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191화 숨겨진 비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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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워어어어!
몸 일부가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뱀이 괴성을 내지르며 꼬리를 휘둘렀다. 길게 휘는 꼬리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주변 나무들이 수수깡 부러지듯 부러졌고 지면이 뒤집히며 파도처럼 몰아쳤다.
마키나 스네이크.
금속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육신, 거대한 덩치에 흉포한 성격까지. 한 마리가 뜨면 그 뒤에 최소한 세 마리는 더 있는 걸 예상할 수 있는, 즉 집단으로 행동하는 이 몬스터는 사람들에게 작은 재난에 가까운 몬스터다.
녀석이 긴 주둥이를 쩍 하고 벌렸다. 반들거리는 아가리에서 노란색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치이익. 액체가 닿은 바위와 나무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주변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헌터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에 저 공격이 자신들에게 향했다면 과연 그것을 피할 수 있었을까
그러지 못했으리라.
마키나 스네이크가 뿜는 산성 액은 그 위력도 위력이지만 입안에서 최대한 압축해서 뿜어내는 것에 가깝기에 속도도 매우 빨랐다.
멀리서 상태를 주시하던 헌터들이 처음 느낀 건 몬스터가 보여주는 힘을 느낀 후의 공포감.
그 뒤에 이어지는 건 그런 마키나 스네이크들을 상대로 혼자서 싸우는 자를 향한 경외심이었다.
“정말로 강해.”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을 때는 그냥 소문이 부풀려진 거로 생각했었는데.”
“소문이 부풀려지긴커녕, 오히려 그보다 더 대단하잖아.”
마키나 스네이크는 워낙 단단한 비늘을 지니고 있어서 마석을 이용해 만든 총으로도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최근에 개발된 더 강한 무기들이 있지만, 그것을 전부 쏟아부어도 저 괴물들을 과연 다 죽일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바로 매우 강한 정예소수 싸움꾼다.
지금 마키나 스네이크를 상대로 놈들을 농락하듯 싸우고 있는 현찬이 바로 그러했다.
세상이 바뀌어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게이트 등장과 몬스터들의 습격이었다. 이것은 <대통합>이 완전히 이루어진 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사회의 재앙이었다.
물론 지금을 생각하면 옛날보다는 나았다. <세계연합> 시대가 아닌 여러 개의 국가로 갈라지고 반목하던 때. 그때는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몬스터들에 의한 피해가 컸다.
간혹 웨이브라도 터지는 순간이면 운 없으면 도시 하나가 쑥대밭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한국은 그런 부분에서 방비가 잘 돼 있었지만, 개발도상국은 하루가 멀다고 지옥이 펼쳐졌었다.
<세계연합>이 생겨나고 마석을 이용한 무기가 개발되어 몬스터들을 향한 대비가 잘 돼 있는 지금은 확실히 살기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장본인들은 바로 지금 싸우고 있는 현찬 같은 고랭크 헌터들이었다.
촤악!
현찬이 검을 휘두르자 마키나 스네이크 한 마리의 목이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오러를 머금은 검마저 튕겨내는 비늘은 현찬의 칼질 한 번에 속절없이 베어져 나갔다.
칼이 얼마나 잘 드는지 현찬은 저 단단한 비늘을 베면서도 그 느낌과 손맛을 전혀 받지 않았을 정도였다.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다른 녀석이 현찬을 향해 산성 액을 뿜었다. 현찬은 이번에 그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산성 액을 향해 검을 쥐지 않은 다른 손을 뻗었다.
촤라라락!
현찬의 팔을 뒤덮고 있던 코트 일부가 아주 자그마한 조각들로 분해하더니 이내 현찬의 앞에 합쳐지며 방패로 변했다. 화려한 문양의 백색 방패에 산성 액이 직격했지만,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역시 좋은걸 ”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테레이오스테]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검이 갈라지고 분해되더니 이내 십여 개의 조각으로 나뉘었다. 그것은 각자 현찬의 기운을 품은 채 현찬의 의지를 따라서 마키나 스네이크들을 모조리 꿰뚫었다.
마지막 남은 마키나 스네이크가 땅을 뚫고 튀어나왔다. 녀석은 뾰족한 독니를 세우고서 현찬에게 그 거대한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현찬은 그걸 보고도 자리에 꿈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어, 어어 ”
“위험해!”
멀리서 지켜보던 헌터들이 외쳤지만, 현찬은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애초에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콰직!
파편이 튀었다.
그러나 그 파편은 마키나 스네이크의 이빨이었다.
놈이 전력을 다한 깨물기는 현찬이 입고 있는 ‘갑옷’을 뚫지 못했다.
촤라라락!
현찬이 걸치고 있던 옷은 갑옷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파도가 치는 것처럼 갑옷을 구성하는 조각들이 하나하나 움직이며 형상을 바꾸어 나갔다.
그것은 순식간에 현찬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뒤덮으며 빈 부분을 채워나갔다.
마치 용의 비늘과 모습을 표현한 것 같은 새하얀 갑옷.
단단하고 투박하다는 느낌보다는 현찬의 몸에 아주 딱 맞는 얇은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약해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그것이 지닌 단단함과 내구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조금 전처럼 마키나 스네이크의 튼튼한 독니가 현찬의 갑주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러져 나간다.
어디 그뿐일까. 깨무는 충격마저 갑옷이 전부 다 흡수해주었기 때문에 현찬에게 가해지는 피해는 전혀 없었다.
촤륵!
현찬의 갑옷의 등 부분이 활짝 열리더니 거기에서 용의 날개가 튀어나왔다. 현찬의 몸이 회전하고 용의 날개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마키나 스네이크의 몸을 토막 내버렸다.
“역시 헤파이스토스 님이 만든 무기랑 방어 구는 급이 다르네.”
일주일 동안 힘들게 노가다한 보람이 있었다.
성능이 확 늘어난 [테레이오스테]는 확실히 체감되었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바로 현찬이 입고 있는 이 갑옷이었다.
갑옷은 또다시 파도처럼 요동치더니 이내 일반 의복의 형태로 바뀌었다.
매우 튼튼하며 원하는 모습과 재질로 변화도 가능한 만능 갑옷. 자동 청결 기능까지 있으며 온도 조절 기능 등 다양한 기능들이 들어간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갑옷의 최종 형태이리라.
현찬이 오늘 이 싸움에 직접 나선 것도 바로 이 무기를 제대로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어지간한 몬스터로는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런 현찬에게 보인 것이 바로 이 마키나 스네이크였다.
A랭크 헌터들도 상대하기 힘든 녀석들이지만 현찬에게는 그저 한낱 실험체에 지나지 않았다.
테스트 결과는 만족.
갑옷과 무기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성능이 뛰어났다.
현찬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해서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헌터들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주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갑옷의 능력은 확실히 검증했으니 애초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 주변의 몬스터들은 전부 제거했으니 남아 있어도 할 일은 없었다.
[탈라리아]를 신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현찬은, 문득 떠오르는 기묘한 감정의 흐름에 입을 열었다.
“헤르메스.”
[…….]
“헤르메스.”
[…….]
두 번이나 불렀음에도 대답이 없었다. 현찬은 조금 더 목소리를 높였다.
“헤르메스!”
[어, 응 나 왜 불러 ]
“‘왜 불러 ’가 아니잖아. 너 무슨 일 있었어 최근 들어서 말수도 줄고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데 집중하느라 다른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잖아.”
무엇보다 헤르메스의 감정은 그와 계약 맺은 현찬에게 스며들기 때문에 현찬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헤르메스가 얌전히 있는 것도 적응되지 않는데 그가 품은 고민과 걱정마저 이쪽으로 스며드니 현찬은 당연히 헤르메스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었어 갑자기 왜 그래 ”
[아냐. 나쁜 일이라니. 그런 건 없어.]
“그러면 왜 최근 너무 조용한 거 아니야 네가 그렇게 힘이 없으니까 오히려 내가 걱정되잖아.”
[그 말이 맞는구나. 최근에 너는 너답지 않아서 이 누나도 조금 걱정이 들더구나.]
[아니, 나답지 않다는 것이 대체 뭔데 그래 대체 내 평소 이미지가 어떻길래 ]
헤르메스의 물음에 현찬과 아테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시끄럽고, 까불대기 ”
[잔망스럽고 얌전히 있을 줄 모르는 악동 ]
[아니…….]
불만어린 감정이 헤르메스의 목소리에서 묻어나오자 현찬은 그만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보던 헤르메스는 잠시 볼을 부풀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래. 최근에 생각할 것이 있어서 조금 거기에 빠져있던 것은 맞아. 하지만 현찬아, 네가 그렇게 걱정할 정도로 위험하거나 그런 일은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떻게 내가 신경을 안 써 헤르메스. 나는 너의 계약자야. 당연히 네가 무언가 고민이 있다면 나 또한 그걸 들어주고 널 도와주고 싶어.”
[아니. 그렇게까지 신경 써 줄 일은 아니야.]
‘그냥,’ 하고 헤르메스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최근에 궁금한 일이 생겼거든. 근데 그게 내가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이라서 말이야. 그냥 추측만 계속하고 있었어. 현찬이 너도 내 성격 알잖아 나 호기심 왕성한 거. 궁금한 거 있으면 잘 못 참아.]
“대체 뭐가 궁금한데 ”
[하하. 그건 비밀이야.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라서. 사생활은 존중해줘.]
“……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딱히 캐묻지는 않을게. 그래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 네가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까 오히려 이쪽이 더 걱정이야.”
[알았어. 적당히 할게. 아 참. 현찬아, 나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
“어디 ”
[만나야 할 녀석이 있어서 말이야.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것도 있어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애초에 영체 상태라서 위험할 일도 없을 테고.]
영체화 상태로 누군가를 만난다 영령들의 세계로 떠나기라도 하는 걸까
현찬도 왕성한 호기심이 일었지만, 그것을 꾹 억누르며 참았다. 헤르메스가 대체 무슨 고민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계약자인 그로서는 그저 믿고 기다려 줄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 이따가 저녁에 치킨 시켜놓을 테니까.”
[늦게 오면 나 혼자서 다 먹어버릴 테다.]
[아니, 마치 내가 죽으러 가는 것처럼 대하지 말라니까. 일찍 올 거야. 일찍 올 거라고! 그리고 치킨 안 남기기만 해 봐. 가만 안 둬!]
헤르메스는 호언장담하며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현찬은 그런 헤르메스의 영체를 잠시 지켜보다가 집을 향해 다시 날아갔다.
&
[흐음 ]
“왜 그러십니까 여신이시여.”
[아니. 아무것도.]
여신 <로키>는 허공에 둥둥 뜬 채 매혹적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녀의 반응에 서류를 보고 있던 주현창이 물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관심을 차단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현창은 관심을 끊고 서류 작업에 집중했다.
그의 시선이 사라지자 로키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찾아온 방문자와 얼굴을 마주했다.
그녀는 입을 열어 영령만 들을 수 있도록 말을 꺼냈다.
[안녕. 친구. 여전히 예쁘장한 얼굴이네.]
[그러는 너는 갑자기 성별마저 바꿨구나. 그렇게 남자가 좋은 거야 음탕하기는.]
[나는 어느 한쪽의 성별에 구애받지 않을 뿐이야. 오히려 방탕하기로 제일 끝판왕인 그리스 신화의 신인 너에게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은걸 ]
[염소 가지고 이상한 장난을 치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헤르메스의 날카로운 말에 로키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아아 싫다. 대체 뭣 때문에 나를 찾아온 거야 ]
[이 인간이 너의 계약자 이제 숨을 생각도 하지 않는구나 ]
[애초에 내가 꼭꼭 숨어도 이미 너와 네 계약자는 눈치챘잖아 그보다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 대체 왜 나를 찾아온 거야 계약자를 대동하지 않은 걸 보면 싸우자고 온 것은 아닐 테고 말이야.]
[안 그래도 내 계약자에 관련된 일 때문에 찾아온 거야.]
흐응
헤르메스와의 말다툼에 지루함을 느끼던 로키의 눈동자에 자그마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왔군. 헤르메스는 그녀가 갑자기 큰 흥미를 품은 것을 읽어냈다. 물론 헤르메스가 의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현찬의 이름까지 꺼내 들었으니까.
헤르메스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꺼내 들었다.
[너. 현찬의 정체에 관해서 무언가 알고 있지 ]
자신의 계약자에게 숨겨진 비밀의 정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