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199화 마왕 연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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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가득 뒤덮을 정도로 막대한 크기의 검은 구름은 그대로 소용돌이를 그리며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검은 소용돌이는 점점 한곳에 모이고 압축하며 한 여성의 형상을 갖추었다.
머리에 자라난 5개의 뿔과 약간 햇볕에 그을린 것 같은 연한 붉은 피부. 분명히 악마 모습인데도 아름다움이 물씬 배어 나오는 외모까지. 무엇보다 어지간한 빌딩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그녀의 덩치가 가장 압도적이었다.
“세, 세상에.”
“정말로 대단하군.”
그녀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를 보았을 뿐 본신을 본적 없던 헌터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린 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세아리스가 가만히 있기만 함에도 피부가 찌릿찌릿할 정도의 존재감이 헌터들의 몸을 자극했다.
“오오! 잘 왔구나! 나의 땅에!”
드드드드!
그녀의 거대한 덩치에서 나오는 막대한 성량이 지천을 울렸다. 여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작게 흔들렸고 헌터 중에서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몸을 크게 움츠렸다.
단순히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마왕이라는 직위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헌터들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
“…… 정말로 …… 대단해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양 리화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아리스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그녀는 새삼 마왕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양 리화는 그런 마왕들과 싸운 적도 있기도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저런 마왕이, 무려 넷이나 더 있다니.”
“하나 줄어서 이제는 셋이죠. 세아리스 포함하면 넷.”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 세아리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현찬이 자신의 영토를 찾아온 것이 정말로 기쁜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체통을 지키지도 않고 그녀가 직접 마중 나왔을 리가 없다.
그녀의 부관인 글루아스가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고쳐 썼다.
“마왕님. 이곳은 마왕님의 영토. 손님이 찾아오셔서 기쁘신 건 알겠지만, 마왕으로서의 체통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에잉. 글루아스는 항상 나에게 잔소리구나. 다른 마왕들의 부관은 다들 깍듯하다는데 어찌 내 부관만 이러는지.”
“마왕님께서 잘 행동하시면 저도 잔소리할 일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손님들이 힘들어하시니 본신 구현은 억눌러 주시길. 다들 놀라십니다. 마왕씩이나 되면서 그런 실수를 범하실 생각입니까 ”
“앗.”
글루아스의 지적에 세아리스는 그제야 자신이 인간들을 상대로 본체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녀는 황급히 몸을 검은 안개로 감싸며 작게 줄이고 줄여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주변을 강하게 짓누르던 기운이 사라지자 헌터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아하하! 이거 미안하구나. 너무 기쁜 나머지 신경을 쓰지 못했어.”
“뭐, 그렇게 실수할 수도 있지.”
“그렇지 ”
“손님. 마왕님의 체통을 위해서라면 이럴 때야말로 따끔하게 혼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안함에 어색하게 웃는 세아리스, 그런 세아리스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글루아스.
사람들은 그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생각한 마왕의 모습과 세아리스의 행동은 너무나도 상상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부관이라 불리는 글루아스가 사실상 세아리스에게 잔소리하는 광경은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이 마왕은 정말로 다른 악마들과 다르구나.
사절단은 세아리스를 향한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쪽으로.
나름 걱정했던 사람들이 긴장을 풀자 현찬도 속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세아리스와 악수했다.
“좋은 부관을 뒀네.”
“말도 마라. 할 말 안 할 말 다 한다고. 그걸 들어주느라 얼마나 귀가 아픈지 아느냐 ”
“마왕님…….”
글루아스의 안경이 빛났다. 그녀가 잔소리를 시작할 징조가 보이자 세아리스는 과장되게 움직이며 현찬의 등 뒤로 숨었다. 아무리 그녀라도 손님의 앞에서 자신의 주인을 막 대할 수는 없을 거라는 계산된 행동이었다.
결국, 글루아스는 한숨을 내쉬며 항복 선언을 했다.
“손님들. 잠시 지체돼서 죄송합니다. 안으로 모시도록 하죠.”
멈췄던 사절단의 행렬이 다시 움직였다. 세아리스는 현찬의 말에 함께 타서 현찬의 등 뒤에 앉았다. 그녀는 두 다리를 한쪽으로 뺀 채 현찬에게 어깨를 기대며 물었다.
“어떠냐. 직접 본 나의 영토는.”
“음…….”
현찬은 잠시 뜸 들이며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넓은 초원과 멀리서부터 보이는 커다란 산들. 그 산의 중턱을 깎듯이 내려오며 지어진 커다란 성과 성 주위로 넓게 펼쳐진 커다란 도시. 푸른 하늘에는 처음 보는 새들이 날아다녔고 구름도 적당하고 햇볕도 따스하다.
“전혀 마계답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마계다운 느낌 ”
세아리스의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그려졌다.
“좋은 대답이구나.”
“그보다 너희 부관도 대단하네. 최고의 권력을 쥔 너에게 저렇게 막 대하는 걸 보면.”
“말도 마라. 어릴 때 위험에 빠진 걸 구해준 이후로 계속 나를 모신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내게 잔소리를 하게 되더구나. 아기 때는 그렇게 귀여웠는데 어쩌다 저렇게 됐는지. 혹시 이게 다 지구 말로 시집을 가지 못해서…….”
“마왕님 다 들립니다.”
“헙.”
글루아스의 스산한 목소리에 세아리스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이따 성에 들어가서 보죠.”
“그, 글루아스. 그게 말이다…….”
세아리스가 어딘가 애처롭게 변명하려고 했지만 글루아스는 고개를 돌리며 무시했다. 그녀가 대충 어떤 성격인지 벌써 잘 알 것 같아서 현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뭐, 고생하라고.”
“이익! 남의 고통을 보면서 웃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자업자득이잖…… 악! 뿔로 찌르지 마! 아프다고!”
“흥이다!”
세아리스는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뿔로 현찬의 코트가 덮지 않은 목덜미를 콕콕 찔러댔다.
마왕의 뿔은 은근히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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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아리스가 거주하는 거대한 첨탑.
도시의 시민들이 부르기를 <공주의 거처>라고 부르는 그곳이 세아리스가 매일 머무는 장소였다. 그녀의 부관인 글루아스만이 출입이 허락된 일종의 성역에 오늘 예외의 존재가 한 명 발을 들이밀었다.
“여기인가. 엄청나게 크네.”
과연 세아리스가 거주하는 공간답게 첨탑은 거대했고 거기로 들어가는 입구인 문 또한 매우 거대했다. 마계로 넘어오는 <문>보다 이쪽에 있는 문이 더 크다니 웃긴 현실이었다.
시간은 늦은 밤.
사절단들도 각자 정해진 숙소에서 묵는 중인 이 시간에 현찬 혼자서 마왕의 거처에 찾아왔다.
예의가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건 세아리스가 직접 불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세아리스. 있어 ”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문은 크기만 큰 것이 아니고 정말로 튼튼하다는 걸 증명하는지 안이 금속으로 꽉 차 이루어져 있었다. 마계에서만 난다는 독특한 금속인 헬라늄이었다.
넓은 공간에 현찬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이 퍼져나갔다. 그러길 몇 초. 안쪽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찬은 문 옆의 벽에 등을 기댄 채 시간을 죽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대충 3분 정도 지나자 거대한 문이 끼이익 열렸다. 그 문의 틈새로 인간 모습 세아리스가 고개를 내밀었다.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구나.”
“밤에 오라면서. 지금이면 충분히 밤 아닌가 ”
“나는 조금 더 늦게 찾아올 줄 알았다. 그래서 준비를 다 끝내지 못한 터라…….”
“준비라니.”
마왕이 준비할 게 필요하단 말인가
자연스럽게 현찬의 머릿속에는 마왕이 할 준비라는 것에 관한 상상이 펼쳐졌다. 현찬이 생각하는 마왕이란 거대한 옥좌에 앉아서 용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그런 고리타분한 존재였다.
과연 세아리스의 방도 그렇게 생겼을까
붉은 카펫이 깔린 어둠침침한 방에서 용사를 기다리는 마왕의 모습. 지금까지 보여준 그녀의 모습과는 조금 괴리감이 컸지만, 그만큼 기대감도 있었다.
[현찬아. 그건 너무 지나치게 클리셰적인 생각 아니야 ]
[아무리 나라도 그런 구시대적인 생각은 하지 않을 거다. 계약자여.]
현찬이 대충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눈치챈 두 신이 현찬에게 핀잔을 주었다.
“내가 부른 손님을 이대로 계속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나. 들어와라.”
“아, 음. 실례하겠습니다.”
세아리스의 허락과 함께 현찬은 문의 틈새로 세아리스를 따라 들어갔다. 방은 불을 켜지 않았는지 상당히 어두웠다. 바닥에 깔린 푹신한 카펫만이 보일 뿐. 마치 검은 안개 속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넓기는 엄청나게 넓구나.”
바깥에서 첨탑의 크기만으로도 대충 얼마나 넓은지 유추했지만, 막상 들어온 내부는 더 컸다. 공간계열 마법을 걸어서 확장한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편하게 지내려면 본체로 머물러야 하는 공간이니 말이다. 당연히 클 수밖에 없지.”
게다가 튼튼하기는 엄청나게 튼튼해서 세아리스가 난동을 피워도 무너지지 않게 설계했다. 거의 핵 방공호 이상 가는 단단함을 지녀서 이곳에 정말로 핵이 떨어져도 이 첨탑은 무너지지 않으리라.
“그런데 너무 어둡지 않아 ”
“자, 잠깐만 기다려라.”
현찬의 앞에 선 세아리스는 잠시 심호흡하더니 마력을 운용하여 방 전체로 퍼뜨렸다. 그러자 어둠으로 가득 찼던 거대한 공동 같던 방이 환하게 밝혀졌다. 순간 비추는 밝은 빛에 현찬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을 뜨고 나서 현찬은 그제야 세아리스가 거주하는 방 내부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마왕이 거주하는 공간이라고 부르기에는 세아리스의 방에는 무언가가 엄청나게 많았다. 벽 부분 각종 진열대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기념품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방 중앙에는 그녀의 본체가 누워서 잘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침대가 있었다.
저게 침대인지 경기장 필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그 근처에는 그녀의 다양한 물건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마왕의 방이라기보다는 그저 독거하는 20대 중반 여성의 방에 가까웠다.
“어, 어떤가 ”
“어떠냐니.”
“다른 누군가에게 내 거주 공간을 보여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연히 그것에 관한 감상을 묻는 것이 아니겠느냐 ”
“감상이라고 해도…… 음. 침대가 크다 ”
“너무 재미없는 감상이구나.”
“재미를 바라지 마. 그냥 좀 신기하기는 하네. 다른 마왕들과 다르게 온갖 세계의 물건들을 가져와서 방에 장식하고, 뭐라고 해야 할까…… 가지고 있는 직위보다 뭔가 소녀 같다는 느낌이 들어.”
“그, 그러더냐 ”
세아리스는 뭔가 부끄러운지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었다.
“설영 씨 방이 딱 이런 느낌일 것 같아서.”
“…… 뭔가 미묘한 평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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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취!”
홀로 사는 황설영은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갑자기 간지러움이 들어서 재채기를 했다. 아직 날씨가 춥지도 않은데 왜 갑자기 재채기가 나온 걸까 혹시 누군가가 그녀의 이야기를 하는 걸지도 몰랐다.
황설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눈앞에 놓인 맥주캔을 쥐었다.
지난번 술에 취한 이후로 그녀는 강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맥주에 취하지 않을 정도는 돼야 적어도 현찬을 볼 면목은 살 테니까!
초점이 많이 엇나간 각오를 마친 황설영은 맥주캔을 따서 거침없이 한 모금 들이켰다.
“흐엥.”
그녀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소파 옆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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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나를 불렀다는 건 따로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거겠지 ”
“음. 그렇다.”
현찬은 세아리스가 잠을 자는 침대의 외곽에 걸터앉았다. 침대가 얼마나 크면 세아리스의 넓은 방에 가득 차 한눈에 다 보일 정도였다. 사실상 몸을 파묻고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였다.
현찬의 옆에 앉은 세아리스는 맨다리를 드러낸 채 그것을 앞뒤로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중요한 이야기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
“그게 뭔데 ”
“다른 마왕 녀석들에 관한 것이다.”
음.
현찬은 예상했던 것이 왔다는 생각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우리들의 동맹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서 말이다. 바깥에서…… 이상한 징조가 보인다.”
어쩌면.
“녀석들이 머지않아 나를 향해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