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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260화 (260/265)

# 260

260화 최후의 싸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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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과 악신회주의 격돌은 엄청난 파괴를 자아냈다. 둘의 일격이 허공에서 부딪치는 순간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반쯤 무너져 있던 회주의 방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거대한 충격파는 우주 너머까지 뻗어져 나갔다.

꽈르릉!

뇌성이 울리며 악신회의 본거지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악신들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형상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진 건축물이 현찬과 악신회주의 싸움을 견디지 못했다.

벽이 무너지고 기둥이 쓰러졌다. 거대한 소행성처럼 차원의 틈새에 떠다니던 본거지가 깎여나가며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만큼 둘의 힘은 규격 외의 것이었고, 그것이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힘은 거대했다.

맞닿으며 발생하는 소리와 힘은 신화 속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현찬의 계약자인 헤르메스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을 알지만 둘의 대결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제우스가 튀폰과 싸울 때 저랬던가.

올림포스의 주신들이 신으로 승격한 헤라클레스를 필두로 기간토마키아를 벌였을 때 저랬던가.

헤르메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 어떤 신화 속의 싸움도, 지금 현찬과 악신회주의 대결만 못 할 것이다.

카앙!

현찬의 검이 악신회주의 손과 충돌하며 불똥을 튀겼다. 악신회주의 오른손은 기형적으로 길어지고 뒤틀리며 하나의 거대한 형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신이 혼신을 기울여서 만든 검을 막아낸 악신회주는 눈가를 초승달처럼 씨익 휘며 웃었다.

“좋은 검이로군. 신이 만든 것인가?”

“이거 말고도 더 있거든?”

촤라락!

현찬이 걸치고 있는 백색의 코트에 물결이 치는 듯하더니, 수십 개의 단도가 튀어나와 악신회주의 얼굴에 박혔다. 악신회주의 머리가 뒤로 크게 젖히더니 그의 몸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게 전부인가?”

오직 눈밖에 없던 그의 얼굴에는 수십 개의 입이 생겨 있었고, 그 입들이 현찬이 쏘아낸 단검을 물고 있었다. 그의 모든 입이 동시에 움직이며 현찬을 도발했다.

“그거 말고도 많이 있거든?”

지이잉.

악신회주가 딛고 있는 지면으로부터 새하얀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하얗게 물든 대지에서 새하얀 날붙이의 날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런! 악신회주는 그대로 백 텀블링을 하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에 새하얀 창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쥐고 있는 용갑병들 까지도 말이다. 현찬은 악신회주가 이번 공격은 막아내지 않고 피하는 것을 보며 눈에 이채를 띠었다.

‘이번 공격은 막지 않고 피했다는 건, 어느 정도 수준의 공격은 본인에게도 위험하다는 거겠지.’

악신회주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용갑병을 향해 검으로 변한 팔을 휘둘렀다. 그의 팔은 크고 단단했으며, 심지어 공격은 빠르기까지 했다. 제국의 구동 기사마저 학살한 용갑병이 악신회주의 공격을 막지도 피하지도 못한 채 조각나 버렸다.

“이런 장난감으로 날 막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나?”

“말했잖아. 보여줄 건 아직 많이 있다고.”

히히히힝!

어디선가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악신회주의 등 뒤로 새하얀 게이트가 재차 펼쳐졌다. 말 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게이트를 뚫고 새하얀 마차가 튀어나왔다. 마차의 위에서 거대한 중병기를 든 용갑병들이 악신회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리 신이 만든 물건이라 할지라도, 나에게는 안 된다!”

악신회주의 덩치가 경계심을 끌어올린 복어처럼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의 덩치가 순식간에 거대해지며 한 손으로도 전차를 막아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검은 손이 그대로 용갑병들을 후려쳤다. 콰득! 용갑병의 잔해가 허공에 흩날렸다.

“그러니까 보여줄 게 많다니까 그러네.”

현찬의 등 뒤로 지금까지 열렸던 것보다 수십 배는 거대한 백색 게이트가 열렸다. 그 안쪽에서 거대한 흰색의 무언가가 튀어나와 악신회주를 밀어냈다. 그것은 새하얀 용이었다. 그것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용갑병처럼 갑주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

현찬이 지금까지 숨겨 놓았던 비장의 패인 <드라코마키나>가 입을 쩍 벌려 악신회주의 어깻죽지를 물어뜯었다. 악신회주는 뒤로 밀려나는 듯하더니 몸에 힘을 줘서 드라코마키나의 힘을 견뎌냈다.

“덤빌 거라면 직접 덤벼라! 이런 거로는 절대로 내게 영향을 줄 수 없으니!”

파아앗!

악신회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그대로 드라코마키나를 꿰뚫었다. 거대한 순백의 용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허공에 뜬 검은 빛은 그대로 악신회주의 손아귀로 향하며 검으로 변했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검이었다.

“댁도 좋은 물건 들고 있네?”

“2번째 <대통합> 때 나에게 맞선 수호자가 사용한 검이었지. 놈은 내 몸에 이 검을 박아 넣고 그대로 날 봉인했다고 떠났지만, 난 죽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끝에 이 검은 나의 소유가 되었지. 네놈이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은 물건이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거야.”

“그거야 물건이 똑같은 하나일 경우에 그렇겠지.”

악신회주의 몸 주위로 떠도는 검은 빛은 그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이쪽도 고작 이것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라서 말이다.”

검은빛은 땅바닥에 떨어지더니 진흙처럼 바닥에 촤악 퍼졌다. 그것은 이내 꾸물거리더니 인간의 형상을 취했다. 다양한 인종과 성별의 모습을 한 그들의 모습에 현찬은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나를 상대해 왔던 수호자들이지. <대통합>이 일어날 때마다 세계의 의지의 부름을 받아 내 계획을 방해했던 녀석들이다. 놈들이 죽고, 그 시체를 이용해서 사령술로 되살렸지.”

“그게 가능하다고?”

“가능하다. 씨앗의 힘만 있다면 말이지.”

악신회주는 그렇게 말하며 에르카닐로부터 양도받은 씨앗을 꺼내 들었다. 원래라면 생명력을 잔뜩 머금고 있어야 할 그것은 검고 불쾌한 기운만 흘리고 있었다.

“에르카닐 또한 중간 점검에서 우승한 위대한 영웅. 그리고 그의 세계 또한, 어쩌면 나에게 대항할지도 몰랐던 곳이었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차원은 결국 세계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어. 이것은…… 이미 사라져버린 세계의 응어리가 함축된 씨앗이다. 내 비원을 이뤄줄 수단 중 하나지.”

“에르카닐의 세계가 멸망하도록 일부러 수작을 부린 주제에, 잘도 뻔뻔하게 그런 말을 입에 담는구나.”

“크흐흐. 세계의 의지를 받은 네놈의 눈은 피할 수가 없군. 그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에르카닐에게 알려준 것이었지.”

“그리고 녀석은, 자신의 고향을 멸망하게 놔둔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죽었고 말이야.”

“네가 죽였지.”

“딱히 미안하지는 않아.”

그래도, 라며 현찬이 말을 이었다.

“그냥 죽는 것은 억울하니까, 너도 함께 보내주면 되겠네.”

“그게 말처럼 쉽게 된다고 생각하는가? 오만하구나. 세계의 수호자여. 지금의 나는, 예전에 패배했던 나와 다르다. 나는 너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위해서 준비해왔다. 반면 네놈은 대체 뭐지? 나와 비교하면 티끌만도 못한 시간을 가지고서, 무엇을 논하겠다는 거지?”

“내 알 바 아냐. 어차피 세계가 나를 빵빵하게 지원해주고 있다면서? 그거면 충분하지.”

현찬의 등 뒤로, 여러 영령의 실루엣이 형상을 이루며 악신회주를 노려보았다.

“암. 그것만으로 충분하고말고.”

“건방지다!”

콰아아앙!

차원이 뒤흔들렸다. 차원과 차원 틈새의 불안정한 공간이 거칠게 떨리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현찬에 의해서 현계로 강림한 영령들이, 악신회주의 아래에 부활한 수호자들과 뒤엉켰다.

그중에서 당연히 돋보이는 것은 현찬과 악신회주의 대결이었다.

‘역시나 강하구나!’

악신회주는 속으로 감탄했다. 지구의 그 어떤 신조차도 그에게 감히 대항할 수 없을 진데, 세계의 선택을 받은 이 인간은 혈혈단신으로 자신에게 맞서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통합>을 겪어오며, 그야말로 가장 완벽한 힘을 얻은 이 순간에서도 악신회주는 현찬을 압도하지 못했다.

그가 엄청난 준비를 한 만큼, 세계의 의지 또한 그만큼의 힘을 축적하여 현찬에게 쏟아부었다.

‘여기서 실패하면 나는 끝이다.’

악신회주는 영원할 거로 생각했던 자신의 힘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깨달았다. 세계의 어긋남이 만들어낸 부조리 그 자체였던 그이지만, 결국에는 피조물로서의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지금이 태어난 순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힘 중에서 가장 강했지만, 이것이 끝나는 순간 그의 운명 또한 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전에 있었던 실패에서 그는 상처를 입은 것으로 끝이었지만 여기서는 그 끝이 완전한 소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왔다. 혼자서 세계를 멸망시키려 했던 과거와 다르게, 자신의 조직을 꾸리고 다른 차원 존재들의 힘마저 빌렸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대항했던 세계의 수호를 받은 수호자들까지 이용했다.

그랬을 텐데도,

그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콰르르릉!

틈새에서 차원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균열이 그어졌다. 그것은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더니 이내 유리처럼 부서졌다. 온갖 색이 뒤섞인 기괴한 공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력한 인력이 반파된 악신회의 본거지를 끌어당겼다. 틈새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던 본거지는 그대로 깨진 균열의 아래로 떨어졌다. 화악! 강한 바람이 몰아치며 현찬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여기는…… 지구?”

현찬과 악신회주 사이 싸움의 여파만으로 차원의 벽이 무너졌다. 벽에 생긴 균열을 통해서 본거지가 지구로 떨어진 것이었다. 고도 수만 피트에서 떨어지는 본거지는 그야말로 거대한 운석이었다.

“이곳은…….”

악신회주도 바뀐 풍경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그조차도, 이런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아래로 펼쳐진 광활한 구름의 바다와 그 너머 곡선을 그리는 지평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 부신 태양의 빛.

그것은 구름보다 높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어때. 멋지지? 너야 항상 이런 곳에 처박혀서 지구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 잘 모르고 있겠지만, 여기가 바로 내가 지키고자 하는 나의 세계야.”

“…… 어차피 전부 사라질 풍경들이다.”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갑자기 장소가 바뀌어서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 전에 하던 싸움은 마저 이어야지?”

현찬이 검을 겨누자 악신회주 또한 검을 겨누었다.

그의 몸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일어나더니 검은 갑옷을 형성했다. 펄럭! 붉은 망토가 악신회주의 등 뒤에서 날개처럼 펼쳐졌다.

“더 시간을 끄는 짓은 하지 않겠다. 내 모든 힘을 쏟아부어서, 네놈을 상대해주마.”

“나도 그렇게 나오길 바랐어.”

현찬이 입고 있던 순백의 코트가 변했다. 수억 개의 자그마한 조각으로 이루어진 현찬의 옷은 그대로 모습과 재질을 바꾸기 시작했다. 현찬의 몸에 맞는 날렵한 갑주가 걸쳐졌고, 등 뒤로 새하얀 망토가 펄럭였다.

“자. 서로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해 보자고.”

현찬의 얼굴 위로 투구가 씌워졌다. 누구보다도 강인한 정의로운 기사의 투구였다.

“그 여유도 이제 끝이다.”

악신회주의 얼굴이 변하며 투구의 형상을 취했다. 뿔이 2개가 자라난 악마의 모습이었다.

순백의 기사와 암흑의 기사가 서로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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