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샤오잉과 나는 모든 물건을 챙긴 후, 장신섬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도, 나는 샤오잉이 아버지에게 어떤 선물을 준비했는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과연 샤오잉은 내 앞에서 아버지에게 그 선물을 열어 보게 할까?
정말 궁금했지만, 내가 그것에 대해 너무 꼬치꼬치 캐물으면 샤오잉이 의심할 수 있어서 더 이상 묻진 않았다.
간신히 배를 타고 장신섬에 도착한 나와 샤오잉은 아버지의 작은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아버지를 놀래 켜 줄 요량으로 우리의 방문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었다.
샤오잉과 내가 작은 집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는 앞치마를 두르고 두 손을 흰 밀가루로 가득 묻힌 채, 부추와 달걀로만 속을 채운 가장 간단한 물만두(水餃)를 빚고 계셨다.
하지만, 생일인데도 불구하고 만두 외에 다른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샤오잉과 내가 갑자기 집에 들어오자 아버지는 만두를 빚던 손을 멈춘 채, 놀란 얼굴로 우리 둘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놀람과 당황은 내 옆에 서 있는 샤오잉을 보게 된 순간 더욱 뚜렷해졌다.
다만, 지금 그의 눈엔 당황보다 더 큰 기쁨과 그리움의 감정이 맺혀 있다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운 연인을 다시 만난 듯, 샤오잉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버지는 나를 의식했기 때문인지 재빨리 자신의 감정을 추수리며 말을 꺼냈다.
"어떻게 된거야? 왜 온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니?
이런...혼자 보낼 줄 알고 만두만 만들었는데….
다른 음식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잖아....”
우리 두 사람의 방문이 너무 뜻밖이었는지 아버지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해 줄곧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다가 내 손에 들린 무타이와 안주를 슬쩍 보시곤 얼른 소매로 얼굴에 묻은 땀을 닦으셨다.
나는 땀에 젖은 아버지의 이마, 그리고 밀가루로 하얘진 얼굴과 손을 보게 되자 코끝이 시큰거렸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일을 이 섬에서 약간의 만두만 만들어 홀로 보내려 한 모양이다.
심지어 그는 단 하나의 고기 음식 조차 준비하지 않은 채, 자신의 생일을 가장 초라하고 평범하게 보내려 했다.
아버지는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홀로 나를 키워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오하오도 키워 주셨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든지 간에, 그는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아버지이다.
그런 아버지가 나의 이기적인 계획으로 말미암아,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집에 돌아오지 못할 만큼 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그 계획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깊은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내가 정말 큰 잘못을 저지른게 아닐까?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며 눈가를 가볍게 훔쳤다.
샤오잉도 내 눈물을 보곤, 자신 역시 가슴 아팠는지 코를 훌쩍였다.
나는 재빨리 손에 든 술과 음식을 내려놓고 손을 씻었다.
"아버지, 저도 같이 만두 빚을 게요.
오늘 하루는 샤오잉과 함께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어요.
하오하오는 장모님이 데리고 가서, 굳이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되요.
아버지...오늘만은... 우리 코가 삐뚤어 질때까지 마셔 봐요.”
나는 손을 씻은 후, 바로 식탁 의자에 앉아, 아버지와 함께 물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하오하오도 데려올 생각이었다.
다만 하오하오의 생기 넘치고 활동적인 모습을 고려할 때, 장신섬은 너무 위험했다.
장신섬은 넓을 뿐만 아니라 숲과 풀이 우거져 있어서, 곳곳에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곳에선 사고가 일어나기 십상이다.
만일 오늘 우리가 과음을 한다면, 하오하오를 돌보기 어려울게 뻔하다.
그런 염려들로 우리는 하오하오를 데려오려던 처음의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여기는 아버님과 진청에게 맡길게요.
대신, 만두를 너무 많이 빚진 마세요.
오늘 진청과 저는 음식 재료를 많이 사왔어요.
제가 바로 다른 음식들을 준비 할게요.
아버님, 앞치마 주세요."
샤오잉은 나와 아버지가 함께 만두를 빚는 것을 보더니 손에 든 물건들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식탁의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자신도 같이 만두를 빚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다른 요리를 준비하려 했다.
아버지는 샤오잉이 말을 들은 후, 재빨리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 샤오잉에게 건네주었다.
아버지는 앞치마를 건네면서 샤오잉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후,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눈을 피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자, 그가 여전히 샤오잉을 편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샤오잉은 그간의 고통과 상처가 조금은 아물었는지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이 차갑지 않았다.
아니...오히려 그녀의 눈은 배려와 연민의 정이 담긴 듯 따뜻하기만 했다.
샤오잉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침착하게 아버지를 마주 보았다.
샤오잉의 이런 변화가 그 둘의 관계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마침내 식사 준비가 끝난 후, 우리 세 식구는 식탁에 앉았다.
아버지가 앉자, 샤오잉과 나는 아버지의 양쪽에 자리잡은 의자(凳子: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았다.
샤오잉과 나의 방문으로 인해 오늘의 식탁은 원앙조개볶음, 얼큰한 산채, 절임 생선, 물만두 등으로 갑자기 풍성해졌다.
나는 무타이 한 병을 따서 아버지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다만, 샤오잉은 나와 아버지가 과음할 경우를 대비해 아버지에게 첫 술 잔을 권한 후, 더이상 마시지 않았다.
식사하며 술을 마시는 동안 아버지는 매우 행복해 보였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이런 느긋함과 편안함은 오래간만 일지 모른다.
"아버님, 이건 진청과 제가 함께 준비한 선물이에요."
술이 세 순배 쯤 돌았을 때, 샤오잉은 가방에서 포장된 선물을 꺼내 조심스레 아버지 앞에 놓았다.
순간 속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샤오잉 혼자 준비한 선물이잖아?
왜 나와 함께 준비했다고 말한 거지?
그녀의 말을 듣게 되자 나는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샤오잉....이 선물은 당신 혼자 준비한 거잖아? 나는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른다구."
나는 샤오잉의 ‘체면(顏面)’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아버지 앞에서 그 사실을 바로 ‘폭로(揭穿)’했다.
샤오잉은 당황해하며 입을 삐죽 내밀고는 팔꿈치로 가볍게 나를 때렸고, 나는 당황하는 샤오잉의 모습을 보면서 낄낄거리며 짖궂게 웃기만 했다.
웃고 떠드는 나와 샤오잉의 모습을 본 아버지의 눈에는 한 가닥 안도와 부러움의 빛이 스쳐지나 갔다.
다만 샤오잉이 선물을 준비했다는 내 말 때문인지 아버지의 얼굴은 처음에 비해 많이 밝아져 있었다.
"너희 둘이 함께 와준 것만으로도 기쁜데, 왜 이런 선물까지 준비한 거니…?"
아버지도 선물을 보곤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과거, 아버지의 생신 때면 우리는 아버지를 위해 생일 케익과 술 그리고 오늘 같이 풍성한 음식을 준비했었다.
간혹, 생신 때 옷이나 신발을 사주기도 했지만 그 외의 선물을 준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샤오잉 혼자서 이 선물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아버지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열어 보세요, 마음에 드시나요? "
샤오잉은 나를 한 번 쳐다본 후,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을 때,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한 쪽 눈을 깜박였는데, 그녀의 그 눈빛은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항상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 했잖아!!'
나는 이 자리에서 선물을 열어 보라는 샤오잉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연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은 후, 상자를 열자, 마침내 상자 안에 담긴 선물이 나와 아버지의 눈앞에 펼쳐졌다.
안에는 두 종류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박달나무로 만들어 매우 고급스럽게 보이는 갈색의 담배 파이프였다.
나는 그 담배 파이프가 언뜻 봐도 수백 위안이 넘는 고가의 제품이란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조금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것은 면봉, 소독약, 반창고 등의 의료 필수품이 담긴 구급상자였다.
두 번째 선물을 본 순간 내 감각기관들은 나에게 특별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그 특별한 신호가 무슨 의미인지 나는 단번에 알아채진 못했다.
담배 파이프를 봤을 땐, 좋아하며 손에서 놓지 않으시던 아버지가 반창고와 소독약을 봤을 땐,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얼굴을 파르르 떨었다.
아버지의 흔들리는 표정은 금세 안정을 되찾았지만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버님, 저는 진청에게서 당신이 잎담배를 다시 피우신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흡연은 건강에 좋지 않아요.
저는 아버님이 되도록이면,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담배를 피우시라고 이 담배 파이프를 선물한 게 아니에요.
담배가 정말 피우고 싶으시면, 이 담배 파이프를 사용하세요.
이 파이프는 여과기능이 있어서 해로운 물질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샤오잉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며느리로서 시아버지를 향한 효심이 충분히 느껴질 만큼 그녀의 말투와 표정은 매우 자연스럽고 평범했다.
다만, 두 사람이 이미 가장 친밀한 접촉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에겐....
샤오잉의 자연스러운 말투와 표정 속에, 조금 다른 풍미가 더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 특별한 맛은 나 혼자만이 느낄 수 있다.
나는 아버지에게 선물한 담배 파이프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샤오잉의 마음 씀씀이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다시피, 잎담배는 어떠한 특수 처리도 받지 않은 말린 담뱃잎을 백지(白紙)에 둘둘 말아서 피운다.
그래서, 한 개비의 잎담배는 담배 한갑보다 몸에 더 해롭다고 말한다.
다만 독한 맛을 좋아하는 노인들은 잎담배를 피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샤오잉이 선물한 담배 파이프가 있기에 아버지는 더 이상 담뱃잎을 백지로 말아 피우지 않으셔도 된다.
백지를 태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유해물질의 많은 부분을 제거할 수 있다.
또, 이 담배 파이프의 필터에는 니코틴을 걸러주는 여과 기능이 있어서 잎담배가 아버지의 몸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섬에서 생활하시다가 다치셨을 때, 이 의료용품을 사용하세요.
섬에는 병원이 없으니 이것들이 꼭 필요할 거예요. "
이때, 나는 이 물건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물건들은 그날 밤, 샤오잉이 아버지의 상처들을 치료할 때 썼던 것과 같은 것들이었다.
샤오잉은 상처를 치료하고 나서, 자신이 아버지의 상처를 돌 본 것은 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며 매정하게 말했었다.
그녀의 차가운 말을 들은 후, 아버지는 슬픔과 괴로움에 빠져, 샤오잉의 무자비한 말 속에 감춰진 관심과 보살핌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이 물건들은 아버지에게 그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것이다.
샤오잉은 이 선물로 아버지에게 자신이 상처를 치료한 것은 단지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일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가장 은밀한 보살핌과 애틋함도 포함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방금 파이프를 손에 들고 얼굴을 파르르 떨던 그의 모습으로 비춰볼 때, 나는 샤오잉이 선물로 은밀히 전한 메시지를 아버지가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샤오잉의 설명을 들은 후, 아버지의 눈에는 기쁨과 더불어 그 동안 자신을 괴롭혀 오던 근심에서 벗어 난 듯한 해탈(解脫)의 감정까지 묻어 있었다.
이 담배 파이프와 의료품들에는 아버지를 향한 샤오잉의 깊은 관심뿐만이 아니라 그 보다 더 큰 용서(諒解)와 화해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게 분명했다.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을 얼른 손으로 훔치면서 연신 코를 훌쩍거렸다.
하지만, 나를 의식했던 모양인지 아버지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감정을 추스른 뒤, 내 눈치를 살폈다.
내 표정이 자연스러운 것을 본 뒤에야 아버지는 약간 안심됐는지, 서둘러 말했다.
"샤오잉, 진청 너무 고맙구나.
나는 이 선물들이 정말 마음에 든다.
오늘 너희들이 와서 생일을 축하해 준 것 만으로도 기쁜데, 이런 선물까지 주다니….
나는 너희들의 효도에 정말 감동받았다.
오늘 이 선물은 나에게 매우 특별하고 소중하다.
소중히 간직하마."
아버지는 나와 샤오잉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나는 이때, 아버지가 샤오잉의 선물에 담긴 뜻을 이해했다고 확신했다.
아버지는 샤오잉에게만 감사의 말을 전한게 아니라, 나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이 선물을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준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척을 하며, 샤오잉이 선물로써 그에게 전한 메시지를 교묘하게 감췄다.
역시 생강은 오래될수록 맵다.
아버지는 내가 의심을 품지 않도록 언행의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다.
그는 이 두 선물의 의미를 오직 그와 샤오잉만이 알고 있을 뿐, 내가 모든 걸 알고 있을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는 선물을 다시 잘 싸서 식탁 위에 올려 놓으셨다.
샤오잉의 ‘특별한’ 선물을 받고 나서, 아버지는 매우 행복한 얼굴로, 나와 함께 술 잔을 기울였다.
어느덧, 아버지와 나는 무타이 두 병의 절반 이상을 마셨다.
결국 보다 못한 샤오잉의 제지에 나와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술자리를 끝내야 했다.
아버지와 나는 술을 많이 마셨지만 비교적 정신은 또렷한 편이었다.
걸을 때 약간 비틀거리긴 했으나 적어도 말은 조리있게 할 수 있었다.
샤오잉은 아버지와 나를 도와 온돌마루에 앉힌 후, 혼자서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취기가 돌자 졸음이 쏟아졌지만 마음속으로는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오늘 저녁 식사에서 두 사람은 '암시(暗示)'적인 교류를 가졌다.
혹, 내가 '인사불성(不省人事)'된 틈을 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불꽃이 튀진 않을까?
이러한 기대감으로 나는 눈을 감고 자는 척하면서도 잠들지 않기 위해 뇌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주변의 모든 움직임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기대는 점점 희미해져 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