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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85화 (185/265)

# 185화.

185화 7대 천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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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또 뭐야 ”

그랑데우스는 눈을 비볐다가 다시 떴다. 그녀가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은 헛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환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부 다 실제로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놀란 건 나쁜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은 기쁘고 흥분되는 느낌이었다.

원래 이전의 바깥 풍경은 썩 보기 좋지 않았었다. 마계의 침공으로 대지는 붉게 물들고 하늘은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했으니까.

부서진 건물 거리에 널린 시체. 그들이 흘린 피와 살점은 도시의 풍경을 끔찍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부서진 건물 곳곳에서 솟아 나오는 거대하고 붉은 촉수까지. 악마들은 거리를 배회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생존자들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랬어야 할 풍경이 지금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눈이 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빛이었다.

그다음 펼쳐지는 건 새하얀 검과 창에 꿰뚫려 처절하게 죽어 나가는 악마 군단의 모습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의 무기들.

지상으로 추락하는 붉은 악마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새하얀 갑주의 존재들.

그랑데우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허.’ 하고 웃고 말았다.

“저 녀석. 그 많은 용 사체로 뭘 만들었나 했더니…… 재미있는 걸 만들었잖아 ”

새하얀 갑주로 이루어진 녀석들이 악마들을 쓸어버리고 빛을 뿜으며 지나갈 때마다 오염되었던 거리가 빠른 속도로 정화되고 있었다. 이미 파괴된 도시가 완전히 원래대로 복구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불길한 마기로 잠식된 거리는 빠르게 깨끗함을 되찾아갔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사람들 이끌고 나가야겠다.”

그녀는 즉시 결계를 해제하고 사람들을 이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갑자기 그랑데우스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그녀를 말리려고 했지만, 해제된 결계 바깥의 상황을 보자마자 너 나 할 것 없이 전부 뛰쳐나갔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사람들의 몸을 따스하게 비춰주었다. 생존자들은 드디어 살았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구조대도 기다리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는 ‘죽었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탓에 기쁨은 더 컸다.

선두에 선 현찬이 그런 시민들을 반겨주었다.

그랑데우스는 현찬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그의 등 뒤에 펼쳐진 12장의 날개는 매우 환상적으로 아름다웠으니까.

어디 겉모습뿐일까. 날개 하나하나가 내재하고 있는 힘을 생각하면 예전에 보았던 <드래곤 슬레이어> 버전과는 격이 달랐다.

용살자가 용을 죽이기 위한 그야말로 최종적인 형태였다면 이것은 모든 악을 불사르는 신성함 그 자체였다.

“안색을 보니 잘 지낸 것 같네. 먹고 싶은 거 잘 먹고, 쉬고 싶을 때 잘 쉬고.”

“어, 음. 뭐, 재미있기는 했지.”

그랑데우스는 대답하면서도 곁눈질로 현찬의 등 뒤에 서 있는 군사들을 보았다. 현찬도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 현찬은 그제야 자신이 이에 관해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멋지지 ”

“대단하네. 혼자서 어디를 연락도 없이 사라졌나 했더니 저런 걸 만들었던 거였어 ”

이렇게 되면 일주일간 현찬이 잠수 탈 만도 했다. 아니, 오히려 저것들을 만드는데 고작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게 다가왔다. 현찬의 등 뒤로 늘어선 군단은 적어도 숫자가 일천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용의 비늘과 뿔, 뼈는 매우 좋은 재료지.”

현찬은 그것으로 다양한 갑옷을 만들었다. 정확히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

처음에는 많이 고민했다. 이 많은 재료를 다 이용한다면 분명 헌터들에게 좋은 갑옷과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현찬은 그 지점에서 다시 한번 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과연 지금의 헌터들에게 좋은 장비를 갖춰준다고 그들의 실력이 늘어날까  당장의 전력 상승은 기대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결국 그들은 장비에 의존하여 자신의 실력을 깎아 먹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현찬도 아무런 의미 없이 계속 남에게 베풀 수만도 없었다.

적당한 정도라면 그래도 이쪽이 손해 볼 것은 없으니 나름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드래곤 사체는 다르다. 버릴 부위 하나 없는 용으로 만든 다양한 장비들이 지닌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그것을 그냥 가볍게 주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다.

그렇다고 그쪽에 주면서 대가를 요구하는 건 마치 강매하는 것 같지 않은가.

현찬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이 장비들은 자신이 사용한다. 그 대신 다른 부분을 접목하기로 한 것이다.

헤파이스토스가 발명한 [황금 인형].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헤파이스토스의 심복들.

현찬은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다.

헤파이스토스도 좋은 생각이라며 손뼉 쳤고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바로 이 군세였다.

[용갑병(龍鉀兵)].

그리스 신화 용아병과 비슷한 존재이지만, 이들은 말 그대로 갑옷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었다. [황금 인형]과 다르게 자율적으로 움직인다거나 스스로 사고하지는 않았다. 거기까지 만들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던 탓이다.

그 대신 현찬과 헤파이스토스는 더 단순하고 간단하게 갔다.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모조리 뺐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 없이 적을 말살하기 위한 강한 의지뿐.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용갑병이다.

오직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그야말로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군단.

새하얀 갑주를 입고 다양한 디자인의 투구를 쓴 천 명의 군단은 헤파이스토스가 아주 세세하게 디자인하여 만들어진 현찬이 이끄는 군대였다.

한 손에는 방패를 한 손에는 검과 창을 쥔 그들.

개별 전투력은 3단각 악마마저 쉽게 죽일 수 있을 정도다.

그들의 강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촤락!

그것은 바로 용갑병 등 뒤로 펼쳐진 순백의 날개.

용아병은 그 자체만으로 강하지만, 무엇보다 주인인 현찬의 ‘기운’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 속성을 변화할 수 있었다.

지금의 현찬은 신의 사도이자 성스러운 7대 천사와 계약을 맺은 상태다.

현찬과 이어진 용갑병들도 거기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갑주의 색깔이 새하얗게 물들었고 피막 달린 용의 날개 대신 새하얀 날개가 돋아났다. 그들의 검과 창은 신력을 머금었으며 새하얀 빛으로 악을 정화했다.

“이거라면…… 확실히 이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겠네.”

“그래. 그러니까 너는 내게 이 녀석들의 지휘권을 양도받아서 사람들을 안내해.”

“어, 어  내가 ”

현찬의 말에 그랑데우스는 당황하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방금 한 말이 진짜냐는 의미였다.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멀쩡한 것 같이 보여도 이 상태는 지속 시간이 제한돼 있어서 촉박해. 당장 이 사태를 일으킨 주범을 쓰러뜨리는 데 집중해도 부족할 판에 이 녀석들을 이끌 시간은 없어.”

용갑병의 단점이라고 한다면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다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사고하는 기능은 아직 없었으니까. 그래서 여기까지 오면서 현찬은 이 1천의 용갑병을 세세히 제어하는 데 집중했다.

그것도 이제 끝이다.

“명령권은 너에게 일부 넘길게. 이 녀석들 명령을 세세하게 내려야 제대로 움직이니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곤란해.”

“어. 잠깐만. 나 부른 건 싸울 때 도와달라고 그런 거 아니었어 ”

“도움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애초에, 너 지구에서는 자신의 권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잖아.”

“윽! 그것도 알고 있었어 ”

“힘을 멋대로 사용하면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볼걸  더 먼 미래를 생각하면 너는 여기서 싸워서는 안 돼. 뭐, 적당한 악마 잡졸들이야 쉽게 상대하겠지만 지금부터 내가 싸우러 갈 상대는 그런 잡졸이 아니라서 말이야.”

‘아무튼,’ 하고 현찬이 그랑데우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사람들을 안전한 곳까지 대피시켜. 최대한 빨리.”

그러지 않으면 이 많은 시민은 싸움의 여파에 휘말릴 것이다.

현찬은 고개를 살짝 들어 무너진 건물들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랑데우스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멀리서부터, 빠른 속도로 무시무시한 기세가 이쪽으로 접근 중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셋이나.

그랑데우스는 저 셋 중 그 누구와 1대1로 싸워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과연, 여기서는 내가 물러나야겠네.”

“그래. 녀석들은, 내가 처리할게.”

“후유. 알았어. 뭐, 솔직히 즐길 만큼 즐겼으니 나름 의무라는 걸 져볼까 생각했는데 오늘은 아닌 거로.”

그랑데우스는 [용갑병]의 지휘권을 양도받아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시민들을 데리고 최대한 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난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등에 업거나 힘으로라도 끌고 가라. 지금 당장.”

철컥!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 용갑병의 투구 틈새로 황금빛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대답은 없었지만, 이미 명령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용갑병들은 마치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빠르게 흩어지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진형을 짰다.

그랑데우스라면 아마 사람들을 잘 인솔하리라.

거기까지 확인한 현찬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12장의 날개가 한번 펄럭일 때마다 현찬의 신형은 길게 늘어나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현찬이 지나갈 때마다 오염된 대지와 공기는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모습은 마치 검게 칠해진 세상을 거대한 지우개로 빠르게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건물을 휘감던 거대한 촉수는 검게 말라버리더니 가루로 변했고 격이 낮은 악마들은 성스러운 기운에 노출되어 살과 근육이 타올라 뼈만 남고 죽어버렸다.

그 반대편에서는 더욱 농도가 짙고 사악한 기운이 현찬에게 접근 중이었다.

그렇게 두 기운이 한 곳에 충돌하며 강한 불꽃을 일으켰다.

“뭐야. 위험한 녀석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하나였어 ”

“방심하지 마라. 단 하나이기에, 위험한 법이니까.”

“닥쳐. 내게 멋대로 명령하지 마라. 죽고 싶나 ”

“후유. 이 자리에서 한번 싸우자 이건가 ”

현찬은 입을 다문 채 눈동자만 굴리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셋을 주시했다.

먼저 맨 왼쪽의 덩치.

그야말로 ‘악마’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그는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높이가 5m는 돼 보였다. 붉은 피부를 타고 흐르는 우락부락한 근육과 피부를 가득 뒤덮은 검은 털들. 등 뒤에 펼쳐진 악마 날개는 2쌍이나 되었고 검은 머리카락을 사자 갈기처럼 길렀다.

저자가 바로 심마왕(深魔王) 겔루키스.

호전적이고 무례한 겔루키스에게 차분하게 대꾸하는 건, 외눈 안경을 쓴 악마였다.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카락은 깔끔하게 넘겼으며 덩치도 사람과 비슷했다. 심지어 날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주위로 흐르는 끔찍한 죽음의 기운은 절대로 그를 우습게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저자가 바로 추혼마왕(追魂魔王) 옥사비누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미남자였다.

붉은 피부를 지닌 악마들과 다르게 매우 하얗고 창백한 피부를 지녔다. 오히려 악마라기보다는 흡혈귀 쪽에 가까웠다.

현찬은 그 남자가 가장 위험하다는 <루시퍼>임을 깨달았다.

루시퍼도 차분한 시선으로 현찬을 아니 그 뒤에 넘실거리는 일곱 천사를 보았다.

[루시퍼.]

“미카엘.”

두 천사와 악마는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이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신화 속 라이벌은 서로의 이름을 한번 되새기며 그들의 존재를 공고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

대화는 필요 없었다.

루시퍼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붉은 피와 같은 격류가 그의 손끝에 뭉쳐지더니 이내 섬뜩한 기운을 풍기는 검으로 변했다.

현찬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새하얀 빛의 입자가 한데 모이며 눈부신 창으로 변했다.

둘이 무기를 꺼내 쥐자 겔루키스와 옥사비누스도 떠드는 것을 멈추고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7대 천사와 마왕 세 명의 대결.

이것은 싸움이 아니다.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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