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265화 (완결) (265/265)

# 265

265화 끝이자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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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는?”

“전부 갖춰 갑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만 우리가 지금까지 그림자에 숨어서 행동한 보람이 있지.”

황혼의 추종자.

<대통합>이 일어난 세계에서 모든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광신자들의 집단이었다. 그들이 머무는 차원은 한정되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차원에 있었고, 각종 테러 활동을 자행하며 악행을 떨쳤다.

황혼의 추종자 집단은 새롭게 일을 꾸미고 있었다.

“아주 먼 과거. 지금과 같은 세계와 세계가 뭉치면서 발생하는 <대통합> 이전에 존재하던 다른 차원이 있다고 들었다. 모든 것이 끔찍한 어둠과 고통으로 점철되었으며, 닿기만 한다면 뭐든지 오염시키며 죽음으로 끌고 가는 세계가.”

꿀꺽.

검은 로브에 감춰진 음산한 목소리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단지 이야기만 듣고 있을 뿐인데도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들은 지금 그 차원을 이곳에 불러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한 <심연>을…… 우리가 불러내는 것이다.”

“아쉽게도,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뭣! 누구냐!”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황혼의 추종자들이 당황했다. 덜컹! 그 순간 어두운 벽면의 문이 크게 열리며 그곳에서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내렸다. 추종자들은 모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뭐, 뭐지?”

“침입자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놈들은 뭘 한 거야!”

뚜벅뚜벅.

두 눈이 빛에 적응하자 추종자들은 그제야 침입자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순백의 광휘를 등에 업고, 이쪽을 향해 그 어떤 경계심도 없이 걸어오는 백색의 기사를. 몸에는 새하얀 코트와 곳곳에 갑주를 걸친 인간이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식상하게 누구냐고 물어보다니. 역시 이런 시궁창 같은 곳에 숨어서 꿍꿍이를 펼치는 놈들다운 반응이네.”

“이익, 누구냐고 묻고 있지 않냐!”

추종자들은 당황했다. 자신들이 꼬리가 길어서 잡혔다고 보기엔 침입자는 단 하나였다. 그것도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남자였다. 손에 쥔 검은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놈! 어떻게 여기를 찾아온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큰 실수를 저지른 거다!”

이곳은 황혼의 추종자들이 머무는 그들의 신전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비밀스러운 장소가 드러난 점은 뼈아픈 실책이지만, 상대가 하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를 죽여서 그의 배후를 캐고 그의 일가족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죽일 생각이었다.

아니, 그냥 죽이는 거로는 안 된다. 그들의 살 한 점 한 점을 이계의 괴물들에게 주는 먹이로 삼으며, 죽기 전까지 계속 고통을 느끼게 해야만 했다.

“실수는 무슨. 오히려 실수는 너희들이 저지르는 거지. 야. 내가 경고하는데. 여기서 나한테 덤비는 놈들 다 죽는다. 항복하면 살려는 드릴게.”

“이, 이이이! 건방진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뭣들 하느냐! 어서 놈을 죽여라!”

“예!”

지도자의 외침과 동시에 추종자들의 검은 로브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남자는 가만히 그 광경을 구경했다. 빵빵하게 부푼 로브가 폭발하며, 그곳에서 검은 촉수들이 무수히 튀어나와 현찬을 향했다.

“이야. 어째 이런 곳에 있는 놈들은 하나도 정상이 없냐.”

남자는 검을 쥐고 자세조차 취하지 않았다. 피하려 들지도 않았고, 방어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날카로운 가시가 무수히 박힌 촉수들이 남자의 지척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그가 입고 있던 백색 코트에 변화가 일어났다. 코트 표면이 파도처럼 물결치더니 순식간에 수만 개가 넘는 조각으로 분해된 것이었다.

그것은 남자의 앞에 정육면체 반투명한 방패를 이루었다. 사방에서 닥쳐오던 촉수들은 방패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남자가 앞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촤르륵! 육각형의 방패들이 서로 붙으며 거대해졌다.

남자가 주먹을 쥐자 방패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촉수들은 방패에 닿기가 무섭게 갈려 나갔다. 검은 로브의 추종자 중 일부가 천장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남자의 등 뒤를 노렸다.

푸욱!

“……!”

“날 기습할 거라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러나 그들이 남자를 노리는 일은 없었다. 남자가 걸치고 있던 코트 일부가 고풍스러운 단창으로 바뀌며 그들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냐 네놈은 대체!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이러는 거냐!”

“알아. 너희들 황혼의 추종자들이잖아? 세계의 파멸을 바라는 또라이들.”

“우리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혼자서 덤빈다고? 네놈! 설마 공화국의 첩자냐?! 아니면 전당의 후보자인가? 갈렌 숲의 요정?”

“거참 후보들 많이도 나오네. 너희들이 얼마나 방방곡곡에서 민폐를 끼치는지 알겠다. 아쉽게도, 네가 말하는 곳 중에서 내가 소속한 곳은 없어.”

“우리가 두렵지도 않으냐!”

대장으로 보이는 노인의 발악적인 외침에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차근차근 노인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콰드드득! 방패에 갈려 나가는 촉수들이 사방에 검은 체액을 흩뿌렸다. 남자의 몸에는, 단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너희가 왜 두려운데? 두려웠으면 건드리지도 않았지.”

“나, 나를 죽인다 해도 소용없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이곳에서 우리를 죽인다 한들, 우리의 강한 의지는 다른 추종자들이 이루어 줄 것이다! 크하하하! 네놈이 누구인들, 이 우주의 끝까지 쫓아가서 네놈과 관련된 자들을 모두 죽일 것이다!”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뭐라?”

“너희들이 마지막이거든.”

남자의 말에 황혼의 추종자들은 순간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쪽이 마지막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무슨 헛소리냐!”

“헛소리냐니. 다른 차원에 있는 너희 황혼의 추종자 집단들 있잖아. 그 녀석들 전부 다 사라졌다고.”

“그, 그게 무슨……·. 누가 대체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이냐!”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나지. 아무튼, 너희들이 마지막이다. 찾느라 고생 좀 했어. 아주 꼭꼭 숨어 있더라?”

“거짓말! 거짓말이다! 감히 세 치 혓바닥으로 우리를 놀리려 들다니!”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진실을 말해줘도 듣지 않는 놈들은 피곤하다니까. 뭐, 모르는 게 약이려나.”

“모두 저 이단자를 죽여라! 당장 죽여 버려!”

추종자 집단 리더의 외침에 그의 측근들의 몸이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검은 로브가 찢어지고 온몸이 검은색 촉수로 뒤덮인 기괴한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없고 팔과 다리는 문어의 발처럼 생겼다.

심연에 존재하는 괴물들. 놈들은 이미 <심연>과 접촉하여 그 힘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리더의 몸 또한 변하기 시작했다. 삐쩍 마른 그의 육신이 순식간에 찢어지며 그 안에서 거대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하하하! 어떠냐! 이것이 우리의 힘! 세계를 멸할, 파괴의 정수다!”

“하.”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외침에 남자는 치밀어 오르는 한심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드디어 검을 쥔 손을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옆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놀랍게도 검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갈라내며 커다란 틈새를 만들었다.

그 광경에 추종자들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지금 저 남자가 뭘 한 거지? 검으로 공간을 갈랐단 말인가? 그것은 공화국의 영웅인 검성조차 하지 못한 일일 텐데?

모두가 의아한 사이 남자는 갈라진 공간의 틈새를 향해 말했다.

“야 심연. 쟤들 지금 네 힘쓰고 있는데, 너 뭐 아는 거 있냐?”

“뭐, 뭐라고?”

지금 남자가 뭐라고 말한 거지? 심연이라고? 그들이 아는 심연은, 지금 그들이 사용하는 이 힘의 주인이자 어둠의 세계 그 자체였다. 그 이름을,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꺼내고 있었다.

“뭐? 몰라? 뭘 몰라? 확, 씨. 너 똑바로 안 해? 응? 미안하다고? 미안할 짓을 왜 해? 심심해서 그랬어? 나도 심심한데, 너 나한테 한번 맞아볼래? 잘못 했지? 응? 그래. 그러게 왜 그랬어. 어? 야. 네가 아직도 네 아들 죽은 거로 좀 삐친 건 아는데, 다 옛날 일이잖아. 게다가 걔가 자초한 일이었고. 우리 서로 좀 돕고 살자. 응? 알았지? 나 귀찮게 좀 하지 마.”

일련의 대화를 나눈 남자는 이미 괴물로 변한 추종자들을 향해 손짓했다.

“야. 야야. 일로 와 봐.”

“어, 어?”

“안 와? 야. ■■■아. 얘들이 말 안 듣는다. 난 모르겠다. 남은 건 네가 그냥 알아서 해라. 알았지?”

그것으로 끝이었다.

갈라진 틈새 사이로 갑자기 무시무시한 촉수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고작 가로, 세로 2m는 될법한 공간에서 튀어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크기와 질량의 것들은 그대로 추종자들을 붙잡았다. 그들은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이, 이건……! 이 힘은……! 세, 세계시여! 어찌 저희에게 이러십니까! 예?! 저희가 무슨 잘못을……! 세계시여!”

반항하는 놈들은 촉수가 강하게 쥐며 그대로 차원의 틈새로 끌고 나갔다. 소란스러웠던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남자는 아직도 열린 틈새를 향해 말했다.

“앞으로 좀 잘하자? 응? 너 그러다 내가 주인한테 일러바치는 수가 있어.”

우우우우웅!

“그래. 그래야지. 야. 네가 이렇게 응? 좋게좋게 해야 내가 네 주인한테도 말 잘해주고. 막 그러지. 알았지?”

우웅.

남자는 검을 가볍게 휘저어 열렸던 차원의 틈새를 베어냈다. 그러자 공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며 봉합되었다.

“자. 이제 난리 치는 놈들도 다 정리했으니까…… 돌아 가볼까. 오늘 파티하기로 했잖아.”

[빨리 가서 치킨 먹자!]

[그래! 가만히 보고만 있더니, 배가 고파졌다!]

남자, 현찬의 말에 헤르메스와 아테나는 이때다 싶어서 먹고 싶은 메뉴를 줄줄 읊었다. 현찬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

“아. 오셨어요?”

집으로 돌아가자 그를 반겨주는 건 그야말로 한 송이의 꽃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여신 난나였다. 그녀는 현찬이 오자 그의 코트를 벗어주며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아니, 이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되는데.”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인걸요.”

“야! 난나! 너 또……!”

그 순간 부엌에서 화가 난 음성과 함께 로키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찬이 오자마자 선수를 쳐서 점수를 따려는 그녀의 행동에 분하다는 듯이 이를 악물고 있었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현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세계를 지키고 나서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모든 것이 변했다.

전쟁의 흔적은 사라졌고 대통합은 완전히 끝났다. 다만 지구는 여전히 다른 차원과 연결이 된 채라, 그곳과 여러 가지 왕래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찬은 세계의 의지와 손을 잡고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대통합>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맡았다.

정확히는 <대통합>을 빌미로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나쁜 놈들을 혼내주는 역할에 가까웠다.

아직 세계의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지 못했기에, 여전히 다른 차원들은 <대통합>이 일어나고 있었고 현찬은 그것을 지켜보며 관리하는 일을 했다.

“로키. 당신은 그쪽 계약자나 챙기세요.”

“남 이사.”

주현창은 현찬의 <진실의 눈>과 마주친 이후, 스스로 죄악과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며 완전히 사람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현찬을 은인으로 여기며 그에게 항상 고마워하면서 세계연합의 간부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오빠 나 왔어!”

“어. 현지 왔구나. 다른 사람들도 같이 왔네?”

현찬의 여동생 현지와 함께 그녀의 동문인 오버랭크 헌터들이 현찬의 집에 놀러 왔다. 리네넷은 현찬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엔도 미즈호와 샤, 진 차이와 함께 다른 손님들이 더 방문했다.

“놀러 왔어.”

“오랜만에 와보네.”

무지갯빛 고룡 그랑데우스와 이계의 마왕 세아리스가 왔다. 그 둘의 사이에 아렌디르가 양팔을 붙잡힌 채 끼어 있었다.

지금은 세계연합 한국지부의 훌륭한 간부 역할을 하는 황설영과 그녀를 도와 일하는 서다은, 이한율도 왔다.

현찬을 형님이라 믿고 따르는 최강윤도 왔고 심지어 양 리화에 알렉세이, 안드레이까지 놀러 왔다.

“파티한다고 해서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어요. 여기 집들이 선물…….”

“어유. 뭘요. 사람 많으면 더 좋죠.”

양 리화가 건네주는 선물을 받으며 현찬은 반갑게 맞이했다.

모두가 현찬과 인연이 있는 자들이었다.

주방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어스름달과 에크티가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거실의 큰 테이블로 옮기고 있었다. 난나와 로키도 그 둘을 도왔다. 영체화를 푼 헤르메스와 아테나는 서로 무슨 치킨을 시키겠다며 투덕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는 현찬의 입가에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맺혀 있었다.

어쩌면 이런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걸지도 몰랐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 현찬의 손을 누군가 잡아 이끌었다.

“현찬아! 너도 보고만 있지 말고 좀 와서 앉아. 집주인이 그렇게 있으면 어떡해?”

누군가 했더니 헤르메스였다. 현찬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의 수호자님이 오셨으니, 조촐한 파티를 시작해 볼까! 일단 건배사부터!”

“야. 미성년자 있는데 술 마셔도 돼?”

“신 앞에서 무슨 미성년자 타령이야! 그냥 마셔! 내가 허락한다!”

로키의 외침과 함께 모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신과 용, 마왕과 인간이 함께 하는 자리.

정말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시끌벅적했다.

그것은 썩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지.

“뭐, 하라면 해야지.”

여전히 세계는 불안한 면이 많았다. 간혹 출몰하는 몬스터들이 그랬고, 언제 어디서 새로 생길 다른 차원의 존재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현찬은 항상 그렇듯이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현찬은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존재와 시선을 마주했다.

“자. 다들…… 앞으로도 잘 지내봅시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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