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239화 부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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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와 오딘의 충돌은 격렬했다.
두 신의 기운이 서로 부딪치기만 해도 넓은 궁전의 홀은 파괴되고 무너져 내렸다. 그 잔해의 틈새 사이를 뚫고 붉은 창이 궤적을 남기며 토르의 심장을 노렸다.
“어딜!”
꽈르릉! 토르의 몸에서 재차 번개가 몰아쳤다. 그것은 순식간에 폭풍이 되어 그대로 주변 일대를 다 휩쓸어버렸다. 무너져 내리는 궁전의 잔해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오딘이 날린 궁니르마저도 폭풍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표로 한 대상을 꿰뚫는 창이 처음으로 벽에 막힌 것이었다.
오딘은 궁니르를 회수하며 머리에 쓰고 있던 챙이 넓은 모자를 벗었다.
촤아악!
오딘의 몸을 덮고 있는 허름한 옷이 찢겨 나가며 그 안에 숨겨진 황금갑옷이 드러났다. 오딘은 자신의 기운을 모아 투구를 형성하여 머리에 뒤집어썼다. 어느 순간부터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오딘의 좌우로 두 마리의 늑대가 으르렁거리며 토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 제대로 싸운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나.”
“그래 봤자 댁은 나한테 뚝배기 깨질 일만 남았어.”
“흘흘. 그래. 그렇겠지. 아무리 내가 주신이라 할지라도, 토르 네놈에게는 근접전에서 이길 수 없을 테니까.”
사실상 필살기에 가까운 궁니르의 투척마저도 먹히지 않았다.
오딘이 유일하게 가장 건드리기 껄끄러워하는 존재가 바로 토르였다. 그를 한 번에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제압이 실패하여 토르가 날뛰었을 때 그를 막을 신은 이 북유럽 신역에 남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과연 내가 너를 노리고 있었겠느냐?”
“뭐?”
토르가 의아해하는 순간, 오딘은 다시 궁니르를 투척했다. 아주 간단하게 손목의 힘만으로 던진 창은, 자아를 지니고서 스스로 움직임을 꾀했다.
빛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다니는 궁니르는, 무너져 내리는 홀 주위를 거미줄 같은 흔적으로 가득 채웠다.
토르의 눈동자는 궁니르의 움직임을 읽어냈다.
그리고 궁니르가 수직으로 꺾여 현찬에게 떨어지는 순간, 이미 대기하고 있던 토르의 묠니르가 궁니르를 후려쳤다.
콰앙!
거대한 충격파가 터지며 오딘의 턱수염과 머리카락이 흔들거렸다. 토르는 엉망진창이 된 앞머리를 거칠게 위로 넘기며 이를 갈았다.
“오딘 이 비겁한 자식! 부상자를 노리다니!”
“애초에 내 목적은 네가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발드르의 죽음이지.”
오딘은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두려워하는 존재들은 모두 오딘의 계략과 책략에 휩쓸려 죽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딘은 펜리르에 의해 사망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오딘이 스스로 운명을 받아들였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라그나뢰크가 끝난 세계의 너머.
오딘의 눈은 이미 영령의 세계에 가서 자신이 지배하는 순간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절대자여야 했고.
그 누구도 그의 자리를 넘봐서는 안 됐다.
“그래. 내 자리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다. 그것이 설사 내 아들이라 할지라도 말이지.”
“미친놈! 너는 권력에 미친 놈이야!”
“그래! 그 말이 맞는다. 나는 권력에 미쳤지. 그러지 않고서야 내가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겠느냐?”
오딘은 오히려 뻔뻔하게 대답하여 웃음을 터뜨렸다.
광기마저 섞인 그의 웃음에 토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딘이 원래부터 이상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가 보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도를 지나쳤다.
그만큼 오딘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겨왔다.
그는 절대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남들이 알지 못하게 온갖 더러운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질러왔다.
그 행동의 열매가 맺어지는 곳이 바로 이 세계였다.
다른 신역의 주신들이 있었지만, 이곳 북유럽 신역에서만큼은 오딘은 절대자였다.
누구도 그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으며, 모두가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그런 오딘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었으니.
그의 자리를 위협할 유일한 존재였다.
그 존재는 바로 빛의 신 <발드르>였다.
토르는 오딘의 자리를 위협하지 못한다. 그의 힘은 강하지만, 결국 단순한 토르는 오딘의 뜻대로 움직이는 물건이 될 테니까.
로키는 위험 분자이지만, 이미 그녀가 저지른 죄는 너무나도 커서 그 어떤 신도 로키를 믿고 따르지 않는다. 절대자의 자리에는 절대로 어울리지도 않으며 로키도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단 하나.
발드르만큼은 달랐다.
‘놈은 위험하다.’
너무나도 뛰어난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모두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신.
너무나도 뛰어난 재능과 힘을 타고 났기 때문에, 반드시 아비인 자신을 넘어서서 절대자의 자리에 올라설 신.
오딘의 눈은 전부 보았다.
그의 아들 발드르가 결국에는 자신보다 위대한 존재가 돼 버리는 모습을.
한때 북유럽 신화의 최고 주신이었던 오딘은 결국은 절대자의 자리에서 밀려나 세계의 그림자로 사라지는 모습을.
‘절대 그렇게 되게 둘 수는 없다.’
지나친 지식은 오히려 알고 싶지 않은 사실마저 보여주었다.
그것은 어쩌면 저주에 가까운 것.
그렇기에 오딘은 이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결실이, 지금 바로 눈앞에 있었다.
“비켜라, 토르. 네놈에게 할애할 시간은 없다.”
“자식마저 죽이려는 늙고 노망이 난 노인의 말을, 내가 들을 것 같아?”
토르는 오히려 덤벼보라며 묠니르를 까닥였다. 그런 도발에 오딘은 코웃음으로 응대했다.
“멍청한 놈. 네놈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 이미 부상을 입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인간을 지키며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것도 바로 내 앞에서?”
오딘의 눈에는 전부 보였다.
토르는 몸을 날리면서 필사적으로 현찬을 지키려 할 것이다. 궁니르를 튕겨내고 늑대들을 물리며 어떻게든 오딘의 공격을 막아낸다. 그것은 정해진 미래였다.
하지만 결국 토르는 점점 시간이 지나며 힘이 빠지게 된다.
그의 몸에 허점이 생기고 현찬을 지키기 위한 완고한 방패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창날은 그 빈틈을 가볍게 헤집을 것이다.
토르도 본능적으로 그 미래를 알기 때문에,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녀석을 발드르의 궁전으로 데려가지만 않으면 시간만 끌어도 나의 승리다. 하계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고, 육신을 잃은 그는 결국 갈 곳을 잃어 이곳에 존속되겠지. 그 순간 나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내려줄 것이다.”
“누가 그렇게 둘 것 같아?!”
“그렇게 두게 될 거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겠다고 선언했으니까.”
오딘의 말은 오만했지만, 그것은 전부 사실에 입각한 말이었다.
오딘에게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충분히 있었다.
“이 자리는 그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다. 그러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달게 죽어라.”
오딘은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누워있는 현찬을 향해 손을 뻗었다. 궁니르의 붉은 창날이 귀기를 토해내며 바르르 떨렸다. 주인의 명령을 받은 사냥개는 먹잇감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이를 세웠다.
바닥에 누워있는 현찬은 그런 오딘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달게 죽는다’라…… 좋은 말이에요.”
“음?”
오딘은 현찬의 미소를 보고 등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뭔가 이상하다. 지금 현찬이 보이는 태도는 도저히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계략이 성공한 ‘트릭스터’의 미소였다.
“……!!”
오딘은 주저 없이 뒤로 몸을 날렸다.
그 직후, 오딘이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 지면을 뚫고 거대한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깨갱! 오딘의 곁을 지키고 있던 두 마리의 늑대는 채 반응하지 못한 채 거대한 그림자에 먹히고 말았다.
오딘은 그 그림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저것은 그림자 따위가 아니었다.
지면에서 튀어나와, 모든 것을 전부 갈아버리고 부숴버리는 그것은 짐승의 입이었다.
“펜리르! 설마……!”
오딘은 발작적으로 외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 순간 하늘을 가르며 8개의 다리가 달린 말이 오딘을 향해 뛰어왔다.
북유럽 신화의 그 무엇보다 빨라서 명계마저 날아다닐 수 있는 오딘의 애마 <슬레이프니르>.
오딘은 그 애마의 안장에 빠르게 올라탔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오딘은 운명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이 자리에 그대로 머문다면 위험해지는 쪽은 오히려 그였다.
오딘은 일단 이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가자!”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명령이라면 불길에 뛰어들라는 말조차도 알아듣던 슬레이프니르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딘이 몇 번이고 보챘지만, 슬레이프니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바닥에 누워있는 현찬을 바라보았다.
“왜, 왜 움직이지 않는 거야!”
“아무리 주인으로 인정했다 하더라도, 말에게는 주인보다 자신의 진짜 혈육의 부탁이 더 중요하거든요.”
“그게 대체…… 네놈.”
오딘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미 들킨 마당에 더 속일 필요는 없으리라.
바닥에 누워있던 현찬은 조금 전까지 다 죽어가는 모습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토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현찬을 바라보았다.
“바, 발드르? 뭐, 뭐야? 다 죽어가던 거 아니었어?”
“정말이지. 이 바보 오빠는 대체 몇 번이나 내게 속아야 성이 차는 걸까.”
“응?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즉, 전부 다 거짓말이라는 소리야.”
현찬, 아니 현찬으로 변장한 <로키>는 현찬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경을 보고 토르는 입을 쩍 벌렸다. 오딘도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애마에서 내려섰다.
슬레이프니르가 오딘의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이 말은 로키가 낳은 자식이니까.
콰드득! 지면을 뚫고 입을 내밀었던 펜리르는 바닥을 부수며 모습을 드러냈다. 신화 속에서 언급될 정도로의 거대함은 없었지만, 어지간한 덤프트럭 몇 대를 합친 것보다 거대한 덩치와 검은 털은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들었다.
“언제부터였냐?”
“처음부터. 그보다 너무 오래 살아서 노망이라도 든 거 아니야? 설마 내 속임수마저 꿰뚫어 보지 못하다니. 지식을 대가로 바친 그 눈이 알려주지 않았나 봐?”
“대체 어떻게…… 아니. 그렇군.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은 건가.”
“정답!”
로키는 발랄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오딘의 눈은 너무나도 사기라서 로키가 아무리 용을 써도 더 그의 눈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로키와 동급의 존재가, 심지어 비슷한 힘을 다루는 신이 도와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가 바로 이거였다.
천하의 오딘조차도, 결국에는 로키의 속임수에 놀아 난 것이었다.
토르도 겨우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당황하며 물었다.
“잠깐만! 그렇다는 건 진짜 발드르는……!”
“이미 떠났지. 헤르메스와 함께.”
쿠르르릉!
하늘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치 번개라도 치는 것처럼 대기가 울렸고 그 울음은 점점 더 거대해졌다. 토르는 고개를 들어 무너져서 뻥 뚫린 홀의 천장을 보고 안색을 구겼다.
무너져 내린 거대한 틈새, 틈새라기엔 민망할 정도로 거대한 구멍에서 두 개의 거대한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서 와! 요르!”
로키의 자식 중 하나인 괴물 뱀 <요르문간드>.
너무나도 거대하여 미드가르드마저 한 번에 휘감을 수 있는 거대한 뱀이, 오딘의 궁전을 둘러싼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토르로서는 그와 악연이 깊은 저 뱀을 보며 전혀 웃음이 나올 수가 없었다.
라그나뢰크에서 서로 죽고 죽였던 관계인데 여기서 만난다고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저 요르문간드가 도우러 왔다는 사실이 이렇게도 든든할 수가 없었다.
“항복해. 영감.”
로키는 오딘을 향해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처음부터 함정에 빠진 쪽은 현찬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로키의 농간.
정말로 함정에 빠진 것은 오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