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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206화 (206/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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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화 자청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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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다하카의 도움으로 옥사비누스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보내놓았던 자신의 부하들이 대기하는 중이다. 부하들이 모두 고개를 조아렸다. 옥사비누스는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내가 시킨 일들은 다 해 놓았나?”

“예. 마왕님.”

옥사비누스의 부관인 사장각의 카사누스가 그렇게 대답하며 다른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악마들이 여러 관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확인한 바로는 총 여덟 구의 시체를 확보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삭지 않은 뼈에 남아있는 마력의 농도로 추측건대 분명히 옛날 사라졌다는 마왕들이 맞습니다.”

“확인해 보겠다.”

옥사비누스는 관을 열어 시체들을 하나씩 전부 확인했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시체들은 전부 뼈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뼈에조차도 막대한 마력이 남았다. 상태가 좋은 해골은 뼈 바깥으로 마력이 형체를 이루며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죽고 나서 최소 몇백 년은 지났을 텐데 이 정도 마력이라면 분명 마왕급이 맞다.

“훌륭하다.”

“아 네! 감사합니다!”

부관 카사누스는 옥사비누스가 칭찬하는 것에 매우 인색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훌륭하다고 했다는 건 정말로 기쁘다는 소리였다. 자인이 모시는 주군에게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카사누스는 기쁨에 차올랐다.

“현재 나머지 시체를 수색 중입니다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지형이 바뀐 나머지 그게 쉽지 않습니다.”

“됐다. 여기서 더 뭘 찾으려고 해도 못 찾을 거다.”

찾는다 하더라도 의미는 없었다.

지금 그가 부활시키려는 마왕이 여기서 더 늘어나면 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수가 여덟이라면 이게 그나마 딱 적당하다. 과하지도 적지도 않으니까.

‘이제 부활시키는 일만 남았군.’

옥사비누스는 준비해 왔던 약들을 시체에 뿌리고 자신의 마력을 이용하여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휘하 군단의 부하들은 그런 옥사비누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옥사비누스가, 자리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력한 호기심이 그들을 붙잡았다.

이름만 들어 본 옛 마왕들이 부활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보는데 어떤 악마 종이 그것을 마다할까.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찬란한 기대감에 악마 종은 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옥사비누스의 주문이 끝나는 순간.

주위에 깔린 수백의 악마 종들은 모두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크헉! 마, 마왕님…… 어째서…….”

다른 악마 종들은 즉사하여 순식간에 온몸이 부패하고 가루가 되어 흩어졌지만 유일하게 옥사비누스의 부관인 카사누스만 바로 죽음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생명력이 빨려 들어가서 그 또한 시간문제였다.

옥사비누스는 바닥에 쓰러진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카사누스를 보며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자신을 보필한 부관을 상대로도 옥사비누스는 무감각했다.

그는 애도조차 보이지 않았다.

“기뻐하거라.”

“네? 그게…… 무슨…….”

“너희들은 옛 마왕 부활의 초석이 될 것이다.”

아무리 옥사비누스가 사령의 대가라 할지라도 같은 마왕급을 동시에 여러 명이나 부활시킬 수는 없었다. 그의 강대한 능력으로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제물이다.

옥사비누스는 지금까지 자신을 믿고 따라온 부하들을 모두 제물로 바친 것이었다.

“그런…….”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사누스도 고개를 픽 꺾으며 죽고 말았다. 그의 시체와 마력은 순식간에 분해되어 옥사비누스에게 흘러들어왔다. 그의 발밑으로 보랏빛 마법진이 생겼다. 형이상학적이고 복잡한 마법진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기분 나쁘게 꿈틀거렸다.

“가자.”

옥사비누스의 발밑에 생긴 마법진이 빠르게 크기를 키워가며 범위를 넓혔다.

그것은 순식간에 빠르게 퍼져나가며 아직 남은 그의 군단과 파르고잔의 진형을 뒤덮었다.

“이, 이게 무슨……크아악!”

“크헉! 사, 살려줘!”

“아악!”

악마 종은 마법진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나마 뿔이 많고 긴 간부급 악마들은 잘 버텼지만 단지 고통을 오래 느끼게 됐을 뿐이다.

온몸이 걸레처럼 쥐어 짜이며 자신의 영혼을 갈고리로 긁어내는 그 고통!

강한 악마일수록 그 고통을 길게 느끼며 피를 토하고 절규했다.

옥사비누스는 충만하게 느껴지는 마력에 감았던 눈을 떴다.

“일어나라.”

발동은 그걸로 충분했다. 옥사비누스에게 모이던 마력은 방향을 바꾸어 8개의 관으로 향했다.

해골들은 마력을 스펀지처럼 쭉쭉 흡수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검은 마력은 뼈의 바깥쪽에 붙으며 근육과 살을 이루기 시작했다.

콰직!

강대한 마력을 견디지 못한 관이 산산 조각났다. 그 관을 부수고 등장한 것은 모두 각기 다른 모습을 한 마족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다른 악마 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뿔이 무려 다섯 개나 있었다는 것이다.

자아를 잃고 초점 없는 시선으로 멍하니 옥사비누스를 바라보는 여덟 마왕.

그들의 모습에 옥사비누스는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웃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후후후. 과연, 대단하구나. 그렇게 오랫동안 이 땅에 묻혀서 사라졌다고 여긴 마왕들이…… 이렇게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그리고 이 마왕들이 무려 자신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사실이 옥사비누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얼굴도 모르고 들어본 적 없는 마왕도 있었지만, 아주 먼 옛날에 그가 직접 본 적이 있는 마왕들도 있었다.

“호오. 이게 누구야. 동토의 마왕 글루아렌이잖아?”

다른 마왕들과 다르게 연푸른빛 마력을 뿜어내는 여성 마왕을 보며 옥사비누스는 눈빛을 빛냈다. 붉은 피부를 지닌 악마 종과 대비되는 푸른 피부와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그녀의 주위로는 공기가 얼어붙어 얼음 결정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그 증오심. 누구를 향하는지 알 것 같군. 너는 딱 녀석을 상대하기 적합하겠어.”

무엇보다 글루아렌은 파르고잔이 지배하는 전 영토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녀는 파르고잔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죽고 말았고 그녀가 지배하던 얼음 대지는 파르고잔의 아래로 들어가 용암과 유황이 들끓는 땅으로 변모한 것이었다.

“아아. 당신도 있었군요.”

옥사비누스는 초로의 노인의 모습을 한 마왕에게 다가가며 반갑다는 듯이 인사했다.

“스승님.”

마왕 율리그란데.

옥사비누스의 스승이자 그가 지닌 모든 사령술과 마법을 전수해 준 독특한 마왕.

“당신은 모르셨겠죠. 설마 자신이 직접 키운 부관이, 자신의 등을 찌를 거라는 걸.”

옥사비누스는 그리운 옛 추억이 떠올랐는지 잠시 눈을 감고 그것을 음미했다. 말이 스승이지 둘의 관계는 썩 좋지 못했다. 율리그란데는 옥사비누스의 재능을 이용하려 들었고 옥사비누스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호시탐탐 반역의 기회만 보고 있었으니까.

결국, 승자는 옥사비누스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마왕의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까.

“게다가 한때 이름을 날리던 마왕 몇이 있군. 서로 동귀어진한 건가.”

뭐, 그게 어떻게 되든 상관은 없다.

“너희는 이제 내 명령에 따른다.”

옥사비누스의 대답에 마왕들의 몸에서 마력이 폭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반항의 의미가 아닌 주인의 명령에 따르겠다는 투기의 발현이었다.

그 과격한 모습에 옥사비누스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곳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옥사비누스의 손이 한 방향을 가리킴과 동시에 마왕들이 움직였다. 그들이 내뿜는 마력은 서로 엉키고 합쳐지며 하늘을 향해 기둥처럼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 강대한 마력의 파동을 현찬은 멀리서부터 보고 있었다.

&

“네 녀석…… 그 힘은 또 대체 뭐냐.”

파르고잔은 현찬의 손에 쥐어진 꽃 한 송이를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지옥의 불을 다루는 그가 고작 꽃 하나를 보고 땀을 흘리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보았다면 배를 잡고 웃을 일이다.

그러나 저 꽃이 범상치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웃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저 꽃은 <서천 꽃밭>에서 가져온 꽃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찬의 주위로는 이미 자그마한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역시 지금의 상황으로는 이 정도로 불러내는 게 최선인가.”

정작 현찬은 아쉬움에 혀를 내둘렀다.

원래 목표는 서천 꽃밭 전체를 불러내는 것이었지만 꽃밭의 극히 일부밖에 부르지 못한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 계약자. 아무리 그래도 꽃밭 전체를 불러내려면, 나뿐만이 아니라 삼신할미와 꽃감관까지 불러야 하니까.]

자청비가 그렇게 말하며 현찬의 생각을 수정해 주었다.

“네. 그렇군요. 그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현찬이라고 합니다.”

[자청비. 알고서 불렀을 테니 이런 소개는 넘어가지. 그보다 드디어 나를 불러 줬구나. 언제쯤 부를지 무척 기다렸다고?]

자청비는 상당히 통쾌한 신이었다. 다른 신들처럼 격을 차리거나 뭔가 신으로서의 격을 느끼게 하지도 않았다. 그저 시원시원하고 다가가기 편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강한 신을 쉽게 부를 생각은 없습니다. 중요한 순간이 아니면, 힘의 낭비니까요.”

[하하하! 나를 이렇게 높게 평가해줘서 고마운걸?]

“빈말이 아닙니다.”

현찬은 진심으로 자청비라는 신이 지닌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자청비>.

한국 신화의 <세경본풀이>에 나오는 여신이다.

그녀는 제주도 농업 신 세 명 중 하나다.

상세경신 <문도령>.

중세경신 <자청비>.

하세경신 <정수남>.

이렇게 셋이지만 그들 중 가장 강하고 유명한 건 자청비다.

특히나 천계에서 일어난 반란을 그녀 혼자서 제압한 건 같은 신들의 사이에서도 매우 유명한 이야기다.

물론 서천 꽃밭에서 따온 꽃의 힘으로 행한 일이지만, 그 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결국 그녀의 능력이었다. 무엇보다 자청비는 서천 꽃밭을 어지럽힌 꽃밭의 올빼미를 잡은 공로 때문에 꽃밭의 소유권이 일부 있기도 했다.

그녀는 농업의 신이지만 괄괄한 성격과 지닌 강력한 힘 덕분에 사실상 한국 신화에서 강한 신으로 손꼽혔다.

[씁. 뭐 이렇게 좋게 말해주니 기분은 좋네. 바리데기 그년은 계속 나보고 왈가닥이니 뭐니 난리를 쳤는데 말이야.]

“아 참. 감은장아기 님은 괜찮으십니까?”

[아아 그거? 괜찮아. 괜찮아. 짜식. 걱정했구나? 걔는 나름대로 운명을 다루는 애라서 쉽게 영향을 안 받아. 무엇보다 할매랑 내가 도와줬으니까.]

“뭐, 그때 죽죽이 꽃을 보고 좀 오금이 저리긴 했죠.”

[사내자식이 그런 걸 아직도 기억하는 거야? 야. 그런 건 그냥 시원하게 잊으라고.]

자청비는 그렇게 말하며 이를 보이며 미소 지었다. 그 상쾌한 미소에 현찬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여신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가식이나 격식이 전혀 없다. 실제 신화에서도 자청비는 남장을 거리낌 없이 자주 했으며 매우 진취적인 자세를 지닌 거로 유명했다.

“지금 날 무시하는 거냐?”

“아.”

현찬은 정말로 파르고잔을 잊고 있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파르고잔은 현찬과 싸움으로 잔뜩 열이 올랐는데 정작 현찬의 태도가 심드렁하니 이쪽도 도로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뭐 됐다. 이 꽃밭이 얼마나 강하다 하더라도, 내가 다 태워버리면 그만이니까.”

심지어 멀리서부터 마왕들이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파르고잔은 그중에서 익숙한 기운을 느꼈지만 이내 무시했다.

‘옥사비누스 녀석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인간은 내 거다!’

그런 파르고잔을 보며 자청비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야. 저 뿔 달린 것이 방금 뭐라고 그랬냐?]

“꽃밭을 태운다고 했는데요.”

[그랬지?]

“네. 똑똑히 들었어요.”

[그렇구나.]

자청비는 그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더니 이내 씨익 웃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헤르메스와 아테나는 그 섬뜩한 미소에 뒤로 물러났다.

[감히 내 꽃밭을 건드리려고 해?]

자청비는 왈가닥에 씩씩한 성격이지만 또 다른 성질이 더 있었다.

[다 죽었어.]

그녀는 매우 다혈질에 과격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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