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오늘 밤은 우리 세가족이 모두 잠 못 이루는 밤이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졸린 지 오래됐지만, 서랍속에 오랫동안 방치된 담배만이 조금씩 사라질 뿐, 내 눈은 모니터 화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자정 무렵, 경비원이 순찰을 돌면서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곤, 밤늦게까지 야근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와서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돌아갔다.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고 헤드셋에서 들리는 소리만이 내 고막을 두드렸다.
청소를 끝낸 샤오잉은 양손을 옆으로 늘어뜨린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때 그녀는 영혼을 잃은 듯, 멍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거실에서는 오직 세탁기의 굉음소리만이 들려왔다.
침실에서 뒤척이던 아버지는 이따금 고개를 들어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거실 쪽을 바라보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한숨을 내쉬던 그는 여러 번 침대에서 내려와 침실 문 앞으로 걸어 갔지만, 문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포기하곤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아버지도 샤오잉이 너무 걱정되고 불안했는지.
자신이 먼저 샤오잉과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당장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40분 후, 샤오잉은 깨끗이 세탁된 침대 시트를 세탁기에서 꺼내 발코니의 리프트 건조대에 널어 놓았다.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샤오잉은 거실의 불을 끈 후, 우리의 침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침대 위에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에 얼굴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아 나는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한 순간 생기를 잃어버린 집안의 전경을 보자 나는 ‘나의 책임(任重道遠)’이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부터 많은 ‘뒷수습'을 내가 해야 한다.
천천히, 샤오잉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더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몸과 어깨를 가늘게 떨며 조용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내가 의식을 찾았을 때는 이미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햇살은 여전히 매일 똑같고,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하고 평범했지만, 나와 우리 가족은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이젠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모든 게 서서히 변할 것이다.
아침 6시가 지났는데도 내 눈은 여전히 모니터를 향하고 있다.
영상을 끄지 않은 채, 나는 밤새도록 샤오잉과 아버지의 모든 행동을 눈여겨 보았다.
새벽 무렵, 집은 조용했다.
손발이 저리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샤오잉은 밤새 몸을 웅크린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 또한 밤새 한숨을 쉬며 침실에서 몸을 뒤척였다.
우리 세 식구는 모두 이 새벽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 새벽은 세 식구가 모일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두 사람은 내가 집에 오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침 6시 30분쯤, 샤오잉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눈은 울어서 빨갛게 부어 있었다.
영상속에서도, 나는 그녀의 눈이 심하게 충혈되어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고 묵묵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그녀는 묵묵히 욕실로 걸어가 씻고 화장을 했다.
평소에 샤오잉이였다면 생기 가득한 표정으로 화장을 하고 나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침 식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마치 병든 환자처럼 힘없이 씻은 후, 천천히 화장을 했다.
나는 샤오잉이 이 시기에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안다.
지금 그녀는 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을 끝마친 후, 초췌한 얼굴로 출근을 하려했다.
다만, 그녀는 여느 때처럼 아침을 준비하지도 않았고, 아버지께 인사드리러 가지도 않았다.
오늘 아침, 샤오잉에게 아버지는 낯선 이방인에 불과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아버지는 샤오잉이 씻는 소리를 듣고는 어젯밤의 샤오잉처럼 다리를 침대에 구부리고 앉아 무릎사이에 머리를 묻었다.
그는 이따금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보며, 수없이 용기를 내려 했지만 결국엔 샤오잉과 마주할 수 없었다.
마침내 샤오잉이 나간 후, 아버지는 침대에서 일어나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어젯밤 아버지는 많은 것을 손에 넣었지만 그 또한 샤오잉과 같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동시에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씻은 후에도 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도 이때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지 그저 거실 소파에 앉아 손에 든 가족사진을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다.
가족사진에는 나,샤오잉, 하오하오, 아버지, 이4명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욕망에 잠식당했을 때, 그는 가족과 책임(責任)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가족사진을 보자, 모든 감정이 내면에서 나타나 그를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사진을 바라보며 쓰라린 눈물을 흘렸다.
나는 회사에서 7시 30분까지 영상을 지켜보다가 마지못해 컴퓨터를 껐다.
나는 긴 한숨을 쉬고 화장실에 가서 씻기 시작했다.
나는 야근을 자주하는 편이라, 회사엔 나만의 세면용품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씻고 나서, 거울에 비친 붉게 충혈된 내 눈을 보게 되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비록 밤새 잠을 자지 못했지만, 전혀 졸리지 않았다.
새로운 영업일이 시작되었고, 나는 일에 몰두하려 노력했지만, 하루 종일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퇴근이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했다.
어제 샤오잉과 아버지의 성관계를 보고 난 후임에도 샤오잉의 지위는 내 마음속에서 한 단계 더 높아진 것 같았다.
어제 그녀가 아버지와 사랑을 나눌 때, 마치 샤오잉이 나를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때의 걱정과 가슴앓이는 내가 난생 처음 겪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후에야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이 흔한 문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어젯밤의 사건들을 통해, 나는 그녀가 싫어지기는 커녕,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는 낮 동안 수없이 샤오잉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결국 포기했었다.
샤오잉의 정신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4시 무렵, 나는 일을 모두 끝마치고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집안의 실시간 영상을 다시 실행시켰다.
샤오잉은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초췌했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부엌에 준비된 음식들을 보니, 오늘 저녁 식사는 매우 풍성할 것 같았다.
아버지는 모든 음식을 세심하게 요리하셨다.
혹, 아버지는 가족에게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걸까?
아버지는 요리를 하는 동안, 가끔 거실로 나가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두려운 듯 보였지만, 그 또한 이것이 피할 수 없으며 조만간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시간은 천천히 4시 20분에 이르렀다.
평소라면 샤오잉이 집에 들어왔을 시간인데, 계속 시간만 흐를 뿐, 샤오잉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샤오잉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두 손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전화기를 집어 들고, 샤오잉에게 막 전화하려 했지만.
내가 가장 우려했던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두려워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한없이 느리게 10분의 시간이 더 지나갔다.
나는 영상에서 샤오잉이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곤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누르려 했다.
그때, “찰칵” 하며 도어 잠금 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모니터 화면에선 현관문이 살며시 열린 후, 샤오잉이 초췌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샤오잉이 집에 들어 오는 모습을 보자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내 손바닥은 여전히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지만 손의 떨림은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반대로 아버지는 현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손을 심하게 떨면서 야채를 잡고 있던 손을 하마터면 칼에 베일 뻔했다.
다만, 그는 잠시 멈칫 했을 뿐.
식사 준비에 열중하는 척하며, 끝내 샤오잉과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샤오잉은 집에 돌아온 후, 신발을 갈아 신고 창백한 얼굴로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약간 붉게 부어있지만, 낮에 안약을 넣었는지 티가 많이 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핸드백을 열고 안에서 몇 가지 물건을 꺼냈다.
그 물건들은 모두 비닐봉지에 담겨 있어서, 나는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바쁜 척을 하며, 애써 샤오잉을 외면하고 있었지만 그의 이마에선 조금씩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동안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이미 음식은 다 준비되어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들고 거실에 나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샤오잉은 계속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을 뿐, 아버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리 오세요."
갑자기 아무런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냉정하고 차가운 샤오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붕한설 같은 샤오잉의 목소리를 듣자 한나절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가 아버지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샤오잉의 '명령'을 들은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에 직면할 용기를 내야 했다.
그는 천천히 거실로 걸어갔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양손으로 앞치마를 문지르면서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샤오잉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샤오잉 앞에 선, 그는 마치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식은 땀을 흘리며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잠옷을 벗으세요."
샤오잉의 이 말은 아버지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동시에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샤오잉….. 내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아버지와 한번 더 사랑을 나눌 생각인 거야?
아니, 그럴 리 없어.
샤오잉의 표정과 말투를 보면, 아버지와 성관계를 가질 생각이 없는 게 분명해.
아마, 아닐 거야….
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얼굴로 샤오잉을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샤오잉의 말이 믿겨지지 않는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잠옷을 벗으세요."
샤오잉은 마치 거절하면 잡아먹을 것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아버지를 쏘아보며 재차 말했다.
샤오잉의 딱딱하고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아버지의 눈빛은 여전히 괴로움과 불신의 빛을 띠고 있었다.
다만, 아버지는 두 손을 벌벌 떨면서도 앞치마와 잠옷 상의를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샤오잉의 눈앞에 아버지의 상반신이 차츰 그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