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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249화 (249/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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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화 악신 토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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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또 뭔데? 응?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고 말이야.”

브리트라는 빛의 기둥에서 튀어나온 현찬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에 지구 전체를 뒤덮던 빛이 누구의 짓인가 했더니 바로 그였다. 브리트라는 현찬을 알아보고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우고 반가워했다.

“오. 너였구나. 이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본 건 처음이네?”

브리트라는 싸움을 방해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지지부진한 리네넷과의 신경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현찬의 등장은 썩 반가운 것이었다. 저 계집은 자신과 싸울 생각이 없지만, 현찬은 달랐으니까.

벌써 투기를 풀풀 풍겨내고 있었으니 브리트라는 몸이 달아올랐다.

강자와의 싸움을 바라는 그는 이걸 바라고 있었다. 브리트라는 두 손으로 손뼉을 치며 입을 크게 벌렸다.

“캬하! 좋네, 좋아! 이런 거 좋다고! 응? 서로 피가 튀기는 치열한 싸움! 그거야말로 가장 삶의 권태를 씻어줄 즐거운 청량제가 아니겠어? 그래. 너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겠지. 강현찬이라고 했나? 어디 한번 실력을 보여 봐. 날 즐겁게 해주라고.”

“오늘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 너 말 진짜 많구나.”

현찬은 혀를 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등 뒤에는 힘을 너무 소진해서 땀을 뻘뻘 흘리는 리네넷이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떨어져서 당황하고 있었는데, 그 빛의 기둥을 뚫고 등장한 현찬을 뒤늦게 알아보았다.

“현찬 오빠! 돌아오셨어요?!”

“어. 그래. 방금 막 왔어.”

현찬은 어디 가벼운 마실이라도 나갔다가 온 사람처럼 손을 흔들어주었다. 리네넷은 그 모습을 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쌓이고 쌓인 긴장감이 사라지자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한계를 넘어선 일이었다. 힘의 운용도 운용이지만, 단 한 번의 실수라도 생기는 순간 사람들이 죽는 상황에서 리네넷은 정신력과 힘을 최대한으로 쥐어 짜냈다.

그것을 무려 몇 시간이나 쉬지 않고 지속했으니 당연히 기운이 빠질 만도 했다.

현찬은 그런 리네넷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누군가를 불렀다.

“그랑데우스.”

“응? 나 불렀어?”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숨어있던 그랑데우스는 현찬이 부름과 동시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현찬을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현찬은 골치가 아파졌다.

“왜 리네넷 혼자서 열심히 싸우고 있던 건데? 네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었어?”

“하지만~ 내가 뭘 도우려고 해도 혼자서 알아서 잘 처리하고 있었다고. 거기서 내가 괜히 끼어들면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갈까 봐 지켜보고 있었어.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오면 그때 본격적으로 나설 생각이었지.”

그것을 증명하듯 그랑데우스는 조금 전부터 계속 리네넷의 주위에 숨어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무지갯빛 머리카락의 여성을 본 브리트라는 놀라는 일 없이 오히려 재미있다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이 근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척이 느껴졌나 싶었더니 댁이었어? 보아하니 평범한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 다른 차원에서 오셨나 봐? 아. 이거 참. 내 소개가 늦었지? 나는 브리트라라고 해.”

지루한 신경전은 끝나고 곧 이어질 즐거운 싸움 때문일까, 브리트라는 아주 신이 나서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들뜬 상황이었다. 별로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가 이렇게나 말이 많아진 것이 그 증거였다.

현찬은 그랑데우스를 보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아무튼, 내가 여기까지 온 이상 저 녀석은 내가 처리할게. 너는 일단 리네넷을 안전한 곳까지 바래다줘.”

“응. 알았어. 근데 그거 해주면 뭐 해줄 거야?”

“해주긴 뭘 해줘. 지금까지 가만히 숨어서 지켜본 거 봐준 것만 해도 고마워해라. 어서 가.”

“이잉.”

그랑데우스는 앓는 소리를 내며 리네넷에게 다가갔다. 현찬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저게 대체 어디가 드래곤을 초월한 새로운 종족이라 불릴 존재란 말인가. 오히려 호기심이나 생각이 없는 걸 보면 유치원 꼬마 아이와 맞먹지 않는가.

그랑데우스가 당황스러워하는 리네넷을 공주님처럼 안고 사라지는 걸 끝까지 확인했다. 기척마저 확실히 멀어진 걸 확인한 후에야 현찬은 다시 브리트라를 바라보았다. 브리트라 또한 현찬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저 여자 저렇게 보내도 돼? 너 혼자서 나를 상대하겠다고? 아니. 물론 좋기는 하지만, 너 그러다 오래 못 버티고 죽는다?”

브리트라는 기왕 하는 싸움이라면 길게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리네넷이 계속 간만 보면서 시간을 끌었기 때문일까, 전투를 향한 욕구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현찬이라면 훌륭한 상대가 되겠지만, 1대1이라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브리트라는 그만큼 자신의 힘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는 강했고 신이었다.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혼자서 막아내며 지상에 가뭄이라는 재앙을 초래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세계를 모래 더미로 바꿀 수도 있었다.

현찬은 그런 브리트라를 보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조금 전부터 내가 말하지 않았나? 너, 말 너무 많다고. 잔소리 말고 덤비기나 해. 깔끔하게 끝내줄 테니까.”

“하하하! 이거 골때리는 인간이네. 인간이 아무리 자신의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설마 신에게 그런 망발을 내뱉었을 줄이야. 지금이야 내가 좀 기분이 좋아서 참는 거지 평소였으면 너…… 죽었어?”

그렇게 말하는 브리트라에게서 무시무시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폐에 모래가 차오르는 것처럼 숨이 텁텁했다. 농번기 사람들에게 가뭄이라는 끔찍한 재앙을 상징하는 브리트라는, 악신으로서의 격이 상당히 높았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지간한 도시 하나를 모래더미로 바꾸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수분을 흡수하여, 그들을 그대로 모래 가루로 만들 수 있었다. 심지어 무생물인 바위나 콘크리트도 아주 고운 모래로 바꿀 수도 있었다.

살아있다면 반드시 수분을 포함하고 있는 생명체를 상대로 브리트라는 그야말로 끔찍한 재앙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분노한다면 이 주변 일대의 인간들은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 채 삐쩍 마른 미라가 될 것이다.

그래도 좋냐는 시선을 받은 현찬은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전부터 자꾸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데…….”

현찬이 오른손을 크게 뻗자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며 황금빛의 찬란한 검으로 바뀌었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주고, 거기에 드래곤 스케일과 드래곤 본, 드래곤 하트를 재료로 써서 극강으로 강화한 현찬의 애검 테레이오스테였다.

검 손잡이를 쥐는 순간 검을 쥔 손을 타고 빛의 입자가 모이며 현찬의 갑옷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현찬의 몸 곳곳으로 퍼졌다. 완전한 서양식 갑옷이 아닌, 백색의 코트를 기준으로 일부분에 갑옷이 덧대어진 세련된 디자인의 복장이었다.

현찬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번 뒤로 쓸어넘기며 싸늘한 시선으로 브리트라를 직시했다.

그것은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무정한 눈빛이었다. 그저 죽일 녀석을 바라보는, 아니 날뛰는 짐승을 바라보는 시선 그 자체였다.

“하. 이거 좀 기분 나빠지려고 하네.”

브리트라도 그 감정을 읽어내고 ‘에휴’ 하고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제대로 즐기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 이렇게 김빠지는 일들이 수두룩하단 말인가.

“역시 이 세상을 멸망하는 게 답이야.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브리트라의 주위로 모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사람의 피를 빨아들인 모래는 기분 나쁠 정도로 적색을 자랑했다. 현찬은 그 모습을 보며 손에 쥔 테레이오스테를 고쳐 쥐었다.

“이제 내가 뭐라고 설명해주기도 귀찮다. 너 말고도 지금 처리해야 하는 녀석들이 산더미만큼 있으니까. 그러니까…….”

현찬의 기운이 실린 테레이오스테의 검신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빨리 끝내줄게.”

“뭐…….”

‘라고 말하는 거야.’라고 브리트라가 대꾸할 틈도 없었다.

현찬이 검을 쥐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그가 날린 참격은 브리트라의 지척까지 접근해 있었으니까.

“윽?!”

브리트라는 몸을 뒤로 확 젖혔다. 그의 코끝 위로 황금빛 검격이 스쳐 지나갔다. 브리트라는 다시 자세를 고정하며 모래를 조종하기 위해 오른손을 뻗었다.

뻗으려고 했다.

“응?”

그의 오른팔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브리트라는 그제야 자신의 어깻죽지 아래로 팔이 잘려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깔끔한 일격에, 팔이 잘려나간 것도 몰랐다. 심지어 고통도 없었다.

‘대체 언제?’

이미 피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일격이 들어온 것이었다. 브리트라는 이를 악물고 멀쩡한 왼팔을 이용해서 모래를 움직였다. 지면에 깔린 붉은 모래가 창처럼 우수수 일어났다. 현찬은 그대로 돌진해 왔다.

“핫! 멍청한 녀석!”

브리트라는 현찬의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고작 모래로 된 창을 대충 맨몸으로 뚫어 볼 심산인 것 같았지만, 브리트라가 다루는 모래는 그 강도가 다이아몬드를 뛰어넘었다.

곧 창에 꿰뚫려 벌집이 될 현찬의 모습을 기대한 브리트라는 뒤이어 펼쳐지는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콰드득!

브리트라가 내지른 모래의 창은, 현찬의 새하얀 옷에 닿기가 무섭게 오히려 역으로 부서졌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옷인지 모르겠지만, 브리트라의 힘이 실린 모래가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신이 만든 물건이다!’

현찬의 기운에 가려져서 몰랐는데 현찬이 입고 있는 의복도, 쥐고 있는 검도 전부 신력이 깃들어 있었다. 즉 저것은 신이 직접 만든 신구라는 소리였다.

브리트라는 모래를 벽처럼 세우며 몸을 뒤로 뺐다. 잘린 팔의 단면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대로라면 근접전에서는 그가 불리하다. 조금 더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콰직!

그 순간 브리트라는 옆구리에 느껴지는 고통에 삼켰던 숨을 토해냈다. 이미 벽을 베어버리고 접근한 현찬이 그의 옆구리에 강한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브리트라의 몸이 엄청난 기세로 튕겨 나갔다. 브리트라는 바닥을 몇 번이나 뒹구는 와중에 자세를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크아아아!”

그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사라지고, 그의 입이 징그럽게 찢어지며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의 살을 찢고 검은 비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브리트라는 순식간에 거대한 뱀으로 변했다.

이런 곳에서 본신의 힘을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브리트라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모든 힘을 다해서 현찬을 죽일 생각이었다.

‘네놈이 강하다는 건 인정해 주마! 하지만 과연 지금의 나를 이길 수 있을까!’

재앙을 초래하던 전성기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나약했지만, 그래도 신 급의 힘이다. 나라 하나는 손쉽게 멸망으로 이끄는 힘이 있었다.

“어?”

브리트라는 자신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의아했다.

조금 전까지 끓어오르던 그의 힘이, 순식간에 어디론가 빨려 나간 것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가 눈동자를 굴려서 본 것은, 이미 반 토막이 난 자신의 거대한 몸통이었다.

“이건 대체…….”

“내가 말 했지. 일찍 끝내준다고.”

목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들려왔다. 현찬은 브리트라의 콧잔등을 밟고 서 있었다. 그런 그의 등 뒤로, 여러 실루엣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그들의 정체를 확인한 브리트라는 그제야 자신이 왜 이렇게 됐는지 깨닫고 말았다.

“하. 하하. 이거 미친놈이었군. 설마 저렇게나 많은 신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니.”

심지어 그 신들의 힘을 동시에 빌려온 상황이었다.

현찬은 검을 쥐고 그것을 브리트라의 미간을 향해 찔러 넣었다. 그 행동 자체만으로도 이미 그의 등을 밀어주는 여러 신이 있었다.

‘하! 이러니 내가 못 이기지.’

푹! 브리트라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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