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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240화 (240/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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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화 부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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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입니다.”

헤임달의 안내를 받은 로키, 아니 로키의 모습으로 변장한 현찬은 그제야 마법을 해제하며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아스가르드는 넓었고 오딘의 궁전 말고도 그와 비슷한 장소는 상당히 많았다. 헤임달이 안내해준 이곳은 아스가르드에서도 상당히 외진 숲이었다.

북유럽 침엽수림이 가득한 아름다운 숲. 그곳의 중심에는 눈 부신 빛의 궁전이 우뚝 서 있었다. 헤임달의 안내를 받은 현찬과 헤르메스는 멀리서부터 보이는 빛의 신전을 보며 시선을 고정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 오래 머물수록 의심만 깊어지니까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네요.”

“발드르에게는…… 저도 많은 빚을 졌었죠. 당신이 완전한 발드르는 아니지만,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상 저는 도와줄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럼 이만.”

헤임달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고지식한 그라면 다시 아스가르드의 입구를 지키러 갔으리라. 헤르메스는 사라진 헤임달의 자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설마 헤임달에게서 도움을 받을 줄이야. 고지식하고 고집이 센 거로만 따지면 어지간한 신역의 신들조차 명함을 못 내밀 정도라고 들었는데.”

“정말?”

“정말이야. 헤임달은 너무나도 완고해서 주신인 오딘조차도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고 알려졌어. 그렇기에 남들을 잘 속이며 꼼수를 부리는 로키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거지. 일 년 내내 쉬지도 않고 세계를 감시하는 일을 자청해서 하는 녀석인데, 당연하지 않겠어?”

그래서 헤임달이 처음에 로키의 속임수를 눈감아 줬을 때 헤르메스는 속으로 상당히 경탄했었다. 헤임달의 성격상 로키와 마주하면 어떻게든 그녀를 방해할 거로 생각했다. 애초에 둘이 사이가 나쁜 것도 있었지만, 지금 로키가 하는 행동은 이 세계에 반기를 드는 행위에 가까웠으니까.

현찬은 어쩔 수 없는 침입자였고. 세계의 <수호자>들은 현찬을 노리고 있었다.

헤임달은 자리를 지키고 서는 문지기 역할 때문에 <수호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항상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거론되는 신이었다.

수호자들보다 더한 독종. 그것이 바로 헤임달이었다.

그런 헤임달이 현찬의 존재를 눈감아주고 오딘을 향한 로키의 기만을 못 본 척한 것이다.

오히려 현찬을 빛의 신전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기까지 했다.

오는 길에 헤르메스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헤임달에게 물었다.

‘대체 왜 우리를 도와주는 거야? 듣기로는 무척 고집이 세다고 들었는데. 우리를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흠. 고집이 세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군요. 다른 신들도 저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합니다. 융통성을 지니라고.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요.’

‘그러면 대체 왜?’

‘글쎄요.’

헤임달은 그렇게 말하며 조금 먼 과거를 회상하는지 울창한 숲 너머를 바라보았다. 무뚝뚝한 그의 입가에는 미약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단지, 옛 추억이 떠올라서 그랬습니다. 무엇보다 주신이 옳지 않은 짓을 하는 걸 알았는데 그것을 가만히 놔두고 보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아서요. 말 그대로 제 신념에 어긋났기 때문에 움직인 겁니다.’

헤임달은 발드르와 친하게 지냈다. 무뚝뚝하고 고지식하며 비프로스트를 지키는 그에게 유일하게 친절하게 다가와 준 존재가 바로 발드르였다. 헤임달로서도 발드르는 반가운 친구였고, 그를 지켜주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하기도 했다.

그때는 도와주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무엇보다 주신 오딘의 추악한 내면을 파악한 그로서는 한 번 정도는 그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저쪽은 로키가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괜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거야. 애초에, 로키가 무슨 신인지 잊었어? 이곳 북유럽 신역에서는 아직도 로키라고 하면 기겁하는 신들인 넘칠 정도야. 그런 녀석이 자기 홈그라운드에서 당할 리가 없지.”

헤르메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멀리서부터 거대한 번개가 휘몰아치고,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명히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데도 그 힘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다.

“아무래도 토르까지 나타난 모양이네.”

“오딘의 속마음을 미리 파악해둬서 다행이지.”

오딘은 예전부터 발드르를 죽이고 싶어 했다. 발드르는 너무나도 완벽해서 오딘으로서는 그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그를 칠 명분도 없었고 발드르는 빈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 오딘에게 발드르가 죽는다는 미래는 너무나도 반가운 것이었다.

그리고 발드르 또한 자신의 미래를 읽어냈다.

스스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버지가 그 죽음을 바란다는 것을.

너무나도 선량했던 발드르는 거부하지 않고 그 죽음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바라는 것을 이루었다.

하지만 현찬은 달랐다. 그는 발드르의 환생이지만 완전한 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현찬은 오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 줄 의향이 전혀 없었다.

둘은 어느덧 빛의 신전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신들의 흔적조차 끊긴 금지된 땅. 빛의 신전은 오랫동안 주인을 잃은 채 버려졌음에도 아직도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은 꿈에서 봤던 모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헤르메스도 오랜만에 보는 빛의 신전의 모습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결국, 예전에 했던 말대로 됐네. 언젠가, 함께 가자고 했는데 말이야.”

“그러게. 어쩌다 보니 이러게 이뤄졌구나.”

현찬과 헤르메스는 어깨를 맞대고 무지개의 다리를 건넜다. 오랫동안 사라졌던 주인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져서일까, 빛의 신전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빛이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현찬은 홀린 듯이 그 빛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무지개의 다리를 건너고, 찬란한 빛으로 이루어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주변에서 팡파르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함성이 들려왔다.

신전 자체가 다시 돌아온 주인을 격하게 환영하고 있었다.

오색의 찬란한 빛은 현찬과 헤르메스의 주위를 맴돌았으며,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선사하기라도 하듯이 자신을 뽐냈다.

현찬과 헤르메스는 그 빛의 축복을 받으며 신전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현찬은 신전의 안쪽을 걸으면 걸을수록 자신의 안쪽에서 강렬한 힘에 점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도 불안정해서 언제 터질 줄 몰랐던 힘은, 점차 고요해지고 차분해져 현찬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신전의 가장 깊은 곳, 신전의 끝.

원래 주인이 있어야 할 방에 도달했다.

현찬이 꿈속에서 발드르와 대화를 나누었던 그 방.

거대한 신전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방.

“드디어 돌아왔어.”

현찬은 방문을 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신전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 그야말로 거대한 광휘가 되었고 주변의 모든 것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그러나 전혀 눈부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하게, 몸을 감싸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현찬은 그 온기를 만끽하며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브레이다블릭>.”

주인을 잃고, 이름이 사라져 빛의 신전이라 불려온 이곳.

발드르가 거주하는 궁전의 진짜 이름.

<브레이다블릭>.

그 이름을 거론하는 순간, 빛의 신전은 하늘을 향해 거대한 빛의 기둥을 쏘아냈다.

마치 새로운 신의 탄생을 알리는 것처럼 말이다.

&

콰아아!

멀리서 뿜어 나오는 빛의 기둥은 아스가르드 전역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아스가르드뿐만이 아니었다. 무스펠헤임, 니플하임, 발할라, 알브헤임, 스바르트알파헤임, 니다벨리르 등등.

북유럽 신역의 모든 지역에서 그 빛의 기둥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북유럽 신역과 맞닿은 다른 신역에서도 그 기둥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모든 신역의 신들은 빛의 기둥을 느꼈다. 당연히 수세에 몰린 오딘 또한 그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설마…… 발드르가 부활 한 건가!”

“흠. 현찬이 아무래도 무사히 도착한 것 같네.”

로키도 잠시 빛의 기둥을 흘겨보다가 다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오딘을 바라보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조금 여유를 갖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탄생을 축하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저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으니까.

크르르! 거대한 검은 털의 늑대 펜리르가 이를 드러내며 오딘을 노려보았다. 오딘의 궁전 주위를 둘러싼 요르문간드 또한 오딘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딘은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려는 순간, 신화의 괴물들이 움직일 것이다.

“영감. 이제 포기해. 댁의 계략은 모두 완파되었어.”

“로키……!”

오딘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로키를 노려보았지만, 그가 딱히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없었다. 이미 그는 실패했으며 그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토르는 그런 오딘에게 접근해서 <글레이프니르>를 이용해 그의 몸을 구속했다.

늑대 펜리르를 구속하는 데 쓰였던 신구 <글레이프니르>가 몸을 속박하자 오딘이 침음성을 흘렸다. 설마 그가 사용했던 물건에 그가 묶일 줄이야. 오딘은 고개를 푹 숙였다.

토르는 그런 오딘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네놈의 악행은 널리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 죄는 모든 신이 보는 앞에서 받을 테지.”

“아 토르. 그 집행은 내게 부탁해.”

“…….”

토르는 잠시 찌릿하고 로키를 노려보았지만, 거부의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을 속인 로키의 행동은 미웠지만, 그래도 전부 발드르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용서해주기로 한 것이다. 로키는 그런 토르의 속마음을 읽어냈다. 워낙 단순한 토르라서 모든 행동이 전부 읽혔다.

“어쨌든, 이제 끝인가.”

토르는 빛의 기둥을 보며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신역이 크게 울렸다. 사라졌던 빛의 신이 부활하자 세계가 노래를 불렀다. 그 찬가 속에서 다른 신역의 신들 또한 관심을 두고 북유럽 신역에 모든 관심을 집중했다.

한국의 신역에서 방해꾼들을 막아낸 <감은장아기>도,

지옥의 나룻배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바리데기>와 <강림도령>도,

자신의 신역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던 <아테나>와 <자청비>도.

모두 빛의 기둥을 보며 웃었다.

“하하하! 경탄하라! 빛의 신의 부활을! 북유럽 최강 신의 탄생을! 모두 축배를 들어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로키는 양팔을 크게 벌리며 소리 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스가르드 전역에 울려 퍼졌다. 아스가르드의 신족 중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는 없었다. 아스가르드 입구, 비프로스트를 지키는 헤임달조차도 말이다.

“쯧. 신났군.”

헤임달은 로키의 외침에 혀를 차며 눈앞을 주시했다. 무지개의 다리를 통해서, 외부의 손님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딱히 막을 필요가 없었기에 헤임달은 새로 찾아온 손님들을 정중히 환영했다.

현찬은 감았던 눈을 떴다.

자신의 몸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힘이 넘쳤다.

주신 급 신인 <마르두크>나 <제우스>와 계약을 맺었을 때도 이 정도의 힘을 느끼지는 않았었다.

어쩌면 상성 측면에서 가장 현찬과 알맞은 힘이기에, 가장 최고의 효율을 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현찬아?”

“응. 왜 불러?”

현찬의 대답에 헤르메스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현찬이 힘을 각성하는 순간, 현찬의 자아가 사라지고 발드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다행히 그런 우려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걱정 많이 했지? 이제 충분해.”

현찬의 두 눈동자가 찬란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이야.”

지금이라면,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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