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버지와 아내의 월하노인이 되었다-89화 (89/114)

089

서류 봉투 안에는 보험 증서와 통장이 들어있었고 그것을 본 순간 내 눈은 촉촉히 젖어 들었다.

얼마되지 않는 통장의 돈은 아버지가 아끼고 아껴서 모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험 증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손에 들린 몇 장의 종이가 돈 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 가벼운 서류 봉투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내 옆에 서있던 샤오잉도 내 손에 들린 보험 증서를 보곤 땅바닥에 주저앉아 입을 가린 채, 흐느껴 울었다.

하지만 나는 서류 봉투안에 담긴 통장과 보험증서를 보고 오히려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유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서가 없는 한, 아직 실낱같은 희망은 남아있다.

보험증서와 통장은 아버지가 임시로 보관했던 걸지도 몰라?

오늘 밤, 샤오잉과 나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리 둘 다 잠들지 않은 채, 빨리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창문을 두드리던 비바람이 점차 약해지자, 내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폭풍우가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하늘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다행히 기상 조건이 구조 작업을 착수할 수 있는 기준에 도달하여 전력회사 담당자와 소방구조대가 쑹화강에 모였다.

소방구조대는 이번 구조를 위해 필요한 구조장비들을 4척의 구조정에 모두 실은 후, 장신섬으로 곧장 출발했다.

구조정은 지체 없이 출발함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최대노트에 도달했다.

뱃머리가 겹겹이 쌓인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자 강물은 크게 튀어 오르며 우리 몸을 흠뻑 적셨지만 거센 물살 조차도 구조정의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아버지, 아무 일도 없어야 해요. 만일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건 모두 제 탓이에요.”

나는 두 손을 꼭 쥔 채, N-013 장신섬이 있는 곳을 응시하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천천히 아버지가 계신 장신섬이 시야에 들어왔고, 내 심장은 격동하기 시작했다.

장신섬이 시야에 들어오자 나는 당장이라도 배에서 뛰어내린 다음 헤엄쳐 가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아버지가 장신섬에 계시지 않고 기분 전환을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났기를 바랐다.

마침내 배가 장신섬에 도착했다.

나는 지체 없이 뛰어내리며 얕은 강물을 달렸고 샤오잉도 뒤따라 배에서 뛰어내렸다.

나는 빠르게 섬의 상황을 살핀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물이 불어났지만 다행히 아버지의 집은 지대가 높아서 물에 잠기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익숙한 오솔길과 수림을 미친 듯한 속도로 달려갔다.

점점 아버지의 집과 가까워지자 내 심장은 미친 듯 요동쳤다.

주위의 풀들과 나무는 강풍에 모두 쓰러져 있었고, 풍력 발전기 또한 강풍을 이기지 못한 듯 날개가 떨어져 있었다.

"안돼..... 제발... ."

우리가 아버지의 집에 도착했을 때, 우리 모두는 참혹한 현장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가슴은 철컹 내려앉았고 내 뇌는 충격에 순간적으로 멈춰 버렸다.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멍하니 아버지의 집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구조물은 존재하지 않았고 부서진 담벼락만이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계시 던 집 위에는 강풍에 떨어져 나간 풍력발전용 터빈의 날개가 그 위를 덮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아버지의 집이 강풍에 무너진 것인지, 아니면 발전기 날개에 의해 무너진 것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이 섬에는 여러 개의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크기 또한 매우 큰 편이다.

각각의 풍력발전기는 3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고, 길이는 약 35미터에 달한다.

이 가운데 네덜란드에서 수입되는 풍력발전기는 약 1000만 위안이고 국내에서 만들어진 풍력발전기는 약800만 위안이다.

그중 네덜란드 풍력발전기가 발전량이 가장 높아서, 한 바퀴 회전할 때마다 약 5위안 상당의 전기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역시 소방대원들이 가장 먼저 반응하며 장비를 들고 구조작업에 나섰다.

폐허 위로 거대한 날개가 덮고 있어서 2차 충격으로 인한 매몰의 위험성 때문에 발굴 작업은 큰 차질을 빚고 있었다.

우리는 이 집이 언제 무너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시간이 오래됐을수록 아버지의 생명 또한 그 시간만큼 더 위험해질 것이다.

이때, 나는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구조 도구를 들고 필사적으로 건물 잔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두 팔을 움직였지만 전혀 피로를 느낄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샤오잉도 나와 함께 건물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잔해를 치웠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쉬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소방대원들은 교대로 식사를 하며 구조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부서진 풍차의 날개를 피해, 가장 먼저 발굴한 곳은 아버지의 침실 위치였다.

그리고 …… 드디어……

집의 들보와 나무 조각들을 제거하자, 우리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흙투성이가 된 채 창백한 얼굴로  그곳에 누워 있었다.

아버지의 몸에 묻은 흙은 빗물 때문에 진흙으로 변해 있었다.

아버지의 머리에는 무언가 부딪쳤는지 큰 상처가 나 있었고 피를 많이 흘린 듯, 온통 피범벅이었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집이 무너지는 순간 대들보가 무너지는 잔해를 막으며 아버지가 누워있던 위치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이것은 불행 중 행운이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자마자 동행한 의료진이 달려와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핏기 없이 창백한 아버지의 얼굴, 머리에 난 큰 상처, 이미 빗물로 흠뻑 젖은 옷, 그리고 진흙투성이가 된 몸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든 내 몸과 의식을 통제하려고 노력했다.

난 기절할 수 없어.

난 정신을 차려야 해.

지금 아버지에게는 내가  필요해….

샤오잉은 이미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이 때, 나는 비로소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샤오잉이 울고 있는 모습이 바로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었다.

“시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는데 며느리가 이렇게 통곡하며 울다니 친딸도 따라올 수 없겠네.. 쯧쯧.... 이렇게 효성스러운 아들과 며느리가 있는데 … 복받은 사람이네요… … 에휴….”

동행한 의료진은 나와 샤오잉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에 한숨과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때 나는 아랫입술을 너무 꽉 깨물어서 입으로 짭짤한 것이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후회와 자책으로 가득한 내 피였다.

의료진과 소방대원들은 조심스럽게 아버지를 잔해에서 끄집어 낸 후, 비를 피할 수 있는 임시 천막으로 옮겼다.

의료진은 검사 장비로 가장 간단한 검사를 시작했다.

“부상자는 의식이 없는 상태지만 심장박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주 약한 수준입니다.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상자는 머리를 심하게 다쳤으며 두개골 골절로 의심됩니다.

빨리 병원에 가서 응급수술을 해야만 합니다.”

의료진은 간단한 검사를 끝낸 후, 다급한 목소리로 나와 샤오잉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이미 연세가 많으신 데다 머리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로 오랫동안 비바람에 시달리셨기 때문에 언제 돌아 가셔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아직 실낱같은 희망은 남아 있었다.

나는 주저앉아 울고 있는 샤오잉을 일으켜 세웠다.

구조대는 조금이라도 빨리 시립 병원으로 가기 위해 아버지를 들춰 업었다.

나와 샤오잉은 의료진과 함께 배에 올랐다.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에 산소마스크를 쓴 채, 보트 한가운데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이때, 샤오잉은 울음을 멈춘 후, 자책감과 죄책감을 두 눈에 가득 담고 선, 아버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샤오잉은 이따금씩 아랫입술을 쌔게 깨물었다.

이런 샤오잉의 모습을 보자 나는 그녀가 지금 극도로 후회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그때 갑자기 아버지의 오른손이 셔츠 안에 단단히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참 동안 아버지의 손을 빼내려 노력했지만 아버지의 손은 셔츠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오른손에 혹시 중요한 게 들어 있는 걸까?

아버지가 죽는 순간까지도 손에 쥔 물건을 지키려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아버지의 오른손을 셔츠에서 꺼내려 했다.

다만 몸이 이미 단단하게 굳은 탓에 셔츠에서 아버지의 오른손을 빼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 했다.

아버지의 오른손이 셔츠에서 꺼내졌을 때, 나는 마침내 아버지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때, 막 울음을 그친 샤오잉도 아버지가 손에 꼭 쥐고 있는 물건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그녀는 아연실색하며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나는 그녀가 몸을 돌리고 있어서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격렬하게 떨리는 어깨만으로도 그녀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서 아버지와 나에게서 몸을 돌렸을 뿐이다.

나는 곁눈질로 그녀가 입술을 깨문 채, 두 손을 꽉 움켜 쥐고 있는 걸 보았다.

그녀의 손에선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려 노력할 뿐이었다.

잠시 후, 감정을 가라앉힌 듯, 샤오잉이 다시 몸을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다만, 그녀의 꽉 다문 입술과 피 묻은 손을 보자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을 본 순간, 그녀가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때, 내 기분은 복잡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죽음의 순간까지도 손에 꽉 쥐고 보호하려 했던 것은 ....

그의 생일날 샤오잉이 선물한 박달나무 파이프였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