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211화 과학을 무시하지 마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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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다하카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했다. 인적이 드물다고 하더라도 결국 다다른 곳은 험준한 산 중턱이었다. 대한민국은 땅이 좁지만, 인구는 많아서 어지간한 마을만 가도 사람들이 흘러넘쳤다.
그들의 시선을 피해서 움직이기 위해서라면 이런 외진 산골짜기밖에 없었다.
악신회로 돌아가는 길은 간단했다. 그곳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서울 한복판에서도 갈 수 있었다.
이렇게 조심히 움직이는 것이 보안에 좋아서 아지다하카는 귀찮음을 감수하고 이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뭐, 세트나 아수라의 왕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요.’
아지다하카는 품 안에서 자그마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밖에 되지 않는 큐브다. 은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그것은 기묘한 힘이 내재하여 있었다.
아지다하카는 큐브를 손에 쥐고 그것에 힘을 줘서 부쉈다. 파직! 큐브는 손쉽게 부서지며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그것은 이내 아지다하카의 앞에 고리의 모습으로 변했다.
고리 안쪽에는 우주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악신회의 회장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아지다하카는 망설임 없이 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가 확실히 섬길 자격이 있는, 악신회주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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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반응. 사라졌습니다.”
“그런가요.”
사라진 아지다하카를 인공위성 카메라로 지켜보던 통제실은 침묵으로 물들었다. 겨우 놈들의 본거지를 알아낼 기회를 얻었나 싶었지만, 그것이 무색하리만큼 쉽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보던 황설영과 정기원은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 강현찬 헌터님의 말대로 놈들이 움직이는 것은 겨우 잡아냈다만…… 설마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줄이야. 혹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거나 하지 않았나?”
“다른 지부에 확인을 요청한 결과, 해당 인물은 완전히 사라졌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쪽에 잘못 찾았을 확률은?”
“이미 몇 차례나 검토하고 확인한 뒤에 내놓은 답변이었습니다. 그것도 모든 지부가 다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으니, 아마 사실일 겁니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절망적인 대답에 정기원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그 말고도 다른 사람들 또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역시 놈들의 본거지는 ‘일루베 아르카’라는 조직과 비슷하게 지구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가.”
다른 차원의 틈새에 존재하는 놈들의 본거지는 솔직히 말하자면 절대로 찾을 수 없었다. 전 세계의 모든 인공위성을 동시에 돌려서 사각지대 없이 어디로 도망칠지 확인했는데도 실패했다는 건, 결국 그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이런 상황일 거라고 막연히 예상은 했지만 역시 상상했던 것과 현실이 되어 들이닥치는 것의 차이는 컸다.
“다른 차원이나, 혹은 차원의 틈새나…… 결국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거기서 거기로군.”
“마냥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여기 보십시오.”
황설영은 그렇게 말하며, 조금 전까지 아지다하카가 통로로 넘어가기 전의 모습을 홀로그램 패드로 보여주었다. 그녀는 화면을 최대한으로 확대하며 아지다하카의 손에 쥐어진 큐브를 가리켰다.
“저들의 이동 수단인 것 같습니다. 작동하는 방식은 그저 부수는 것임으로 보아, 사용자가 그 누구더라도 발동되는 것 같고요.”
“저들이 설마 그렇게 단순하게 했을까? 특정 마력의 파장을 읽어야만 발동하는 구조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한 남성이 황설영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남성의 지적은 얼핏 타당해 보였지만 황설영은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요. 분명 제 예상대로라면 저것에 그렇게 복잡한 술식은 있지 않을 겁니다.”
“왜? 저것을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자신들의 거처가 탄로 나는 것은 한순간일 텐데.”
“바로 그 부분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 대체 뭐가 문제냐는 궁금증이 가득 찬 시선들. 빨리 답을 내놓으라며 보채는 시선에 황설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다들 걱정되고 초조하다는 뜻이리라.
“저들이 누구입니까? 전부 다 신화 속에서 악명을 떨쳤던 신들입니다.”
그들이 성향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그들은 하나같이 유명한 폭군이자 신이었다. 악신회의 이름에 걸맞게 놈들은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신화 속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놈들로 가득했다.
“지금 확인된 존재만 해도 <세트>, <야마타노오로치>, <루시퍼>가 있었습니다. 물론 루시퍼는 부산 사태에서 강현찬 헌터님에 의해 확실히 사망했지만, 나머지 둘은 아직도 남아있죠. 무엇보다 방금 확인된 인물만 해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급이 분명 할 겁니다.”
“그게 대체 어쨌다는 건가?”
“역으로 질문해 보죠. 누가 신의 힘을 지닌 자에게서, 저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겠습니까?”
“그, 그건…….”
황설영의 지적에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저런 큐브가 복잡한 구성으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보안에 문제가 생긴다? 그것도 웃기는 소리였다.
대체 누가, 악신을 상대로 품 안에 넣어놓은 저 큐브를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가능한 것이 그나마 오버랭크 헌터들이지만, 격렬한 싸움에 저 큐브가 사라질 가능성을 생각하면 쉽게 빼앗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저들의 힘 자체가 저들의 보안입니다. 이 화면에 잡힌 신은 저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신중한 것 같지만 결국에는 덜미를 잡혔죠.”
아무리 악신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인간보다 우월한 힘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들은 과학의 힘을 너무나도 얕봤다. 물론 이쪽도 겨우 꼬리를 잡아서 추적했기에 그 덜미를 잡은 거지 현찬의 언질이 없었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했으리라.
“즉, 저희에게는 아직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 큐브를 어떻게든 하나라도 챙기기만 한다면 악신회의 본거지를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이 확인된다면, 그 이후는 간단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오버랭크 헌터와, 그에 준하는 동맹의 전사들이 일시에 들이닥칠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저희는 움직이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머지않은 시기에 놈들은 반드시 다시 활동을 재개할 겁니다. 그것이 저희가 놈들을 추적할 기회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번처럼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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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의 회랑에 들어선 아지다하카는 늘어선 기둥 한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세트 씨 아닙니까.”
“존댓말 쓰지 마. 너랑 내가 아는 사이가 얼마나 되는데 아직도 그러냐? 네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구역질이 난다고.”
“그저 버릇일 뿐입니다.”
“버릇이라.”
가볍게 대꾸하는 아지다하카의 말에 세트는 기분 나쁘게 웃었다.
“뭐, 그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너, 지금 회주에게 가는 중이지?”
“말조심하십시오. 회주가 아니라 회주님입니다. 저희를 이끄는 지도자이자, 장차 세계의 지배자가 되실 분이시죠.”
“흥. 웃기지도 않는 소리군. 이렇게나 차원의 틈새 사이에 꼭꼭 숨겨 놓은 곳에 숨어 지내면서 세계의 지배자라니. 진짜 지배자는 이렇게 꼼수를 부리며 행동하지 않아.”
“모든 일에 대비하며, 모든 악수를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겁니다. 세트 씨. 그렇게 호언장담하던 당신이, 결국 동료를 잃고 돌아왔던 일을 정녕 기억에서 지우시기라도 하신 건가요?”
“뭐?”
세트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주위로 가공할만한 살기가 퍼져 나왔다. 드드드드. 바닥과 천장, 기둥까지 세트의 기세에 눌려 진동했다. 아지다하카는 지금 세트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
“지금 죽고 싶은 거냐?”
“행동을 삼가십시오. 여기서 난동을 피우셨다가는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근신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협박하는 거냐?”
“협박이 아닙니다. 사실을 말한 것일 뿐이죠.”
“…….”
아지다하카는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하게 자신이 할 말을 했다. 세트는 그런 아지다하카를 노려보았다. 저 녀석은 언제나 재수가 없었다. 항상 예의가 바른 척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그야말로 남들이 알지 못할 악의가 똬리를 틀고 뭉쳐있었다.
“…… 뭐 됐어. 그보다 너, 회주를 만난다면 보고하러 가는 것이겠지?”
“회주가 아니라 회주님…… 후유. 네. 맞습니다.”
아지다하카는 세트에게 정정해달라는 말을 포기했다. 그런 말을 할수록 오히려 세트는 보란 듯이 사용할 테니까. 차라리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이 서로 편했다.
아지다하카의 긍정에 세트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크핫.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보니까, 임무는 제대로 실패한 것 같은데?”
“애초에 성공을 바라지도 않은 임무였습니다. 단지 거기서 목표가 죽으면 더 좋았을 따름이죠.”
“네놈이 판 함정마저 목표물에는 먹히지 않았다는 건가? 그 웃긴 이계의 마왕이니 뭐니 한 녀석에게 부탁하니 그런 꼴을 당하는 거다. 이 나조차 상대하기 힘든 놈을, 고작 그런 녀석 하나가 뭘 하겠다는 거지?”
“당신의 실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 그렇다 치고…… 한가지 정정할 말이 있군요.”
“뭐?”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세트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혼자가 아니라니. 놈이 다른 동료가 있었다는 소리인가?”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목표를 죽이기 위해 불러들인 마왕이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무려 열이나 됐죠.”
“뭐?”
“열 명. 무려 마왕급이 열 명이나 되는 전력이 목표를 죽이지 못했다는 겁니다. 제가 상황을 전부 보았으니, 이견의 여지가 없는 팩트죠.”
물론 세아리스의 도움도 있으며 파르고잔의 단독 행동을 생각하면 현찬이 10대 1로 싸웠다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 쳐도 동시에 싸운 상황은 무려 6대1이었으며 1대1로는 상대를 그야말로 순식간에 제압했을 정도였다.
그 대답에 아무리 세트라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계의 마왕이라는 놈들은 못 해도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의 본신의 힘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힘 일부를 지니고 하계로 내려온 자신과 맞먹을 테니까.
그런 놈을 열이나 모았는데도 현찬을 죽이지 못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놈이 서천 꽃밭을 사용했습니다.”
“서천 꽃밭!”
세트도 알고 있다. 애초에 서천 꽃밭을 모르는 신은 없을 것이다. 동양의 신화에서 거의 최고의 격을 자랑하는 그 화원은 악신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상징이었으니까.
“그놈 인간이 맞기는 한 건가?”
“그건 저도 모르죠. 아무튼, 저는 이 상황을 회주님께 당장 보고하러 갈 생각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어떻게 목표를 제거할지, 작전을 짤 테니까요.”
그 말에 세트는 혀를 차면서 길을 비켜주었다. 세트는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으며 스쳐 지나가는 아지다하카를 보며 치솟는 살기를 억눌렀다.
“네놈이 어떻게 뭘 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목표라는 인간은…… 반드시 내가 죽일 거다.”
아지다하카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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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를 지나친 아지다하카는 긴 복도를 걸은 끝에 목표로 한 장소에 도달했다.
그는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가 어둠을 맞이했다. 악신이자 악룡인 자신조차 섬뜩하게 만드는 이 어둠은 그조차 읽어낼 수 없는 미지의 기운이었다.
“저입니다. 아지다하카.”
“왔구나.”
어둠의 중심, 어둠보다 더 어둡고 심연보다 더 깊어 보이는 그곳에…… 한 존재가 있었다.
온몸이 타오르는 검은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어 본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그가 이곳의 주인이자 아지다하카가 섬기는 인물인 악신회주였다.
“그래. 도착하기 전에 보내준 메신저를 통해 상황은 대충 알았다.”
악신회주는 거대한 의자에 앉은 채, 턱을 괸 자세로 아지다하카를 맞이해 주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