사실을 이실직고(以實直告)해야 할까?
사실 나는 샤오잉의 고백을 들을 마음의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다행히 샤오잉의 중얼거림은 마지막 문장에서 멈췄다.
"내가 그러지만 않았다면…. " 이라고 말했을 때, 샤오잉은 자신과 아버지의 비밀이 하마터면 입 밖으로 새어나갈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한 가닥 이성이 그녀를 이 순간 정신차리게 했고 제때 말을 멈추게 만들었다.
당황한 그녀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표정이 어땠을지 모르겠다.
아마 많이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샤오잉의 작게 달싹이는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때문이에요..... 제가 여행 가자고 하지만 않았다면,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시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일기예보를 들었을 것이고, 우리는 아버지를 제 시간에 집으로 모셔올 수 있었을 거예요.
그랬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죠...
다 제 탓이에요.
우리가 여행만 가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야….."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자신의 말실수로 하마터면 아버지와 자신의 사이가 들킬 뻔했다는 것을 깨닫곤 재빨리 교묘하게 말을 바꿔 두 사람의 관계를 나에게 숨겼다.
"샤오잉, 자책하지 마. 이 일은 당신 탓이 아니야.
그것은 하늘의 뜻이고 내 잘못이야.
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일에만 몰두하며 홀로 되신 아버지의 외로움과 감정을 등한시 했어.
그게 아니라고 당신이 말한다 해도 내 잘못에는 변함이 없어. 내가 아버지에게 효도를 다했어야 하는데, 아버지의 그런 변화마저도 나는 눈치채지 못했어.
샤오잉…. 그러니 너에겐 잘못이 없어... 다 나 때문이야."
나는 쪼그리고 앉아 부드럽게 샤오잉의 어깨를 감싸 안은 다음 작은 소리로 그녀를 다독였다.
결국 우리는 수술실 바닥에 털석 주저앉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아버지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 만을 기다렸다.
다만,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샤오잉의 울음소리는 오랫동안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가 회복되기만 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아버지와 샤오잉, 이 두 사람과 어떻게 결판을 지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과 결판을 짓고 난 후, 그 결과가 과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아버지가 회복되면 나는 두 사람 사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
1분, 1초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 지나갔다.
샤오잉과 나는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오랫동안 차가운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그때 ‘띵’ 소리와 함께 수술실 앞, 안내등의 색깔이 바뀌며 수술이 끝났음을 알렸다.
그 소리를 들은 나와 샤오잉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아버지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수술실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천천히 문이 열렸고 앞서 나오는 주치의가 보였다.
샤오잉과 나는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나쁜 소식은 듣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주치의가 다음과 같이 말하길 바랐다.
‘수술은 성공적이며 환자는 무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몹시 지치고 낙담한 주치의의 모습을 보고 심장이 바닥에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