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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98화 (198/265)

# 198화.

198화 마계 사절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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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는 벌써 시끄럽네요.”

멀리서 들려오는 시위대의 함성에 현찬은 피식 웃었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뭣 때문에 저렇게 행동하는지 잘 알고 있다.

악마들에게 가족을 잃어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단지 악마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종교 가치관과 어긋나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어쩌다 휩쓸린 사람도 있을 테고.

그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마음에 들지 않겠지.

솔직히 이번 동맹에 관련된 건에 관해서 찬성한 사람 중에서도 태반은 불안함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또 그런 사람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그것이 한데 뒤섞이니 문제가 안 터질 수가 있을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

양 리화의 물음에 현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별일은 없을 겁니다. 시위대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악마들과 쿵작거리는 게 싫은 사람들이 몰려 있죠.”

“과격해지면 조금 위험한 거 아닌가요  저쪽에도 나름 뛰어난 영령과 계약을 맺은 각성자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기야 하겠지만, 이쪽에 있는 <세계연합>의 헌터들의 수준은 그 이상일 겁니다.”

사람들이 흔히들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인류 대다수가 각성자가 되었으니 이제 헌터들은 필요 없는 게 아닌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헌터가 되는 문턱이 낮아지고 전체적으로 헌터들을 향한 좋은 인식도 떨어지는 게 아닐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생각이다.

옛날 헌터들은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힘을 지녔기에 약자들을 보호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약자라는 개념이 상당히 희석된 현재 사회에서 헌터의 보호는 그렇게 필요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오히려 대다수 인류가 각성자가 되었기 때문에 헌터들의 질은 훨씬 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헌터라는 이름조차 달기 힘든 시대가 온 것이다.

당연히 헌터가 되려면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엄청나게 재능이 있거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것을 모두 거치고 나서 헌터라는 타이틀을 단 사람은 각성자 사이에서도 수준의 차이를 명확하게 둔 자들이다.

고작 각성했다는 이유로 영령과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만으로 헌터들을 우습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저쪽에는 믿을만한 사람이 있으니까요. 양 리화 씨도 만나 보셨죠  진 차이라는 소년을.”

“아. 그 아이…….”

양 리화도 잘 안다. 그녀 다음으로 중국에서 나온 2번째 신급 영령 계약자. 그녀의 뒤를 이어 제2의 오버랭크 헌터가 될 가능성이 큰 소년이다. 몇 번 만나본 적도 있고 그 이름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자신을 만났을 때 영광이라며 얼굴을 붉히던 자그마한 소년.

그 아이가 저 현장에 나가 있다는 말에 놀람과 함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그 아이, 예전과 다르게 엄청나게 강해졌거든요. 나중에 보면 놀라실걸요 ”

“정말요 ”

“진 차이만이 아니죠. 다른 얘들도 다 열심히 노력했어요.”

아직 오버랭크 헌터를 달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모가 있었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그들도 어엿한 오버랭크 헌터가 될 수 있다. 현찬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진 차이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자. 저희는 이만 가도록 하죠.”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현찬은 길을 걸었다. 저 앞에 헌터들이 둘러싼 채 대비하고 있는 <문>이 보였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한 곳에 섞이듯이 뒤엉킨 소용돌이 모양의 <문>. 외곽이 악마들의 조각이 잔뜩 있는 문은 어딘가 섬뜩함을 자아냈다.

“마치 지옥으로 통하는 통로 같네요.”

“악마들이 사는 곳인 마계라면 지옥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건 없겠네요.”

그곳의 환경은 상상 속의 지옥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각 마왕이 이끄는 군단마다 환경은 명확하게 갈린다. 지금은 죽고 없는 겔루키스의 영토는 황폐하지만 그래도 생명체가 살아가는 곳이고 옥사비누스의 영토는 온갖 죽음이 기어 다니는 죽음의 땅이다.

그러나 세아리스의 영토는 모든 마왕의 영토 중에서도 가장 비옥한 곳이라고 한다.

본인이 그렇게 장담했을 정도이니 아마 거짓말은 아니리라.

사람들의 함성.

필사적으로 인터뷰를 위해 질문하는 기자들의 외침.

하늘을 날아다니는 헬기의 소리.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사절단은 <문>으로 들어갔다.

마계를 향해.

&

화아악!

<문>을 통해 세계를 넘자마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운이 몸 전체를 가볍게 훑고 지나갔다. 대통합이 완전히 일어난 이후로 게이트나 문을 넘어갈 때 부하 현상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다른 세계는 지구와 본질에서 다르다 보니 무언가 묘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여긴…….”

감았던 눈을 뜬 양 리화는 조금 놀라운 목소리를 냈다. 그것은 뒤를 따라 들어오는 사절단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위에 펼쳐진 풍경을 눈에 담았다.

마계라고 한다면 검에 물든 땅과 붉게 물든 하늘 그리고 피처럼 시뻘건 태양이 떠 있는 곳이라고 다들 착각하고는 한다. 어떻게 보면 착각은 아니긴 하다. 옥사비누스의 영토가 딱 그러했으니까.

반면 세아리스의 영토는 그와 정반대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세계. 지면에는 풀이 가득 깔려있고 푸른 나무들과 산이 가득한 곳. 생명력이 풍부하며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곳.

이곳이 바로 마왕 세아리스의 영토였다.

“진짜 기대해 달라고 하더니, 그에 맞는 장소였네.”

현찬도 놀라기는 했다. 딱 한 번 마계로 넘어간 적이 있는 현찬은 겔루키스의 영토밖에 보지 못 했다. 세아리스의 영토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직접 본 적이 없으니 확신하지 못했지만, 과연 자랑할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누군가 다가온다.”

눈이 특히 좋은 레인져 계열의 헌터가 주의 주었다. 사절단은 모두 싸울 준비를 했다. 혹시나 적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이곳이 아무리 세아리스의 영토라 해도 다른 군단의 악마들이 넘어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적이라면 싸울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악마라고 가정한다면 이쪽에도 피해가 마냥 없지는 않으리라.

“어  모두 무기를 내려라!”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일말의 무리는 세아리스 군단임을 증명하는 깃발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마들은 강자를 숭상하고 특히나 자신이 따르는 마왕을 끔찍이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마왕의 깃발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 깃발을 단 무리는 세아리스가 보낸 자들이 확실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세아리스 님을 따르는 부관. 사장각의 글루아스라고 합니다.”

선두에 선 여성 악마는 예의 넘치게 깍듯이 인사했다. 눈가에 쓴 안경과 목덜미 부분에서 깔끔하게 묶은 검은 머리를 보면 비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세아리스를 따르는 악마답게 다른 악마들보다 피부색이 상당히 연했다.

어떻게 보면 피부색이 조금 다른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유일한 차이점은 머리 위로 뿔 4개가 길게 자라나 있다는 점이다.

사절단을 맞이해 준 세아리스의 부하들은 조금 독특한 생명체를 타고 있었다. 생긴 것은 말과 비슷하지만, 머리에 뿔이 달렸고 몸 전체가 새하얀 갈기로 뒤덮여 있었다. 무엇보다 덩치가 워낙 커서 한 마리에 악마 두셋이 탈 정도로 등이 넓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절단의 책임자인 강현찬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양 리화라고 하고요.”

“만나서…… 반가워요.”

“현찬 님과 양 리화 님이라고 하시는군요. 두 분 다 세아리스 님의 영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구의 손님이시여. 마왕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게 사절단은 세아리스의 악마들과 함께 숲길을 걸었다. 숲은 상당히 넓었지만 글루아스가 이끌고 온 커다란 말 덕분에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덩치가 큰 만큼 움직이는 속도도 상당히 빨랐다.

숲을 나서자 광활한 밭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곳에는 몇몇 악마 종과 다른 종족으로 보이는 인물이 노동하고 있었다. 설마 악마들의 세계에서 다른 종족을 보게 될 줄 몰랐는지 양 리화가 놀라워했다.

개중에는 인간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당연할 수밖에.

“저 사람들은…….”

“아. 저분들 말씀입니까  한때 다른 세계에서 살던 분들입니다.”

“여기에는 악마 종만 사는 줄 알았는데…….”

“다른 마왕의 영토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저희 마왕님의 영토는 다릅니다.”

글루아스는 어딘가 자부심이 느껴지는 어조로 설명을 이었다.

“다른 군단이 여러 세계를 침략한 만큼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들은 남아있는 법입니다. 세아리스 님은 그런 자들을 품고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토지를 주었습니다. 지금 저곳에 보이는 인간은 한때 무림이라는 세계에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무림…….”

그 말에 현찬이 반응했다.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무림이라고 한다면 파천마 백강오가 살던 곳이었는데.

마냥 멸망해서 전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생존자들이 남아있었다는 건 나름 놀라운 사실이었다.

“저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다양한 종족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화합과 조화. 이것이 저희 세아리스 군단이 신조로 삼는 것이니까요.”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사절단을 보더니 웃으면서 손을 크게 흔들어 주었다. 글루아스는 싱긋 웃으며 그들에게 가볍게 눈인사하는 것으로 답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저렇게 대할 정도라면 이곳이 얼마나 평화로운 곳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저런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닌 힘도 만만치 않은 걸 보면 막상 싸울 때가 된다면 또 무척 잘 싸우겠네.]

[평화로운 곳이지만 또 은근히 준비는 잘 갖춰져 있다. 마왕 세아리스라는 여자는 지난번 술 파티에서도 그랬지만 꽤 마음에 드는구나.]

아테나는 특히 여성이며 강인한 전사이자 호탕한 세아리스를 마음에 들었나 보다. 다만 현찬으로서는 그때의 술자리를 생각하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취해서 자신에게 거머리처럼 들러붙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히 남았다.

어딘가 한적한 시골의 느낌이 나게 하는 광활한 밭을 지나자 멀리서부터 거대한 성채가 보였다.

“저곳이…….”

“네. 저희 마왕인 세아리스 님이 주거하는 성입니다.”

“상당히 크네요.”

멀리 있음에도 확실히 크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나 성채 안쪽에 우뚝 선 성 하나는 근처 산 중턱과 맞물려 멋진 광경과 함께 웅장함을 자아냈다. 저렇게 큰 성이라면 정말로 사람이 수천 명 이상 살아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저 중앙에 우뚝 선 성이 마왕님께서 혼자 거주하시는 곳입니다.”

“네  혼자서요 ”

저 넓은 곳을 혼자서 사용하다니. 양 리화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글루아스는 조금 창피한지 얼굴을 붉히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희 마왕님이, 음. 조금 많이 거대하시다 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아아. 저는 알 거 같네요.”

세아리스의 본신을 직접 본 현찬으로서는 공감될 수밖에 없었다. 웃기만 해도 대기가 진동하는 세아리스가 살려면 그 공간은 정말로 넓어야 했으니까.

“엇  저건 뭐지 ”

“성에서 뭐가 흘러나오는데 ”

멀리서부터 보이는 성채의 중앙 가장 거대한 성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들이 흘러나오며 하늘을 뒤덮는 먹구름처럼 변했다. 그 먹구름은 천천히 이쪽 사절단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어  다가온다.”

“뭐지 ”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현찬은 저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여러분. 준비하세요.”

조금 당황하는 사람들에게 현찬은 걱정하지 말라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이 땅의 주인, 세아리스입니다.”

마왕 세아리스.

그녀가 사절단을 환영하기 위해 직접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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