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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204화 (204/265)

# 204

204화 전쟁 속에 피는 꽃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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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도망쳐!”

“휩쓸린다! 막을 수 없으니 알아서들 피해라!”

두 진영의 격렬한 충돌이 예상됐던 전황은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원래라면 서로 피를 튀기는 격렬한 싸움을 해야 할 악마들은 거대한 힘의 격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도망치기 급급했다.

전장 중앙에서 계속 터져 나오는 거대한 충격파는 대지를 가루로 부숴버리고 근처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찢어 죽였다. 그 무지막지한 힘의 격류에 날고 긴다는 악마들도 두려움을 품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저것이…… 마왕급의 싸움?”

현찬과 파르고잔의 싸움은 그만큼 대단했다.

원래라면 서로 치고받아야 할 두 진영은 전장에서 멀리 벗어나 둘의 싸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현찬과 파르고잔은 의도치 않게 거대한 규모의 전쟁을 자신들의 주변으로 압축하고 말았다. 그러나 둘은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재밌어! 재미있다고! 하하하! 역시 예상했던 대로야!”

파르고잔은 광소(狂笑)를 터뜨리며 현찬에게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며 길게 늘어졌고 등 뒤로 일렁이는 불꽃 망토는 날개 모양으로 펼쳐졌다.

그가 휘두르는 뜨거운 지옥 불은 멀리 떨어진 악마들에게도 후끈한 열기를 선사했다. 바로 코앞에서 그 불꽃을 막아내는 현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뜨거운 기온에 눈살을 찌푸렸다.

‘미치겠군.’

괜히 파르고잔 군단이 싸움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니다. 예로부터 불이란 파괴의 상징이었고 모든 자연계 원소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했다.

파르고잔의 힘은 뜨거운 불을 다루는 단순한 것이지만, 그렇기에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숨쉬기도 벅차.’

피처럼 붉고, 끓어오르는 마그마처럼 폭발적인 파르고잔의 옥염(獄炎)은 주변 대기를 순식간에 연소했다. 지면에 자라난 풀들은 순식간에 말라버리더니 검은 재로 변해버렸고 뜨거운 열기 때문에 대기가 일렁이며 공간이 휘었다.

파르고잔은 정작 자신의 공격에 현찬이 멀쩡해 보이자 기뻐하며 출력을 올렸다. 거대한 화염 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며 세계에 번져나갔다.

현찬은 극한까지 끌어올린 마력과 헤르메스에게 빌린 신력을 몸에 둘러 파르고잔의 화염의 열기에 맞섰다.

‘단순히 불꽃을 일으켰을 뿐인데도 이만한 위력이라니.’

화염으로 인한 열기와 공기의 연소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저 열기의 근원이 불꽃으로 이루어진 공격 그 자체였다. 대체 안쪽에 얼마나 되는 열량이 잠들어있는지 모를 불꽃 창이 현찬을 향해 쏘아졌다.

현찬은 즉시 아이기스를 비스듬하게 세워 창을 막아냈다. 화염 창은 아이기스의 바깥을 타고 미끄러지며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순식간에 새빨간 선 하나를 그었다.

거대한 먹구름은 불꽃의 창이 다가오자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고고도까지 올라간 창은 내포된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

하늘에 붉고 거대한 태양 하나가 생겨났다. 원구 형태로 벌어진 폭발은 주변 공기를 집어삼키며 팽창하더니 이내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몸집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빠르게 수축하며 사라졌다.

직후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주변을 삼켰고 폭풍이 몰아쳤다.

“으아아악!”

멀리 떨어진 각 진영에서도 악마들은 몸이 날아가지 않도록 잔뜩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엄청나게 멀리서 터진 공격이 저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니. 심지어 저런 공격을 파르고잔은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저것이…… 마왕의 진짜 힘.’

저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그들은 여기서 더 멀리 물러나야 하리라.

“무척 강하잖아?”

파르고잔의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으며 현찬이 느낀 건 그는 현찬이 지금까지 싸워 온 마왕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점이었다.

아니, 그 말에 어폐가 있었다. 지구에 찾아왔던 옥사비누스와 겔루키스는 강하기는 했지만 결국 마계에서 벗어난 영향으로 힘에 제약을 받았다. 어떻게든 지구를 마계화 하려 들어 힘 일부를 되찾았지만, 그마저도 본래의 진짜 힘이 아니었다.

즉 현찬은 전성기 힘을 지닌 마왕과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마왕?

이름이 ‘왕’일뿐이지 실제로 지닌 힘은 이미 신의 수준에 근접했다.

“왜 계속 피하기만 하는 거냐! 어서 네놈도 제대로 덤벼 보라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현찬은 아이기스의 뒤에 숨겨놓은 창을 빠르게 뻗었다. 새하얀 빛이 한 줄기 선이 되어 현찬과 파르고잔의 사이를 이었다. 파르고잔은 황급히 몸을 틀어 현찬의 찌르기를 피했다. 찌르기에 실린 힘이 워낙 강해서 파르고잔은 허공에서 자세를 잡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파르고잔의 입가에는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즐거운 미소가 맺혔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싸움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양쪽이 서로 공격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고 수를 읽고 그 빈틈을 비집으며 결국에 유효타를 먹인다.

그것이 승리의 쾌감이자 파르고잔이 가장 바라던 것이었다.

“하하하하하!”

파르고잔이 웃음을 터뜨리자 주변의 화염이 더욱 격하게 타올랐다.

이제 파르고잔은 불길로 뒤덮이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그야말로 온몸이 화염 그 자체가 되었고 주변 공간이 일렁이며 뒤틀렸다.

“간다!”

파르고잔은 화염을 분출하여 가속도를 올려 현찬에게 달려들었다.

&

“빌어먹을.”

옥사비누스는 현찬과 파르고잔의 격돌을 보며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는 파르고잔을 노려보았다.

‘저 멍청한 자식 때문에 계획이 틀어졌다.’

원래 옥사비누스가 계획한 것은 세아리스 군단과 파르고잔 군단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두 진영이 서로 엉키고 싸우는 동안 옥사비누스는 자신이 몰래 준비했던 비장의 수를 사용하려고 했었다.

그런 계획은 파르고잔의 돌발 행동에 무산되고 말았다.

‘저 망할 능구렁이 같은 녀석…….’

옥사비누스도 알고 있었다. 파르고잔이 자신이 무언가를 저지르려는 것을 눈치채고 있다는 걸. 그것을 막기 위해서 파르고잔은 일부러 저렇게 앞에서 나서면서 잡졸들을 멀리 쫓아낸 것이다.

옥사비누스는 어떻게든 의심을 피하려고 자신의 군단마저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했다. 파르고잔은 그런 옥사비누스의 속임수에 걸리지 않았다. 옥사비누스는 결국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아직 기회는 있다. 오히려 저렇게 둘이서 싸워준다면 내 쪽에 시선이 가지 않아서 좋지.’

옥사비누스가 머리를 빠르게 굴리는 그 순간이었다.

쿠웅! 어디선가 느껴지는 자그마한 진동에 땅이 흔들렸다. 그것만으로 옥사비누스의 상념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진동이 점점 커지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기척에 옥사비누스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보랏빛 안개가 옥사비누스의 몸을 집어삼키는 듯하더니 그의 몸은 이미 멀리 떨어진 장소로 이동해 있었다. 그 직후 조금 전까지 옥사비누스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발이 떨어졌다.

콰앙!

엄청난 진동과 함께 지면이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크레이터가 생겼다. 강한 바람이 몰아치며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자 옥사비누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마법으로 먼지를 막아냈다.

“깔끔 떨면서 쥐새끼처럼 행동하는 건 여전하구나. 옥사비누스.”

“…… 세아리스.”

옥사비누스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고층 빌딩과 맞먹는 거대한 덩치를 지닌 세아리스가, 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거대한 섬광과 폭발이 터져 나오며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것이 그녀가 지닌 거대함을 더욱 가중했다.

“그 거대한 덩치로 미친년처럼 움직이는 건 여전하구나.”

“아아. 잡설은 됐고. 내가 널 못 찾을 줄 알았어? 이런 곳에 숨어서 또 무슨 꿍꿍이를 벌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가 그냥 넘어가 줄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야.”

세아리스는 옥사비누스가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항상 그랬다. 마왕이며 강력한 사령술사지만, 정작 하는 행동은 음험하기 짝이 없었다. 뒤에 숨어서 이상한 일들을 꾸미고 이익이 되는 일로만 움직이는…… 세아리스가 가장 싫어하는 기회주의자였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이 지긋지긋한 관계도 끝을 내야 하지 않겠어?”

“과연. 네 말대로다.”

옥사비누스는 세아리스를 마주하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분명히 상성 상 근접전에서는 옥사비누스가 불리하다. 세아리스는 절대로 그런 옥사비누스를 놔줄 생각이 없었고, 그 의지는 확실히 그에게 전해졌다.

그 자신감에 세아리스는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옥사비누스. 이미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구나.”

옥사비누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와서 더 숨길 것도 없겠지. 애초에 예상하지 않았나. 내가 뭘 믿고서 너를 향해 이렇게 전면전을 펼쳤다고 생각했지?”

애초에 옥사비누스는 파르고잔 하나만 믿고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다. 그는 파르고잔조차 믿지 않았다. 진짜로 믿을 수 있는 거라고는 결국 자신의 손안에 들어와서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것들뿐이다.

그에겐 충분히 그러한 것들이 있었다.

“세아리스. 너는 내 주특기가 뭔지 알고 있겠지.”

“그야 더러운 시체 만지는 일이지.”

마계의 모든 마왕은 타고난 격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힘, 권능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었다. 세아리스는 거대한 힘 그 자체를, 파르고잔은 화염을, 겔루키스는 강력한 마력을 타고났다.

유일하게 마왕 중에서 이질적인 녀석을 뽑는다면 그건 바로 옥사비누스일 것이다.

옥사비누스는 물론 강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악마 종과 비교하면 그는 확실히 강했다. 그러나 다른 마왕들과 비교하면 옥사비누스는 약하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는 타고났다고 할 만한 격이 전혀 없었다.

유일하게 옥사비누스를 마왕으로 올라가게 한 것은 그가 다루는 사법(死法)이었다.

죽은 자들을 다루고, 생명을 가진 자들에게는 그 자체만으로 영향을 주는 죽음의 기운을 다루는 마왕. 그것이 바로 옥사비누스였다.

생명체를 상대로 절대적인 상성을 자랑하는 그의 힘이 그를 마왕의 자리까지 올라가도록 했다.

다른 마왕들은 그런 옥사비누스를 저급하다고 무시했지만, 그것이 지닌 가능성 그 자체는 무시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옥사비누스가 떳떳하게 마왕이라는 이름을 걸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시체보다 더 더러운 건 네년이라고 말 하고 싶지만, 일단 그 말대로다. 나는 사법을 다루며 죽은 자들을 부활시킬 수 있지. 나의 힘이라면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내 손에 쥘 수 있어.”

그리고 그것은.

“같은 마왕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뭣?!”

옥사비누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멀리서부터 파공성이 들려왔다. 세아리스는 황급히 고개를 뒤틀었다.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은 순발력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날린 기습 공격은 무산되었다.

그것은 거대한 갑옷으로 뒤덮인 거한이었다. 그 정체를 알아본 세아리스는 눈을 부릅떴다.

“겔루키스!”

현찬에게 죽었던, 시체조차 찾지 못했던 겔루키스가 이 자리에서 등장했다.

“그의 시체를 얻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얻기만 한다면야 내가 원하는 대로 주무를 수 있지.”

옥사비누스는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세아리스. 너는 옛날부터 겔루키스와 미친 듯이 승부를 보고 싶어 했지. 그 염원, 녀석이 죽은 뒤에도 내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줬다. 어디 열심히 싸워보라고.”

“옥사비누스 너 이 자식!”

세아리스는 옥사비누스를 잡으려고 했지만 겔루키스가 다시 돌격해오는 바람에 쫓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옥사비누스의 사령 능력은 대단해서 죽은 자라 하더라도 살아생전의 능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겔루키스는 죽기 전의 그다. 전성기 힘을 지닌 마왕이라는 것이다.

방심하는 순간 당하는 건 이쪽이 되고 만다.

쫓는 걸 포기하고 겔루키스와 싸우는 세아리스를 보며 옥사비누스는 느긋하게 계획했던 일을 벌이기 위해 자리를 떴다.

아니, 뜨려고 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길게 늘어진 천들이 거미줄처럼 그의 몸을 속박하려 들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건……?”

이 공격. 예전에 본 적 있었다.

그가 겔루키스와 함께 지구를 침략한 시절 보았던 것이었다.

옥사비누스의 앞에 한 여성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착지했다.

하늘하늘한 천이 휘날리는 옷을 입은 양 리화는 자신의 마력을 끌어 올리며 옥사비누스를 노려보았다.

“이번엔…… 그때처럼 당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건방진 인간 놈이……. 이번에야말로 그때처럼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양 리화와 옥사비누스가 서로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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