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
230화 지원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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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신들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냐!”
토르는 분노 어린 호통을 터뜨리며 번개를 뿜었지만, 모든 번개는 자청비가 일으킨 꽃잎 형태의 신력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토르의 힘은 강했지만 자청비의 힘은 그것을 막아내는 데 충분했다.
통하지 않는 공격에 토르는 분노를 표했다.
“네년!”
“지금 누구보고 년이라고 하는 거야? 저도 생긴 것은 계집애처럼 생겨서는, 하는 행동이나 입이 험하구나.”
“닥쳐라! 그보다 어서 비켜! 나는 수호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보통 신들은 수호자라는 직위를 들먹이면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물러난다.
이 신계에서 수호자라는 이름은 그만한 힘과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오직 최상위의 신들에게만 내려지는 직위. 이 영령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외부의 침입자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 존재들에게만 가능한 이름이었다.
자청비는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흥! 수호자라! 그래. 네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 토르라고 했던가? 북유럽 신화 최강의 전사. 나도 궁금하던 차였다. 과연, 최강의 전사라 불리던 신이 얼마나 강한지.”
투기가 가득한 자청비의 말에 토르는 이를 악물었다. 딱 봐도 자청비는 그의 요구대로 비켜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답은 단 하나였다.
그녀와 싸우는 것뿐.
‘자청비…….’
토르도 그녀에 관해서 알고 있다. 여신 중에서 그야말로 최강의 자리를 논하는 자리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여신이다. 여신이면서도 성격이 괄괄하고 제멋대로에, 어지간한 남신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털털하다.
하지만 그녀가 지닌 힘은 진짜다. 모든 신계에서 주의 깊게 살피는 <서천 꽃밭>의 일부의 소유권을 쥐고 있으며 그곳에서 자라는 꽃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그녀의 능력이었다.
토르는 절대 상대를 우습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진심으로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자청비와 함께 온 다른 여신이리라.
‘감은장아기. 들어는 봤지. 운명의 여신이라고 했던가.’
모든 신화에는 운명이 작용한다. 운명은 강력한 힘이고 절대로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관장하는 신들 또한 운명을 완벽하게 다루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운명을 관장하는 신들은 언제나 대접을 받았고 다른 신들에게 두려움을 받기도 했다.
운명이라는 건, 신들조차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북유럽 신화의 노른.
그리스 신화의 모이라이.
그리고 한국 신화의 감은장아기.
그녀까지 가세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제길! 도대체 저 침입자의 정체가 뭐기에 다른 신들이 그를 도와주는 건데!’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 자청비와 감은장아기까지 나타났다.
심지어 얄미운 헤르메스와 로키까지 그를 돕고 있었다.
분명히 가진 기운을 보면 인간인 것이 틀림없는데, 토르는 그런 현찬이 너무 신경 쓰여서 미칠 지경이었다.
‘대체 어떻게 발드르에 관한 일을, 그는 알고 있는 거지?’
한 가지 확실한 건, 현찬은 어떤 방향으로든 발드르와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토르로서는 현찬을 반드시 붙잡아야 했다. 그를 생포해서 그에게 알고 있는 사실을 캐묻고 싶은 마음이 산더미 같았다.
물론 그것도 지금 자신을 가로막는 방해꾼을 치운 뒤에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방해하지 마라!”
“헷. 미안해서 어쩌나. 나는 반드시 방해해야 하는걸?”
“으아아아!”
토르는 자청비의 단순한 도발에도 쉽게 넘어갔다. 원체 성격이 급한 그가, 상황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니 제대로 열이 오른 것이었다. 토르의 분노는 곧 번개가 되었고, 고슴도치처럼 사방으로 길게 뻗어 나가며 결계 내부를 강하게 휘저었다.
“쯧.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겨서는, 하는 행동은 전혀 세심하지 못하구나.”
자청비는 가볍게 혀를 차며 꽃 대신 검을 휘둘렀다. 신계 내에서 <서천 꽃밭>의 꽃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된 일이었다. 제약이 없는 지상에서 현찬의 도움으로 사용하는 건 괜찮지만, 이곳에서는 큰 제약을 받는다.
결국, 그녀는 서천 꽃밭의 힘 없이 본인 스스로 힘으로 토르를 상대해야 했다.
물론, 그녀는 꽃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강했다.
촤라락! 자청비가 검을 휘두르자 검 끝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그것은 순식간에 수천, 수만 개로 불어나며 사방으로 꽃잎을 흩날렸다. 꽃잎은 번개와 닿자 사라졌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번개 줄기를 집어삼켰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현찬은 순간 시선을 빼앗겼지만,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감촉에 정신을 차렸다.
“현찬아! 지금 한눈팔 때가 아니야! 빈틈을 만들어 준 이때 도망쳐야 해!”
애초에 수호자 역할을 맡은 신들은 두르가와 토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신화의 신 중에도 수호자가 있으며, 이미 일련의 사태를 감지한 그들은 현찬을 잡으러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테나와 싸우던 두르가는, 도망치는 현찬의 등을 향해 소리질렀다.
“감히 제게서 도망을 치시겠다는 겁니까? 제 결계는 안쪽에서 절대로 도망갈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대답한 쪽은 현찬이 아니라 헤르메스였다.
두르가의 말대로 이 포승줄로 이루어진 결계는 어지간한 신들조차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헤르메스는 달랐다.
“나는,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신이거든.”
헤르메스가 가진 권능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세계와 세계를 나누고 구분하는 경계는 헤르메스에게 있어서 아무런 방벽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바닥에 그어진 선이었을 뿐이고, 헤르메스는 가볍게 밟고 지나갈 수 있었다.
물론 두르가의 결계를 통과하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것은 아테나와 자청비가 만들어 주었다.
“탈출이다!”
헤르메스와 로키, 현찬과 감은장아기는 두르가의 결계에서 벗어나 다른 신화의 경계지역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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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이 영령의 세계로 떠난 지 벌써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직도 많은 도깨비가 그 주위를 지키고 있었고 황설영도 한시도 현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겁니까?”
“아. 주현창 씨.”
주현창은 공터에 들어서며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누워있는 현찬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지난 3일 동안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어서 몇 번 바깥을 왔다 갔다 했다. 지금도 막 정해진 업무를 대충 끝마치고 이 자리를 찾아온 것이다.
‘도깨비들의 감시는 여전히 삼엄하군.’
현찬이 누워있는 공터 주위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울창한 숲의 나무에는 여전히 많은 도깨비가 경계를 삼엄히 한 채 현찬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요.”
“그래도 언젠가 반드시 눈을 뜰 겁니다.”
“그런가요.”
주현창은 지금이 현찬을 죽일 기회이지 않을까 고민했다. 황설영은 지난 3일 동안 밤을 꼬박 새우며 현찬의 곁을 지켰다. 그녀는 지금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상당히 지쳤을 것이다.
비록 로키에게서 본격적인 힘을 빌리지 못하지만, 주현창은 로키의 계약자다.
그녀가 지닌 권능의 일부, 힘 일부를 사용하는 건 가능했다.
‘그녀의 영령은 영웅급. 높게 쳐줘도 준 신급. 컨디션이 나쁜 상태에서는 나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저쪽의 도깨비들도, 아무리 인 외의 종이라 해도 충분히 정리 가능해.’
주현창은 망설였다.
‘여기서, 전부 죽여 버릴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 움직이자.
주현창은 손에 몰래 신력을 모아 비수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기척을 감추고 숨기는 것은 로키의 특징. 그가 사용하는 기운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비수가 되어 상대방의 심장을 찌른다.
지금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주현창은 생각했다.
‘아니.’
그의 움직임은, 현찬에게 다가가기 전에 제지받고 말았다.
물리적으로 방해를 받은 건 아니다. 그 누구도 주현창이 움직이는 것을 막으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주현창이 멈춘 것은 감 때문이었다.
‘움직이면…… 내가 당한다.’
황설영에게서 흘러나오는 소름 끼치는 투기. 자신이 신력을 모으는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투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본인은 아마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리라. 자신이 지금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겠지.
그러나 주현창은 전부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의지가 아닌, 육체의 깊은 곳에 내재한 인간의 본능이 극화된 상태.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짐승에게 목덜미를 물어뜯기고 만다.
‘움직이면, 손해가 너무 막심해.’
인간은 짐승을 상대할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별다른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면 날카로운 어금니와 발톱에 살이 찢기고 만다.
‘그래. 아직은 시간이 많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리자.’
분명히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주현창은 현찬을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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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군요. 저희가 돕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습니다.”
감은장아기는 바다로 이루어진 세계를 건너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찬은 솔직한 심정을 표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수호자들과 척을 진다면 좋지 않을 텐데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지금 신계가 발칵 뒤집힌 상태이긴 합니다.”
감은장아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랬다.
현찬이 신계의 지옥에 떨어짐과 동시에 어지간한 신들은 침입자의 존재를 인지했다. 당연히 신들은 불편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외부의 침입자가 멋대로 들어온단 말인가?
그러나 현찬의 기운을 느낀 여러 신은,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를 놔둬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신들이 있었고
현찬을 반드시 붙잡아 죽이거나 추방해야 한다는 신들도 있었다.
물론 후자의 신들은 거의 다 <수호자>의 직책을 지니고 있었으며, 현찬과 계약한 적 없는 신들이었고 현찬을 옹호하는 신들이 대부분이기는 했다.
“실제로 옹호자 중에서 움직이고 있는 신들은 극히 일부이기는 합니다.”
“그들이 저를 돕고 있다는 말이군요?”
“예.”
아테나와 자청비, 감은장아기만 있는 게 아니다.
아폴론과 마르두크, 포세이돈 심지어 제우스까지. 현찬을 돕기 위해 일어선 신들은 상당히 많았다. 특히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거의 다 현찬의 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저희를 방해하는 신들 또한 있습니다.”
그들은 딱히 현찬에게 적대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지루한 신계에서 따분한 일상을 깨뜨릴 새로운 즐거움 덕분에 잔뜩 신난 상태였다.
그런 신들은 이 상태가 오래가기를 원했고 그렇기에 현찬의 행동에 고난과 역경이 있기를 바랐다.
신들에게는 장난이지만, 현찬에게는 상당히 고된 일이었다.
촤아악!
지금도 갑자기 바다에서 무언가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와, 현찬의 몸을 집어삼키려고 들었다.
동굴처럼 거대한 입이 현찬의 몸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그 괴물의 모습은 갑자기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어. 이건……?”
“제 능력입니다.”
감은장아기는 운명의 여신.
그녀는 조금 전, 현찬이 괴물에게 공격받은 운명을 가볍게 뒤틀었다.
있었던 일들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는 사기적인 힘.
하계에서와 달리 신계에서 힘을 제약받지 않는 그녀라면, 그 어떠한 위험 속에서도 현찬을 지켜낼 수 있었다.
“당신을 빛의 신전이 있는 곳까지, 제가 모셔다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