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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93화 (193/265)

# 193화.

193화 숨겨진 비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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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

북유럽 신화의 신이자 모든 신화를 통틀어 최강의 악동이자 사고뭉치라 부를 수 있는 신이다.

신이면서도 신을 상대로 사기 치고 속이는 게 일상인 그는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커다랗고 끔찍한 [라그나뢰크]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가 대체 무슨 이유와 어떠한 생각으로 그런 일을 일으켰는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그와 의형제를 맺은 주신 <오딘>조차도 로키의 속내를 읽어내지 못했다.

[라그나뢰크(Ragnarok)].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신들의 전쟁.

신들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 파괴이자 새로운 창조의 전쟁이었다.

로키가 일으킨 이 전쟁에서 로키조차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전쟁 막바지에서 <로키>는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헤임달>과의 치열한 사투 끝에 서로 동귀어진으로 사망했다.

신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많은 추측을 하고는 했다.

로키는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질렀던 걸까

누구는 그 혹은 그녀가 신이 아닌 거인의 자식이기에 신을 증오해서라고 말한다.

누구는 라그나뢰크가 일어나는 것 이상으로 발드르를 너무 질투해서라고 말한다.

누구는 단순히 치기 어린 장난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헤르메스의 생각은 달랐다.

로키가 속했던 신화 대부분을 파괴한 대전쟁은 결국 그녀의 ‘사랑’ 때문에 벌어졌으니까.

누구보다도 발드르를 사랑했기에.

그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걸 원치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랑에 눈이 먼 그녀의 질투로 발발되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세계라면, 그녀에게도 발드르를 취할 기회가 올 수 있었으니까.

로키는 이미 라그나뢰크 이후의 미래를 그리며 자신의 자식들을 도구로 써먹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그 전쟁의 끝에도 그녀가 원하던 것은 없었다는 점이다.

새롭게 올라간 영령들의 세계 그중에서도 신의 격만이 올라갈 수 있는 천계에 그녀가 찾던 발드르는 없었다.

다른 신들은 전부 있었다. 죽었다는 <토르>나 <오딘>까지 전부.

단 하나 없는 신이 있었으니 바로 <발드르>였다.

로키는 천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발드르>를 찾기 위해 헤집고 다녔다. 그러는 도중에 뜻이 맞고 성격이 비슷한 <헤르메스>, <손오공>과 친해져 친분을 쌓았다. 그렇다 하여도 로키에게 최고의 목표는 당연히 <발드르>였다.

로키는 그를 만나기 위한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다시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우선 사과해야겠지  그를 상대로 더 기만은 하지 않을 거야. 솔직하게 내 마음을 말하는 것도 좋겠지.

그런 기대감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불안감으로 변모했다.

천계를 모두 샅샅이 뒤져도 발드르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발드르의 부인인 <난나>조차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로키는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든 신이 다 올라왔는데 유일하게 발드르만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여전히 저승 세계에 있는 걸까

그건 아니었다.

여신 <난나>는 로키를 미워했지만, 그녀 또한 발드르를 사랑했기 때문에 로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저승 세계에서 난나는 발드르와 함께 올라왔다고. 중간에 엇갈려서 같이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분명히 저승을 벗어났다고 확언했다.

그렇다는 건 단 하나.

발드르는 저승도 천계도 아닌 다른 세계로 간 것이다.

바로 인간들의 세계인 하계.

대체 왜 거기로 갔는지 그녀는 모른다.

때마침 <대통합>이라는 세계의 변이가 일어났고 영령 세계와 하계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일이 벌어졌다. 어쩌면 그것이 발드르가 떠난 이유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추측 전부였다.

‘대체 왜 그는 하계로 떠났을까  그곳이 무엇이 있는 걸까  아니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통합>이라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

천하의 로키라도 그 진실은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원하던 것은 <발드르> 뿐이었으니까.

세계가 어찌 되든 그녀의 관심 밖이었다.

‘그런 걸 신경 썼다면 라그나뢰크를 안 일으켰겠지.’

중요한 건 바로 발드르의 행방이었다. 그가 하계로 내려간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그는 과연 하계에 어떻게 내려갔단 말인가

아직 계약자를 구하지 못한 발드르라면 하계에 내려간다 치더라도 오래 머물 수 없다. 영체 상태로 계약자도 없다면 아무리 신이라 하더라도 버티지 못한다. 그래도 조금의 시간은 벌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최후는 항상 같다.

설사 신이라 하더라도 세계의 규칙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시간을 끌면 끌수록 계약자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는 신이라는 격 자체를 손실하게 될 위험이 컸다.

로키가 아는 발드르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단순히 모두에게 존경받는 수준 이상으로 총명하고 지혜로우니까.

그렇다는 건 단 하나.

발드르는 하계에서 <환생>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의 힘 대부분을 봉인하고, 신이라는 격을 한창 격하시켜서

그 아래의 아래로 추락을 택한 끝에

그는 인간이 된 것이다.

신이라는 자리를 버리고 아래로 내려가다니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콩깍지가 제대로 쓰인 로키는 그마저도 그답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안위보다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택한 그 바보 같은 멋진 신이라면 당연히 그럴 만했으니까.

그러니 찾을 거다.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발드르>를 찾는 것에 반쯤 지쳐가던 그때.

로키는 <헤르메스>가 계약자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흐르며 현찬이라는 이름이 계속 귀에 들어왔고 호기심으로 그를 확인한 순간 로키는 확신했다.

저 사람이다.

내가 그토록 찾던 나의 사랑.

그것이 지금까지 로키가 겪었던 이야기였다.

&

[재미있지 않아  설마, 신이라는 녀석이 직접 하계에 내려와 인간이 될 줄이야.]

[너의 추측은 정말로 흥미롭지만, 솔직히 너무 과한 해석은 아닌가 싶어.]

[글쎄. 과연 이게 과한 해석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

[…….]

헤르메스의 비웃음 섞인 말에 로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겨우 찾았는데. 남들에게 걸리지 않게 겨우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계획이 너무 틀어지고 말았다.

[있잖아. 로키. 나는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어. 물론, 솔직히 우리가 성격은 맞지만 그렇게 친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기는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랑 그 원숭이를 친구라고 생각했지.]

[…… 그것참 듣던 중에 반가운 말이네.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야.]

[하지만 이번 건에 관해서는 경우가 달라. 너는 계속 너의 속내를 숨기고 무언가 꿍꿍이를 벌이려고 하지. 그래서야 누군가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어.]

헤르메스는 진심으로 로키에게 충고해 주고 있었다.

그녀의 방식은 결국에는 타인의 반감을 살 뿐이었다. 로키 스스로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의 방식은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그녀에게 돌아올 것이다.

과연 그때 가서 로키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까 아니면 세상을 향해 분노를 드러낼까

신들의 전쟁 라그나뢰크를 일으킨 로키라면 절대로 전자는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헤르메스는 친구로서 로키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래서 뭐 ]

로키는 퉁명하게 대꾸했다. ‘네가 뭔데 자기에게 충고를 하냐’는 듯한 어조였다.

[로키. 나는 네가 조금만 더 솔직하게 나서줬으면 좋겠어.]

[…….]

[스스로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조금은, 아주 조금은 진실한 행동으로 다가와 준다면 어쩌면…… 네가 바라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정곡을 찌르는 헤르메스의 날카로운 말에 로키는 침묵을 고수했다.

그녀가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헤르메스는 모른다. 그저 부디 좋은 길로, 좋은 방향으로 가기를 바랄 수밖에.

친구야. 내 친구야.

악우라고 해도 좋은 내 친구야.

부디 옳은 선택을 하길 바란다.

헤르메스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로키는 한동안 사라져가는 헤르메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현찬아. 나 왔어.]

“오. 일찍 왔네  확인한다고 하던 일은 잘 해결됐어 ”

[어. 깔끔하게 됐어.]

“그래  다행이네. 안 그래도 너 지금 되게 개운해 보이는 표정이거든. 그래서 대충 눈치챘지. 딱 봐도 뭐 얻은 게 있어 보이거든.”

[하하하. 내가 그랬나 ]

헤르메스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몸을 실체화하여 소파에 털썩 앉았다.

헉! 헤르메스는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리다가 숨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왜냐하면, 있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 여럿 보였기 때문이었다.

“쟤들이 여기에 왜 있어 ”

“어, 음. 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현찬의 표정에는 약간이지만 피로감이 어려 있었다.

“거기서 뭘 하는가, 부군.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차려놓고 주인이 먹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누가 네 부군이야.”

“음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 ”

“아니거든!”

현찬에게 어깨동무하며 그렇게 말하는 건 인간의 육신을 가진 마왕 세아리스였다.

지금은 넷으로 줄어버린 마계의 지배자 중 하나이자 악마이면서 악마 대부분과는 다른 사상과 성격을 지닌 독특한 마왕.

그런 그녀가 현찬의 집 거실에 앉아 치킨을 먹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우리 집은 또 어떻게 알고 온 거야 ”

“후후. 다 아는 방법이 있지. 그보다 부군은 상당히 좁은 곳에서 사는구나. 아니, 이 세계 사람으로 치자면 넓은 집이려나  이런 검소한 모습도 보기 좋구나.”

“아니, 그러니까 난 네 부군이 아니라니까. 애초에 그때 결혼하자고 한 거 확실히 거절했다 ”

세아리스는 현찬에게 결혼하자고 했었다. 동맹 맺을 때 결혼으로 인한 동맹이야말로 가장 확고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지나치게 이성적인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세아리스는 현찬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현찬은 거절했다.

결혼 이야기를 하는 건 현찬으로서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마왕과 결혼이라니 이게 무슨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정작 거절당한 세아리스는 집요하게 현찬을 쫓아다니며 질척거리고 있다는 게 유머였다.

“에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나. 영웅은 호색이라 들었다. 다른 여자가 신경 쓰인다면 그 여자마저 취하면 되는 게 아닌가 ”

“아니, 나는 안 그런다니까.”

“오. 그러면 나 하나만  그것참 낭만적인 부군이로다!”

“너 진짜 남의 말 안 듣는구나 ”

“뭔데, 뭔데! 서로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도 끼워줘!”

어처구니없다며 혀를 차는 현찬의 어깨를 무언가 확 짓눌렀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 그러나 현찬은 오히려 그 감촉에 도리어 눈살을 찌푸렸다. 시야를 가리는 무지갯빛 머리카락이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렸다.

“너는 또 왜 찾아온 건데 ”

“야.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이에 그 태도는 뭐냐  내가 응  사람들까지 살려서 무사히 데려다 줬는데. 응  너무한 거 아니냐 ”

마지막 남은 드래곤, 그랑데우스.

그녀는 세아리스와 무슨 의기투합을 한 것인지 함께 현찬의 집에 놀러 왔다.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재미있어 보이니까.

그런데 손님이 여기서 끝이면 현찬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서 문제지.

“이놈들! 뭔데 멋대로 현찬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냐! 떨어지지 못할까!”

그렇게 외치는 건 자신의 신을 믿고 따르는 다른 차원의 종족 아렌디르였다. 그녀는 부럽다는 눈빛이 가득하면서도 현찬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하는 거라고는 어떻게든 세아리스와 그랑데우스를 현찬에게서 떼어놓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녀들을 감시할 명목으로 찾아온 황설영까지 있었으니.

가히 혼돈이라 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음.”

헤르메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현찬에게 물었다.

“내 치킨은 남겨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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