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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252화 (252/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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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화 일인 군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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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은 더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이미 인간을 초월해버린 현찬은, 유일하게 육신을 가지고서 하계에 강림할 수 있는 영령이었다. 그것도 발드르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영령의 격을 따지자면 신급이다.

모든 신은 하계로 내려올 때 제약을 당한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이며, 세계가 정한 규칙이었다. 이 법칙을 위배할 수 있는 신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의 신들은 물론이거니와, 이계의 신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우주 최초의 예외가 탄생했다.

현찬은 원래부터 하계의 인간이었기에, 어떤 힘을 쓰더라도 세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이제는 신급 영령의 힘을 마음껏 다루며, 심지어 <계약> 스킬마저도 본인의 마력이 닿는 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계약의 후유증도 없으며, 심지어 다중계약을 사용했다고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조차 사라졌다.

그야말로 궁극의 상태에 도달한 현찬은, 자신이 지금까지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한 능력들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바로 이렇게.

“뭐, 뭐야!”

쉔니르의 기병들은 당황했다. 분명히 현찬 혼자서 있었는데, 그의 주위로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이 일어나더니 사람의 형상을 취했기 때문이다.

현찬의 주위로 마치 안개가 퍼지는 것처럼 뿌연 연기가 일어났고, 그 연기는 하나로 뭉치며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안개의 변화는 사람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말로 변하고, 말과 사람의 몸에 붙어 갑옷으로 변했다. 창과 칼, 활로도 변해 완전무장한 인간을 그대로 만들어낸 것이다.

안개는 현찬의 뒤로 늘어진 넓은 초원을 전부 뒤덮고 있었고

안개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는 쉔니르의 기병들과 맞먹는, 어쩌면 그 이상이나 되는 엄청난 수의 기마병이 도열하고 있었다.

쉔니르의 기병들은 갑자기 생겨난 대군에 눈을 부릅떴다. 그들이 계약을 맺은 위대한 선조들 또한 이 기묘한 현상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대족장인 샤 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얼굴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속마음은 달랐다. 누구보다도 강력한 선조, 아니 그들의 신의 힘을 빌리는 샤 칸은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는 최고의 지도자였다.

지구로 치면 오버랭크 헌터에 맞먹으며, 그의 특기인 승마까지 합쳐지며 그의 부하들이 함께한다면 오버랭크 헌터 그 이상의 힘을 쉽게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저 기세들은 뭐냔 말이다!’

샤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현찬이 소환한 저 기병들은 분명히 살아있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현찬에게 저것들을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던 걸지도 몰랐다.

그 수가 이미 물경 1만이 넘어선 시점에서 현찬의 능력은 이미 비범함을 초월했지만, 그것은 샤 칸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약하면 의미가 없다.

샤 칸은 자신의 고향 쉔니르를 정복할 때, 10만의 군대를 단 3천으로 승리한 적도 있었다.

그의 신이 전해주는 힘은 막강했고, 그가 이끄는 군세의 진격은 대단했다.

샤 칸은 아무리 강대한 적들과 마주쳐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녀석들과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고.

상대가 수가 많더라도, 그의 직감은 이미 자신의 진영과 적의 진영의 수준 차이를 쉽게 분석하고 승리를 향한 결론을 도출했다. 샤 칸은 그렇게 승리자가 되었고 대족장이 되었다.

전투에 있어서 그는 반드시 승리를 향한 길을 찾아냈다.

그것이 그의 능력이자, 그것이 신이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이었다.

그랬던 샤 칸이 지금은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전력이…… 읽히지 않는다.’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는 초유의 사태에 샤 칸은 피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거의 만능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능력이 막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막힘없이 탄탄대로를 걷다가 거대한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생소한 감각에 샤 칸은 이를 악물었다.

적의 수준이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그만큼 적이 강하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특수한 능력을 통해 눈속임을 보여주는 것.

샤 칸은 후자에 걸었다. 아니, 전자라도 상관은 없었다. 그의 기병대는 강했고, 그가 이끄는 부족은 무적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는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강하면 강한 대로, 정복해주는 맛이 또한 있지 않겠는가. 거대한 벽을 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드높여주는 일이다.

샤칸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쳤다.

“모두 정신 차려라!”

쩌렁쩌렁 울리는 그 목소리는, 어떠한 도구의 도움도 없이 뒤로 나열한 1만의 기병대에게 또렷하게 전해졌다.

“드디어 싸울 놈들이 나타났는데 겁부터 지레 먹다니, 그러고도 네놈들이 나를 따르는 위대한 전사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 아닙니다!”

샤 칸의 호통은 쉔니르 부족의 흐려져 가던 정신을 강하게 일깨워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찬은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다. 저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현찬은 은연중에 카두케오스 지팡이의 능력을 이용해 적들의 전의를 상실하게끔 최면을 걸었다.

샤 칸의 힘이 담긴, 아니 그가 계약을 맺은 이계의 신의 힘이 담긴 외침은 현찬의 물밑작업을 가볍게 파훼했다.

[아쉽게 됐네.]

헤르메스가 현찬의 곁을 날아다니며 약 올리듯 말했다. 현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괜찮아. 어차피, 저런 거로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 오히려 이건 기회야. 정면에서 놈들을 쳐 부숴야 속이 풀릴 테니까.”

현찬은 여기까지 오면서 이미 많은 쉔니르의 부족들을 학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이 먼저 이 세계를 침략했고, 이곳의 사람들을 죽였으니까.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민간인을 약탈하고, 그들의 마을과 도시에 불을 질렀으니까.

죽였으니 죽는 거다.

그래서 현찬은 이곳으로 오면서, 하늘에서 쉔니르의 부족들을 향한 벌을 내렸다.

그가 세계 곳곳으로 뿌려놓은 마커를 통해 떨어진 빛의 기둥은 정확히 이계의 침략자들만을 노렸고 그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나 혼자서 쓸어버리고 싶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이미 현찬이 약조한 여러 영령이 자신들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아우성을 부렸기 때문이다. 지구에 오면서 현찬은 신급 영령들 말고도 여러 영령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 또한 현찬과의 계약을 바랐다.

옛날이었다면 현찬이 오히려 조심스럽게 ‘계약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어봐야 하는 처지였다면 지금은 그 반대였다.

이미 신급 영령의 격을 얻어버린 현찬은 어지간한 영령들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요청을 들어준 이유는 하나다.

그들의 수가 많으니까.

아무리 신급보다 낮은 영웅급 영령이라 해도 수가 많으면 현찬으로서도 딱 잘라서 거절하기 힘든 것이었다.

‘뭐, 내가 직접 어느 정도나 강해졌는지 능력을 파악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이번에 선보인 대군이 바로 그것이었다.

<초 다중계약>.

말을 타는 데 능숙하거나, 혹은 한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기병들을 지휘하던 지휘관이기도 한 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현찬은 해당 영령들을 전부 <소환>했으며 심지어 넘치는 마력으로 그들이 이끌던 군세의 일부까지 현실로 재현한 것이었다.

“다들 자신의 능력에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모두 충돌하는 일 없이 힘을 합쳐주셨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현찬은 자신의 바로 뒤에 도열한 지휘관들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누구는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누구는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며 제안을 받아들인다. 묵묵히 적을 노려보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의지는 똑같았다.

자신의 고향인 지구를 침략한 저 후안무치한 외적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

그것을 위해 이 하계에 내려온 것이다.

“크하하하! 설마 역사 속에서 위대한 정복자들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걸!”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

통칭 알렉산더 왕이라고 불리는 덩치 큰 서양의 남자는 호탕하게 웃었다. 위대한 정복자로서 이름을 드높인 그는 자신과 동등한 존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기쁜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 치들은 우리와 비슷하군.”

<보르지긴 테무친>.

몽골의 시조이자 세상에서 가장 넓은 땅을 정복했던 그는 사람들이 칭기즈 칸이라고 부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 밖에도 로마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았던 <한니발>.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광개토대왕>.

프랑스 최초의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오스만 제국의 최강의 왕 <무라트 4세>.

기마병의 지도자 <공손찬>.

중국 희대의 명장 <곽거병>.

역사상 전쟁의 올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이 이끄는 중기병이 정면에 섰고, 경기병이 그 뒤를 이었다.

헤타이로이, 신성 기병대, 장다르메, 카타프락토이, 기마무사.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만 했을 뿐인데도 장관이 펼쳐졌다. 인종도 갑옷도 무장도 전부 제각각이었지만 한 존재의 의지로 인해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군세였다.

“모두 전투 준비!”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샤 칸이 소리를 지르자 쉔니르의 중기병들이 앞에 섰다. 본디 기병들의 싸움에서는 경기병이 가장 유리했고 쉔니르의 기병들 또한 7할이 경기병이었지만, 그렇다고 중기병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현찬 쪽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쪽은 중기병이라고 한다면 역사에 족적을 남긴, 둘째가라 하면 서러워할 자들이었다.

투타타타타타!

하늘에서 헬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찬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헬기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하여튼. 이런 상황에서도 방송국 놈들은 안 끼는 데가 없어.”

세계가 이렇게나 혼란스러운데도 방송국의 인간들은 특종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저것을 정말로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아둔한 발버둥이라고 봐야 하는지 현찬은 알 수가 없었다.

뭐, 그래도.

“역사에 길이 남을 장관을 알아서 찍어주겠다고 하는데, 내가 말릴 필요는 없겠지.”

현찬은 코트를 펄럭이며 현계에 강림한 영웅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저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 자리의 뒷일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제가 저놈들을 몽땅 때려잡고 싶지만, 양보해 드리죠.”

“그대의 선처에 감사를 올리네.”

광개토대왕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고구려 최고의 왕에게 감사 인사를 받다니 감회가 참 새로웠다.

“그럼 부탁합니다.”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빛으로 변해 하늘로 높게 치솟아 올랐다. 쉔니르의 기병들은 갑자기 현찬이 사라지자 당황했지만, 여전히 적들이 남아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무기를 강하게 쥐었다.

“자. 우리를 이곳까지 모은 계약자가 판을 깔아주고 자리까지 비켜주었으니.”

“이제 거리낌 없이 마음껏 날뛸 수 있다는 거겠지?”

“이 땅을 밟은 적들에게 죽음의 철퇴를.”

“진정한 정복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기병들과 이계의 땅을 전부 정복한 기병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거대한 군세의 격돌을 직접 목도하는 헬기의 카메라맨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너무나도 치열하고 끔찍한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이 전쟁은,

정말 너무할 만큼 쉬운 정도로 지구 쪽이 밀어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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