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247화 악신 토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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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누군가가 나를 지켜본다고 생각은 했는데, 너였구나?”
“…….”
아지다하카는 자신을 앞에 두고도 잔뜩 여유를 부리는 현찬을 보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최대한 차분함을 유지하며 속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미 들킨 마당에 여기서 무언가를 더 숨길 수가 없었다.
‘어떡하지? 이대로 도망쳐야 하나? 아니면, 싸워야 하나?’
들킨 것이 너무 뼈아픈 실책이었다. 혹시 몰라서 마계에서 몰래 살펴봤을 때보다도 더 먼 거리에서 살폈음에도 현찬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의 감각이 마계에서 이계의 마왕들과 싸우던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심지어 바로 뒤를 잡히는 동안에,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어. 내 마안을 통해 멀리까지 내다보는 동안에 다른 부분이 취약해진다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어디 그뿐인가.
현찬이 여기까지 오는 데 그야말로 아주 짧은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십 킬로미터를 단 1분 안에 돌파하는 속도까지 겸비했으니 아지다하카가 여기서 더 도망쳐도 의미가 없었다.
‘도망치는 순간, 잡힌다.’
제삼자의 도움을 구할 수도 없었다. 악신회의 다른 신들은 이미 전국 곳곳에서 오버랭크 헌터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즉 이 상황에서 아지다하카는 모든 걸 자기 혼자서 감내해야 했다.
“후.”
아지다하카는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잡았다.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등을 돌릴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현찬은 아지다하카의 태도를 보며 눈을 빛냈다.
“도망갈 줄 알았는데 용감하네. 설마 직접 싸우려고 들 줄이야.”
“어차피 당신과 이렇게 마주한 이상, 제가 도망치려고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계의 마왕을 동시에 여럿이나 쓰러트린 강자. 심지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으니 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죠.”
“멀리서 깔짝거리면서 구경만 하던 녀석이, 나와 정면에서 맞붙겠다고?”
현찬의 도발에 아지다하카는 눈을 가늘게 뜨며 살기를 뿜어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는 뚜렷한 형체를 이루며 주변에 넘실거렸다. 그것은, 마치 수천 개의 날카로운 칼날이 허공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기고만장하지 마라, 인간.”
아지다하카는 평소에 사용하던 존댓말마저 벗어던진 채 현찬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내가 지금까지 싸움에 나서지 않은 것은 내가 모시는 주인님을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분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무의미한 싸움은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이상, 나를 억누르는 건 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악룡 아지다하카.
조로아스터교 최고의 악신 앙그라마이뉴가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가기 위해 창조한 괴룡.
천 가지의 암흑 마술을 사용할 줄 알며, 누구보다도 교활하여 섣불리 앞에 나서는 일 없이 뒤에서 세상을 혼란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내가 질 거로 생각한 건가. 그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확실히 패기는 넘쳐 보이네.”
현찬은 아지다하카가 뿜어내는 살기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어지간한 오버랭크 헌터라도 마주하기만 해도 숨을 쉬기 거북해질 정도로 농도가 짙은 압박감이었지만, 현찬에게는 그저 기분을 조금 찝찝하게 만드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현찬은 입가에 여유가 넘치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가볍게 대꾸했다.
“다만 네가 하나 크게 착각한 것이 있어.”
“뭐라?”
“첫째. 나는 딱히 오만한 게 아니야. 오만하다는 건 능력도 안 되는 녀석에게나 가져다 붙이는 말이니까. 나는 능력도 되니까 오만한 건 아니지.”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두 번째 손가락을 펼쳤다.
“그리고 두 번째. 나는 인간이 아니야.”
파아앗!
현찬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신력을 개방시켰다.
그것을 느낀 아지다하카가 눈을 부릅떴다.
“네, 네놈 설마……!”
현찬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직접 몸으로 느낀 아지다하카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기에 지금 마주 보고 있는 것이 현실로서 가장 와 닿았다.
“인간 주제에 영령이 되었단 말인가! 미쳤군!”
“고작 그런 거로 놀라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은데?”
현찬은 영령이 되었음에도 자기 힘만 믿고 까불 생각이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패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 그것이 현찬이 가장 바라는 이상적인 싸움이었다.
“아지다하카. 그 이름 많이 들었지. 다른 악신들과 다르게 매우 교활하고 머리를 잘 굴리는 데다가 마법도 엄청나게 많이 쓴다면서? 잘됐네. 안 그래도 나도 실험할 게 있었는데 상대가 이렇게 강하면 오히려 할 맛이 날 테니까.”
“…… 지금 나를 능멸하려는 것이냐?”
“딱히. 나는 진심으로 싸울 생각이야. 대충 내 힘이 뭔지는 알지? 인사해. 이쪽도, 나름 마법이라면 아주 조예가 깊은 신이니까.”
“닥쳐라!”
아지다하카는 더 듣기 싫다는 듯 자신의 기운을 폭발시켰다. 그는 마법에 조예가 깊은 악룡이다. 단순한 영창이나 수인을 맺을 필요도 없이, 강렬한 의지만으로 마법은 발동되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일격이 바닥에 거대한 고랑을 만들며 현찬을 향해 쇄도했다. 그것은 주변의 바위와 나무를 잘게 갈아버렸으며, 심지어 주변 지형마저 변하게 할 정도로 거대하고 강력했다.
“거 참. 속 좁기는.”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휘휘 저었다.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는 신력이 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그림이 아니라 룬 마법이었다.
현찬의 앞에 생성된 반투명한 막이 아지다하카의 일격을 막아냈다.
아지다하카가 날린 일격은 현찬의 방어에 막혀 좌우로 갈라지며 현찬의 뒤로 펼쳐진 숲을 강하게 때렸다. 쿠콰앙! 현찬의 뒤로 수백 제곱미터가 넘는 범위의 숲이 폭발하며 날아갔다.
공격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그것을 가볍게 막아낸 현찬의 방어마법도 수준급이었다.
아지다하카는 그것이 무슨 마법인지 알고 있었다.
마법에 관해 조예가 깊은 그이기에, 지금 현찬이 펼친 마법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룬 마법!’
북유럽 신역에서만 사용하는 룬 마법.
그것을 가장 잘 다루고, 가장 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은 오직 하나뿐.
“오딘!”
“눈치가 빨라서 좋네. 인사해. 이쪽은 북유럽의 주신 오딘이라고 해.”
그렇게 말하는 현찬의 등 뒤로 오딘의 형상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나 오딘은 이전에 현찬에게 보여준 모습과 사뭇 달랐다. 항상 근엄함을 잃지 않았던 그는 매우 초로의 노인처럼 보였다.
총명하던 눈동자는 빛을 잃어 힘이 없었고, 더 늙지 않아야 할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나 있었다. 그야말로 삶을 포기한 사형수의 그것과 같은 표정. 도저히 한 신화의 주신이라고 볼 수 없는 나약함이었다.
[정말 나도 감탄했다. 설마 거기서 오딘에게 계약서를 들이밀 줄 누가 알았겠어?]
마지막에 신역을 떠나기 전, 현찬은 오딘에게 한 가지 계약을 내걸었다.
자신의 말을 잘 듣는다면, 그에게 가해질 처벌의 일부 수위를 상당수 낮춰 줄 용의가 있다고 말이다.
오딘으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만약 이걸 거절한다면, 그가 과거에 로키에게 가했던 벌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벌을 받게 되었을 테니까.
심지어 그것을 가하는 대상이 로키와 토르라면 더더욱.
결국, 오딘과의 원만한 합의로 현찬은 오딘과 따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딘은 그것이, 새로운 노예계약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리라.
‘하긴. 세상에 어떤 인간이 신을 상대로 노예계약에 버금가는 불공정 계약서를 작성하겠어?’
그리고 그 인간이 바로 현찬이었다.
오딘의 표정이 나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는 현찬이 제시한 <계약>에 의해서 오딘 또한 벗어날 수 없기에, 그의 운명은 결국 현찬의 손아귀에 꽉 쥐어 잡혀 놓이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오딘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것이었다.
현찬에게 남은 것은, 오딘의 모든 힘을 자신의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
기왕 그와 계약을 맺었으니 아주 골수까지 빨아먹을 생각이었다.
오딘은 이미 자신의 의지를 모두 잃은 채 현찬에게 귀속되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힘과 권능은 여전히 막강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찬이 자기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룬 마법>이었다.
마법과 마력을 향한 갈망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오딘은 세상의 모든 다양한 마법들을 깨우친 현자였다. 마술사의 신이라고 불리었던 오딘은 누구보다도 욕망이 강했고, 그 덕분에 높은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현찬이 사용하고 있는 룬 마법이 그 욕망의 산물이었다.
“웃기지 마라!”
아지다하카는 분노를 터뜨리며 순식간에 수십 개의 마법을 영창했다.
하늘에 검은 메뚜기 떼가 일어났으며 땅이 부패하며 악취를 뿜어냈다. 나무들이 말라비틀어지며 날카로운 가지를 현찬에게 뻗었으며, 독 안개가 주변에 구름처럼 피어났다. 지면에 고인 피가 현찬의 발목을 집어삼켰고 하늘에서는 커다란 우박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펼쳐지는 저주와 마법의 향연!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질 정도로 다양한 마법과 저주가, 단 한 명을 향해 마구잡이로 몰아치고 있었다.
“우습군.”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테레이오스테]를 소환했다. 화려한 검은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더니 지팡이로 바뀌었다.
오딘이 사용했다는 마법의 지팡이 [간반테인].
거인 흘레바르드에게서 받은 이 지팡이야말로 오딘이 마술사의 신으로서 가장 활약하게 해준 신구 중 하나였다.
현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현찬의 머리 위로 황금빛 기운이 뭉치더니, 이내 한 노인 머리의 형상을 취했다.
[미미르의 머리].
수호 거인 미미르의 머리. 오딘이 마법을 이용해 그의 잘린 머리를 부활시켜, 온갖 지식을 얻어낼 때 사용한 오딘만의 물건이었다.
미미르의 머리가 입을 열더니 다양한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현찬의 주위로 순식간에 수십 겹의 방어마법들이 철옹성처럼 겹겹이 쌓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시간으로 계속 쌓이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마법이 뭔지 보여주지.”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한쪽 손에 자그마한 호리병 하나를 소환하여 쥐었다.
[시예의 봉밀주].
누구보다 현명한 크바시르라는 인간의 모든 지식이 융해된 술병이었다.
우둔한 인간조차 이것을 마시기만 해도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고갈된 마력을 순식간에 최대치로 채워주는 효과까지 있었다.
현찬은 봉밀주의 뚜껑을 뽑아 가볍게 한 모금 들이켰다. 목을 통해 넘어간 술은 순식간에 현찬의 온몸에 퍼졌다. 몸에서 마력과 활기가 폭발하는 화산처럼 흘러넘쳤고, 현찬은 그 거대하게 팽창한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찬의 입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영창을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현찬의 주위의 공간이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강렬한 마력의 힘이 주변 풍경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땅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대기가 떨려왔다. 그 광경을 직접 마주 보고 있는 아지다하카는 마음이 급해져서 온갖 마법을 영창하며 현찬을 몰아세웠다.
지금 현찬이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저것이 완성되기 전에 막아야 했다.
그러지 못한다면.
‘나는 죽는다!’
그 거친 생존본능이 아지다하카를 극한까지 몰아세웠다.
그러나 그가 펼치는 온갖 기이한 마법과 사법은 현찬에게 닿지 않았다. 현찬이 소환한 [미미르의 머리]가 계속해서 방어마법을 펼치며 아지다하카를 방해한 탓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현찬의 영창은 끝났다.
[간반테인]의 끝자락에는, 아주 극한까지 압축된 마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계까지 모인 마력은, 색이 아주 검어서 마치 소형 블랙홀을 보는 것 같았다.
“어디 이것도 막을 수 있으면 막아봐.”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아지다하카를 향해 검은 구체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