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241화 부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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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드르가 부활했다!
그 소식은 영령 세계에 일파만파 퍼져나가며 모든 신의 귀에 들어갔다.
이미 신 대부분은 현찬의 행보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당연히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어지간한 신역에서 지금 이 소식을 모르는 신들은 없었다.
“발드르? 그 사라졌다는 빛의 신?”
“거대 영역 중 하나인 북유럽 신역에서 최고의 자리를 두고 다투었었다며?”
“그가 부활했다고? 정말로?”
처음에 신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발드르의 명성은 높았지만 정작 그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북유럽 신들조차 그의 행방을 몰랐고, 발드르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신들은 허탕만 쳐야 했다.
이 세계에, 빛의 신 발드르는 없다.
그러한 결론을 내리고 난 뒤 발드르를 향한 신들의 관심은 뚝 끊겼다.
그러나 발드르의 존재 자체가 잊힌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그의 이름은 계속해서 오르내렸고 신들의 기억 속에서도 발드르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의 기억은 작아졌을지언정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거의 사그라지던 잔불에 불길이 일었다.
발드르의 부활 소식에 긴가민가했던 신들은 북유럽의 신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정도의 빛의 기둥은 빛의 신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만들 수 없었다.
북유럽 신역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들이 머문다는 아스가르드.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기둥은 하늘과 섞이며 사방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신들은 그 광경을 보거나 혹은 그 기운을 느꼈다.
“발드르다! 정말로 발드르가 부활했어!”
“저 빛이라면, 빛의 신이 확실하겠지.”
“설마 정말로 실존했던 신이였단 말이야? 거짓말이 아니었어?”
“구경하러 가자!”
오랜 세월 동안 나태와 지루함에 가라앉은 신들에게 새로운 사건은 언제나 삶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윤활제였다. 특히나 새로운 신의 부활은 그야말로 역대급 사건이었고, 지루함에 어쩔 줄 모르는 신들이 눈을 뒤집을 만한 일이었다.
모든 신이 북유럽의 신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쯧. 그 인간. 결국에는 사고를 쳐버렸군. 나를 불렀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나. 설마 그 내면의 깊은 곳에 그만한 신이 있었을 줄이야.”
그리스 신역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올림포스>.
그곳의 옥좌에 앉은 제우스는 너도나도 구경하러 가는 신들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이어진 권태의 생활에서 신들은 언제나 자극적인 일들만을 찾았다.
그들이 가작 바라는 건 하계로 내려갈 수 있는 계약자를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 중에서 신들과 계약을 맺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들은 극히 소수였고 계약을 맺지 못한 신들은 오히려 감질나게 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불만을 점점 응축했다.
어쩌면 지금 신들이 열광하는 것도 지금까지 맺혔던 응어리가 터진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인간들이 그들을 신이라고 추앙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만능이지 않았다.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았으며 인간처럼 희로애락이 있었다.
제우스는 그런 신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포세이돈도 고개를 끄덕이며 제우스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그 말대로야. 어쩐지 나를 불렀을 때부터 뭔가 범상치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한 뒷배가 잠들어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보다 궁금하기는 하군. 만약에 정말로 그 빛의 신이 부활했다고 한다면, 강현찬이라는 인간의 자아는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과연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유지되는 것인가. 혹은, 둘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인격이 되는 건가.”
“흠. 형제의 말대로 확실히 흥미로운 의견이야. 뭐, 우리도 딱히 할 일이 없으니 구경이라도 하러 가 볼까?”
“가는 김에 하데스 녀석도 바람 좀 같이 쐬러 데리고 가자고.”
“삼 형제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겠군.”
제우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그래도 그 또한 오랜만의 외출에 조금 들뜬 상황이었다.
‘히히힝!’ 멀리서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페가수스 8마리가 이끄는 마차가 다가왔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마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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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장아기! 이야기 들었어? 녀석이 깨어났대!”
“네. 자청비. 저도 다 듣고 있었답니다.”
“가자! 우리도 가서 구경하자! 이미 소문 쫙 퍼져서 다른 애들도 가고 있어!”
“그렇게 보채시지 않아도 갈 생각이었답니다.”
이미 다른 신들도 서둘러서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마고마저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본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화신을 소환하여 움직이는 거지만,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가죠.”
“응!”
&
아스가르드 오딘의 궁전 앞에 자리 잡은 거대한 광장.
그곳에서 다양한 신역의 온갖 신들이 모여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 신들이 아스가르드에 방문했을 때에는 아스가르드의 아름다운 모습에 나지막이 감탄했었다. 멋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나 아스가르드에 초행인 신들이 많이 신나 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환경만 봐도 그들의 지루함이 아주 약간이지만 씻겨나간 탓이었다.
아스가르드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신들은 오딘의 궁전을 칭칭 감고 있는 요르문간드를 보며 감탄했다.
“오. 이 성에서는 커다란 뱀도 키우나 보네.”
“진짜 크다.”
“역시 북유럽이야!”
때마침 도착한 제우스는 신들의 반응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지하세계에 있다가 제우스와 포세이돈에게 강제로 끌려 나온 하데스는 툴툴거리며 생각 없이 즐거워하는 신들을 보며 불평을 내뱉었다.
“저 멍청한 놈들은 요르문간드도 모르나? 무슨 애완동물처럼 취급하고 있어?”
“모든 신이 다른 신역의 정보에 빠삭한 건 아니잖나. 오히려 알면 일대가 시끄러워지니 저렇게 긍정적인 것이 좋지. 자, 우리도 어서 좋은 자리 잡자고.”
“그보다 여기도 무슨 일이 터지기는 터졌나 보군. 아스의 신족들은 가만히 있는 것 같고, 심지어 요르문간드와 펜리르까지 있으니 말이야.”
포세이돈의 말에 제우스는 궁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늙은 능구렁이가 제대로 무슨 일을 저지른 게 틀림없겠지.”
이웃 신역인 북유럽의 이야기에 관해서 아는 게 많은 제우스로서는, 지금 상황이 확실히 범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다양한 신들이 비프로스트를 통해서 아스가르드로 넘어오고 있었다.
개중에서는 어지간한 신들이라면 이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녀석들도 있었다.
“저기 봐. 칠대 천사가 한자리에 모여 있어.”
“빛의 신이 등장했으니, 비슷한 성향의 녀석들이라 구경하러 온 건가?”
“저거 마르두크 아니야? 설마 저 녀석까지 오다니.”
“그리스 쪽은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저길 봐. 옥황상제야.”
“저쪽에는 스사노오와 츠쿠요미까지 있어.”
“쟁쟁한 신들은 다 모였군.”
신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그야말로 상황은 난장판이었다. 그나마 서로 얌전히 발드르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어서 망정이었다. 간혹 사이가 나쁜 신들끼리 마주쳐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일도 있었지만, 어지간한 고위급 신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난동을 피울 정도로 정신이 나간 신은 없어서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온다!”
멀리서부터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모든 신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광장에 나 있는 포장되지 않은 길. 침엽수림이 빽빽하게 자라난 숲에서부터 두 명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
“응? 뭐야. 뭐가 이렇게 많아?”
현찬은 광장을 가득 메운 신들의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발드르가 부활했다는 걸 알았으니 어지간한 신족들이 다 나타날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보니 그 생각보다 훨씬 더 엄청났다.
“흠? 현찬아. 보니까 온갖 신역에서 신들이 다 몰려온 것 같은데?”
“어. 정말이네.”
눈에 힘을 주고 보니 광장에는 온갖 신들이 다 있었다. 그중에는 현찬과 계약을 한 번이라도 맺어본 적이 있는 신들도 보이고는 했다.
현찬이 신들의 모습을 보며 광장으로 다가가자 신들 쪽에서도 현찬을 발견하고는 뭐라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이거 뭔가 부담스러운데.”
“다들 할 일이 없으니까 이런 일에 열광하는 거야. 손이라도 흔들어주지그래?”
“됐어. 어차피 그걸 바라지도 않고.”
현찬이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순식간에 좌중이 고요에 휩싸였다. 신들은 입을 꾹 다문 채 현찬이 무슨 행동을 할지 예의주시했다.
‘저게 빛의 신 발드르?’
‘상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데.’
‘옆에 헤르메스가 있는 거 보면 몰래 들어왔다는 침입자 아닌가? 그 신들과 계약할 수 있다는…….’
현찬의 모습은 신들의 관점에서는 평범하게 비쳤다.
발드르라고 한다면 누구보다도 멋지고 아름다우며, 은은하게 빛을 내뿜는다고 들었다.
모든 신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생명체가 그에게 경의를 표했으며, 그의 죽음에 전 세계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만한 업적을 지닌 신이라면 분명히 같은 신들이 보아도 황홀할 정도로 매력적일 거다.’라는 게 신 대부분이 가진 생각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현찬은 그런 신들의 기대와 실망이 서린 눈빛을 무시하며 광장의 중심으로 향했다.
길을 가로막던 신들은 자기도 모르게 좌우로 갈라지며 현찬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그중에는 현찬이 모르는 신들도 있었고, 현찬과 일면식이 있는 신들도 있었다.
현찬은 길을 비켜준 신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계속 걸었다.
광장의 중심에는 오딘이 묶여 있었다.
근엄한 모습과 화려한 갑옷은 온데간데없었고 보이는 거라고는 그저 힘없이 늙고 지친 노인일 뿐.
그러나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꼴이 말이 아니시군요. 아버지.”
“발드르…….”
오딘은 침통한 표정으로 현찬을 바라보았다. 그의 한쪽 눈에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참 안쓰러운 모습이었지만 현찬은 그 겉모습에 속지 않았다.
“그런 연기는 집어치우세요. 가식적인 모습에 속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많이 영악해졌구나.”
“지금까지 겪은 적이 없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이죠.”
“발드르!”
멀리서부터 한 여성의 고음과 함께 누군가가 신들을 헤치며 현찬에게 달려왔다. 같은 신들이 봐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다웠으며 그녀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따스한 봄의 꽃향기가 아련하게 남아 허공에 맴돌았다.
그녀가 바로 발드르의 아내이자 바니르 신족 중 하나인 <난나>였다.
그녀는 현찬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껴안으려고 했지만 그런 난나를 막아서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헤르메스였다.
“어허. 현찬이한테 함부로 다가가면 안 되지.”
“다, 당신은 헤르메스? 그보다 왜 저를 막는 건가요? 발드르! 저예요! 당신의 아내!”
현찬은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난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래간만이야. 난나.”
“발드르!”
난나는 사별한 남편을 더는 못 만날 줄 알았다. 북유럽 신역에 빛은 거의 다 사라졌고, 지금 비추는 빛은 결국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빛뿐이었다. 그녀가 바라던 진실 된 빛은 없었고 그것이 난나를 언제나 괴롭게 했다.
그녀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도록 한 존재는 언제나 발드르였다.
슬픔으로 오랜 세월을 지새운 그녀에게 드디어 남편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장님이 눈을 뜨게 된 것과 맞먹는 기쁨이었다.
“발드…… 르?”
그러나 난나는 현찬을 보고 어딘가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현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분명히 발드르의 것이었다. 그녀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현찬은 발드르와 크게 다르다는 걸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워워. 내 계약자를 너무 방해하지 말라고. 지금은, 사별한 부부간의 감동적인 재회 시간이 아니니까.”
헤르메스는 그런 난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그게 대체 무슨…….”
난나는 아직도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자! 여러분. 이 자리에 꽤 많은 신이 모이셨군요.”
현찬이 목청을 높여 말을 꺼내자 고요했던 신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며 현찬은 자신이 할 말을 이었다.
“이렇게나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주시다니 조금 감동적이기는 한데, 애석하게도 이 자리는 그렇게 썩 기쁜 자리는 아닐 겁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곳에 묶인 초라한 노인, 오딘 때문이죠.”
애초에 현찬이 이곳에 온 이유도 발드르의 탄생을 축하해주는 신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저는 그의 죄를 이 자리에서 묻고자 합니다.”
이곳은,
신들이 모인 이 광장은,
바로 오딘의 처형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