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228화 신계 수호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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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아!”
토르가 솥뚜껑만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크게 웅크렸다. 곰만 한 덩치의 그다 보니 몸을 웅크려도 거대했지만, 현찬은 그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토르의 몸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거야? 로키, 너 무슨 약이라도 뿌린 거야?”
“약이라면 약이겠지. 대신 나쁜 약은 아니야. 저 단순무식한 토르는 극독을 먹여도 절대 죽지 않을 녀석이니까. 오히려 나는 좋은 약을 썼지.”
“좋은 약이라니?”
“상대방의 몸에 둘린 모든 마법 효과를 제거하는 약이야. 거기에 피부에 좋은 미용 효과는 덤이지.”
“그런데 그게 대체 왜…….”
토르는 어째서 그런 약을 뒤집어쓰고 저렇게 고통스러워한단 말인가.
그러는 사이에도 토르의 변화는 계속되었다. 2m가 넘었던 장신의 거구는 이제 그 크기가 거의 절반 아래로 줄어들었다. 바람을 최대로 집어넣은 빵빵한 풍선 같던 근육은 빠르게 쪼그라들었고 머리에 착용한 투구가 툭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으아아! 안 돼! 안 돼!”
그렇게 외치는 토르의 목소리조차, 상남자처럼 거칠고 굵은 목소리에서 점점 가느다란 미성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 이건?”
“저게 토르의 본 모습이야.”
로키는 딱히 숨길 것이 없어서 솔직하게 말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헤르메스가 로키와 현찬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지금이 기회야! 어서 튀어!”
셋은 빠르게 등을 돌려 하늘을 날아갔다. 뒤에서 토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뒤이은 비명에 묻히고 말았다. 저 반응으로 보건대 아마 한동안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셋은 숲 위를 바람처럼 빠르게 가로질렀다. 숲의 나무들이 빠르게 지나쳤고 토르가 있던 장소에서 상당히 멀어지고서야 로키가 끊었던 말을 이었다.
“토르의 전승에 관해서는 들어봤어?”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거의 없을걸?”
토르는 유명하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북유럽 신화에 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토르라는 말을 들으면 ‘아, 그 망치를 휘두르는 천둥의 신?’이라고 할 정도다.
특히나 헌터들의 경우에는 좋은 영령과의 계약을 원하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신들에 관한 정보를 외우다시피 한다.
“그렇다면 편하겠네. 토르의 전승은 상당히 많지. 묠니르로 많은 거인의 머리를 부수고, 술도 무척 마시고. 뭐, 솔직히 보면 그야말로 망나니가 따로 없었지.”
“라그나뢰크를 일으킨 네가 할 소리냐…….”
헤르메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자 로키는 ‘그런데!’라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 토르에게도,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지. 스림이라는 거인에 관해서 알아?”
“알아.”
<스림>.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거인이다.
거인의 땅인 요툰하임의 왕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거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으니 바로 토르와 관련한 것이었다.
“스림은 프레이야와 결혼하고 싶어 했지. 그래서 그 협박의 볼모로 토르의 묠니르를 훔쳐갔어. 뭐,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기는 한데 토르에게는 참 심각한 일이었지. 자기 무기를 도난당했으니 말이야.”
거인 스림이 내놓은 조건은 단 하나. 묠니르를 돌려받고 싶다면 여신 프레이야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토르는 거인이 신을 모욕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남자다. 그런 일이 있으면 바로 묠니르를 들고 거인들에게 쳐들어가 그들의 머리를 박살 냈다. 실제로 성벽을 지어준 대가로 프레이야를 내놓으라는 산악거인과 거인 흐룽그니르도 그런 발언을 했다가 토르에게 당했다.
당연히 토르는 분개해서 스림을 죽이려 했지만, 그의 무기인 묠니르가 없어서 딱히 큰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여장이지.”
“어, 음. 그렇지.”
로키 또한 토르와 함께 갔었는데 거기서 거인들은 토르의 여장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그가 프레이야라고 착각했다. 물론 중간중간에 ‘눈매가 너무 험악하다.’,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로키가 특유의 언변으로 잘 속여 넘긴 것이 있었지마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어떠한 거인도 토르의 여장한 ‘외모’에 관해서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다는 것.
상당히 이상한 일이었다.
토르의 모습은 그야말로 근육이 빵빵한 전사로 비친다. 그런 토르가 여장했다면 누가 봐도 여자일 리가 없는 모습이지 않겠는가.
거인들의 심미안이 이상하다기에는 북유럽 신화 미의 여신 <프레이야>를 노리는 걸 봐서는 그들의 눈도 다른 신들과 똑같다. 미의 기준도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거인들은 토르의 여장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어. 잠깐만. 설마……?”
속으로 아닐 거로 생각했지만, 이성은 이미 그 답을 확신하고 있었다.
도망치기 직전에 보지 않았던가. 점점 변해가는 토르의 마지막 모습을.
그것은 흡사, 너무나도 아름다운…….
헤르메스가 쐐기를 박았다.
“토르는 남자면서 여자처럼 엄청 예뻤거든. 본인은 그게 싫어서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그렇게 행동하는 거지만 말이야. 쯧쯧. 진정한 남자다움은 행동에서 나오는 법인데.”
“…….”
“…….”
로키와 현찬은 ‘네가 할 말이냐’라는 따끔한 시선으로 헤르메스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그렇게 여장한 토르를 보고 스림은 아주 좋아했었지. ‘역시 미의 여신이라 그런지 너무나도 아름답구나! 이 작고 아담한 체구! 너무나도 여려 보여서 꼬옥 안아주고 싶군!’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진짜 얼마나 웃겨 죽을 뻔했는지…….”
“……토르는 그 거인을 죽이고 싶어 했겠네.”
“그렇지.”
물론 실제로 죽였다. 그것도 아주 시체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잘게 다져서.
“원래부터 좀 자기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스림 사건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겼지. 그래서 토르는 더욱더 자신의 겉모습을 숨기려고 든 거고.”
“방금 뿌린 약 때문에, 마법이 깨지니까 패닉 상태에 빠진 건가.”
그 틈을 이용해서 도망친 것이다.
“잠깐만. 그러면 더 화내는 거 아니야?”
“어차피 잡히면 현찬이 너는 죽어.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렇게 틈이라도 만들어야지. 조금 적당한 곳에 숨어서 기회를 본다면 따돌릴 수 있을 거야.”
“나중에는 어떡하고?”
“그때도 튀어야지 뭐. 내가 토르 한두 번 엿 먹인 것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 그때가 되면 또 속일 거니까.”
“아니, 그런 건 자랑스럽게 말하지 말라고.”
나중에 로키의 사망 소식이 들리면 그 범인은 분명히 토르일 것이다.
현찬은 확신했다.
“어쨌든 지금 만든 이 기회에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해. 토르가 정신을 차리고 쫓아오면, 우리로서는 벗어날 수 없으니까. 무엇보다…….”
멀리서 숲의 끝을 알리는 커다란 경계가 보였다.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장벽. 저것은 다른 신화와의 차이를 두는 경계였다.
“<수호자>는 토르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니까…….”
헤르메스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현찬은 헤르메스의 뒷덜미를 붙잡고 그대로 강하게 당겼다.
“으악?!”
헤르메스가 비명을 내질렀고 로키도 무언가 느꼈는지 공중에서 화려하게 회전하며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헤르메스가 지나치려고 했던 자리에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쿠웅!
벼락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진 그것은 그대로 숲의 외곽에 내리꽂혔다. 엄청난 전류가 지면을 타고 숲의 일대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번개의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아직도 번개가 내리친 자리에는 전류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숲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헤르메스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현찬이 그를 잡아당기는 것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저 벼락은 그의 정수리에 꽂혔을 것이다.
로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새하얀 구름이 많았고 거기에 가려서 그런지 벼락의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토르인가?! 아니, 그렇다 쳐도 이렇게 빨리 쫓아올 줄은…….”
“토르가 아니야.”
현찬은 벼락이 내리치기 직전 거기서 파생된 힘을 읽어냈다.
토르의 것은 이미 느껴서 알고 있다. 지금 벼락을 떨어뜨린 존재는 토르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였다.
“침입자치고는 감이 좋네요.”
그 말에 들려 온 곳은 현찬의 바로 등 뒤였다. 현찬은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한 여신이 서 있었다.
그녀는 요염한 미소를 지은 채 현찬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소름 끼치는 미소였다.
붉은색의 치렁치렁해 보이는 옷. 그 위를 치장하는 다양한 황금의 장신구들.
머리에는 금색 관을 썼으며 검은 머리카락은 마치 타오르는 불길처럼 일렁이며 허리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가장 큰 특징이라면, 보통 신들과 다르게 등 뒤에 8개의 팔이 더 있었다는 점.
그녀는 무려 10개의 팔을 갖고 있었다.
한 손에는 삼지창을, 다른 한 손에는 방패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원반을, 다른 한 손에는 도끼를, 또 다른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단도를, 다른 한 손에는 금강저를.
그녀의 모습을 보고 현찬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별로 내키지 않은 기습 공격을 이렇게 완벽하게 피할 줄이야. 놀랐어요.”
“당신은…… 두르가입니까?”
현찬의 물음에 여신은 입술을 말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나에 관해서 아는 아이로군요. 그래 맞아요. 제가 바로 두르가입니다.”
그녀의 대답에 현찬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큰일 났다.’
현찬은 그녀가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두르가>.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의 여신.
힌두교 신화에는 신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이름이 언급되는 신들은 한정되어 있는데 두르가는 그중에서도 당연히 손꼽히는 존재이다.
그녀는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10개의 팔로 다양한 보구들을 휘두르기 때문에 그 위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탄생 설화만 보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악신 중 하나였던 <아수라의 왕>은 세계정복을 노리는 마신이었다.
그의 이름은 마히사.
<마히사>는 천계를 습격했고 신들을 내쫓는 데 성공한다. 무려 악이 선을 이긴 전례 없는 일에 신들은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치게 된다.
남은 신들은 절망 속에 살았지만, 비슈누와 시바는 그런 신들을 한데 모아서 힘을 합친다.
그들은 모든 힘을 쏟아부어 하나로 합쳤고, 그 하나 된 힘에서 한 여신이 탄생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두르가>다.
그녀는 태생부터 힌두교 신화의 최상급 신들의 힘을 전부 지니고 있었으며 그들로부터 각자의 무구를 부여받았다.
유명한 것만 따져도 <시바>의 [트리슈라], <아그니>의 [투창], <바유>의 [활], <바루나>의 [포승줄], <인드라>의 [번개]가 있다.
그녀는 그 강대한 힘으로 아수라의 왕 마히사를 쓰러뜨렸고 최강의 여신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두르가>가 아니다.
이 이름은 본래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악마들의 왕’의 것이었는데 그녀는 그 왕과 치열한 싸움 끝에 승리하고서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악마들의 왕’의 이름을 사용하는 전쟁의 여신.
그것이 바로 <두르가>다.
“바보 같은 토르에게 일을 맡겼었죠. 혹시나 해서 찾아왔는데,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요. 토르는 결국 실패. 감을 믿고 따라온 게 천만다행이에요.”
두르가는 요염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등가에 소름이 내달렸다.
위험하다.
저 여신은 정말로 위험하다.
“자. 그러면, 제가 직접 움직이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죠?”
한 신화 속 최강의 여신이 무기를 고쳐 쥐며 직접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