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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92화 (192/265)

# 192화.

192화 숨겨진 비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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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평소에 싱글거리며 웃던 헤르메스는 없었다. 지금은 올림포스의 12 주신 중 하나이며 모든 목동의 신 헤르메스만 있을 뿐이다.

헤르메스가 끌어올린 기세가 사무실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로키는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귀찮게 됐다며 혀를 찼다. 그녀 또한 기세를 일으켜 헤르메스에게 대항했다. 여기서 자신의 계약자인 주현창이 무언가 눈치채면 더욱 귀찮아진다.

[적당히 하지그래  조금 전부터 나랑 싸우려고 그러는 거야 ]

[질문은 내가 먼저 했어. 어서 대답해.]

로키는 입을 꾹 다물고 헤르메스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걸치고 있는 녹색 드레스가 그녀의 감정을 대변하듯 거칠게 펄럭였다. 헤르메스도 지지 않고 로키를 노려보았다. 헤르메스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끝을 보겠다.’

헤르메스의 눈동자에서 그 단호한 의지를 읽어낸 로키는 더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결국, 먼저 손을 든 건 로키였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 기세 좀 억눌러. 살벌해서 무슨 말을 못 하겠네.]

[…….]

헤르메스는 말없이 끌어올렸던 기운을 회수했다. 무겁게 짓눌렀던 대기가 사라지고 숨통이 트이자 로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살면서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건 또 처음 보네. 그만큼 지금 계약자가 너에게 소중하기는 한가 봐  지금까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던 네가 이렇게 열을 올릴 정도니까.]

[잡설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

헤르메스의 퉁명스러운 말에 로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떻게든 말을 돌리려고 했지만, 저렇게 작정하고 찾아온 헤르메스를 속여 넘기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적당한 신이라면 속일 수 있겠지만, 헤르메스라면 나라도 무리야.’

그녀와 헤르메스는 많은 부분이 비슷했다. 뛰어난 언변과 누군가를 속이고 기만하는 능력까지. 그래서 천계에 있던 시절에는 함께 놀면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보다 귀찮은 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헤르메스는 지금 계약자를 잘 만난 탓에 하계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권능을 구사할 수 있었다. 짜 맞추기 식으로 계약자로 적당한 녀석을 고른 로키와는 시작점이 달랐다.

즉 그녀는 결국 헤르메스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헤르메스가 이렇게 찾아온 걸 보면 저쪽도 이미 무언가를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더 속이거나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그래. 그래서 대체 뭐가 궁금한 건데 ]

[방금 말했잖아. 내 계약자, 현찬에 관한 진실.]

[그의 정체  그는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야.]

로키의 말에 헤르메스는 코웃음 쳤다.

[평범한 인간  과연 평범한 인간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일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을 거로 생각해 ]

[인간의 가능성은 우리 신들의 예상을 항상 뛰어넘지. 그래서 영웅이라는 존재들이 있는 거고. 이미 많은 것이 소실된 현대에서도, 영웅은 언제나 태어날 수 있는 법이야. 수십억이 넘는 사람 중 한 명도 없으리라고 ]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헤르메스는 결국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7대 천사 중 한 명이자 신의 신임을 받는 대천사 <미카엘>이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있잖아, 로키. 네가 그렇게 말을 돌리고 아닌 척하려면 할수록, 나에게 더욱 큰 확신을 주고 있는 거 알아 ]

[…… 나는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는걸 ]

로키는 표정을 관리하며 허공에 몸을 옆으로 뉘었다. 그녀는 긴 다리를 쭉 뻗으며 고개만 옆으로 돌려 헤르메스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능청스러운 태도에도 헤르메스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헤르메스는 로키를 향해 묘한 웃음을 내비쳤다.

[네가 모른다면 나는 내가 예상한 것을 대충 읊어 줄 수밖에 없어.]

[흐응. 그것참 흥미로운 말이네. 과연 네가 무슨 예상을 했길래 그럴까 ]

[나는 처음엔 고민했지. 대체 무슨 이유로 로키 네가 현찬에게 그렇게 큰 관심을 두게 된 걸까. 단순히 그가 현세에 있는 인간 중에서 가장 큰 재능을 지녀서  아니면, 나와 계약을 맺을 정도로 뛰어나서  많은 생각을 했지.]

아무리 헤르메스라고 하더라도 로키의 속내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그는 천계에서도 엄청나게 유명한 트릭스터고 그와 맞먹는 동급의 신이었으니까.

로키가 헤르메스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헤르메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무슨 결과를 냈는데 ]

[현찬에게는 나는 모르고 너는 알고 있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고 말이야.]

정곡을 찌르는 헤르메스의 말에 로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헤르메스의 추측이 틀린 것을 비웃는 것 같기도 했고 너무나도 완벽한 말에 동요하는 감정을 숨기는 것 같기도 했다.

[계속해 봐.]

[과연 현찬에게 숨겨진 사실은 무엇일까. 로키 네가 그렇게 현찬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가 무엇일까. 의심은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지. 그런데 최근에 생긴 일 덕분에 그나마 알아내게 된 것이 있었어.]

악마들의 등장으로 인해 함락된 부산.

그런 악마들과 마왕을 몰아내기 위해서 지나치게 힘을 끌어모아 부른 7대 천사.

그중 신의 눈이라 불리는 미카엘이 현찬에게서 무언가를 읽어냈다.

[그때 미카엘은 그렇게 말했지.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도 짧은 시간에 다 읽어내지 못한 거대한 무언가라고. 신급인 그가 읽어내지 못했다는 건 그 또한 동급의 존재라는 소리겠지.]

[…….]

[이번엔 가만히 있는 걸 보니까 내 추측은 맞는 거 같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쉬워진다.

[현찬에게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건 확실. 심지어 그것은 우리와 동급의 무언가겠지. 현찬 본인은 그것을 잘 모르는 것 같지만 말이야. 여기서 문제. 과연 북유럽 신화의 신 로키가 관심을 가지는 신격 인물은 누가 있을까.]

로키도 헤르메스처럼 발이 넓어서 다른 신화의 신들과 연결점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 천계에서 맺어진 것들. 그마저도 무언가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다면 추측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된다.

[그렇다는 건 너와 같은 북유럽 신화의 신이겠지. 네가 그토록 관심을 두고 있는 건, 그쪽뿐이니까.]

[…….]

로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싱글거리며 웃던 그녀의 얼굴에는 표정이 사라졌다.

헤르메스는 그것이 연기가 아닌 진짜 그녀의 감정임을 확신했다.

[과연 북유럽의 신화에서 네가 관심을 가질 인물이 누가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지. 하지만 막상 생각해보니 결과는 쉽게 나오더라고. 신화 속 존재들은 대부분 영령의 세계, 우리는 천계에 머물게 되지. 그런데 북유럽 쪽은 내가 가 봐도, 유명한 녀석이 하나 없었더라고. 요르문간드와 싸워서 죽은 토르도 있고, 가름과 동귀어진 한 티르도 있는데. 왜 그 녀석만 없었을까  왜 천계에서 모습을 비치지 않았을까 ]

신 로키가 관심을 두었던 신.

그녀가 누구보다도 질투하고 미워했으면서도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사랑했던 신.

모두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신.

[발드르.]

그 이름이 나오자 로키의 아름다운 얼굴이 소름 끼치게 일그러졌다.

로키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하며 표독스러운 시선이 헤르메스를 날카롭게 헤집을 것만 같았다. 헤르메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로키에게 미소 지었다.

형세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

[왜. 무엇 때문에. 너는 그를 미워했던 거 아니었어 ]

<빛의 신 발드르>.

<오딘>과 <프리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선하고 완벽한 신으로서 세상 모든 존재가 찬양한 유일한 신이라고 할 수 있다.

북유럽 신화 신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선했으며 뛰어난 웅변을 지녔던 신.

그 누구도 그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외모조차 매우 뛰어난 최강의 엄친아.

그러나 결국 그 끝에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겨우살이(미스틸테인)에 꿰뚫려 사망한 비운의 신.

천계에서조차 보이지 않았던 완전히 죽었다고 알려진 그 발드르가 사실 하계에 환생했다면

[그거라면 네가 확실히 현찬에게 관심을 가질 법하지. 현찬이 인간이면서 주신급이나 되는 신들을 불러내고 그 힘을 다루는 이유도 확실히 설명돼.]

[…… 괜한 억측이야.]

겨우 입을 연 로키가 꺼낸 건 헤르메스의 추측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나는 발드르를 끔찍이 싫어했어.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그가 너무 미웠지. 그래. 추하지만 나는 그를 질투했어. 모든 것을 가지고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그것을 누리는 그가 정말 미웠지.]

그래서 <호드르>를 이용해서 발드르를 죽였다.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겨우살이의 나뭇가지로.

[그런 거짓말이 먹힐 거 같아  로키. 나는 너에 관해서 잘 알아. 그가 모두에게 사랑을 받아서 질투가 났다고  그 모두에, 과연 네가 포함되지 않았을 것 같아 ]

[…….]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어. 네가 현찬에게 관심을 두는 것도, 현찬이 지닌 잠재력도. 그런데 이제야 흩어졌던 퍼즐이 다 맞춰진 느낌이야.]

헤르메스는 매우 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지금까지 고민했던 모든 것들이 해소됐을 때의 그 상쾌함. 이것이 헤르메스가 가장 즐겁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하물며 얄미운 로키에게 한 방 먹이기까지 했다면 더더욱.

[발드르를 싫어했다고  그를 미워했다고  아니, 틀려. 로키 너는 오히려 발드르를 누구보다도 좋아했던 거야.]

로키는 발드르를 사랑했다.

신화 속 로키는 남신이고 발드르도 남신이지만, 애초에 로키에게 있어서 성별이라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

그녀에게 눈부시게 빛나는 발드르는 너무나도 손에 쥐고 싶은 찬란한 보석이었다.

그러나 발드르는 너무나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로키 하나의 사랑만 받지 않았다.

모두의 관심, 모두의 사랑, 모두의 존경.

로키가 받지 못한 것들을 태연하게 받는 그 모습에 로키는 무언가 속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발드르가 식물의 여신 <난나>와 결혼하는 순간.

로키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뚝 끊어지고 말았다.

그 이후는 신화와 흡사했다. 질투심에 눈이 멀어버린 그녀는 남들을 속이고 기만하여 결국에 발드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심지어 발드르가 부활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마저 로키는 완벽하게 무산시켰다.

내가 갖지 못하는 것이라면 누구도 가질 수 없었으니까.

물론 로키는 그 이후에 끝없는 후회를 거듭했다.

한순간 감정의 격류를 이겨내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으니까.

천계에서도 발드르는 없었고 로키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나도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자신이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조금만 더 자존심을 죽였더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천계에서조차 발드르는 보이지 않았고 다른 신들은 그를 찾는 걸 포기했다.

유일하게 포기하지 않은 두 신이 있었으니 바로 난나와 로키였다.

로키는 절대로 그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천계에 없다  그렇다면 하계로 가면 됐다.

그런 로키에게 때마침 들려온 소식이 바로 현찬이라는 인간이었다.

그렇게 로키는 하계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모습은 바뀌었고 그 기운마저 사라졌지만,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현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 눈 부신 빛을.

그녀가 누구보다도 원하고 바랐던 발드르가 내뿜었던 빛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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