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186화 7대 천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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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절반으로 나뉘었다.
한쪽은 성스러운 기운으로 가득 찬 새하얀 빛으로,
다른 한쪽은 어둡고 음침한 붉고 어두운 기운으로.
그 두 기운은 서로 부딪치고 충돌하며 치열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느 한쪽이 밀리거나 일방적으로 미는 일이 없었다. 팽팽하게 충돌하는 기운 사이에 힘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주변 건물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으며 아스팔트 도로는 금 가고 돌조각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떠오른 돌조각들은 그대로 가루처럼 바스러졌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악마들은 뒤로 물러났다.
기세로만 싸우는 것만으로도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었다. 저기에 끼어드는 순간 그것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것을 소멸할 것이다. 악마들은 호전적이라 해도 저런 곳에 목숨 걸고 끼어들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하물며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왕이 무려 둘이나 있는 마당에 무얼 말하리.
바로 전투에 돌입하려던 겔루키스는 현찬을 세심하게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싸우기 전에 하나 묻지.”
그의 굵은 목소리는 현찬의 귓가에 크게 울려 퍼졌다. 현찬은 겔루키스를 향해 심드렁한 눈빛을 날렸다. 그는 그 건방진 시선에 당장에라도 현찬의 눈깔을 후벼 파고 싶었지만 참았다.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겔루키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뭔데 ”
“예전에 지구의 한 인간이 내 구역까지 넘어와서 한바탕 깽판 친 적이 있었지.”
겔루키스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거 네가 한 짓이지 ”
질문이었지만, 그의 표정을 보면 이미 현찬을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현찬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건방지게 뿔 달린 놈들이 까불길래 직접 참교육을 해 준 적은 있었지. 그래, 그러고 보니 그때 놈들이 누구누구의 군단이라고 말하던데. 그게 너였나 ”
“호오 솔직하구나. 하지만, 너무 솔직해서 건방져.”
겔루키스는 진심으로 현찬을 죽일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현찬에게 자신의 부하 일부를 잃은 사건이 이미 마계 전역으로 퍼져서 한동안 다른 마왕들에게 놀림거리가 된 참이었다. 오만하고 안하무인인 겔루키스에게 그런 모욕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다가왔다.
범인만 잡으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게 죽여주려는 생각이었다.
그 범인이 지금 눈앞에 있다. 심지어 자신이 떡하니 범인이라고 당당하게 자백까지 하고 있다.
어찌 그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좋아. 그랬단 말이지 ”
겔루키스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근육을 풀어주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우두둑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가 주먹을 꽉 쥐자 주변 공간이 겔루키스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이 일었다.
이계 다섯 마왕 중에서 가장 강한 근력을 지닌 존재는 바로 겔루키스였다.
인간 중에서 ‘알렉세이 윌터’라는 인간이 그나마 육체적인 힘이 강해서 한번 붙어볼까 했던 그는 때마침 등장한 현찬에게 본격적으로 힘을 행사할 생각이었다.
“마계의 일부를 끌어들여서 이쪽 세계에서도 적응했으니 이제 가만히 있던 만큼 날뛰어 볼까 ”
“그 전에, 나도 너에게 한 가지 묻지.”
현찬의 뜬금없는 말에 겔루키스는 몸을 우뚝 멈추었다.
“뭐지 ”
“너는 이쪽 세계 사람들 몇 명이나 죽였지 ”
대체 무슨 질문을 하는지 했더니 고작 그런 거였나
겔루키스는 기도 안 차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멍청한 자식. 네놈은 지금까지 살면서 네가 밟아 죽인 벌레들의 숫자도 기억하냐 거슬리면 죽인다. 약하니 죽는다. 그런 인간 따위에게, 내가 왜 관심을 줄 거로 생각했지 뭐, 굳이 대답하자면 수를 셀 수 없다고 해야겠지. 이 도시에 있는 인간 중 대다수는 나와 부하들에게 죽었을 테니까.”
“흠. 그래…… 그랬단 말이지.”
현찬은 잘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일단 먼저 널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해졌네.”
그렇게 말하는 현찬의 표정은 어딘가 한결 더 가벼웠다.
“일단 너부터 죽이고 시작하면 되겠다.”
“뭐 ”
겔루키스는 순간 현찬이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죽여 누가 누굴 고작 하찮은 인간이 악마들의 정점에 선 마계의 왕인 자신을 죽인다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겔루키스는 순간 판단이 둔해졌다. 그것이 그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다가왔다.
서걱!
“크아아악!”
겔루키스는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팔이 어깨부터 잘려나가더니 이내 격류에 휘말려 가루로 변했다. 겔루키스는 이를 깨물었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없었다. 왜냐하면, 베어내는 것과 동시에 상처의 단면마저 깔끔하게 지져졌기 때문이었다.
“이…… 자식이.”
겔루키스의 두 눈동자가 붉게 출혈했다. 그 눈동자는 현찬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분노와 더불어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대체 언제 공격한 거지 ’
그는 현찬이 검을 휘두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그가 방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낌새마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었다. 겔루키스는 그제야 자신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이런. 빨리도 눈치챘네.”
현찬은 딱히 숨길 것도 없었기에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어차피 이미 나머지 둘도 현찬이 무언가를 했다는 것 정도는 대충 눈치챈 것 같았으니까.
“너희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 전부터 몰래 신력을 주변에 뿌리고 있었지. 치명적이지 않게 조용히 스며드는 독처럼 말이야. 뭐 그렇다 해도 고작 공격 반응 속도를 늦추고 신체 능력을 조금 둔하게 만드는 게 전부지만.”
하지만 누구보다도 신체적인 강함에 능력의 비중이 쏠려있는 겔루키스에게는 상당히 효과 있는 계략이기도 했다.
“크큭! 그래. 그랬단 말이지 ”
겔루키스는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그는 자신의 어깨 단면을 손으로 쥐어서 뜯어버렸다. 촤악!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겔루키스는 자신의 쥐어뜯은 살점을 자신의 입에 처박아 그것을 빠르게 씹어먹었다.
으득! 으드득! 꿀꺽!
겔루키스가 살점을 삼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잘려나갔던 오른팔이 도마뱀 꼬리처럼 단면을 뚫고 새로이 튀어나온 것이다. 겔루키스는 자신의 오른팔을 쥐었다 폈다 하며 몇 번 움직이다가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씨익 웃었다.
“제법 귀찮은 능력을 사용하는구나. 재생마저 억제하게 하다니 말이야.”
“그렇다고 설마 스스로 신체를 떼어내서 재생을 촉진하다니 너도 어지간히 또라이네.”
“좋을 대로 떠들어라. 네놈은 나를 화 나게 했으니까.”
겔루키스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내 잃은 육신은 네놈의 시체를 먹으며 보충해야겠다.”
“조금 전에 그렇게 당해놓고 너무 당당한 거 아니야 ”
“방심해서 당했을 뿐 내가 진 게 아니다. 무엇보다 네놈은 아무리 나를 베어내도 내 재생력을 이겨낼 수 없어.”
겔루키스는 신체적인 능력이 강하며 재생력이 뛰어나다.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한 능력을 지닌 마왕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강하다. 복잡한 술수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한 신체 능력으로 공격하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우직하게 그 길을 나아갈 수 있었고 빠르게 마왕의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다.
“재생 능력 그거 좋지.”
현찬은 겔루키스의 자신감에 그보다 더한 자신감으로 보답했다.
“한 방에 쓰러지면 이쪽도 싱겁잖아 ”
“이 빌어먹을 인간이! 봐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는 기어오르는구나!”
겔루키스는 몸에 검은 마력을 휘감았다. 그러자 그의 거대한 육신은 갑옷으로 뒤덮였다. 악마들이 사용하는 흑마 갑주. 그보다 몇 단계는 더 높은 능력을 지닌 갑주가 펼쳐졌다. 다른 악마들이 사용하는 것이나 같은 마왕이 착용하는 것보다도 겔루키스의 갑주는 크고 단단했다.
“네놈이 과연 이걸 뚫을 수 있을까 ”
겔루키스는 그렇게 외치며 현찬에게 달려들었다. 원래라면 가장 먼저 싸움을 시작했어야 할 루시퍼는 혀를 차며 겔루키스의 뒤를 따랐다. 어쩌다 보니 분위기에 휩쓸려 겔루키스에게 선공권을 넘기고 말았다.
‘하지만 저놈을 죽이는 건 바로 나다!’
루시퍼는 미카엘을 향한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천사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료였지만, 지금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만 성이 풀리는 원수 사이가 되었다. 지금까지 끝없이 이어졌던 미카엘과의 사투를 오늘 이 자리에서 종지부 찍을 생각이었다.
그 미카엘의 힘을 다루는 현찬의 마지막을 고작 다른 세계의 마왕에게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격하게도 달려드네.”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겔루키스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러자 12장의 날개에서 새하얀 깃털들이 튀어나와 화살처럼 겔루키스에게 쏘아졌다. 겔루키스는 두 팔을 X 형태로 교차하며 깃털을 막아냈다.
티티티티티팅!
과연 단단하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는지 현찬이 쏘아낸 깃털은 겔루키스의 갑주를 뚫지 못했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먹히지 않는 건가.’
겔루키스는 둔중하지만 튼튼하다. 저런 녀석을 상대로 제대로 된 타격을 먹이려면 그 방어력을 웃도는 수준의 공격을 가해야만 했다. 현찬이 뒤로 물러나자 겔루키스는 승리의 웃음을 터뜨리며 현찬에게 접근했다.
겔루키스는 머릿속으로 확실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제대로 가까이 붙어서 싸움만 건다면 자신이 이긴다. 신체의 힘에서부터 이미 현찬은 자신에게 밀린다.’
“죽여주마!”
겔루키스가 현찬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허공에서 새하얀 빛줄기가 떨어지며 그의 손등을 꿰뚫었다.
“뭣 !”
겔루키스는 설마 자신의 갑주가 뚫릴 줄 몰랐는지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쳇.”
겔루키스는 혀를 차며 몸을 뒤로 뺐다. 현찬의 커다란 날개가 한 번 펄럭일 때마다 겔루키스가 뒤로 쭉쭉 밀려났다.
현찬은 물러나는 그를 쫓지 않았다.
‘휴. 업그레이드한 무기를 여기서 써먹게 될 줄은 몰랐네.’
현찬의 주위로 새하얀 빛 무기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총 7개나 되었다.
이는 현찬이 지금 계약 맺은 일곱 명의 대천사가 사용하던 무기를 전부 <차용>한 것이었다.
예전이라면 무기 1개를 다루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그것도 [테레이오스테]에 적용해야 무기가 지닌 힘을 제대로 낼 수 있었다.
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바로 이 업그레이드한 [테레이오스테]였다.
무려 7개의 조각으로 나뉜 이 검은 그대로 일곱 대천사의 힘을 이어받아 그들이 천계에서 사용하던 무기를 고스란히 현실로 불러냈다.
즉 현찬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제 동시에 여러 개의 무기를 다루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겔루키스의 갑주가 단단하다고 하더라도 대천사가 직접 사용하던 무기만큼은 막아내지 못했다. 겔루키스도 그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뒤로 물러난 것이었다.
이제는 현찬의 차례였다.
현찬이 겔루키스에게 날아들었다. 새하얀 섬광 같은 현찬의 움직임은 겔루키스가 채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허공에 눈부신 빛줄기가 복잡한 거미줄처럼 그어졌다. 겔루키스는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현찬의 움직임을 쫓았다.
‘빠르다!’
겔루키스는 현찬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빛으로 이루어진 창 한 자루가 겔루키스에게 날아들었다. 그는 갑주를 이용해 손을 휘둘러 창을 쳐냈다. 카앙! 창과 갑주가 충돌했다. 창은 다시 현찬의 의지를 따라 허공을 비행했고 겔루키스의 왼쪽 팔의 갑주가 떨어져 나갔다.
‘이건…… 위험하다!’
겔루키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마계의 다른 마왕과 싸울 때도 이만한 위기감을 느껴본 적 없었다. 현찬의 공격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매우 상극이다. 그것에 적중당하는 순간 그는 이제껏 느껴본 고통의 몇 배는 큰 피해와 고통을 입을 것이다.
“그러게 왜 혼자서 까불어 ”
“미안하지만 혼자는 아니지.”
상황을 지켜보다 더는 안 되겠는지 옥사비누스가 끼어들었다. 그는 불길한 보랏빛 기류를 현찬에게 쏘아냈다. 그것은 닿는 건 모조리 죽음의 하수인으로 만드는 사령의 기운이었다. 현찬은 빛의 방패를 펼쳐 막아냈다.
“이쪽도 가세하지.”
심지어 루시퍼마저 현찬의 뒤를 점하며 도망갈 길을 차단하고 있었다.
“쳇. 여기서는 자존심을 세우는 거고 뭐고 없겠어.”
겔루키스도 일대일로는 현찬과 붙는 게 불리함을 인정했다. 그는 부서진 갑주를 복구하며 본격적인 싸움 준비에 들어갔다.
“드디어 셋이서 동시에 덤비나 보네.”
그렇다면 이쪽도 제대로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