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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87화 (187/265)

# 187화.

187화 천마 대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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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

겔루키스는 날아드는 창을 무시하고 현찬에게 그대로 돌격했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현찬에게 닿지 못했다. 새하얀 빛 방패는 현찬의 몸을 노출되는 부분 없이 지켜주고 있었다. 쿨럭! 겔루키스는 피를 토했다.

겔루키스가 만들어준 틈을 비집고 옥사비누스가 공격을 가했다. 그가 사용하는 흑마법이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검은 구름 대신 보랏빛 기류가 사방을 가렸다. 그것은 생명체를 죽음으로 이끄는 사이한 기운이었다.

보랏빛 기류 속에서 다양한 짐승들이 아가리를 벌려 들며 현찬에게 달려들었다. 현찬은 그의 주위로 새하얀 깃털을 흩뿌렸다. 그 깃털들은 모두 각자 자아를 지닌 채로 달려드는 모든 짐승을 요격했다.

채앵!

현찬이 고개를 들자 루시퍼가 하늘에서 그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현찬의 검과 루시퍼의 검이 서로 충돌을 일으켰다. 둘은 그대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루시퍼의 붉은 안광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놀랍구나. 인간이 이렇게 강할 수 있다니.”

루시퍼는 진심으로 놀랐다. 악신회의 <아지다하카>에게 이야기는 들었다. 인간 중에서 인간답지 않게 강한 녀석이 있다고. 그 인간이 지금 눈앞에서 자신과 힘을 겨루는 현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들었지만 믿지 않았었다. 그만큼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인간이 신과 계약한 것까지는 그렇다 치지만, 그 힘으로 신을 제압한다  그것은 세상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웬걸.

루시퍼는 현찬의 힘을 직접 보고 알게 되었다. 그가 들었던 현찬의 실력은 실제보다 격하되어 있었다.

‘신과 계약을 맺고 강해지는 헌터’라고  그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신이 아닌 ‘신들’이라고 해야 옳지 않은가.

“미카엘 말고도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했다니…… 네놈, 지금 혼자서 무려 일곱이나 되는 대천사를 담고 있는 것이냐 ”

[루시퍼. 못 보던 사이에 말이 많아졌군요.]

그 질문에 대답한 건 미카엘이었다. 그는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로 루시퍼를 주시했다. 그것에는 어떠한 감정도 들어있지 않았다. 루시퍼는 겉으로는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미카엘은 항상 저랬다.

자신에게 루시퍼는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저렇게 무감정한 시선으로 보았다.

아주 먼 옛날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시대부터 싸울 때 미카엘은 루시퍼에게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루시퍼가 미카엘을 향해 분노와 증오를 보냈다면 미카엘은 루시퍼에게 아무런 감정도 갖지 않았다.

루시퍼는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미카엘을 향해 더욱 큰 증오를 내비치고 더 집요하게 싸움을 걸었다.

[루시퍼. 언제까지 이런 무의미한 싸움을 지속할 생각이지 ]

“무의미  웃기지 마라.”

루시퍼는 입가를 이죽거렸다.

“네놈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하지만 내게는 달라.”

미카엘을 죽일 것이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고통으로 범벅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것은 천사였던 시절부터 지니고 있던 <루시펠>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 악마가 되어서도, 오직 그는 그것만을 위해서 살았다.

“너희 증오스러운 천사와 신을 죽인다. 그것은 절대로 멈추지 않아.”

[건방진 것! 불경하구나!]

루시퍼가 그 명칭을 입에 담자 다른 천사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오직 미카엘만이 그런 루시퍼를 가만히 주시할 뿐이었다. 이래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건가  루시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래. 계속 그렇게 있어라. 지금 당장 네놈의 계약자를 죽여주마. 그리고 이 세계의 모든 인간을 쓸어버리겠다.”

그리고 하계를 완전히 정복한 뒤 증오스러운 신마저도 죽일 것이다.

과연 그 순간을 맞이하면서도 미카엘 너는 그 표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까부터 쫑알쫑알 더럽게 시끄럽네.”

현찬은 손을 뻗어 루시퍼의 얼굴을 그대로 손으로 꽉 쥐었다. 루시퍼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현찬은 루시퍼를 지면에다가 냅다 내리꽂았다. 콰앙! 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나고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며 지반이 주저앉았다. 현찬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새하얀 불길을 내뿜으며 루시퍼의 육신을 태웠다.

그러나 갑자기 일어난 검은 불길이 새하얀 불길을 밀어냈다. 그 불길 장막을 걷어내며 루시퍼가 멀쩡한 모습으로 검을 휘둘러왔다.

“고작 그따위 공격으로 날 어찌할 수 있는 줄 알았냐!”

“못할 것도 없지.”

“뭣 ”

루시퍼가 당황하는 순간 새하얀 빛의 창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루시퍼는 검은 날개를 활짝 펼쳐서 방패처럼 몸을 지켰다. 이런 광범위한 형태의 공격은 피할 수 없지만, 하나하나의 공격력이 약하기에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현찬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뻘건 화염이 일어나 루시퍼를 몰아쳤고 지면에서 성스러운 물이 뿜어져 나와 루시퍼를 휘감았다. 강한 삭풍이 그를 밀어냈고 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의 눈을 멀게 했다.

“일대일로도 미카엘을 이기지 못했으면서.”

현찬은 하늘에서 온갖 속성의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것은 폭격기를 방불케 했다. 지상에는 물이 일어나고 불길이 뿜었으며 벼락이 몰아쳤다.

“일곱이나 되는 대천사들을 이기겠다고 ”

“닥쳐라!”

루시퍼는 그 모든 공격을 뚫고 현찬에게 쇄도했다.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지만,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현찬의 얼굴을 향해 내질러진 붉은 검은 그대로 우뚝 멈추었다. 그의 검은 이미 수십 자루가 넘는 빛의 창에 얽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퍼억!

루시퍼의 관자놀이를 현찬이 깔끔한 발차기로 후려쳤다.

루시퍼는 다시 지상으로 추락해 바닥에 처박혔다. 그 모습은 마치 한때 촉망받던 천사에서 타락 천사로 격하되며 지옥 아래로 떨어지던 때의 모습과 흡사해 보였다.

[루시퍼.]

“닥쳐라, 미카엘! 나를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

루시퍼는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로 인해 얼굴이 피 칠갑이 되어 그야말로 악마들의 왕에 어울리는 외모가 되었다.

“네놈은 예전부터 그랬지!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어! 마치 너 따위는 내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그런 안하무인의 시선이었지!”

[루시퍼. 그건…….]

“내 착각이라고  네놈은 항상 그랬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매일 신의 이름만을 부르면서 악마들을 죽였다! 자신만의 삶의 방향성도 의지도 없는 놈이 왜 나를 그렇게 깔보는 것이냐!”

루시퍼도 알고 있었다.

미카엘은 그를 향해 감정을 내비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미카엘은 항상 루시퍼를 향해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불쌍하다는 듯한 연민의 시선. 자신을 너무나도 불쌍한 녀석처럼 보는 그 눈빛에 루시퍼는 억눌렀던 분노를 터뜨렸다.

“크아아아아!”

루시퍼의 등을 찢으며 검은 날개가 두 쌍이나 더 튀어나왔다. 그의 주위로 검은 기류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루시퍼의 몸 곳곳의 피부를 뚫고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루시퍼는 이를 악물고 그 고통을 견뎌냈다.

루시퍼는 자신이 지닌 한계 이상의 힘을 끌어내고 있었다. 아무리 제물을 통해 하계에 내려왔다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그가 지닌 완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일부 제한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그 한계점을 넘어선다는 것은 자신의 본신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루시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루시퍼는 그런 점들을 생각해서라도 지금 당장 저 인간을 죽일 생각이었다.

상처를 회복한 겔루키스와 옥사비누스도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들은 루시퍼의 폭주를 보며 혀를 찼지만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쳇.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겼구먼.”

“시끄럽다. 지금은 저 인간을 죽이는 데 집중한다.”

미카엘은 착잡한 시선으로 루시퍼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그렇게나 내가 증오스러웠는가.]

내 친우여.

“…… 미카엘 님.”

미카엘의 동요는 현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현찬이 그를 부르자 미카엘은 미안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구나. 계약자여. 그저 아주 옛날의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 그런 감정은 모두 지워버리고 진심으로 싸움에 임하도록 하지.]

오히려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이 자신의 한때 친구이자 지금은 숙적인 루시퍼를 향한 최고의 예우일 것이다.

다른 대천사들은 그런 미카엘의 행동에 안타까워했다. 그들도 알고 있다. 미카엘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지.

겉으로는 강하고 고결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도 여린 천사였다.

미카엘은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은 신의 대행자이자 어린 양들을 지키는 사도다.

여기서 그가 패배하면 인류는 사라진다.

그러니 모든 사적인 감정은 벗어던진다.

아주 먼 옛날부터 그래왔듯이.

“갑니다.”

현찬이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일곱 개의 대천사 무기가 한데 모였다. 그것은 서로 하나로 합쳐지며 눈 부신 빛을 뿜어냈다. 현찬은 그 빛을 손에 쥐었다.

이것은 검도, 활도, 창도, 도끼도, 둔기도 아니었다.

그저 모든 악을 멸하기 위한 한 줄기 빛일 뿐.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강하고 성스럽다.

“너희 악마들은 오늘 여기서 모조리 죽는다.”

검을 쥐고 자세를 잡자 현찬을 중심으로 새하얀 빛 파동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그것은 순식간에 수십 킬로미터 바깥까지 뻗어져 나갔다. 오염된 도시가 빠른 속도로 정화되어 갔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악마들은 온몸에 불이 붙으며 절규했다. 새하얀 불길은 악마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꺼지지 않았다. 순식간에 수천이 넘는 악마 대군이 새하얀 불길에 휩쓸려 검은 뼈만 남기고 산화했다.

[루시퍼. 여기서 끝을 내자.]

“미카에에에에엘!!”

루시퍼가 지면을 박차고 현찬을 향해 쇄도했다. 겔루키스와 옥사비누스도 각자 자신의 최강의 일격을 준비한 뒤 현찬에게 달려들었다. 셋이나 되는 마왕이 모든 힘을 쏟아부어 현찬을 덮쳐들었다.

오직 이 일격에 모든 것을 건 건곤일척의 대결.

세 개의 거대한 어둠과 하나의 빛이 충돌했다.

빛과 어둠은 서로 격렬하게 충돌하고 반발하더니 이내 하나로 합쳐지며 혼돈(chaos)을 만들어냈다.

그 혼돈은 크기를 거대하게 키우며 주위를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무엇도 가리지 않고 전부 다 먹어치웠다.

&

“으앗!”

“무, 무슨 일이지 ”

그랑데우스가 이끄는 생존자 집단은 무사히 다리를 건너 전진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중간에 다른 악마들이 달려 들었지만, 용갑병과 그랑데우스의 활약으로 어떠한 사망자나 부상자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때맞춰 도착하는 순간 멀리서부터 거대한 충격파가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사람들은 그로 인해 다치지는 않았지만, 놀란 듯 몸을 떨고 있었다.

“어엇! 저길 봐!”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다리 너머를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그곳에서 회색빛 거대한 구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확장하고 있었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확연히 보였다. 얼마나 크기가 큰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갑자기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다시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저 회색 구체는 대체 뭘까. 보기만 해도 불길한 저 기운은 대체 뭘까. 모두가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회색 구체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작아졌다.

그것은 이내 언제 나타났냐는 듯 감쪽같이 사라졌다.

&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황무지. 현찬은 그 위에 서 있었다. 그의 발 근처에는 몸의 7할이 날아간 루시퍼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렇게나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니. 과연 마왕다웠다.

겔루키스와 옥사비누스는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겔루키스는 죽었고 옥사비누스는 중간에 공격을 회수하며 도망쳤다. 물론 옥사비누스도 이 충격의 여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는 매우 큰 상처를 입은 채 도주했다.

현찬도 이미 체력이 한계까지 몰린 상태라서 그를 쫓지는 않았다.

“쿨럭! 쿨럭!”

가슴 아래로 신체가 사라진 루시퍼는 입에서 끝없이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또 졌는가.”

[그래.]

“미카엘…….”

루시퍼는 흐릿한 눈동자로 미카엘을 올려다보았다. 현찬은 멀쩡했다. 루시퍼가 불러일으킨 힘은 결국 스스로 몸만 좀먹고 말았다. 그의 몸이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어떤 발악을 해도 너에게 닿지 못한 거구나.”

[그래. 너는 졌다. 루시퍼. 더 변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말에 루시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미카엘의 뒷말이 이어졌다.

[그러니 다음에는 제대로 준비하고 덤벼라.]

“뭐 ”

[언제든지 너의 도전을 받아주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라고 물을 틈도 없었다. 점점 부서지던 신체는 이미 루시퍼의 입까지 집어삼켰으니까.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패배의 절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새로운 삶의 의지로 타오르는 희망의 불꽃이었다.

루시퍼는 그렇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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