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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83화 (183/265)

# 183화.

183화 대악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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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좀 심각한데.”

상대가 마왕 하나였어도 그것은 거의 재앙에 가깝다. 악마 중 뿔이 5개나 되는 마왕이 지닌 힘은 오버랭크 헌터 이상 가는 무력을 지녔다. 그런 마왕이 둘 그리고 악신회에 소속한 마왕이 하나.

양 리화가 그 싸움에서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웠다.

“다른 차원의 마왕들은…… 어딘가 힘이 제한된 것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가까스로 상처를 다잡고 그 자리에서 후퇴할 수 있었죠.”

“그야 그렇겠죠. 아무리 마왕이라고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마왕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차원에서 제약을 받고 있겠죠.”

물론 그 제약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줄어들 것이다. 놈들은 지구 차원에 점차 적응해나갈 것이다. 지옥처럼 변해버린 부산이 바로 그 증거다. 겔루키스와 옥사비누스는 일종의 테라포밍을 통해서 제약을 벗어던질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했던 건 바로 <루시퍼>였어요.”

양 리화는 몸을 떨었다. 아직도 루시퍼가 보여주었던 그 무지막지한 공격이 머릿속에서 강하게 맴돌았다.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그 광경은 더욱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과 땅을 전부 핏빛으로 물들였던 괴물.

양 리화는 그때 깨달았다.

자신은 무슨 짓을 해도 <루시퍼>를 이길 수 없다고.

“…… 정신 공격에 당하셨군요.”

현찬은 양 리화의 반응에 어딘가 이상한 부분을 포착해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양 리화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손바닥으로 그녀의 이마를 쓸었다.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신력에 약간의 반발감이 느껴졌다.

조금 더 힘을 주자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은 점차 힘을 잃더니 이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양 리화의 떨리는 몸이 멈추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

구천현녀는 설마 자신의 계약자에게 이런 저주가 새겨져 있는지 몰랐는지 당황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것은 다른 신이 보아도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까. <헤르메스의 눈>을 지닌 현찬이라서 찾아낼 수 있었다.

“아주 미약하지만, 일종의 세뇌 같은 것이 심어 있었어요. 무언가 행동을 하도록 조종할 정도로 강한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과 공포심을 유발하고 상대방의 정신력을 천천히 고갈시키는 것이죠.”

이 저주를 심은 대상은 바로 <루시퍼>.

정신적 부분인 ‘교만’을 관장하는 마왕답게 그는 타인을 힘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정신적인 부분으로도 압박을 가했다.

무엇보다 양 리화가 무력은 강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약한 면도 있었기에 주술을 쉽게 허용한 것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설마 오버랭크 헌터에게 영향을 줄 정도라니. 이거, 녀석과 싸우려면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야겠는데요 ”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도 부족했다.

상황을 살핀 것에 따르면 한시가 급했다. 악마들의 세계와 이어진 게이트를 폐쇄하고 지금 벌어지는 테라포밍도 막아야 했다.

여기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세계연합>만 불리하게 흘러가고 만다.

마왕과 그 휘하 악마들은 점점 강해질 테니까.

“방도가…… 있는 겁니까 ”

황설영의 물음에 현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방도라고 해 봤자 뭐 있겠나요. 그저 싸워서 승리하는 것밖에 없죠.”

“놈들은 강합니다.”

“압니다. 양 리화 씨마저 이렇게 됐을 정도잖아요. 게다가 저도 오면서 대충 현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부 훑어봤습니다.”

현찬도 보았다.

검게 물든 하늘과 붉게 물든 대지를. 무너진 건물들과 곳곳에서 기괴하게 자라난 거대한 촉수들을.

시체를 짓밟고 그 위를 배회하는 악마들을.

필사적으로 싸우며 세계를 지키려는 헌터들을.

“…….”

현찬의 눈빛을 들여다본 황설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현찬의 검은 눈동자 안쪽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의 불꽃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마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악마들에게 분노한 사람은 현찬일 것이리라.

“바로 가실 겁니까 ”

“그래야겠죠. 지금 상황을 보면 결국에는 시간 싸움입니다. 미루면 미룰수록, 적들의 힘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더 감당할 수 없게 될 테니까요.”

“위험합니다.”

“원래 이런 게 헌터들 인생 아니었습니까.”

현찬은 피식 웃으며 자신을 걱정해주는 황설영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황설영은 자리가 자리인지라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이 못내 분한지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원군 필요하십니까 ”

“필요 없습니다. 그럴 여력도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고요.”

다리와 강을 너머로 건너오는 악마들을 막는 데만도 병력 대부분을 투입하는 현황이었다. 여기서 악마들과 싸울 강자들을 불러내려고 한다면 전열에 구멍이 생기고 만다.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뭐, 이번에는 저라도 좀 위험하기는 하겠네요.”

‘그러니,’ 라며 현찬이 말을 이었다.

“저도 이번에는 다른 동료들을 좀 부를 생각입니다.”

“네  다른 동료라니요 ”

“저희를 도와줄 사람은 <연합>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됐군요.”

“그게 무슨…….”

말끝을 흐린 황설영은 뒤늦게 현찬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깨달은 것 같았다. 설마! 그녀가 대답을 내놓기 전에 병실의 문을 누군가 두드리더니 간호사가 들어왔다. 바깥에서 현찬과 황설영을 황급히 찾는다고 했다.

양 리화와 인사하고 병실을 나서서 바깥으로 나오자 연합 간부들이 현찬을 반겨주었다. 그리고 그들보다 현찬을 더욱 반긴 사람은 매력적인 갈색 피부에 회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아렌디르였다.

“현찬! 오랜만이구나!”

“응. 오래간만이야.”

“우리 동맹이 공격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병력을 이끌고 지원에 나섰다.”

아렌디르 뒤로는 다양한 부족 전사들이 질서 있게 서 있었다. 지난번 싸웠을 때 보다 기세가 막강해진 것을 보니 열심히 훈련받은 것 같았다.

“최대한 모을 수 있는 전사들은 다 데려왔지만, 미안하구나. 그렇게 많지 않아서.”

“아니. 이 정도만 데려와 줘도 충분해. 무엇보다 시간도 부족했을 텐데 고생 많았겠네.”

“그, 그런가. 헤헤.”

황설영이 아렌디르의 반응이 조금 묘하다고 느낄 때였다.

“우리는 이제 무얼 하면 되는 거냐  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를 치면 되는 거냐 ”

“아니. 너희는 이곳의 강변에서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방어해주면 돼. 먼저 공격을 나설 필요는 없어.”

“적들의 이야기는 들었다. 악마 놈들이라고 했지  우리도 듣는 귀는 있다. 놈들이 얼마나 포악하고 잔혹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놈들에게 시간을 준다면 전황은 이쪽에 불리하게 흘러갈 거다.”

아렌디르의 지적은 옳았다.

그러나 그녀의 지적은 이 상황을 단순하게 한쪽 면에서만 본 것이었다.

“그건 괜찮아. 이쪽에서는 놈들의 머리를 칠 특수부대가 있거든.”

“오! 특수부대라니, 그것참 신뢰가 가는 말이구나! 그래, 그게 누구더냐 ”

“나.”

“그리고 ”

“나.”

“음  그리고 ”

“나.”

“…….”

아렌디르도 현찬이 뭘 말하려는지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간다는 것이냐 ”

“혼자는 아니야.”

“그러면, 또 누가 가는가 ”

“사람은 아니지만, 날 도와줄 녀석이 하나 있어. 강해.”

“그 밖에는…… ”

“없지.”

“둘이서 가다니! 그건 미친 짓이다! 현찬, 네가 강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우리 위대한 신님께서도 그대를 인정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악마 놈들은 위험하다. 놈들은 강한데다가 교활하기까지 해. 네가 온다면 무슨 함정을 파 놓을지 알 수 없다.”

“마, 맞습니다. 강현찬 헌터님. 그 생각을 조금 더 재고해주심이…….”

이때다 싶었는지 근처에서 눈치만 보던 다른 관계자들이 현찬을 뜯어말리려 들었다. 현찬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어떻게든 현찬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현찬은 요지부동이었다.

“간다면 갑니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해 봤자 불리해지는 건 이쪽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싶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피해를 줄이고 싶습니까  그러면 제가 가야 합니다.”

“하,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이쪽에서 병력을 준비하려고 시간을 끄는 게 적들이 바라는 점입니다. 어떻게든 놈들의 머리를 쳐내야만 이 싸움의 승기가 우리 쪽으로 기웁니다.”

물론 그 결과는 현찬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원군의 실력을 생각하면 그리고 최근에 헤파이스토스를 통해 얻은 것들을 생각하면 해볼 만한 도박이었다.

“무엇보다. 저 안쪽에 남아있는 생존자들…… 구해야 하지 않습니까 ”

“그, 그걸 어떻게…….”

한 간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생존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연락이 온 것이 조금 전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할 타이밍이 안 나왔는데 정작 그 말은 현찬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남성의 눈빛을 보았음에도 현찬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강가 너머 생존자들이 모여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쯧. 경남에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저기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뭐, 됐어. 찾을 수고를 덜었으니 오히려 이쪽이 바라던 바지.”

[정말 가게 ]

“응. 이번에는 조금…… 많이 무리해야 할 것 같아.”

상대는 마왕이 셋이다.

그중 둘은 자신의 진정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마왕은 썩어도 마왕이다.

<심마왕(深魔王) 겔루키스>.

<추혼마왕(追魂魔王) 옥사비누스>.

<교만의 마왕 루시퍼>.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면 그 셋과 동시에 싸워야만 했다.

‘특히 겔루키스는 나한테 좀 맺힌 게 많겠지.’

한 번 자그마한 연결이 생겼을 때 그의 영토로 넘어가서 일부 군사를 쓸어버리는 깽판을 벌였으니 겔루키스는 잔뜩 현찬을 벼르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현찬은 기꺼이 그 운명의 장단에 놀아주기로 했다.

“지금 가시는 겁니까 ”

“예. 이쪽 방어는 잘 부탁합니다.”

현찬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었다.

‘애초에 내가 넘어가는 순간 모든 악마의 관심은 내게 쏠릴 테니까.’

특히 마왕의 관심은 당연히 전부 현찬에게 집중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악마들이 강 너머의 사람들과 싸우려고 들까

‘이거 참. 너무 노골적으로 판을 깔려고 하는데.’

현찬은 이 모든 상황의 뒤에 누군가의 노골적인 적의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대는 갖춰졌다. 이제 배우들이 무대의 위로 올라올 시간이었다.

이 절망적인 무대에서 그 붉은빛 조명 아래에 과연 현찬은 희망을 담은 연극을 선보일 수 있을까.

‘뭐, 굳이 그쪽의 장단에 맞출 필요는 없겠지.’

중요한 건 흐름을 이쪽에서 잡아 이끄는 것이니까.

그러기 위한 변수는 이미 충분히 생각해 둔 뒤였다.

현찬은 걸었다. 이 전초 기지에서 강을 건너는 다리까지는 멀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천천히 걸어가는 현찬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며 기도했다. 누군가는 홀린 듯이 현찬의 뒤를 천천히 따라왔다.

현찬이 다리에 도착했을 때 그 뒤로 수많은 헌터와 일반인이 서 있었다.

다리는 난장판이었다. 높게 쌓은 방어벽 주위는 악마와 헌터들의 시체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근처에서 한창 경계에 신경을 쏟던 헌터들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찬은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하여 대낮인데도 어둡고 칙칙한 하늘이다. 거기에 빛은 없었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분명히 빛이 있었다.

“오빠…… 오셨네요.”

“어. 다은아. 역시 너도 있었구나.”

악마를 상대할 때 성녀 서다은이 빠지면 섭섭하다. 그녀의 능력은 악마들을 상대로 최적의 효율과 상성을 자랑했으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서다은의 상태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연이은 전투의 여파 때문인지 그녀의 눈동자 아래에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아마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한계를 맞이한 것이겠지.

“내가 왔으니 이제 됐어. 쉬어라.”

“하지만…….”

“괜찮아.”

현찬은 바리게이트 너머를 노려보았다.

“다 잘될 거야.”

그러니.

그 힘은 조금 빌릴게.

“예 ”

서다은이 의아해하는 순간, 그녀의 몸에서 아주 미약한 빛이 현찬에게 빨려 들어왔다.

그것은 너무나도 미약해서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새하얀 빛이었다.

성녀 <잔 다르크>가 지닌 힘의 극히 소량. 현찬은 그 자그마한 촛불에 모든 것을 걸었다.

<계약>.

이번만큼은 헤르메스도 현찬에게 자신의 모든 힘을 빌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부르는 ‘자들은’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당신들의 어린양을 지키기 위해…… 저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현찬의 말은 경건하게 공간을 울렸다.

그리고 검은 하늘이 열렸다. 좌우로 쩍 갈라진 구름의 틈새에서 눈부신 백광이 현찬에게 쏟아져 내렸다.

“아, 아아!”

그 광경을 보던 사람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경탄의 소리만 내질렀다.

어둠을 걷어내고 모든 것을 밝게 비추는 빛.

그 빛을 통해서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

<우리엘>.

<라구엘>.

<사리엘>.

<레미엘>.

일곱 천사가 현찬 주위로 내려앉아 성스러운 빛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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