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246화 눈을 뜨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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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현창은 현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힘에 주춤거렸다. 설마 이 순간에 갑자기 돌아올 줄이야. 주현창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마음이 급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현찬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피부를 울렸다. 그가 얼마나 강해져서 돌아왔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전에도 이미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 격차는 이제 수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제 막 돌아와서 잠에서 깬 순간이 마지막 빈틈이다!’
주현창은 현찬에게 접근해, 자신의 힘을 모은 손으로 현찬을 찌르려고 했다.
‘윽!’
손을 찔러 넣으려던 주현창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식물로 이루어진 침대의 위에 누워있던 현찬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듯이 게슴츠레하게 뜬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마치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듯이.
까득! 그 시선에 주현창은 이를 악물고 손을 내지르려고 했다. 자신이 옳다는 걸, 현찬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 세계의 진짜 영웅은…… 바로 나야!’
그래야만, 여신님께서 그를 돌아봐 주실 테니까.
현찬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그를 위해서라도.
그것은 순전히, 사랑에 맹목적으로 눈이 멀어버린 인간의 욕망이라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주현창은 손을 내지르지 못했다.
‘어째서…….’
현찬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주현창은 엄청나게 밀려오는 자괴감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온몸이 운동을 끝마치고 난 뒤처럼 힘 빠진 기운이 가득했다. 조금 전까지 뜨겁게 타오르는 증오심은 순식간에 꺼졌고 의욕마저 모두 사라졌다.
주현창은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죽이고 싶었던 현찬이, 지금은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단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오히려 밀려드는 자신의 자괴감과 죄악감에, 스스로 한심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털썩. 주현창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그저 허망하게 현찬을 바라보았다. 현찬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10일 동안 가만히 누워있던 육체는 상당히 굳어있었지만, 몇 번 몸을 풀어주니 멀쩡하게 움직였다.
현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은 주현창을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주현창이 저러는 것도 이해는 갔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현찬은 그의 감정의 조각을 읽어냈으니까.
열등감과 시기심.
주현창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감정이었다.
그가 로키의 계약자가 된 것도, 어쩌면 이 감정에 가장 휩쓸리기 쉬워서 일지도 몰랐다.
[진실의 눈].
발드르의 힘을 각성한 현찬이, [헤르메스의 눈]의 힘에 발드르의 힘까지 더해져서 새롭게 각성한 기술이다. 현찬과 눈이 마주치는 상대는 자신의 내면의 추악함을 마주하게 되고, 그것에 집어 삼켜진다.
죄를 지은 인간이라면 대상을 막론하고 그것을 일깨우는 이 힘이야말로,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손쉽게 제압하는 <발드르>의 전매특허 기술이었다.
현찬은 주현창을 스쳐 지나가면서 그에게만 들리게끔 속삭였다.
“만약에, 네가 너의 내면과 마주하고도 내가 밉다면 그때는 다시 내게 덤벼도 상관없어.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한 번 부대끼면, 그때는 또 마음이 풀릴지도 모르지.”
현찬은 주현창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자신을 보며 울먹이는 황설영을 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치열한 전투를 입증하듯, 황설영의 옷 여기저기는 벌레가 먹어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상처도 나 있었다.
“가, 강현찬 헌터님…….”
“네. 저 왔어요.”
현찬은 씨익 웃으며 황설영에게 고생했다며 머리에 손을 얹어 주었다.
“제가 너무 늦었나요?”
“…….”
감정이 북받친 황설영은 고개를 저었다. 빨리 온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늦게 온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간절히 바란 순간에 왔으니 좋은 타이밍에 나타났다고 보면 되었다.
잠에서 깨어난 현찬은 1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마시지도 못했는데,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강현찬 헌터님?”
오히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떠나기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피부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정순하고 농밀한 기운. 그것은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는 빛의 힘이자, 용기를 북돋아 주는 용기의 응원이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재회의 기쁨은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겠네요. 주변이 너무 소란스럽거든요.”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공터를 둘러싼 채 기회를 엿보는 벌레떼를 바라보았다. 놈들은 지금도 계속 움직이며 주변 숲 일대를 집어삼켜 자신의 수를 빠르게 불리고 있었다.
감각에 걸리는 유기물을 전부 잡아먹고 그것을 통해 수를 늘리는 보라색 벌레떼. 단순히 수가 많은 게 다가 아니었다. 놈들은 두려움이나 공포가 거의 없었다.
‘다른 무언가에 의해서 통제받고 있나 본데.’
놀랍게도 이 보라색 벌레들은 처음에 도깨비불에 닿았을 때는 순식간에 타버려 잿더미만 남겼지만, 지금은 점점 도깨비불을 견디면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단순히 강해져서 버틴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동족이 죽으면, 그 정보를 공유하는군. 새롭게 태어나는 녀석들은 더 강한 저항력을 지닌 채 태어나는 거고. 아마 이 모든 것은 모체가 총괄하고 있는 거겠지.’
현찬의 눈은 이미 누군가 알려주지 않은 사실을 전부 읽어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멀리 설치된 게이트가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의 가까운 곳에서, 거대한 덩치를 바닥에 눕힌 채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괴물을 말이다.
저것이 바로 이 벌레떼의 모체였다.
마치 개미 떼를 연상시키는 벌레들의 모체는, 거대한 애벌레처럼 생겼다. 아주 작은 벌레들과 다르게 모체는 덤프트럭만 한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피부 바깥에는 구멍들이 무수히 많았고, 거기에서 실시간으로 계속 벌레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징그러운 광경이었지만, 현찬은 오히려 호기심이 들었다.
물론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았다. 녀석이 아무리 신기하다 할지라도 지금은 지구를 침략한 몬스터다. 가만히 놔두고 지켜볼 여유가 없었다.
“설영 씨. 많이 지치셨으니 쉬고 계세요.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
“…… 네.”
황설영은 현찬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자신도 함께 싸우겠다는 의지가 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현찬의 말을 듣는 순간, ‘아 괜찮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드는 것을.
그만큼 지금의 현찬은, 예전보다 확연히 달라졌다.
“여러분들도 모두 제 뒤로 오세요.”
도깨비들은 은인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들은 현찬의 뒤로 물러났고, 벌레들은 가장 선두에 선 현찬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수억, 수십억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부 한 개체에 의해서 통제되는 집단의 시선이었다.
“네 목표는 나잖아. 그렇지? 그러니 우리끼리 한번 시원하게 붙어 보자고.”
현찬의 도발을 알아먹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가장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이 나타났다는 거고, 벌레의 모체는 그런 현찬을 반드시 잡아먹겠다는 강렬한 식욕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보라색의 벌레들이 움직였다. 놈들은 집단이지만 마치 개인인 것처럼 거대한 파도를 이루었다. 보라색으로 이루어진 쓰나미가 현찬을 향해 밀려왔다. 나무고 바위고 거기에 부딪히는 순간 가루처럼 갈려 나갔다.
현찬은 그런 파도를 향해 맨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무기를 꺼낼 필요도, 방어구를 전개할 필요도 없었다.
그에게 이 상황을 타개하는 데는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쿠웅.
현찬이 발을 굴렀다. 가벼운 발짓이었지만 지면을 타고 퍼지는 강렬한 빛의 파동은, 순식간에 수십 킬로미터나 퍼져나갔다. 퍼버버벅! 빛의 파동에 닿은 벌레들은 바람이 가득한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수억 마리가 넘는 벌레 떼가 차례로 터져나가는 광경은 어떻게 보면 속이 뻥 뚫릴 정도로 명쾌했다. 벌레들이 뿌린 보라색 체액은 순식간에 기화되어 사라졌고, 조금 전까지 숲 전체를 집어삼키던 벌레떼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들이 남긴 것이라고는, 갉아먹어 황무지처럼 변해버린 숲의 정경뿐이었다.
“세상에.”
“믿을 수가 없군.”
도깨비들은 자신들이 죽을힘을 다해 막아내던 벌레들이, 고작 저렇게 가벼운 발길질 한 번에 사라지자 허망했다. <어스름달> 때부터 그가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규격 외일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면 어스름달 이 녀석, 내 동생 잘 지키고 있으려나.’
본래 현찬을 지켜야 할 어스름달은 지금 현찬의 양도로 인해 여동생인 현지에게 넘어가 있었다. 현지도 어스름달을 귀여워했기에 딱히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어스름달도 자신을 귀여워 해주는 현지를 잘 따랐다.
“뭐 그건 됐고. 이제 본체만 처리하면 되려나.”
모체는 자신의 자식들이 모두 죽자 당황하며 더 빨리 벌레들을 생성하고 있었다. 몸에 난 구멍을 통해서 체액이 흘러나오고, 그 틈새를 뚫고 벌들과 같은 날벌레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현찬에게 당한 정보를 기억하고, 그것을 토대로 즉석에서 더 강한 개체를 뽑아낸다.
만약에 어중간한 헌터들로 녀석을 상대하려고 했다면, 이 모체는 그야말로 <난제>에 버금가는 돌이킬 수 없는 괴물이 되었을 것이다.
녀석은 순전히 운이 없었을 뿐이다. 현찬과 마주한 순간,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니까.
모체의 주위로 순식간에 날벌레가 안개처럼 주변을 뿌옇게 가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가공할만한 생산 속도였다. 현찬은 아주 멀리 떨어진 공터에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필사적인 모습이 안타깝지만, 이쪽도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가볍게 발을 굴렀다. 툭. 현찬의 발바닥이 지면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번쩍!
그 순간 벌레들의 모체가 있는 곳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생성되었다. 그것이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아니면 땅에서 솟구쳤는지 아무도 몰랐다. 단지, 대낮인데도 주변을 어두워 보이게 만들 정도로 빛의 기둥은 눈부셨다.
빛의 기둥이 가진 막대한 열에너지는, 그대로 순식간에 벌레들과 모체를 태워버렸다.
원하는 대상만 핀포인트로 제거하는 엄청난 기술! 그 광경을 멀리서나마 지켜본 황설영은 눈을 크게 떴다.
‘역시, 더 강해지셨어.’
황설영은 현찬의 뒷모습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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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지다하카>는 혀를 차며 감았던 눈을 떴다. 약 30km 떨어진 곳에서 빛의 기둥을 확인한 그는, 지금 당장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회주님의 말씀대로, 강현찬이라는 인간이 돌아왔군요. 심지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함을 지닌 채로. 이대로라면, 계획이 어긋나고 말 겁니다.’
브리트라로부터 제어권을 양도받아 다루는 벌레떼가 현찬을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한때 <어스름달>이 있었던 곳인 만큼 벌레들을 풀어서 세력을 키우기 좋다고 생각했었고, 거기에 게이트를 생성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곳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현찬이 있었다.
한반도의 토종 생물인 도깨비가 죽을힘을 다해서 벌레들을 막았지만, 해일처럼 밀려드는 물량을 견뎌낼 수 없었다.
그렇게, 거의 다 잡아가는 순간 누워있던 현찬이 눈을 떴다.
그가 벌레들을 없애는 데 보여준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아지다하카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우선 물러나서, 회주님께 알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안녕?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시려고 드나?”
등 뒤에서 들려오는 현찬의 목소리에, 아지다하카는 본래 파충류로 구분되는 신임에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