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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와 아내의 월하노인이 되었다-19화 (1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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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연결됐음에도, 샤오잉의 들뜬 목소리는 바로 들리지 않았고 침묵만이 흘렀다.

평소라면 샤오잉은 틀림없이 맑은 목소리로 종달새처럼 재잘거리며 안부를 물었을 것이다.

전화는 연결돼 있는데,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 샤오잉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쯤, 침묵을 깨는 샤오잉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여보, 식사했어요?"

샤오잉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갑자기 전화기에서 들렸고, 나에게 안부를 묻는 첫 문장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다만 오늘 샤오잉의 어투가 좀 달랐을 뿐인데, 딱히 무엇이 다른 건지는 꼬집어 말할 수 없었다.

"먹었는데.... 왜그래? 샤오잉,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보여. 어디 아픈거 아니야?"

나는 이상하여 물었다.

"아니... 아니, 난...괜찮아요. 어디가... 아프다니요?"

샤오잉이 갑자기 우물쭈물하며 답했다.

마치 내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물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사람처럼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아버지와 하오하오도 건강해요. "

느낌이 이상했지만, 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다… 다행이네, 나는 당신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어."

샤오잉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하루 못 본 것뿐인데… 왜 갑자기 내 아내가 말더듬이가 됐을까?"

나는 어색한 침욱을 깨기 위해 샤오잉에게 놀리 듯 물었다.

"아이…, 정말 싫어, 당신이야 말로 말더듬이면서...."

나에 놀리는 듯한 말을 들은 샤오잉이 마침내 평소의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 말을 하고 난 후, 나와 샤오잉은 또다시 침묵에 잠겼다.

오랫동안 나와 샤오잉이 대화할 때, 대화의 주도권은 대개 샤오잉에게 있었다.

대부분 그녀가 먼저 말을 건냈고, 나는 그 물음에 답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우리의 대화에서 늘 수동적이었다.

"진청………”

오랜 침묵 끝에 샤오잉은 갑자기 흐느끼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왜 샤오잉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는지 의아했다.

"샤오잉, 남편 겁주지 말아요, 왜 그래? 갑자기 왜 우는 거야? 무슨 일 있는 거야? 남편한테 알려줘… 응?"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샤오잉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생각되자 갑자기 가슴이 조여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보….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교육 마치고 빨리 돌아와요. 정말 보고 싶어요."

샤오잉은 마음을 가라앉힌 후, 잠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바보….. 남편이 전쟁터에 나간 것도 아닌데…쯧… 내가 돌아갈 때까지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돌아갈 때 선물 사가지고 갈게.”

나는 샤오잉을 다독이며 말했다.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많은 의문들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샤오잉을 위로하는 데 집중했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혼자서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보, 몸조심하고 빨리 쉬어요. 전화 끊기 전에 부인에게 키스해 줄래요?"

샤오잉이 수화기 너머로 달콤한 요청을 해 왔다.

다만 그녀의 말투는 평소의 밝고 명랑한 어조가 아니었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엄숙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 키스를 요청했다.

정말 비정상적이다.

"쪽…."

수화기 너머로 키스를 한 뒤, 나는 한 마디 더 꺼내고 싶었지만 이미 전화기는 끊겨 있었다.

샤오잉이 먼저 전화를 끊은 것을 보자 나의 의구심은 더욱 깊어졌다.

무슨 일일까?

어젯밤 감시 영상을 확인하지 않았는데, 그사이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어젯밤 샤오잉과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나는 재빨리 컴퓨터 가방에서 동글을 꺼내 노트북에 삽입하고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업그레이드 후, 집에 있는 감시 장비는 실시간 스트리밍뿐 아니라 녹화 영상도 제공한다.

나는 어제 샤오잉이 퇴근하고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영상 시간을 조정했다.

집에 돌아온 샤오잉은 내가 그리워서인지, 아니면 내가 곁에 없어서인지 조금 우울해 보였다.

"아버님, 저녁에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집 안 일을 마친 샤오잉은 평소처럼 컴퓨터를 켜는 대신, 거실에 서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어제 남은 음식이 집에 있으니, 그냥 따뜻하게 데워서 먹자구나."

아버지는 검소한 사람이기에 남은 음식을 버리는 일을 몹시 꺼려하셨다.

아버지도 다른 기성세대 사람들처럼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곯고 힘들게 살아왔다.

그렇기에 남은 음식을 버리는 것을 죄악처럼 여겼다.

"아버님, 이제 저희 삶은 많이 나아졌어요.

평생을 검소하게만 생활하셨잖아요.

이제 검소하게만 살지 마시고, 남은 평생 먹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마음껏 드시면서 사세요.

저는 아버님이 남은 생을 유유자적 즐기시면서 사셨으면 좋겠어요."

샤오잉은 이렇게 말하며, 부엌으로 걸어갔다.

식탁 위에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따끈따끈한 소고기 조림이 차려져 있었다.

샤오잉과 아버지가 함께 식사를 시작했고, 아버지는 술병의 뚜껑을 열어 바이주(白酒)를 자신의 잔에 따랐다.

내가 알고 있기론 아버지는 집에 손님이 오시거나 특별한 명절이 아니면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술을 드시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며느리로서 샤오잉은 시아버지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묘하게 얼굴을 찡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샤오잉은 얌전히 고기를 씹으며 식사를 계속했다.

"샤오잉, 오늘 나랑 한잔하자.

오늘처럼 단둘이 집에 있는 것도 오랜만이니....

진청이는 지금 여기 없지만, 나는 진청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단다.

너는 진청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남자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우리 집안에 시집왔지...

네가 고생하며 검소하게 살림하였기에 이제 집안이 안정을 찾은 듯하다.

집안의 유일한 어른으로서 너에게 정말 고마워하고 있단다."

아버지는 다른 잔을 들어 샤오잉에게 바이주(白酒) 반 잔을 따라 주셨다.

아버지가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그의 눈에서 샤오잉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감사였고 아버지가 이 문장을 말했을 때,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

샤오잉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우리가 결혼해서 겪었던 고난과 설움이 생각났는지 눈시울을 약간 붉혔다.

그녀는 시아버지가 자신의 노고를 알아준 것에 감동하였고 기꺼이 아버지가 따라 주는 술을 반 잔 받았다.

"무슨 소리예요? 아버님, 진청은 저를 매우 사랑해요.

그는 좋은 남자이며 당신도 좋은 시아버지입니다.

아버님은 저를 친딸처럼 대해 주시고 저는 시집와서 단 한번도 불만을 가지거나 후회한 적이 없어요.

진심이에요.

저에게 좋은 남편, 아버님, 건강하고 귀여운 아들이 있는데…

제가 무얼 더 바라겠어요?“

샤오잉은 눈물을 글썽이고 미소를 머금은 채, 아버지와 술잔을 부딪치며 바이주를 한 모금 마셨다.

바이주의 익숙하지 않은 쓴 맛에 샤오잉은 기침을 했다.

"마시기 힘들면 억지로 마시지 말거라."

아버지는 샤오잉이 기침하는 것을 보고는, 아쉬워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아버님과 이렇게 술 한잔하는 건 드문 일인 걸요. "

샤오잉은 기침을 멈춘 뒤,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길어질수록 아버지와 샤오잉은 서로에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눴다.

술잔의 술도 조금씩 줄어 들었다.

어느새 잔이 바닥을 드러내자 아버지와 샤오잉은 두 번째 술을 따랐다.

"샤오잉, 요즘 너를 보면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여. "

아버지는 샤오잉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말했다.

샤오잉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말에 몸이 굳어져서 하마터면 손에 든 술잔을 테이블 위에 떨어뜨릴 뻔했다.

"아니... 별거 아니에요. 과한 생각이에요. 제가 딱히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샤오잉은 갑자기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늘어진 긴 머리카락은 수줍게 붉어진 그녀의 두 뺨을 가렸다.

이때, 그녀는 그날 밤의 일을 떠올린 것 같았다.

그리고 남편이 성기능을 상실하여 더 이상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도 떠올렸을 것이다.

“없다니 다행이구나.

만약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나에게 말하렴.

노후자금과 연금으로 제법 모아둔 돈이 있단다.

너와 진청이가 필요하다면 아버지가 다 주마.

내가 나이가 들어 집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너희에게 부담만 되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어차피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변할 텐데 돈을 남겨 둬서 뭐 하겠니.

차라리 늦기 전에 너와 진청이에게 다 주고 싶구나.”

나는 아버지가 샤오잉에게 하는 말을 듣고 그의 말이 진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님, 정말 아무 일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저도 남편도 생활하는데 부족함 없이 제법 벌고 있어요.

또다시 이런 말을 꺼내시면 저 화낼 거예요.

아...셨...죠?"

샤오잉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크게 감동받았다.

샤오잉은 고개를 들어 뺨을 가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머리 뒤로 넘기면서 손으로 쓸어 모은 후, 입술을 쌜쭉히 내밀곤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행동은 샤오잉의 매력적인 외모와 더해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다.

아버지의 오해가 억울했는지 샤오잉이 교태를 부리며 말한 것이다.

갑자기 내뱉은 자신의 교태를 깨달았는지 샤오잉의 하얀 목이 붉게 물들었다.

마치 연인에게나 들려줄 법한 샤오잉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당황한 아버지는 들고 있던 술잔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서로 뻘쭘해져 있던 두 사람 중, 샤오잉이 먼저 어색한 공기를 깨며 말했다.

"피…....아무말도 하지 마세요 .... 아버님, 우리 계속 마셔요."

두 사람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얼굴에는 서서히 취기가 떠올랐다.

두 사람의 잔에 담긴 술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결국엔 빈 잔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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