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196화 (196/265)

# 196화.

196화 마계 사절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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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님. 괜찮으십니까 ”

주현창은 혹여나 자신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로키가 허공에 누워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긴 검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흐트러지며 마치 밤하늘처럼 펼쳐졌다.

로키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주현창은 무언가를 더 물어보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움찔거리는 손동작만이 안타까운 그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저랬다.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는 하루가 멀다고 계속 자신만의 고민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 ’

주현창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그는 로키의 계약자이긴 하지만, 로키가 그저 적당히 선택해서 뽑힌 인간에 불과했다. 그녀는 주현창을 자신의 계약자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걸로도 괜찮았다. 자신의 빛인 여신님과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래도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늘 그랬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조금 더 나서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자신은 직위도 높고 돈도 많으며 명성도 있다. 하지만 로키에게 주현창이 지닌 건 그저 하찮은 권력 쪼가리일 뿐이었다. 그가 로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다.

인간은 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절망감이 들었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분노가 일었다.

무엇을 해도 여신은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지만, 그녀는 항상 현찬을 보고 있었다. 대체 왜  그의 무엇이 특별해서 자신은 거들떠보지 않는 거란 말인가  그 또한 마음만 먹으면 강해질 수 있다. 당장만 해도 로키의 권능 줄 일부지만 주현창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주현창은 결정적으로 자신이 현찬과 비교해서 무언가 결여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단지 막연하게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이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에 분노를 품게 되었다.

자연히 화풀이 대상은 현찬에게 옮겨졌다. 주현창은 그 증오의 화살의 촉을 분노로 깎고 날카롭게 벼렸다. 언젠가 반드시 이것이 현찬의 심장을 꿰뚫기를 바라며 말이다.

‘쟤는 또 혼자서 이상하게 불타고 있네.’

공중에 떠다니며 곁눈질로 자신의 간이 계약자인 주현창을 보며 로키는 참을 수 없는 한심함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걱정하는지 모를 것이다.

알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로키는 주현창을 무시하고 다시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빠져들었다.

검은 바다에 몸을 담근 채 그 위를 정처 없이 떠다니며 로키는 스스로 물음을 던졌다.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

평소라면 언제나처럼 현찬을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그의 멋진 무용담을 듣고 그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그가 확실하다고.

발드르는 살아있다고.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로키는 자신의 처지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내가 고민이라니, 참 웃기지도 않는 일이네.’

신화 속에서도 그랬고 실제로도 그랬다. 로키라는 신에게 걱정과 고민이라는 것은 억만년은 멀리 떨어진 단어였다. 그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며칠 전에 찾아와서 자신에게 한방 크게 먹인 헤르메스의 말이 여전히 그녀의 기억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아주 조금만 진실 된 행동으로 다가와 준다면, 변하는 게 있을 거라……. 그 녀석도 많이 변했네.’

헤르메스도 그녀가 천계에서 알고 지내던 그가 아니었다. 남을 속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신이 속는 것은 싫으므로, 언제나 가식의 가면에서 자신의 진심을 숨겼던 신.

그녀가 천계에서 함께 다녔던 이유도 이런 부분에서 동질감을 가지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그랬던 헤르메스는 하계에 내려오고 나서부터 변했다. 누구보다도 그와 함께 장난을 치고 다녔던 그녀이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변화가 누구에 의해서 발생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변화라…….’

과연 그것이 필요한 것일까

스스로 그렇게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으면서도, 막상 변해버린 헤르메스의 모습을 보면 가슴 속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로키는 눈을 떴다.

사색의 바다에서 현실로 돌아온 그녀는 아직은 답을 내릴 때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까지는 일단 지켜보기로 하자.’

로키는 그렇게 되뇌며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

크르릉! 컹!

머리가 5개나 달린 거대한 짐승이 거칠게 짖었다. 이빨 틈새를 타고 흘러내린 침이 길쭉하게 늘어나며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그 광경에 리네넷은 몸을 움츠렸다. 더럽고 징그러운 것을 봤을 때 나오는 본능적인 혐오감이었다.

“리네넷! 집중해!”

“아, 네!”

그런 리네넷을 질타하며 앞서서 뛰쳐나간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현찬의 여동생인 강현지였다. 그녀는 5개의 머리가 달린 늑대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늑대의 머리 중 3개가 현지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머리 하나당 승용차 한 대는 거뜬히 삼킬 수 있는 거대한 아가리가 동굴처럼 그녀의 시야에 펼쳐졌다. 그러나 현지는 겁먹지 않고 바닥에 몸을 바짝 낮추어 그대로 슬라이딩했다. 지면을 타고 빠르게 미끄러진 그녀의 머리 위로 늑대의 이빨이 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대로 늑대의 턱 아래로 쭉 미끄러져 늑대 복부까지 도착한 현지는 그대로 허공에 손을 쥐었다. 그러자 새하얀 달빛으로 이루어진 활이 생겨났다. 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활의 시위를 당기자 화살이 저절로 생겼다.

그녀는 시위를 놓았다. 그것도 무려 수십 번이나.

찰나의 순간에 수십 발이나 쏘아진 빛의 화살은 그대로 늑대의 뱃가죽을 벌집처럼 뚫어버렸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고통에 늑대가 괴성을 내질렀다.

“지금이야!”

현지의 외침에 준비하고 있던 리네넷이 공격을 가했다. 그녀가 양손을 하늘을 향해 추켜올리자 지면의 모래가 거대한 손 모양으로 일어났다. 두 개의 손은 그대로 양쪽에서 늑대의 몸통을 강하게 짓눌렀다.

쿠웅!

깨갱!

지면이 한차례 진동하고 늑대의 거대한 몸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늑대의 몸을 뒤덮은 거대한 모래의 손은, 그 형체가 무너져 내리며 다섯 개의 머리를 지닌 늑대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그것은 단단하게 뭉치며 빠르게 굳어 그대로 늑대의 몸을 강하게 옥죄는 감옥이 되었다.

“나이스 어시스트! 리네넷도 이제 무척 강해졌는걸 ”

활동하기 편하게 가벼운 복장을 한 현지가, 리네넷에게 다가오며 칭찬을 해주었다. 리네넷도 해맑게 웃으며 고맙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전 아직 멀었는걸요. 이제 막 아누의 힘을 조금 다루는 느낌이에요. 그보다 저 늑대를 빨리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러네. 저게 이번에 나온 몬스터들 중에서 마지막이지 ”

늑대는 어떻게든 몸을 흔들며 모래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신의 힘이 깃들고 한계까지 압축된 모래는 강하게 늑대의 몸을 짓눌렀다. 그 압력으로 몸이 터지지 않은 것만 해도 이 녀석이 얼마나 튼튼한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본격적인 훈련은 거의 다 막바지에 접어들고 차기 오버랭크 생도들이 최근에 가장 열을 올려서 하는 것은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의 사냥이었다.

아무리 힘이 강하다 하더라도 역시 실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싸움의 경험과 실전 감각이었다.

그것을 키우기 위해서 대부분 생도는 2명씩 짝지어서 게이트에 들어가 몬스터들을 사냥하고는 했다. 물론 거기서 나오는 마석은 고스란히 그들의 주머니에 들어오니 나쁠 건 없었다.

“으히히. 저 녀석 잡으면 얼마나 비싼 마석이 나오려나 ”

“음. 글쎄요. 덩치도 크니까 엄청나게 비싸지 않을까요 ”

“얼마나 ”

“어, 음…… 한 치킨 10마리 사 먹을 정도 ”

“…….”

리네넷의 그런 순박하고 현실감각이 없는 말에 현지는 그녀를 향한 동정심을 금치 못했다.

워낙 가난하게 살아온 리네넷이다 보니까 그녀로서 엄청나게 비싸다는 말도 타인에게 어처구니없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정작 리네넷 본인은 그것에 자각이 없고 길 가다가 만 원짜리 하나라도 발견하면 너무 큰돈을 주웠다고 어쩔 줄 모르는 게 유머였다.

“…… 그래. 너도 언젠가 본격적으로 오버랭크 헌터가 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비현실적인 금전 감각을 고칠 수 있겠지.”

“엣  제 금전 감각이 좀 비현실적인가요  여, 역시 치킨 10마리분은 너무했죠  8마리로 줄여야…….”

“됐어. 됐어. 내가 말 해줘도 모를 테니까. 일단 저 괴물의 끝을 내야…….”

‘하는데,’ 라고 말이 끝나기 전.

리네넷이 만들었던 모래 감옥이 박살 났다.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모래 감옥이 부서지자 분노한 늑대는 지면을 박차고 현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방심하고 있던 차라 그녀는 채 반응하지 못했다.

늑대는 현지의 지척까지 접근하여 이빨을 들이밀었고

그대로 무언가에 맞아서 옆으로 튕겨 나갔다.

깨갱!

늑대의 몸은 바닥을 몇 번이고 튕기며 날아가다가 커다란 나무 수십 그루를 부수고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현지는 기쁜 마음에 활짝 웃었다.

“킁킁아!”

킁!

다섯 머리 늑대를 날려버린 건, 아르테미스의 권능으로 소환한 칼리돈의 멧돼지.

통칭 ‘킁킁이’였다.

현지의 품 안에 안길 정도로 작고 귀여웠던 녀석은 순식간에 성장하여 지금은 무려 커다란 덤프트럭에 버금가는 덩치를 지녔다. 그래도 다섯 머리 늑대에 비하면 덩치가 왜소했지만,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다.

킁킁이는 애완견 크기일 때도 강화 금속으로 이루어진 표적들을 엄니로 들이받아 박살 내고는 했다. 그때 보다 훨씬 더 커진 지금은 정말로 신화 속 영웅들조차 막지 못한 불도저 같았다.

킁킁이의 일격에 내장이 모조리 파열된 늑대는 간헐적인 숨만 헐떡일 뿐이었다. 현지는 그런 늑대의 미간에 총 5발의 화살을 날려주며 숨통을 끊었다.

“어우. 큰일 날 뻔했네. 킁킁이 아니었으면 진짜 크게 다쳤을 거야.”

[계약자여. 그러니 내가 항상 실전에서는 조심하라고 이르지 않았던가.]

“응. 그러게. 미안해 아르테미스. 걱정을 끼쳐서.”

[흐, 흠. 그렇게 사과한다니 넘어가도록 하지.]

은근히 고지식한 아르테미스는 이런 사소한 사과에도 화를 금방 풀고 넘어가 주고는 했다. 누가 현찬의 여동생이 아니랄까 봐, 그녀는 벌써 자신과 계약 맺은 신의 성격을 파악하고 잘 구워삶고 있었다.

“현지 언니. 그런데 괜찮아요  TV 안 봐도 ”

“응  왜 ”

“그야, 오늘 현찬 오빠가 마계로 떠나잖아요.”

“아 그랬지.”

현지는 막 떠올랐다는 듯 머리를 가볍게 쳤다.

애초에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던 일이라서 떠올리는 것이 늦었다.

[그대는 오라비가 떠나는데도 걱정되지 않은가 ]

현찬은 마왕 세아리스와의 동맹을 공고하게 하려고 사절단의 역할을 지닌 채 마계로 가게 된다. 그것도 혼자 가는 것이 아닌 오버랭크 헌터인 양 리화도 함께 간다. <세계연합>의 수행원들까지 함께 뒤를 따르는 그 광경은 당연히 실시간 뉴스를 통해 중계되고 있었다.

“아니, 뭐. 솔직히 마계가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는데 위험한 건 알겠거든  그래도, 우리 오빠잖아. 별로 걱정되는 일은 없는데.”

“네  오히려 오빠니까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

“그럴 리가. 우리 오빠가 얼마나 센데.”

오히려 걱정한다면 그쪽에서 현찬을 공격하는 다른 적들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다. 어서 돌아가서 한번 구경해 보자.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

“30분이요.”

“그 정도면 충분해.”

다른 차원의 악마 종의 정점에 선 마왕과의 동맹 관계.

이보다 더 흥미로운 주제는 아마 그 어떤 세상에도 없으리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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