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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94화 (194/265)

# 194화.

194화 광란의 파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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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과일을 손질해서 가져온 에크티는 잠시 자리에 멈춰 서서 거실 풍경을 살폈다. 평소에도 나름 시끌벅적했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더 심했다. 이유를 따지자면 새롭게 찾아온 네 명의 손님들 때문이리라.

놀랍게도 그 넷 중에서 순수한 ‘사람’의 육체를 지닌 건 단 한 명이었다.

다른 세계에서 부족을 이끄는 족장.

영령의 자리까지 올라갔으며 새로운 육신을 얻은 마지막이자 최강의 드래곤.

다른 차원에서 온 마왕.

멤버만 보면 어지간한 나라 하나는 쉽게 전복할 수 있는 파티였다. 에크티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잠시 멈칫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프로답게( )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거실의 큰 탁자 위에 과일을 담은 접시를 놓았다.

“와하하! 맛있다 맛있어! 이게 치킨이라는 음식인가! 다른 차원의 여러 요리를 먹었지만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이도다!”

“그렇지  이거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완벽한 요리! 이보다 맛있는 것이 또 어디 있겠냐고!”

세아리스와 그랑데우스는 서로 죽이 척척 맞는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렌디르와 황설영은 그사이에 모종의 동맹을 맺었는지 둘이서 눈에 불을 켜고 세아리스와 그랑데우스가 무슨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었다.

현찬은 무슨 일이라도 터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런 상황을 지켜보았고

헤르메스는 오히려 터지길 바란다는 듯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관망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아테나와 어스름달만이 ‘자기들은 이 상황과 관련 없으니 그냥 치킨이나 먹으련다’ 같은 생각으로 음식을 섭취하고 있었다. 먹는 속도만 보면 누가 자기 음식 뺏어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투적으로 치킨을 물어뜯었다.

어스름달은 심지어 뼈째 입안에 털어 넣어 뼈도 남기지 않고 전부 먹었다.

“부군! 뭐 하는가. 그대도 여기 앉아서 이 요리를 들게나. 이렇게 맛있는 성찬을 두고 가만히 있는 건 이 요리를 한 요리사에게도 모독이다! 미안하지도 않은가!”

“아니, 치킨집 사장님은 이런 걸 별로 모독이라 생각 안 하거든 ”

오히려 치킨을 거의 스무 마리 가까이 시킨 현찬에게 절할 정도로 고마워하지 않을까.

게다가 하루가 멀다고 치킨을 시키니 아마 해당 치킨집 사장님은 현찬을 아주 VIP 고객님으로 모시고 있을 것이다.

“그러지 말고 어서 들어라! 게다가 이 맥주라는 것이 참으로 맛있는구나! 이곳은 음식뿐만이 아니라 술도 맛있어!”

“뭐, 약간 도수가 낮은 걸 빼면 썩 나쁘지 않은 술이지. 오히려 시원하게 마실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

“부어라 마셔라!”

흥이 오를 대로 오른 마왕과 드래곤을 보자니 현찬은 치밀어 오르는 한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랑데우스는 그렇다 쳐도 세아리스 너는 마왕이 여기 있어도 돼 ”

“응  왜 그러느냐 ”

“너 마왕이라며. 그러면 네 군단의 지도자라는 말 아니야  그런 마왕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부하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아.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세아리스는 맥주를 한잔 들이키며 손을 휘휘 저었다.

“나야, 원래부터 별로 일하지 않았으니까. 딱히 내가 빠진다고 해도 부하들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고마워하지 않을까  마계에서는 나는 본신 그대로 있으니 말이지.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성이 흔들린다. 오히려 내가 없으면 부하들이 안심하고 자신의 업무를 하지 않겠는가 ”

“아니 무슨 왕이…….”

그러냐고 말하기 전에 현찬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애초에 마왕에게 왕으로서의 업무를 바라는 게 이상한 게 아닌가 싶었다. 힘으로 모든 걸 지배하는 마왕이, 업무를 한다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세아리스의 저 모습이 사실 마왕이라는 칭호를 생각하면 더 어울린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 그래. 너는 됐고. 아렌디르 ”

“으, 응 ! 나 불렀나 ”

“어. 너는 부족들이랑 같이 안 있어도 돼 ”

“괜찮다! 부족들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지구로 넘어왔으니 말이다. 나는 지구의 가장 뛰어난 지도자와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 이야기하기 위해 여기에 찾아온 것이다.”

“아니. 너 그런 거 치고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잖아.”

“구, 굳이 지금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런 분위기에서 흥 깨지게 업무 이야기를 하는 게 나쁜 거다!”

“그래~! 이 족장님이 뭘 좀 아시네!”

“이익! 이거 놔라, 마왕!”

이대로 놔두면 상황이 더 개판으로 흘러갈 것이다. 현찬은 황설영에게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제안을 하려고 했다. 그녀가 여기에 찾아온 것도 세아리스와 그랑데우스 감시 때문이었으니까.

“황설영 씨 ”

그런데 정작 황설영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살짝 드러난 그녀의 목덜미나 귀를 보면 아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디가 아픈가  현찬이 그런 생각을 했을 때 황설영이 손에 쥔 맥주캔을 탁자에 탁하고 놓았다.

“강현찬 헌터님!”

“네, 네 ”

그 박력 있는 외침에 현찬이 당황했다. 바닥만 바라보던 황설영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그야말로 취기로 범벅이 되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현찬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설영 씨. 취했어요 ”

“안 취했슙니다!”

취했다.

완벽하게 취했다.

어쩐지 헤르메스와 아테나가 당당하게 실체화한 채 치맥을 즐기나 싶더니 황설영은 이미 취해서 인사불성 상태였다. 맙소사. 가장 믿었던 사람이 이렇게 리타이어 하다니!

그보다, 보면 맥주캔, 그것도 반 밖에 안 마신 것 같은데 벌써 취했단 말인가  평소에 보여주는 이미지랑 비교하면 술이 약해도 너무 약하지 않은가

현찬이 당황하는 사이 현찬에게 접근한 황설영이 두 손으로 양어깨를 강하게 부여잡았다.

그녀는 현찬에게 고개를 쑥 내밀어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현찬이 고개를 뒤로 뺐지만 그만큼 황설영이 더 다가왔다.

“저기요. 설영 씨  이거 놓으면 안 될까요 ”

“현찬 님!”

“네, 네.”

“현찬 님!”

“네. 듣고 있어요.”

“저어는 말입니다. 네  강현찬 헌터님을요. 존경하고 있단 말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것참 지금 상황에서 용기가 생기는 말이네요.

현찬은 애써 뒷말을 삼켰다.

“그으런데 말입니다아! 대체 왜! 왜! 강현찬 님은 제게 눈길도 주지 않으시는 겁니까아아!”

“어멋.”

“오.”

옆에서 재밌게 지켜보던 아테나가 아침드라마 시청하는 아주머니의 포스를 뿜어내며 이쪽에 관심을 드러냈다. 그녀의 옆에서 잠자코 치킨을 먹던 어스름달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아침드라마를 시청하는 듀오가 이쪽에 관심을 두고 말았다.

“설영 씨. 진정하시고요. 지금 무척 취하신 거 같거든요 ”

“안 취했다니까여!”

“네. 네. 알았으니 이것 좀 놓으시고요.”

“씨이.”

현찬은 자신의 어깨를 쥔 황설영의 팔을 떼어냈다. 황설영은 힘없이 팔을 축 늘어뜨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평소 모습과 차이가 큰 그녀의 모습은 귀여웠지만, 현찬으로서는 지금 상대해야 할 인물이 한둘이 아니라서 그녀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자. 자. 일단 여기 과일 좀 드세요.”

“넹.”

현찬이 포크에 사과 하나를 찔러서 주자 그것을 받아 든 황설영은 자그마한 입으로 사과를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휴. 이제 한시름 놓은 건가. 현찬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황설영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게 아닌가

“흐흐흑! 흐그으윽!”

“아, 아니 왜 울어요 !”

“현찬이 여자를 울렸다!”

“주인님 나쁜 남자!”

“아니 그쪽 둘은 좀 닥치고!”

황설영이 울음을 터뜨리자 신이 난 아테나와 어스름달은 치킨이 아니라 팝콘을 씹어 먹을 기세였다. 이따가 두고 보자는 시선으로 한번 째려봐 주고 현찬은 황설영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아니, 설영 씨. 왜 갑자기 울고 그래요 ”

설마 취한 것 때문에 지금까지 쌓였던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일까  그녀라면 그럴 만했다. 헌터 협회에 들어갔으며 헌터로서도 높은 자리에 올라간 그녀는 언제나 스스로 채찍질하며 몰아붙였으니까.

정갈한 태도를 유지하며 누구보다도 올곧게 자신의 주어진 업무를 수행한 그녀에게도 말 못 할 고충은 많이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성격이 그런 걸 많이 담아두니까 한번 터질 때 정말 크게 터진다.

“흐으으윽! 흑! 흐흐흑!”

“말 해봐요. 왜 울어요  네 ”

“사과가, 사과가…….”

“사과가 뭐요 ”

“사과가 너무 맛있어! 으흐흑!”

“…….”

애써 미소를 유지하던 현찬의 표정이 굳었다.

황설영은 포크에 찍힌 사과를 더 씹어 먹으면서 계속 울었다.

“으아앙! 사과야 미안해! 사과가 너무 맛있어서, 내가 다 먹어버렸어! 사과에게도 꿈이 있었을 텐데! 내가 먹어버렸어! 흐아앙!”

그렇게 말하면서 꾸역꾸역 사과를 먹는 게 아닌가

취해도 너무 제대로 취한 거 아닌가  설마 ‘홍야차’라 불리던 황설영이 이렇게나 술에 약할 줄 누가 알았을까. 현찬은 머리가 아파지는 게 느껴졌다.

“자! 이럴 때일수록 더욱 즐겁게 놀아야지! 이번엔 소주다!”

그렇게 말하며 헤르메스가 갑자기 어디선가 소주병을 들고 나타났다.

“그건 또 언제 사 왔어 ”

“조금 전에. 금방 다녀왔지.”

정말로 종잡을 수 없는 신이었다.

현찬은 위기감을 느꼈다. 여기서 소주병을 까는 순간 이 상황은 현찬이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될 것이 자명했다.

지금도 개판인데 얼마나 더 심각하게 만들려고!

안타깝게도 현찬의 행동은 한발 늦고 말았다.

헤르메스가 꺼낸 소주병에 벌써 지대한 관심을 가진 마왕과 드래곤 하나가 이미 각자 한 병씩 챙겨갔기 때문이었다.

“야! 그거 내려놔. 그 술 세단 말이야.”

“푸흐흐! 술이 세면 얼마나 세다고 그러느냐! 잊었는가  난 마왕 세아리스다! 날 취하게 만드는 술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지!”

“맞아! 내가 왕년 드래곤이었던 시절에, 그야말로 주당이었어. 다른 녀석들이 나를 술로 이긴 적이 없었을 정도라고! 고작 인간이 마시는 술에 취할 내가 아니라는 말씀!”

둘의 말은 어떻게 보면 타당해 보였다. 인간보다 훨씬 더 우월한 두 종족인 세아리스와 그랑데우스다. 그런 둘이 인간이 즐기는 술을 마신다고 취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더 독한 걸 가져와도 음료수 마시는 듯 들이키겠지.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 둘은 본신이 아닌 인간 상태였다는 점이다.

둘이 그렇게 자랑하는 주량이 이번만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결과는 예상대로.

“으헤헤. 세상이 빙빙 도는구나아.”

“푸하학! 이거 맛 조타아!”

사람의 몸으로 겁도 없이 소주를 병째로 원샷을 때린 둘은 당연하게도 만취하고 말았다. 세아리스는 세상이 빙빙 도는지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녀의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속옷이 드러났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와하하하하! 내가 웃어도 집이 멀쩡하구나! 이 집 누가 지었느냐! 튼튼하다!”

“술! 더! 가져와! 마시자!”

“아니 너희들 작작 마셔! 헤르메스! 아테나! 좀 말려 봐!”

“하하. 현찬아. 보기 좋은데 그냥 놔두지그래  재밌잖아.”

“지금 나에게 술 대작을 건 것이냐  용기가 가상하구나!”

헤르메스는 이 재미있는 상황을 놓치기 싫은지 고개를 저었고 아테나는 그랑데우스의 호기 어린 발언에 자극받았는지 술자리에 참전했다. 황설영은 여전히 과일을 먹으며 미안하다고 질질 짜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하게 제 일 하는 건 에크티 뿐이었다.

“에크티.”

“네. 현찬 님.”

“후유. 너는 저렇게 되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에크티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그녀도 저기에 끼어들어서 함께 놀고 싶은 속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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