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201화 마왕 연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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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회주(惡神會主).
그의 정체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정보를 읽을 수 있는 <헤르메스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것을 사용하고도 악신회주의 정체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세계에서 꼭꼭 숨겨진 존재였다.
정확히는 그 스스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은 것이리라.
한때 가장 큰 흑막이라 생각했던 <일루베 아르카>의 주인인 에르카닐도 결국엔 누군가의 말을 따르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렇다는 건 진짜로 지구의 뒤편에 숨어서 암약하는 조직은 악신회일 것이다.
신화 속에 존재하는 악한 신들에 제물을 바쳐 현계로 강림시키는 조직.
<세계연합>에서 마석의 흐름과 유통을 통해서 놈들의 위치를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별 이렇다 할 성과조차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악신회는 그만큼 남들에게 걸리지 않게 잘 숨어있었다.
아마 현찬도 <세트>가 직접 나서서 다 떠벌리지 않았다면 악신회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현찬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악신회의 주인은 대체 어떤 존재 이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이는 것일까
<세트>, <아수라의 왕>, <야마타노오로치>, <루시퍼> 등을 불러낼 정도라면 그는 매우 범상치 않은 자가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신화 속에서도 내로라하는 악신들을 이끌고서 조직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무엇보다 지구에서는 절대 생각할 수도 사용할 수도 없는 방법을 사용했다.
제물을 이용한 악신의 강림.
다른 멸망한 차원에서 넘어온 에르카닐의 뒷배.
이것만 보아도 악신회주의 정체가 정상적인 존재가 아님을 능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과연 그는 누구란 말인가
지금으로서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세트>와 <루시퍼>를 잃은 악신회인 만큼, 최대한 자중해서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연합>의 시선이 쏠리는 걸 생각해서라도 아직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더 고민해도 의미가 없다.’
악신회가 완전한 <대통합>이 벌어지기 전부터 다른 차원에 손을 뻗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웠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마왕 연합이다. 솔직히 연합이라고 부르기엔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아무리 둘이라 하더라도 마왕이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었다.
“아아! 짜증 나는구나!”
세아리스는 그렇게 외치며 침대에 몸을 던져 대자로 누웠다. 풀썩. 그녀의 몸이 한차례 그게 흔들리더니 안정을 되찾았다. 세아리스는 손으로 이불을 쥐고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끌고 와 몸을 둘둘 말았다.
“이대로 시간을 끌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쪽도 어떻게든 싸울 준비를 해야 하겠어. 으으! 겨우 가꾼 평화가 다시 무너지려고 하다니. 나를 따르는 녀석들을 볼 낯이 없는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
세아리스는 전쟁이 일어나며 자신의 백성들이 불만을 품는 것에 불안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현찬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찬은 이 성으로 오면서 밭에서 일하던 다양한 종족들을 보았다.
서로 다른 종족임에도 서로 자연스럽게 섞이며 웃으면서 즐겁게 일을 하던 그들의 모습을.
그들은 분명히 평화라는 이 환경에 적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미 멸망해버린 자신의 세계를 그리워하겠지만, 거기에 목을 매진 않으리라.
그렇기에.
그런 사람들이기에.
자신들이 정착한 이곳이 전쟁의 불씨에 휘말리는 순간 무기를 들고 일어날 것이다.
누구보다도 소중했던 고향을 잃었던 그들은 더는 잃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들은 누구보다도 세아리스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 불안하면 나도 도와줄게. 뭐, 그때 보여줬던 힘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도와줄 여력은 있으니까.”
“후유. 그대가 그렇게 말하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이 되는구나.”
“사실 네가 말렸어도 싸울 생각이었어. 파르고잔이라고 했지 녀석과는 그래도 승부를 봐야 할 것이 있으니까.”
“그 싸움광 녀석 말이더냐 녀석과 무슨 연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니. 뭐, 썩 좋다고 할 관계는 아니지만.”
사실, 관계라고 할 것도 없었다. 파르고잔의 군단은 한번 지구를 침략하려고 했으며, 현찬이 그들을 전부 쓰러뜨린 것이 전부였다. 현찬의 힘을 보고 흥미로워하던 파르고잔이 나중에 싸워보자고 멋대로 정했을 뿐.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 왔다.
어떻게 보면 참 기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어쩌면 이 상황 자체가 정해진 운명의 순서일지도 모른다.
‘재미있어.’
현찬은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거나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파르고잔은 언젠가 없애야 할 적이었다. 그 기회가 지금 찾아왔으니, 놓치지 않고 잡을 뿐.
“애초에 이쪽도 대충 다른 마왕들이 움직일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어.”
“뭐, 그쪽도 충분히 예측 가능하기는 하겠구나.”
“지구에는 그런 걸 분석하는 전문적인 사람들도 있거든. 그게 아니라도 다른 마왕이 지구를 침략했다가 나한테 된통 당했으니 당연히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러니…….”
싸울 수밖에.
그리고 기왕 싸운다면, 최선을 다해 녀석을 쓰러뜨릴 것이다.
현찬은 그런 각오를 다잡았고 세아리스는 고개만 살짝 돌려 현찬의 옆모습을 올려다보았다.
&
파르고잔의 영토.
염옥마왕(炎獄魔王)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파르고잔의 군단이 머무는 이곳은 그야말로 불의 세계였다.
강 대신 뜨거운 용암이 흐르고 지면에서는 독한 유황 가스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곳.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매우 황량한 이곳에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성 하나가 있었다.
용암으로 이루어진 도해가 주변을 가득 채운 커다란 성은 오직 한 존재를 위해 지어진 요새다.
마왕 파르고잔.
그는 자신의 옥좌에 앉아 손님을 마주하며 반갑게 웃었다.
“놀랍군. 설마 네 쪽에서 먼저 동맹을 맺자고 주장 할 줄이야.”
머리카락 자체가 불길로 타오르는 마왕. 입고 있는 복장도 검은 흑요석처럼 생겼으며 곳곳에 붉게 달궈진 갑옷이었다.
그 외모는 왕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싸움을 위해 타고난 전사처럼 보였다.
파르고잔은 불로 이루어진 풍성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을 빛냈다.
“옥사비누스.”
“파르고잔.”
옥사비누스는 점잖은 태도를 고수하며 파르고잔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애써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현찬에게 당했던 상처가 다 아물지 못한 상태였다.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르고잔은 이미 옥사비누스의 상태를 꿰뚫어 본 뒤였다.
“그 음험한 녀석이 나에게 먼저 접근할 줄이야. 겔루키스처럼 밑도 끝도 없이 무작정 싸우는 내가 야만스럽다고 비웃지 않았던가 ”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우습구나. 내가 네 상처가 아직 네놈의 몸에 고통을 안겨주는 걸 모르는 줄 아느냐 다 듣고, 다 보고 있었다. 지구의 인간 녀석에게 호되게 당했다면서 ”
“……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편해지겠군. 그래, 지금 세아리스가 그 지구의 인간과 손을 잡았다. 혼자서 마왕급 세 명과 싸워서 이길 정도로 강한 녀석이 말이지.”
“크하하하!”
파르고잔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앉고 있는 흑요석 옥좌에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홍염처럼 분출되었다. 그 뜨거운 열기에 옥사비누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파르고잔은 웃음을 그쳤다. 불길도 함께 사그라졌다.
“아아. 미안하구나. 너무 참을 수 없어서 말이다.”
“뭐가 말이지 ”
“마치 ‘그 인간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우리는 전부 죽는다.’라는 것처럼 말하는 네놈의 태도가…… 너무 웃겨서 말이지.”
“…… 지금 날 능멸하려고 하는 건가 ”
불리한 입장인 옥사비누스도 이런 소리를 들으면 화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아서라 아서. 지금 네놈의 상태로, 나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
“그렇다면 나도 묻지. 네놈은, 지금 상태의 나를 상처 없이 쓰러뜨릴 수 있다고 보는가 ”
흉흉한 살기가 섞여든 그의 목소리에 파르고잔은 지긋이 옥사비누스를 주시했다. 옥사비누스도 지지 않고 기세를 끌어올리며 파르고잔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몇 분간 대치 끝에 먼저 손을 든 것은 파르고잔이었다.
“아아. 그래. 알겠다. 알겠어. 어차피 여기서 우리끼리 싸워봤자 이득을 보는 건 그 괴짜 세아리스 밖에 없을 테니까.”
“…… 잘 선택했다. 지금 이대로 놔두면 세아리스의 군단은 이 마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단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되기 전에 우선 우리 둘이 손을 잡고 녀석을 치자 ”
“그렇게 되는 거겠지.”
“흠.”
파르고잔은 고민했다. 지금 이 음흉한 녀석과 손을 잡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멍청한 겔루키스는 죽고 말았고 녀석은 상처를 입었다. 복수심에 타오르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파르고잔이 거기에 이용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옥사비누스의 뜻대로 움직이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달콤한 먹잇감이 있었다.
‘강현찬이라고 했지. 그 인간이 지금 마계에 와 있다고 ’
언젠가 한 번 붙어 보고 싶은 인간이었다. 자신의 군단 중 일부라고 하지만 순식간에 쓸어버렸던 강자. 녀석의 그 힘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싸우고 싶어서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래. 어차피, 녀석과 언젠가는 싸워야 한다.’
그 기회가 지금 찾아왔으니 미룰 이유가 없었다. 파르고잔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제안. 받아들이도록 하지.”
“…… 그래도 돌아가는 머리는 있었군.”
“이봐. 나를 너무 이상하게 보는 거 아니야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겔루키스 녀석처럼 생각하지 말라고.”
“…….”
옥사비누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파르고잔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파르고잔은 상당한 싸움광에 호쾌한 성격으로 겔루키스처럼 무대포 같은 성격을 닮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달랐다.
파르고잔은 이익을 읽는 눈이 탁월했다. 그는 자신에게 손해가 되면 빼고 이익이 되면 들이미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 성격이다. 지금 그가 옥사비누스의 제안을 승낙한 것도 결국에 무언가 자신이 있어서다.
그러지 않았다면 파르고잔은 당장 이 자리에서 옥사비누스를 죽였으리라.
‘이 녀석도 조심해야 해.’
세아리스를 막을 필요로 동맹을 맺었지만, 그는 파르고잔을 믿지 않았다. 겉모습은 곰 같지만, 속에는 능구렁이를 몇십 마리나 품고 있는 녀석이 파르고잔이었다.
방심하는 순간 구렁이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의 목을 물으리라.
“뭐, 동맹을 맺었지만 서로 축제니 뭐니 그런 거창한 건 하지 말자고 허례허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이쪽이 할 말이다. 애초에 그런 걸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지구의 사절단이 세아리스의 영토를 떠나기 전, 녀석들을 쳐야 해.”
“빠르게 시작하자 이건가 그거 좋군. 그래서 병사들은 언제 모으려고 ”
“이미 모아두었다. 네놈만 모으면 바로 움직일 수 있을 거다.”
파르고잔은 재밌다며 손뼉을 쳤다. 그의 붉게 달아오른 건틀릿이 서로 충돌하며 허공에 불똥을 튀겼다. 그 과장된 행동에 옥사비누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하. 너무 노려보지 말라고. 이럴 줄 알고 나도 미리 부하들에게 전쟁을 준비하라고 일러두었으니까.”
“그거 다행이군.”
옥사비누스는 겉으로는 평정심을 가장하며 그렇게 말했지만 속은 달랐다.
‘능구렁이 녀석.’
다른 마왕들은 옥사비누스를 음험하다고 하지만, 사실 가장 음험한 것은 파르고잔 녀석이 아닐까 싶었다. 다른 마왕들에게 저 속내를 들키지 않은 것만 해도 그랬으니까.
‘그라두크 녀석은 내 제안을 거절했지. 언제나처럼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마지막 기회다.’
욱신!
왼쪽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옥사비누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현찬에게 당했던 상처를 회복하는 데 전념했음에도 너무나도 큰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았다.
지금 낼 수 있는 힘은 전력의 약 6할 정도.
남은 시간 동안 회복에 다시 전념한다면 8할까지 낼 수는 있을 것이다.
‘지구에서 어땠을지 몰라도 이곳은 마계. 인간. 네놈이 그 힘을 다시 사용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옥사비누스의 눈빛이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