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184화 (184/265)

# 184화.

184화 7대 천사 (1)

_

까득!

새하얀 빛에 휘감긴 현찬은 이를 악물었다. 신급 영령이 대천사를 무려 일곱이나 불렀다. 지금의 현찬은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하지만, 무려 신급 일곱 명을 동시에 부르는 건 현찬에게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것은 무리한 모험이자 도박이었다.

미리 여러 가지 대책을 준비해 놓기는 했지만, 사실상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용의 뿔을 이용해서 만든 마력 증폭기.

헤르메스의 신력까지 직접 쥐어 짜내서 발동한 계약.

심지어 <잔 다르크>로부터 빌린 신력으로 계약 패스까지 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현찬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쥔 채 밀려오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빨려 들어가는 마력을 최대한 부여잡으며 멀어져가는 정신을 가까스로 유지했다.

이 계약을 성공시킨 건 순전히 운.

행운 덕분이었다.

<감은장아기의 축복>.

행운의 여신이 걸어준 축복은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 빛을 발했다.

이번에도 그녀가 걸어준 축복 덕분에 현찬은 가장 중요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단 한 명의 인간이 우리 모두를 부르다니.]

[지금까지 이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었거늘.]

하계로 강림한 천사들은 자신들을 부른 현찬을 보고 놀라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그들은 현찬에 관해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다. 영령 세계에서도 아주 격이 높은 영령들만 지내는 곳. 그곳에서 현찬의 이름을 모르는 신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가 자신들을 불렀을 때 처음에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나 모든 천사가 그의 부름에 응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찬은 모두를 불러내는 데 결국 성공했다.

7대 천사.

하나하나 거의 신급 영령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존재들.

아무리 헤르메스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찬이 보여준 이뤄낸 상황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만. 그의 자질이나 성향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는 계약자의 부름에 응해서 이곳으로 온 거다. 아무리 계약자라도 우리를 오랫동안 불러내어 있을 수는 없을 터. 요건만 확인하고 최대한 일을 빠르게 끝내는 게 좋겠지.]

그런 천사들을 지휘하는 천사가 바로 <미카엘>이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천사 중에서도 단연코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대천사.

그는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을 옆으로 넘기며 현찬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계약자여. 우리는 너의 부름에 응하여 이곳에 내려왔다. 그러니, 함께하는 이 순간만큼은 그대를 위해 기꺼이 내 검을 들도록 하지.]

[나 가브리엘 또한 그러하겠다.]

[나 라파엘도 당신을 따르겠어요.]

[뭐야. 다들 그렇게 말하면 나도 그럴 수밖에 없잖아. 나 라구엘도 너를 믿겠어.]

[레미엘. 그대를 따른다.]

다행히 천사들은 현찬에게 다들 호의적이었다. 각기 다른 개성과 아름다운 외모를 뽐내는 천사들은 모두 다리 너머 끔찍한 풍경을 주시했다.

[적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것 같군.]

미카엘은 주름 하나 없는 고운 이마를 찌푸렸다. 그 모습마저도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았다. 미카엘은 지금 그에게 풍겨오는 이 사악한 기운을 알아차렸다. 저곳에 있는 적 또한 자신의 성스러운 기운을 알아차렸으리라.

[루시퍼.]

&

“미카엘인가 ”

옥좌에 앉아 있던 루시퍼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미성은 동성마저 유혹할 정도로 매우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갈 길을 잃고 어둡고 칙칙한 건물 안에서 하릴없이 바스러졌다.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강대한 성스러운 기운에 루시퍼는 오랜만에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물며 그것이 자신의 숙명적 라이벌인 미카엘이라면 더더욱!

“미카엘을 부르다니. 아니, 이 기운을 보면 미카엘뿐만이 아니로군.”

미카엘이 자신의 존재를 내비치기 위해서 힘을 과다하게 표출하고 있을 뿐, 조금 더 차분하게 기운들을 확인해 보면 미카엘 혼자만이 뿜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라파엘, 가브리엘, 우리엘도 있군. 음  게다가 더 있다고 ”

대체 누가 저 무지막지한 대천사들을 불러냈단 말인가.

루시퍼가 고민에 잠기는 순간 그의 뇌리를 타고 얼마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루시퍼 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인간 중에서 저희가 가장 눈여겨보는 강현찬이라는 인물이 있으니까요. 그는 헤르메스의 계약자로서 다른 신들과도 계약을 맺고 그들의 힘을 다루는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때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옥 마왕인 그가 고작 인간 하나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기억력이 지나치게 좋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걸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직접 나서야겠어.”

루시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옥좌에서 일어났다.

꿈틀!

루시퍼가 일어나자 옥좌가 조금씩 꿈틀거렸다.

그가 지금까지 눈을 감고 앉아 있던 옥좌는 돌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을 으깨고 부수어 흑마법으로 합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뼈와 살, 피로 이루어진 이 옥좌는 무려 100명의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에서 아직 죽지 않고 육신이 뒤틀린 인간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자신의 몸을 계속 경련하고 있었다.

파직.

루시퍼가 가볍게 손을 뻗자, 살덩어리 옥좌는 그대로 피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심심해서 앉았는데 딱히 좋은 느낌은 없었기에 ‘폐기’한 것이다.

“손님이 왔으니 이쪽에서도 반겨줘야겠지.”

오늘이야말로 과거부터 이어져 온 악연의 굴레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

“저기다! 저기서 역겨운 기운이 풍겨온다!”

“전부 죽여라!”

멀리서부터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악마들이 몰려왔다. 헌터들은 각자 무기를 빼 들었고 일반 시민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으아악! 괴물이다!”

“모두 도망쳐!”

“길 좀 막지 마! 어서 비키라고!”

사람들은 서로 부딪치고 충돌하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현찬에게 홀린 듯이 따라온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았던 탓이다. 헌터들은 시민들을 지키면서 싸우면 이쪽에 피해가 클 거라는 걸 직감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이 고민하고 있을 때 먼저 답을 내려준 것은 현찬이었다.

“모두. 가만히 있으세요.”

현찬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것은 마치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만 전달하려는 것처럼 작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현찬의 말을 빠지지 않고 들었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자리에 가만히 섰다.

놀란 개미 떼처럼 이리저리 엉키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지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지금도 악마들이 이쪽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데 조금 전까지 치솟던 두려움이 눈 녹듯이 사라진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일대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들은 우리의 칼날 아래에 무릎을 꿇을 테니까.”

그것은 현찬의 말이되 현찬의 말이 아니었다.

동시에 펼쳐지는 7개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몸에 스며들어 두려움을 씻어주고 용기를 칠했다.

파아앗! 현찬의 몸에서 눈 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사람들의 몸을 휘감으며 상처를 치료해주고 활력을 심어주었다.

“어, 어엇 ”

“이럴 수가…… ”

자잘한 상처가 사라지자 헌터들은 당황했다. 거의 바닥을 보이던 체력이 순식간이 회복되었고, 오히려 컨디션이 좋을 때보다도 더욱 몸에 활력이 넘쳤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버프는 그대로 헌터들의 전력을 크게 강화했다.

[아아! 대천사님이시여!]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서다은의 계약 영령인 <잔 다르크>였다.

누구보다도 신앙심이 투철한 그녀는 하계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자신이 믿고 따르는 ‘신’의 사도들을 만난 것이다.

[어린아이야. 여기는 너에게 맡기마. 우리는 지금, 싸우러 가야 하느니라.]

[네! 알겠습니다. 이곳은…… 제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겠습니다!]

[듬직하구나. 너의 계약자가 많이 지쳐 보이니 축복을 내려주마.]

“어, 어 ”

새하얀 빛이 자신의 몸을 휘감자 서다은은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그 기운에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의 품 안에 안긴 것처럼 묘한 그리움과 포근함이 느껴졌다. 그것에 몸을 맡기자 그녀가 지닌 힘과 능력이 예전보다 훨씬 더 늘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오빠. 이건 대체…….”

“여기 방어선을 부탁한다. 나는, 이제 가 봐야 해서.”

시간이 얼마 없다.

불러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7대 천사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는 없었다.

지금 일분일초라도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갑시다.”

[그래. 우리도 저쪽에 볼일이 있으니까 말이지.]

일곱 대천사와 현찬의 의지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본격적으로 천사의 힘이 해방되었다.

현찬의 등 뒤로 6쌍, 총 12장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그것은 주위로 순백의 깃털을 휘날렸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깃털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명검으로 변모했다.

“저놈이다! 녀석을 죽여!”

“놈은 내 거다!”

악마들은 커다란 날개를 지닌 현찬을 보고 눈이 뒤집혔다. 당장에라도 저 기분 나쁜 기운을 풀풀 풍기는 현찬의 목을 치고 그 피를 마시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다. 그러나 현찬에게 다가오는 악마들은 깃털의 검에 모두 꼬챙이처럼 꿰뚫렸다.

수백이 넘는 악마들은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지상으로 추락했다. 악마들 각각이 지닌 힘은 어떠한 차이도 주지 않았다. 아무리 뿔이 길고 뿔이 많아도 현찬의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촤악!

날개가 펄럭이며 현찬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목표는 오염된 부산의 정화와 부산을 오염되도록 한 장본인들을 제거하는 것.

때마침 저쪽에서도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느껴졌다.

&

“으음. 이거 진짜 고민이네. 어쩌면 좋지.”

그랑데우스는 건물 지하에 틀어박혀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저을 때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출렁였다. 화려한 금발이지만 머리카락 끝부분이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독특한 머리카락 색이었다.

먹거리를 즐기기 위해서 부산으로 온 것까지는 딱히 나쁘지 않았다.

돈은 두둑했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인 루브나브로가 지닌 아공간에는 보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그것의 극히 일부만 환전했음에도 그랑데우스는 매우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녀는 그 돈으로 맛있는 것들을 사 먹으며 식도락 여행을 즐겼다. 그 행동을 눈감아준 현찬이 갑자기 소식이 뚝 끊겼지만, 어련히 알아서 잘 살 놈이라고 생각하고 본인이 할 일만 했다.

그러다 이 사달이 났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을 때 몸을 빼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늦었고 결국 의도치 않게 힘을 사용하고 말았다.

그녀의 힘에 이끌린 사람들이 그녀를 멋대로 따라왔고 그랑데우스는 결국 건물 하나에 결계를 펼쳐서 사람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었다.

딱히 인간을 증오하지 않기에 이런 사소한 선행에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그러나 이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여러모로 문제가 생긴다.

‘먹을 게 없어!’

사람들이 피난 오면서 음식을 챙겼을 리가 없다. 게다가 생존자들의 수가 워낙 많아서 기본적으로 챙겨놓은 비상식량은 동난 지 오래. 당장에 그녀가 먹을 음식도 없었다.

‘그냥 나 혼자 몸을 빼서 도망칠까 ’

딱히 이곳의 사람들에게 그녀가 빚진 건 없었다. 여기서 그냥 혼자 떠난다고 해서 누구도 그녀를 비난하지 못한다. 애초에 그녀는 인간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드래곤이니까.

“아아 짜증 나!”

그녀를 붙잡은 건 현찬의 존재였다.

그 남자가 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이 사달이 일어났으니 움직였을 것이다. 그가 나타날 때까지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런데 소식이 끊긴 그 남자가 도대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이 문제였다.

실시간으로 악마 놈 중 감이 좋은 몇몇이 그녀의 존재마저 눈치채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악마와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이대로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그랑데우스.”

그녀의 머릿속을 울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푹 숙이던 그랑데우스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현찬  현찬! 살아있었구나! 왜 이렇게 늦어!”

“일이 있었어. 그보다, 너 지금 부산에 있지 ”

“어, 어  맞아.”

“대충 상황을 보니, 생존자들은 네가 데리고 있는 것 같은데.”

“어. 그런데.”

“다 이끌고 나와.”

“괜찮겠어  주변에 악마가 쫙 깔렸어. 나 혼자서는 이 많은 인간은 다 못 지켜.”

<엘 드라코>였으면 그녀가 지닌 권능을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었겠지만 여기는 지구다. 그녀가 지닌 힘에 상당히 제약받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니까 그냥 나와.”

“……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러지.”

허투루 행동하는 남자가 아니기에 그랑데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바깥 상황을 살펴야 했다. 그녀가 마법을 이용해 결계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어 ”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르게 펼쳐져 있는 풍경을 보고 그녀는 그런 멍청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