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251화 일인 군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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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들은 대체 뭐지?]
구동 기사에 탑승한 제국의 병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용갑병을 살폈다. 가장 덩치가 작은 것이 3m나 되는 구동 기사와 다르게, 용갑병은 사람이 딱 들어가 있을 법한 크기였다. 즉, 구동 기사와 덩치 차이만 해도 2~3배 이상 났다.
용의 모습을 본뜬 순백 갑옷은 상당히 세련된 미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그렇게 강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거무튀튀하고 둔중하며 훨씬 더 거대한 구동 기사와 하얗고 날렵하며 크기가 작은 용갑병.
이 둘을 비교하면, 누가 보아도 구동 기사가 우세해 보였다.
하지만.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딴 게 감히 우리 제국의…….]
용갑병을 우습게 본 병사 하나가 검을 든 채 용갑병을 향해 다가갔다. 이런 호리호리한 녀석이, 감히 위대한 제국의 기술력을 총망라한 구동 기사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일한 행동은 제국의 병사에게 끔찍한 운명의 철퇴를 안겨주었다.
서걱!
무언가 베이는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용갑병에게 가까이 다가가던 구동 기사가 두 동강이 났다. 잘려나간 상반신이 바닥을 뒹굴었고, 그 안에 탑승한 병사 또한 구동 기사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이런 제길! 모두 전투 준비!]
[조심해라! 겉보기와 다르게 강하다!]
오랫동안 훈련을 받으며 전장을 누빈 제국의 병사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용갑병을 향한 경계 레벨을 최대치로 올리며 진형을 유지했다. 함부로 덤벼서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멍청하지 않은 건 칭찬해주고 싶다만.”
용갑병들의 선두에 선 현찬은 그런 제국의 병사들을 비웃었다.
현찬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차가운 북해의 빙하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고작 마음을 다르게 먹었다고 해서, 나의 군세에 저항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려.”
현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용갑병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투구의 검은 틈새에서 붉은빛을 뿜어낸 용갑병들은, 각자 무기를 쥔 채 제국의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용갑병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콘크리트 바닥이 부서지며 파편을 뿌렸다.
빠르게 쇄도하는 용갑병들을 보며 구동 기사들은 등에 멘 방패를 꺼내 정면에 세웠다.
순식간에 검은 방패의 장벽이, 용갑병의 앞을 가로막았다.
[모두 방어 태세! 전열을 흩뜨리지 마라!]
[신호와 동시에 후방은 창을 내질러라!]
상대가 이쪽과 대등하다면 전략으로 승리하면 된다. 용갑병들이 달려드는 걸 방패로 막아낸 이후, 그 충돌이 빚어낸 빈틈을 후방의 창대가 노릴 것이다. 놈들은 강했지만 자아가 없어 보였다.
사고하고, 판단하며, 결론을 내리는 인간인 이쪽이 싸움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또한, 제국의 오만한 판단이었다.
[온다!]
정면에서 다른 구동 기사보다 더 거대한 방패를 든 백인 장의 외침에 부하들은 방패에 힘을 주었다. 지이잉. 검은 방패의 표면을 따라 푸른 마력이 맴돌았다. 이거라면 미사일이 날아와 꽂혀도 멀쩡할 수 있었다.
[어……?]
그러나 가장 선두에 선 백인 장은 용갑병의 무기를 방패로 막아냈음에도, 그것을 막았다는 감촉이 들지 않아 의아했다. 용갑병은 분명히 손에 쥔 새하얀 검을 휘둘렀고, 백인 장은 방패를 들어 그것을 막았다.
분명히 불똥을 튀기며 검과 방패가 충돌해야만 했고, 그렇게 반발력으로 밀려난 용갑병을 향해 방패 뒤에 숨겨놓은 무기를 내지를 생각이었다.
방패가 검을 막아냈다면 말이다.
서걱!
용갑병이 휘두른 무기는 방패로, 구동 기사를 베어버렸다. 마도 공학을 극한까지 활용하여 만든 튼튼한 방패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방패가 잘려나가고, 그 뒤에 숨어있던 백인 장의 머리 또한 함께 잘려나갔다.
허공이 팽그르르 도는 듯한 시야 속에서, 백인 장은 용갑병 너머 현찬을 보고 있었다. 현찬은 그런 백인 장을 보며 경멸의 시선을 던졌다.
“고작 마법의 힘으로 만든 방패 따위로, 신이 직접 만든 무기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용갑병은 현찬의 몸을 빌린 헤파이스토스가 무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만든 군단이다.
발끝부터 투구의 끝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세련된 모습에 헤파이스토스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은 없었다.
당연히 용갑병이 쥐고 있는 무기 또한, 헤파이스토스가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서 만든 진귀한 무기였다.
서걱! 서걱!
[크아아악!]
[아악!]
[뭐, 뭐야 이 자식들…… 크억!]
방패를 내세워 진형을 유지하던 제국의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파도에 쓸려나가는 모래성처럼, 구동 기사의 단단함만 믿은 제국의 병사들은 저항다운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전열이 순식간에 무너지니 후방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새하얀 군세가 검은 잡졸들을 엄청난 기세로 밀어냈다.
[당황하지 마라!]
카앙!
당하는 와중에도 반격을 기하는 존재는 있었다. 이 집단의 우두머리인 제국의 천인 장은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용갑병의 창날을, 방패를 비스듬히 세워서 흘려냈다. 그가 탑승하고 있는 구동 기사가 다른 병사들의 것보다 기능이 좋은 것도 한몫했다.
‘이 갑옷들……! 안쪽에 아무것도 없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인 건가?’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이상, 그것은 이미 기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는 것이지만 천인 장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는 그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놈들을 통솔하는 머리를 쳐야 한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그의 부하들이 속절없이 용갑병들에게 쓸려나가고 있었다. 천인 장은 대검으로 바닥을 있는 힘껏 내려찍었다. 콰앙! 아스팔트 도로가 좌우로 쩍 갈라졌고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용갑병들은 충격파에 밀려 좌우로 길을 만들었고, 천인 장은 현찬을 향해 만들어진 길을 내달렸다.
쿠웅! 쿵! 다른 구동 기사보다 더욱 거대한 구동 기사가 지면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조금씩 흔들렸다.
‘놈만 처리하면 된다!’
천인 장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현찬과의 거리는 고작 수십 미터. 그것은 순식간에 좁혀졌다. 천인 장은 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검은 검 끝이 햇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났다. 현찬의 덩치보다 훨씬 더 거대한 검의 날은 중력의 힘을 머금고 떨어졌다.
[죽어라!]
정수리부터 갈라버리기 위한 필살의 일격!
대기를 가르고 공간마저 가를 기세로 휘둘러진 검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패도의 기세가 흘러넘쳤다.
천인 장은 확신했다. 이건 제대로 들어갔다고. 현찬은 죽고, 그가 조종하는 저 정체 모를 새하얀 기사들도 멈출 거라고.
그렇게 믿었는데.
턱!
현찬이 내민 테레이오스테 날의 끝이, 천인 장의 검을 가볍게 막아냈다. 천인 장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 톤이 넘는 구동 기사가, 그것도 천인 장급 구동 기사가 전력으로 휘두른 검을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한 손으로 막았다.
말도 안 되는 힘이었다. 그것을 두 눈으로 목도한 천인 장은 당연히 지금 보는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너 따위에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여기 말고도 처리해야 할 곳은 많으니까.”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쥔 팔을 움직였다. 파앗! 현찬의 팔이 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천인 장은 현찬의 팔이 움직이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느낀 감각이었다.
천인 장의 구동 기사는 순식간에 수십 조각으로 토막 나 바닥에 너부러졌다. 제국의 병사들은 순식간에 용갑병들에게 쓸려나갔다. 아무리 철혈의 제국에서 전쟁을 일삼아 온 병사들일지라도, 자신들의 지휘관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는 걸 목도했으니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너희들은 다른 곳에 가서, 침입자들을 제거해라.”
현찬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갑옷의 등 뒤로 새하얀 날개를 활짝 펼치는 용갑병들의 모습에, 제국의 병사들은 저항의 의지를 완전히 잃었다. 하늘을 가득 뒤덮은 순백의 군단은, 지상의 검은 병사들을 무차별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흑흑! 우린 이제 살았어!”
“살았다! 살았다고!”
“강현찬 헌터님 만세!”
그 광경을 지켜본 시민들은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현찬에게 고맙다고 절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 현찬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쿠르릉! 하늘에서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하늘을 향했다.
푸른 하늘에서도 확연히 보일 정도의 눈부신 백광이 엄청난 속도로 길을 그리며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다음 먹잇감을 찾는 것처럼.
&
“흠?”
기마병들을 이끄는 차원 <쉔니르>의 지배자, <샤 칸>은 하늘을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그가 몰던 말을 멈추자 그의 뒤를 따라오던 부족의 전사들 또한 멈췄다.
“대족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하늘이 이상하다.”
“하늘이요?”
샤 칸의 말을 들은 전사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이 내달리고 있는 이 푸른 초원 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걸까? 모두가 의아해하는 순간 푸른 하늘의 저 끝에서 무언가 빛났다.
“어, 어엇?”
“저건 뭐지?”
그 빛은 하늘을 빠르게 지그재그로 움직이더니 이내 그들의 정수리 위에 딱 멈췄다. 모두가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순간 빛이 다시 움직였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움직이던 빛은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
갑작스러운 이변에 전사들은 모두 화살을 쥐고 시위를 당겼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은 목표를 향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갈 것이다.
그들이 이곳까지 오면서 약탈하고 죽인 사람들이 그 증거였다.
콰아아!
빛의 기둥이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새하얀 코트를 입은 한 남성이었다.
누군가 나타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고작 하나? 입고 있는 옷은 뭔가 있어 보이지만, 딱히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전사들이 모두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대족장 샤 칸은 손을 들어 올렸다.
“대족장님?”
“방심하지 마라. 보통내기가 아니다.”
누군가를 살피는 눈썰미가 이 자리에서 따라올 수 없는 샤 칸이 그렇게 말했다. 그의 부족 전사들은 그 말에 다시 긴장의 끈을 유지하며 현찬을 주시했다. 현찬은 샤 칸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들의 지도자라 그런지 눈치는 상당히 있는구나.”
현찬에게서 흘러나오는 유창한 쉔니르어에 전사들이 당황해했다. 이곳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 그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텐데도, 현찬은 그들의 말을 알아들었고 심지어 그들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네놈은 누구냐.”
“누구? 내가 누구냐고 묻다니 좀 웃기는 일이네. 나는 이곳의 주민이고 이곳에서 사는 사람인데, 이쪽에 멋대로 쳐들어 와서 마음껏 사람들을 학살한 건 너희들이 아닌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너희들은 누구냐고.”
1만이 넘는 기병의 군세 앞에서도 저렇게 당당하게 외치는 현찬을 보며, 샤 칸은 무언가 불안한 직감이 들었다.
그는 즉시 수화를 이용해 자신의 부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의 뜻을 눈치챈 부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등에 멘 화살집에서 독특하게 생긴 화살을 꺼내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쒜에에에엑!
화살은 아주 길고 높은 고음을 내며 멀리 사라졌다. 이것은 그들만이 사용하는 일종의 통신 체계였다. 쉔니르의 기마병 군세는 이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지구로 넘어온 그들의 숫자는 거의 100만에 달한다.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있어서 지금은 샤 칸이 이끄는 1만밖에 이곳에 없지만, 이 근방은 이미 그들의 군세가 장악한 곳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호를 보냈을 경우, 답이 돌아와야 하지만.
“이, 이상합니다.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
이 신호를 사용하면 반경 30km 안에 있는 그의 부족들이 전부 다 반응을 했을 것이다. 위대한 선조의 영혼끼리 이어진 그들의 부족은, 아무리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신호를 완벽하게 포착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대답이 없다면.
“네놈. 무슨 짓을 벌인 거지?”
빛과 함께 나타난 인물, 현찬에게 그 혐의가 옮겨졌다.
“오늘 길에 쓰레기들이 있길래, 처리했지.”
“쓰레기? 처리했다?”
현찬의 말에 샤 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바위 같은 그의 얼굴에 주름이 늘자 더욱 험악하게 변모했다.
“나의 군세를, 네놈 혼자서 처리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아니. 정확하게 들은 게 맞아. 내 힘으로, 전부 쓸어버렸으니까. 아니, 정확히는…… 나 또한 도움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말하는 현찬의 등 뒤로, 여러 영령의 실루엣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쉔니르의 부족원들은 그들을 보지 못했지만, 그들이 계약을 맺은 위대한 선조의 영혼을 통해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내가 좀……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좀 많아서 말이야.”
<초 다중계약>.
이전보다 월등히 좋아진 능력을 발동하며 현찬은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