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나는 일기를 읽고 아버지에 대한 샤오잉의 복잡한 감정을 알게 되었다.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할 수 없지만, 연민과 애틋함 그리고 호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아버지와 샤오잉의 대화로 둘의 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였지만, 일기를 보고 나니 샤오잉의 가슴속에 욕망의 씨앗이 이미 싹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햇빛과 수분이 부족하여 일시적으로 성장을 멈춘 것 뿐이다.
내가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
맞아, 방법이 반드시 있을 거야.
샤오잉은 단잠을 자고 있다.
다음날, 나는 샤오잉의 전화에 잠에서 깨어났다.
샤오잉은 나와 평소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며 통화하였고 어제에 비해 그녀의 기분이 다소 나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의 충격에서 그녀가 천천히 회복되고 있는 것이리라.
이것은 좋은 징조이다.
샤오잉과 전화통화를 끝낸 후, 아침을 먹고, 지루한 교육일정을 시작했다.
저녁이 돼 서야 교육이 끝났다.
내가 교실에서 나와 휴대폰을 켰을 때, 샤오잉의 전화가 바로 걸려왔다.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보통 교육 중에는 휴대폰을 꺼 놓고, 샤오잉은 교육이 언제 끝나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저녁 식사 후에 호텔로 돌아와 샤오잉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이렇게 교육이 끝나자마자 전화가 걸려 오는 일은 매우 드물다.
왜 이 시간에 나한테 전화했을까?
내가 휴대폰을 켜자마자 샤오잉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것은 분명히 샤오잉이 줄곧 나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었다는 걸 의미한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얼른 샤오잉의 전화를 받았다.
"진청, 미안해요. 아버님이 사고를 당했어요."
전화를 받자마자 반대편에서 샤오잉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지만 어조는 상당히 침착해 보였다.
"아버지한테 무슨 일 있었어?"
샤오잉에게서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놀라 서류 가방을 땅에 떨어뜨릴 뻔했다.
내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소리치자 교실에서 걸어 나오던 동료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버지께서 오늘 낮에 찬장에서 물건을 꺼내다가 발을 헛딛어 의자에서 넘어지셨어요. 아직 병원에 있어요.”
이때 샤오잉은 희미하게 울고 있었고, 그녀 역시 매우 걱정스러운 듯했다.
"상태는 어때?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 "
샤오잉의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나는 몹시 놀랐다.
아버지는 이미 연세가 많으시고, 의자에서 떨어질 때 뾰족한 모서리에 머리라도 부딪쳤다면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효심을 아버지에게만 드릴 수 있는데 아버지에게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먹먹해져 다른 생각은 떠올릴 수 없었다.
다만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요. 아버지가 넘어졌을 때, 다행이 손을 먼저 땅에 짚어서, 머리나 다른 곳은 다치지 않으셨어요. 단지…"
아버지가 머리를 다치지 않았다는 말과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을 듣고 서야, 나는 비로서 안도하며 깊게 숨을 들이 킬 수 있었다.
하지만, 샤오잉의 마지막 두 단어 ‘단지’가, 내 심장을 다시 요동치게 만들었다.
"단지…… 뭐야?"
나는 얼른 물으며, 서류가방을 집어 들고 서둘러 본사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두 손으로 먼저 바닥을 짚어서 그 충격으로 뼈에 금이 가고 근육이 파열되었어요. 지금 의사가 아버지에게 깁스를 하고 있어요."
“심각한 상태야? 회복하는데 얼마나 걸린데?”
다행히 뼈가 골절됐을 뿐 다른 이상은 없는 것처럼 보였고 내 예상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의사가 완치까지는 100일 정도 걸린다고 했어요.
깁스해서 뼈를 고정시켜 붙게 하고,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한 달 후에 깁스를 제거한다고 해요.
깁스를 제거하면 꾸준히 관절 운동량을 늘리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무게를 조금씩 늘려야 한대요.
그럼, 3개월 정도면 완쾌할 수 있데요."
샤오잉은 천천히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에게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아, 샤오잉...그럼 아버지를 잘 보살펴 주고 있어.
나는 지금 상사한테 가서 휴가를 요청할께.
너가 고생하겠지만 내가 얼른 가서 도와줄게.”
나는 샤오잉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많기에 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아버지의 부상이 크지 않아 천천히 치료한다면 후유증은 없을 것이다.
"여보, 그러지 마세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교육 마쳐요.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아버지가 크게 다친 건 아니니까 제가 며칠은 잘 보살필 수 있어요.
하오하오는 낮에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왔어요.
그리고 회사에도 일주일간 휴가를 신청했구요.
당신이 집에 오지 않아도, 나 혼자 아버지를 돌볼 수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샤오잉은 내가 굳이 휴가를 내면서까지 집에 오는 것에 반대하였고, 동시에 집에 있는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아이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자신은 휴가를 내서 아버지를 돌볼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샤오잉의 능력은 여전히 뛰어나다.
그녀가 대학에 다닐 때, 그녀는 예절 팀에 소속되어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 했었는데 업무능력이 탁월해서 교수와 팀원들에게 크게 인정을 받았었다.
샤오잉의 이런 준비로 나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좋아, 샤오잉, 아버지는 언제 퇴원해?"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어요.
부목과 석고가 굳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그게 끝나야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있어요.
다행히 아버지는 손 외에는 다치지 않으셔서 걷는 데 아무 문제 없어요.
다만, 손을 움직일 수 없어서 식사할 때 시중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요.”
"응. 그럼, 다행이다. 샤오잉….. 고생했어."
갑자기 샤오잉의 헌신에 대해 감사할 말을 찾을 수 없어서 짧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딱 이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공손한 언어는 부부인 나와 샤오잉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여보, 무슨 소리야…당신이 집에 없으면 당연히 내가 아버님을 돌봐야 지.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아팠을 때처럼 제가 아버지를 돌볼게요.
안심해도 돼…. 알았죠?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해요.
진청, 의사가 저를 부르고 있어요.
깁스가 끝났나 봐요.
나중에 봐요…사랑해요."
대화가 끝나자 아내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
끊어진 전화기를 보며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이 결정적인 순간에 아버지가 뜻밖의 사고를 당하다니.....
나는 길을 걸으면서 샤오잉과 통화하며 아버지의 부상 정도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마음속의 걱정이 차츰 사라졌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다.
샤오잉이 아버지를 돌보는 한, 아버지는 곧 회복될 것이다.
내 생각에 아버지가 의자에서 떨어진 것은,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서 집중력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집중력이 흐려진 이유는 샤오잉과의 긴밀한 스킨십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나야 말로 사고에 주범인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신 건 아니었지만, 내가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
나는 더 이상 아버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내가 집에 없지만, 샤오잉이 아버지를 잘 돌볼 것이다.
샤오잉은 내가 아팠을 때처럼 아버지를 전심으로 돌볼 것이다.
잠깐, 나를 돌봐주는 것처럼?
샤오잉한텐 나와 아버지를 돌보는 게 같을 수 있을까……..?
아버지의 부상에 대한 걱정이 없어서 그런지… 왜 지금, 이렇게 구질구질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때, 나는 다시 내 계획을 생각했다.
아버지는 두 손을 다쳤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가 밥을 먹을 때에는 샤오잉이 먹여 주어야만 한다.
아버지의 손이 낫기 전까지 두 사람이 접촉하는 시간과 친밀감이 늘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생각을 하자 내 가슴은 흥분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부상이 나에게 있어서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나는 답답한 현재의 상황이 아버지의 사고로 크게 변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나는 마음속의 흥분을 억눌렀다.
지금은 배고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호텔로 돌아와 남은 간식 몇 개로 허기를 채운 뒤,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나는 실시간 감시 영상을 틀고, 샤오잉과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샤오잉……. 다친 아버지를 어떻게 돌볼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