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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224화 (22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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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화 영령의 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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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은 영령들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로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었던 존재가 영웅 혹은 왕으로 추앙받고 그 혼이 새로운 격을 얻어 떠나는 세계. 그곳은 어쩌면 인류가 신화 속 등의 세계에서 그토록 바라던 유토피아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헤르메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영령 세계는 단일한 환경으로 이루어진 곳이 아닌 각 다양한 신화 및 설화 등의 내용을 품고 있는 세계라고 했다.

어떤 곳은 바다의 신들이 거주하는, 물로 가득 찬 곳이.

어떤 곳은 천상의 신들이 거주하는 구름으로 이루어진 신전이.

어떤 곳은 불을 관장하는 신들이 거주하는 화염의 지대가.

그 모든 곳이 넘치는 곳,

그곳이 바로 영령들의 세계라고 했다.

그것이 어찌 됐든 간에 그런 곳이 실존한다면 정말로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일 거라고

현찬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인데?”

꿈같이 좋은 곳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낭만은 있을 거로 생각했던 세계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대지는 먹물을 끼얹은 것처럼 검게 칠해져 있었다. 우중충하게 떠 있는 먹구름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미약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대기는 숨을 쉴 때마다 폐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텁텁했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불쾌감이 치솟았다. 처음에는 이곳이 마계의 다른 구역인가 생각을 했지만, 분명히 여기는 영령의 세계가 맞았다.

그건 아직 헤르메스와 이어져 있는 미약한 신호가 증명하고 있었다.

현찬이 떠나기 전에, 헤르메스가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 잊지 마. 네가 다른 세계로 떨어진다면, 너는 결국 거기에 묶이게 돼. 나와의 패스도 끊어지는 거야.

- 돌아올 방법은?

- 있기는 있어.

- 뭔데?

- 네가 완전한 영령이 되고, 그 세계에서 계약자를 찾은 후 그 계약자가 차원을 뛰어넘을 정도의 실력자가 되는 거.

- …… 절대로 다른 데로 빠지면 안 되겠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걸리는 세월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지구는 완전히 멸망해 있으리라.

- 그러니까, 그런 꼴 겪기 싫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알았지?

- 알았어.

그것이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아직 헤르메스와의 패스가 이어진 것을 보면 이곳은 분명히 영령의 세계가 맞다. 이쪽도 나름 신들과 영웅들이 거주하는 곳이라 그런지 워낙 커서 패스가 좀 희미할 뿐, 끊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는 건 여기도 영령 세계가 맞는다는 소리인데, 뭐 이렇게 끔찍하게 생겼담?’

현찬은 기운을 일으켜 자신의 몸을 두르고 거친 환경으로부터 육신을 보호했다.

‘육신이라고 할 수도 없나? 영혼인데. 아니, 그런데 이 세계에서는 영혼이 곧 육신이려나.’

그게 어찌 됐든, 일단 이곳이 어느 위치인지부터 확인을 해야 할 판이다.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하리라. 현찬은 바로 기운을 일으켜 자신의 몸을 하늘로 띄웠다.

“오. 되네?”

헤르메스와 로키의 뒤를 쫓았을 때, 영체 상태로 움직이는 법을 배운 현찬은 혹시 이곳에서도 그것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막상 실천해 보니 별다른 어려움 없이 쉽게 되었다.

현찬은 가볍게 하늘을 날며 더 넓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곳곳에 존재하는 마그마와 화산, 죽어버린 검은 대지. 마치 한 편의 지옥도를 보는 것 같았다.

“응?”

계속 날아가던 현찬은, 문득 한 인형을 발견하고 그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기척이 명확하게 느껴졌고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인지 고개를 돌려 현찬을 보았다.

“인간?”

“악마?”

현찬이 마주한 건 바로 악마였다. 사자 머리를 중심으로 말의 다리가 5개가 별 모양처럼 다른 방향으로 나 있는 악마. 현찬이 약간 놀란 것 이상으로, 악마는 현찬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인간이라고? 인간이 대체 어떻게 이곳을……?”

“음. 지옥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지옥이었나 보네.”

그르릉! 악마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인간이 이곳에 오다니. 의외로군. 영웅들은 이곳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뭐 잘됐다. 안 그래도 지루하던 참이었는데, 네놈을 고문하며 이 지루한 삶에 즐거움의 향신료를 뿌려야겠다.”

“어 그래? 나도 지금 때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

“뭐라?”

“안 그래도 이곳을 안내할 녀석이 필요했거든.”

“네놈. 지금 감히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 몸은 이 지옥의 72 악마 중 하나인 부에르다. 감히 영웅이라 해도 인간 따위가 나를 넘볼 수 있을…….”

부에르는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꽤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현찬이, 그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지척까지 접근해 있었기 때문이다. 영웅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인간 나부랭이. 이곳이 영령의 세계라 하더라도 격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정작 현찬의 몸을 두르고 있는 것은, 악마들에게도 아주 극 상성인 신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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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가 바로 그 지옥이다?”

“네. 그렇습니다.”

부에르는 현찬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그렇게 대답했다. 현찬은 근처 적당한 흑요석 바위에 앉아 턱을 쓰다듬었다. 부에르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곳은 영령 세계에서도 악마들이 거주하는 지옥이라고 한다.

부에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에 등장하는 악마들이 다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쪽도 하급 악마가 있는 게 아니라 네임드 급에 격이 높은 악마들이 대거 존재하는 곳이었다.

부에르가 현찬을 보고 놀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런 거칠고 황량한 대지에, 그것도 작위를 가진 악마들이 거주하는 공간에 인간이 나타났으니 오죽할까.

물론 말이 인간이지, 사실상 신의 힘을 다루기 때문에 부에르는 그 생각을 철회해야만 했다.

“그래서, 여기가 어디라고?”

“3층의 폭식 지옥입니다.”

“음…….”

폭식 지옥이라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단테의 신곡에서 나오는 지옥 중 하나인데, 총 9개로 이루어진 지옥에서 3층을 담당하고 있었다. 마냥 지옥에 떨어져서 기분이 더러웠는지 그렇게 깊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위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지옥 간에는 서로 이동이 가능한 거대한 탑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면 되실 겁니다.”

“흠. 그런가.”

탑이라 하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거의 평지에 가까운 이 필드에서 하늘 높이 우뚝 솟은 거대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현찬은 바로 이동하려는 순간, 주위에 여러 개의 기척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이건…….”

악마들. 그것도 상당한 수가 현찬이 있는 장소로 몰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현찬이 사용한 신력 때문에 그것을 감지하고 몰려드는 것 같았다. 여러 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음에도 이렇게나 악마가 많을 줄이야.

현찬은 최대한 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다가오는 악마의 기척 중에서도 범상치 않을 정도로 빠른 녀석이 존재했다.

“흐응? 이런 곳에 갑자기 신력이 느껴져서 뭔가 했는데, 인간이잖아?”

‘…… 빠르군.’

현찬은 자신의 뒤를 점한 목소리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잘 정돈된 검은 머리카락을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게 기른 10대 초중반의 가녀린 소녀가 있었다.

현찬은 그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쉽게 판단하지 않았다. 그녀가 은연중에 풍기는 기운은, 지금까지 현찬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존재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강했으니까.

‘신급…… 말 그대로 최상위 악마다.’

현찬이 속으로 그렇게 판단하는 순간 상대를 알아본 부에르가 기겁했다.

“아, 아스모데우스!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마왕 <아스모데우스>.

흔히 말하길 색욕을 담당하는 악마로 격노와 정욕의 마신이다.

현찬이 부산에서 싸웠던 루시퍼와 동급 존재다. 무엇보다 여기는 하계가 아니어서, 아스모데우스는 그야말로 모든 힘을 다룰 수 있을 정도다.

부에르의 외침에 아스모데우스는 그제야 그 존재를 인지했다.

“음? 뭔가 했더니 부에르잖아. 이거 참. 인간에게 당하기라도 한 거야? 악마로서 꼴불견이네.”

“그러는 당신이 왜 여기에……. 당신이 주로 거주하는 공간은 가장 깊은 지옥인 코퀴토스가 아니었던가?”

“흐응. 그냥. 오늘은 왠지 묘한 감이 들어서 돌아다니던 중이었어. 그런데 내 감이 아주 좋아서 그런지, 여기에 이렇게 꽤 재미있는 걸 발견하고 말았네?”

마왕 아스모데우스는 아름다운 외양과 다르게 상당히 난폭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현찬의 모습을 담았다. 그것은 맛있는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눈동자였다.

‘저것을 어떻게 가지고 놀까’ 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현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현찬은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게 됐네. 이런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그렇다고 그냥 가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무시하고 떠날 수 있을 수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지금도 속속들이 다른 악마들이 이쪽에 도착하는 중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현찬이었다.

‘싸워야 하나?’

문제가 있다면 현찬은 지금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힘을 다룰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는 건 순수 자신의 힘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

그나마 발드르의 힘을 다룰 수 있지만, 그건 아직 미숙하여 제대로 쓸 정도는 아니었다.

부에르 같은 수준이라면 적당히 제압하지만, 상대가 7대 마왕 중 한 자리를 차지하는 아스모데우스라면 그것도 안 된다.

현찬이 고민하는 것을 읽어냈는지, 아스모데우스가 혀를 내밀어 자신의 붉은 입술을 핥았다.

“어머. 지금 내 앞에서 눈동자를 굴리는 거니? 너 정말 귀엽다?”

그녀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고, 순식간에 주변 공간이 강렬한 마기로 잠식되었다. 상황을 살피러 오던 다른 악마들은 모두 그녀의 마기에 놀라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현찬은 신력을 끌어올리며 마기에 저항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인간이지만, 신력을 다루는 존재. 사실상…… 반신에 가깝구나. 지금도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어.”

아스모데우스는 현찬의 상태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현찬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면 이제 도망치는 것은 완전히 무리다. 애초에, 아스모데우스는 현찬을 보낼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위험해. 애초에 시간도 별로 없고 말이지. 아이고 내 팔자야.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설마 헤르메스에게 튕겨 나와 지옥에 떨어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지옥에서, 하필이면 지옥의 심층에 존재하는 마왕을 이런 곳에서 조우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이렇게 따진다고 해도 의미는 없었다. 중요한 건, 이미 아스모데우스와 현찬은 마주했다는 점이라는 것. 둘의 충돌은 결국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현찬이 신력을 더욱 끌어올리자 마기와 신력이 충돌하며 주위에 강한 스파크를 튀겼다. 그 힘의 여파는 강한 바람을 만들어 주위에 작은 폭풍처럼 몰아쳤다. 아스모데우스의 검은 머리카락이 허공에 나풀거리며, 그녀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아하하! 재미있는 장난감이네. 그래. 이렇게 튕기는 맛이 있어야지. 그냥 순순히 잡히면, 재미없잖아?”

“누가 잡혀준대? 거 참, 말 함부로 하시네.”

“마왕인 내 앞에서 그런 입담을 가진 인간이라니, 정말로 탐이 나.”

츄릅. 아스모데우스는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에 현찬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로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꿈틀거리는 뱀을 봤을 때의 그런 본능적인 위축감이 들었다.

둘의 기운이 서로 극에 달해 거의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만. 기세 싸움은 거기까지 하지.”

갑자기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두 개의 기운을 완전히 흩뜨려 놓았다.

아스모데우스는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적의가 똘똘 뭉친 목소리로 난입 자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네가 왜 여기에! 그보다 감히 지금 나를 방해하겠다는 거냐! 루시퍼!”

‘루시퍼라고?’

현찬은 아스모데우스의 시선을 쫓아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그곳에는, 부산에서 싸웠던 붉은 머리칼의 미남자가 검은 날개를 펼친 채 공중에 떠 있었다.

루시퍼.

7대 마왕 중 하나인 그 또한 이 자리에 나타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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