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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257화 (257/265)

# 257

257화 마무리 단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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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 지쳤다.”

현찬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발을 딛고 있어야 할 섬이 사라졌지만, 현찬의 코트 일부가 가루처럼 흩어지며 허공에 의자의 형상을 취했다. 현찬은 거기에 앉아 고개를 뒤로 꺾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현찬이라 하더라도 주신들을 한꺼번에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그들이 현찬에게 힘을 일부 넘겨줌으로써 부담을 줄여서 다행이었지, 그러지 않았다면 현찬은 악신회주와 싸우기도 전에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우선 지금은 푹 쉬어두자.”

영령의 세계에 갔다 오고, 또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싸움에 싸움의 연속이었다. 아직 영령으로서 완전하게 각성하지 못한 현찬은 인간일 적 시절의 버릇이 남아 있었다. 정신적으로 느끼는 피로감이 바로 그러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회복 속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르다는 점이었다.

현찬은 의자에 앉아서 소진된 체력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현찬아.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겠어?]

누구를 도와준다는 목적어가 빠졌지만, 이미 헤르메스와 교감의 단계가 월등히 올라간 현찬은 그 속뜻을 알아차렸다. 의도치 않게 현찬이 튀폰을 쓰러뜨려 버렸지만, 아직 악신회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트랄텍트리, 야마타노오로치, 세트가 대표적인 예였다.

알렉세이 윌터를 위시로 한 오버랭크 헌터들이 열심히 싸우면서 버티고 있지만, 과연 그것도 얼마나 오래갈지 장담할 수 없었다.

헤르메스는 지금 그들을 지원하러 가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현찬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회복이 우선이야.”

현찬은 조금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아주 멀리서부터, 자신을 향하고 있는 이 오싹한 시선을.

신급 영령의 격을 얻은 현찬의 피부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시선의 주인은 강했다. 어지간한 악신도 아래로 내려다보는 현찬에게, 이만한 영향력을 주는 자는 단 하나뿐이었다.

악신회주.

이럴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결국 그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었다.

악신회주는 현찬을 향해 계속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차원의 너머, 틈새의 틈새 사이에 숨어서 계속 현찬을 건드렸다.

‘어디 한번 내게 와 보거라.’

그와 마지막 싸움을 벌여야 하는 현찬은 만전을 기해야 했다. 여기서 회복을 포기하고 다른 악신과 싸우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내가 아니라도, 도와줄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있으니까.”

지금까지 이것을 위해서, 현찬은 모든 귀찮은 일들을 감수해 왔다.

현찬은 뒤로 꺾었던 고개를 앞으로 향하며 광활한 푸른 하늘을 주시했다. 멀리서부터 미약하지만 익숙한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현찬은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미소 지었다.

“때마침 왔네.”

&

쿠르릉!

갑자기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뇌명에 세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맑았던 하늘은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을 내달리는 사바나의 누 떼처럼 구름이 달리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의 기척이 이쪽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베이징을 반쯤 쑥대밭으로 만든 세트는 상황이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서 짜증이 난 상태였다. 원래라면 나약한 인간들을 학살하며 지금까지 쌓인 분노를 풀어야 했다. 베이징에 있는 모든 인간을 쓸어버리고, 한국으로 넘어가 현찬과 싸우려고 했다.

‘저 빌어먹을 둘만 방해하지 않았어도 말이지.’

오버랭크 헌터 양 리화와 진 차이의 필사적인 분전 아래, 세트는 둘의 벽을 뚫지 못하고 이 자리에 묶여 있었다. 양 리화와 진 차이가 수비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세트도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저 둘의 견고한 방어를 쉽게 넘어설 수는 없었다.

시간이 끌겠다는 의도가 고스란히 읽혀서 가뜩이나 짜증이 났는데 자신을 향해 적대감을 품는 존재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대체 어떤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내게 적대감을……!”

[나다.]

하늘의 구름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순간 구름을 뚫고 거대한 무언가가 세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세트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가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쿠와아아아!

무시무시한 풍압에 모래가 휘날렸다. 건물의 유리창이 전부 부서지며 지상을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자동차들이 바람에 날아갔고 폭발을 일으켰다.

“이건…… 팔?”

세트는 방금 떨어진 것이 거대한 팔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벌렸다.

[쥐새끼처럼 잘만 피하는구나.]

쿠르르릉! 먹구름 안쪽에서 다시 뇌명이 울려 퍼졌다. 아니, 그것은 천둥소리가 아니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 소리가 천둥처럼 들린 것이었다. 세트는 구름에서 튀어나온 팔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의 안쪽에서 다른 팔 하나가 더 튀어나왔다. 그리고 두 팔이 양쪽으로 펼쳐지는 순간 하늘을 가득 뒤덮은 먹구름이 장막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구름의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여인의 모습에 세트는 당황했다.

“이, 이계의 마왕?”

발걸음이 지진을 일으키고, 숨소리가 하늘을 흔드는 마왕 세아리스.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세트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근신 처분을 당해 갇혀 지내다시피 한 세트는 세아리스와 현찬이 맺은 모종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 세계의 신 중 하나라는 녀석이,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비실대는구나.]

세아리스가 목소리를 울릴 때마다 번개가 치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거대한 눈동자가 세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트는 그 깔보는 시선에 이를 악물었다.

“웃기지 마라!”

세트의 의지를 따라 모래들이 그에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베이징과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사막에서도 세트의 의지를 따라 모래가 폭풍을 일으키며 베이징으로 몰려왔다. 세아리스는 그런 모래폭풍을 보며 코웃음을 치더니 이내 숨을 들이쉬며 입김을 후 불었다.

콰아아아아!

그녀의 입김은 순식간에 거대한 폭풍이 되어 모래폭풍과 충돌했다. 도시 하나를 가볍게 뒤덮을 모래폭풍이 뒤로 밀려났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진 차이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격이 다른 싸움이었다.

잠시 모래폭풍을 밀어낸 세아리스는 지상에 내려오며 자신의 발아래에 있는 양 리화와 진 차이를 바라보았다. 양 리화와는 구면이지만 진 차이는 초면이었다.

[도우러 왔다.]

“…… 고마워요.”

[무얼. 동맹이라면 응당 당연한 일이지.]

크아아아아!

모래폭풍의 속에서 세트의 분노에 찬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모래폭풍이 하나로 모이더니 이내 모래로 이루어진 거대한 거인의 형상을 취했다. 몸통은 사람이지만 머리는 개의 그것이었다.

한 손에는 거대한 창을 쥔 세트가 으르렁거렸다.

[아무래도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겠어.]

세아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양 주먹에 마력을 휘감아 건틀릿을 만들었다. 진 차이와 양 리화 또한 각자 무기를 쥐고 모래 거인으로 변한 세트를 향해 겨누었다.

&

일본 도쿄에서 머리가 8개나 달린 거대한 뱀이 몸부림을 쳤다. 뱀이 움직일 때마다 주변의 빌딩들이 그 발악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뿌연 분진이 안개처럼 일어났고 야마타노오로치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 안에서 꿈틀거렸다.

꽈르릉!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며 야마타노오로치의 몸통을 강타했다. 번개가 후려치는 충격에 뱀의 머리가 이리저리 튕겨 나갔다. 그러나 그 새하얀 비늘을 약간만 그을렸을 뿐 거의 멀쩡하다시피 했다.

하늘에서 번개를 떨어뜨리던 엔도 미즈호가 짜증을 부렸다.

“아아! 정말이지! 저 뱀 너무 끈질김다!”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스사노오도 정면에서 승부를 보지 못해 술에 취하게 해서 쓰러뜨린 신 대의 뱀이다. 아무리 나의 권능이 담긴 번개라 하더라도, 놈에게 제대로 된 치명타를 입힐 수는 없는 법.]

“아니, 신 맞슴까! 군신이면 뭐, 파바박! 하고 쓰러뜨려야 하는 거 아님까!”

[내 힘을 다루는 것은 계약자, 그대의 몫이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대가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냥 사무라이와 계약을 할 걸 그랬슴다. 나중에 현찬 님 만나면 영령 바꿔달라고 할 검다.”

[…… 내가 노력해보지.]

다케미카즈치는 문득 자신의 처지가 너무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법. 아쉬워서 엔도 미즈호에게 매달려야 하는 것은 다케미카즈치였다. 어딜 가서도 꿀리지 않는 그였지만, 유독 미즈호에게만 약했다.

크와아악!

뿌옇게 일어난 먼지구름 속에서 뱀의 아가리가 튀어나와 입을 벌렸다. 그 안에 모인 거대한 신력이, 그대로 엔도 미즈호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방심하는 사이 날아오는 공격에 미즈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순간이었다. 거대한 무지갯빛 마법진이 엔도 미즈호의 앞에 벽처럼 생성되었다. 그것은 야마타노오로치의 공격을 막아냈다.

[누구냐!]

겨우 노린 찬스를 날려버린 제삼자를 향해 야마타노오로치가 살기를 내뿜었다.

[나지롱.]

그렇게 말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지간한 괴수에 버금가는 야마타노오로치의 덩치에 버금가는 무지갯빛 드래곤이었다. 이계의 드래곤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며, 이미 드래곤이라는 종을 초월한 <그랑데우스>.

[안 그래도 일식 먹고 싶었는데, 뱀 따위가 도시를 파괴하게 둘 수는 없지!]

그녀는 야마타노오로치를 향해 입을 쩍 벌리며 브레스를 내뿜었다.

&

트랄텍트리와 샤의 공방은 지지부진하게 계속되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샤와 땅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트랄텍트리는 서로 상극이었지만 그렇기에 서로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트랄텍트리는 이를 으드득 씹었다. 창공을 자유자재로 활공하며 자신을 향해 깃털을 뿌리는 샤는 날벌레 그 이상도 아니었다. 깃털 공격은 위협적이었지만, 그녀가 일으키는 대지에 의해서 전부 막히고 있었다.

그 빈틈을 노려서 알렉세이 윌터가 트랄텍트리에게 접근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의 행동을 눈치챈 트랄텍트리가 지진을 일으키며 알렉세이를 계속 바깥으로 밀어냈다.

“크흐! 그야말로 최강의 방패로군.”

작정하고 스스로 방어하듯 바위로 둘러싸는 트랄텍트리를 보며 알렉세이가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든 샤가 시간을 끌면서 그녀의 관심을 돌려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렇다 해도 그가 접근하는 일은 요원했다.

‘여기서 더 지원이 필요한데.’

지금은 딱 서로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상황. 여기서 추가적인 지원이 생긴다면 이 균형추가 한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미군의 미사일 지원은 트랄텍트리의 대지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흥! 어리석은 놈들!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줄 아느냐!”

오히려 반경 수십 킬로미터 이내에 주둔한 모든 기갑사단이 지진에 휩쓸려 나갈 뿐이었다. 결국, 군은 후퇴했으며 어지간한 헌터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위험지대가 형성되고 말았다.

대지의 여신 트랄텍트리는 그 힘의 활용이 너무나도 무궁무진했다. 땅은 그녀의 의지대로 움직였고, 그것은 창과 방패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알렉세이 씨! 이제 어쩌며 좋죠?”

“어쩌긴 어쩌겠나! 일단 시간을 계속 끌어야지!”

“네놈들의 뜻대로 될 줄 아느냐!”

트랄텍트리의 히스테릭한 외침과 함께 땅에서 골렘들이 솟아 나와 알렉세이를 포위했다. 알렉세이가 주먹을 내뻗어 골렘들을 부쉈지만, 흙으로 돌아간 골렘들은 순식간에 새롭게 생성되었다.

“이런 제길! 끝이 없는구먼!”

알렉세이가 그렇게 불평하는 순간이었다.

이 거대한 필드 주위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뭐?”

갑작스럽게 어둠이 깔리자 트랄텍트리는 순간 당황하며 빈틈을 보였다. 사사삭! 그 허점을 노리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은밀한 이동이었지만 트랄텍트리는 알 수 있었다.

“감히 나에게 기습을 가하려 들어!”

발을 땅에 대고 있다면, 그것이 누구라도 트랄텍트리는 상대를 감지할 수 있다. 어둠 속에 숨은 제삼자는 확실히 엄청난 은신을 보여주었지만, 상성이 나빴다.

트랄텍트리의 히스테릭한 분노가 지면을 가시밭길로 만들었다. 뾰족하게 솟은 대지의 창은 잔뜩 성이 난 고슴도치처럼 주변 일대에 서릿발처럼 펼쳐졌다. 그녀를 향해 접근하는 검은 그림자 또한 그대로 대지의 창에 꿰뚫렸다.

“뭣?!”

아니, 꿰뚫리는 것 같았다.

검은 그림자는 대지의 창을 그대로 통과했다. 심지어 트랄텍트리가 펼친 대지의 벽마저도 손쉽게 통과하며 순식간에 그녀의 지척까지 접근한 것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풀리며, 갈색 피부에 은빛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한때 지구를 침략했지만, 지금은 현찬과 손을 잡은 아렌디르였다.

“지구의 동맹으로서…….”

그녀는 날카로운 단검을 쥐고, 트랄텍트리를 향해 휘둘렀다.

“네년을 죽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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