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182화 대악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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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게 무슨 소리죠 악마가 침공했다뇨.”
현찬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무려 수백 개나 와 있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은 다양했다. 동생, 부모님, 정기원 실장, 황설영 헌터 등. 현찬의 연락처를 아는 모든 사람은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헤파이스토스 공방은 이 세계와는 동떨어진 다른 차원이었기에 전화 연결이 통하지 않았다. 설사 전화가 울렸다 하더라도, 망치를 휘두르는 데 열중하느라 듣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 상황은 대충 알겠네요. 언제부터 이런 일이 벌어진 거죠 ”
“하루 전입니다.”
“하루 전이라…….”
바로 전날 일어난 대참사다. 인간세계와 동떨어진 도깨비들이 사는 세계이기에 소식을 얻는 것이 느렸으리라. 그 소식을 알고 현찬이 공방 밖으로 나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달걸이 빠르게 소식을 전해주러 왔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장소를 제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촌장님께 전해주세요.”
“네, 넷!”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시가 바빴다.
현찬은 <헤르메스의 눈>을 발동했다. 일주일 동안 눈을 푹 쉬게 한 덕분인지 지난번처럼 큰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오랫동안 발동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설마 이렇게 좋은 걸 만들자마자 사용할 순간이 오게 될 줄은 몰랐네요.”
[운명이란 참으로 기구한 것이니, 언제 갑자기 무슨 일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법이지. 바빠 보이니 난 이만 가보겠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세나.]
“예.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에크티. 너의 주인을 끝까지 잘 보좌하렴.]
[알겠습니다. 파파.]
‘…… 파파 ’
에크티의 그 단어에 순간 깬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헤파이스토스는 그 단어가 좋은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저렇게 부르라고 시킨 것이 분명했다. 미혼 딸바보 팔불출이라니, 이 신도 참 대단하구나. 현찬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공방을 거두었다.
“간다.”
현찬은 즉시 [탈라리아]를 착용하여 하늘을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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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의 눈>으로 확인해 본 결과 악마들이 침공한 장소는 부산이었다. 조금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자신의 가족이 있는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통화가 가능한 지역권에 들어선 뒤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면서 달라졌다.
“…… 부산이 함락됐다고요 ”
“예. 어떻게든 낙동강을 끼고 전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점점 밀리는 추세입니다.”
현찬은 하늘을 날아가며 정기원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이 대략 어떻게 흘러갔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악마들이 나타난 시점은 바로 하루 전이다. 그러나 단 하루라는 기간이 무색할 만큼, 이쪽이 입은 피해는 너무나도 컸다. 악마들은 강했고 수가 많았다. 무엇보다 기습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대비하지 못한 게 컸다.
놈들은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각국의 헌터가 힘을 합쳐서 밀어내고자 했지만 적이 워낙 강해서 계속 밀려나고 있다고 했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오버랭크 헌터들은 없었나요 ”
“중국의 오버랭크 헌터 양 리화 님이 지원을 왔습니다만…….”
정기원은 말끝을 흐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뒷말을 이었다.
“적 중에도 오버랭크 헌터에 근접하는 강자들이 있어서 그들과 싸우다가 큰 상처를 입고 현재 휴식을 취하시는 중입니다.”
“…… 예상한 것보다 더 심각하네요.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죠.”
“죄송합니다. 저희를 믿고 잠시 자리를 비우셨는데 하필 이런 일이 터져서.”
“그게 뭐 죄송할 일입니까. 그저 상대가 나빴고 운이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지금이라도 빠르게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게 우선이죠.”
“…… 감사합니다. 그보다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에 간다고 하셨는데 언제쯤 도착하십니까 ”
“음.”
현찬은 자신의 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대략적인 이동 시간을 계산했다.
“한 10분이면 될 거 같아요.”
그런 현찬의 등 뒤로 용의 날개가 빠르게 펄럭이며 비행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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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네.”
“그러게 말이야.”
부산 쪽에 도착했을 때 현찬이 가장 먼저 본 광경은 붉은 대지와 검은 하늘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일종의 환영인 줄 알았다. 그러다 전부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표정이 저절로 굳어졌다.
“마계 영향 때문인가, 대지와 하늘이 어둠에 물들고 있어.”
멀리서부터 보인 시체들과 끔찍한 광경. 거대한 붉은 촉수 같은 것이 몇몇 건물을 치솟아 오르며 휘감고 있었다. 부산 전체가 마계와 점차 빠르게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부산은 전부 괴멸하는 중이었다. 낙동강 쪽에서는 다리를 폭파해서 적들이 넘어오는 것을 막으며 <세계연합>이 방어 전선을 펼치고 있었지만, 당연히 악마 중에서 하늘을 나는 녀석들은 많았다.
현찬은 악마와 인간들이 싸우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멀리서부터 빠르게 돌격했다.
“막아라! 이 자리를 지켜!”
“여기를 빼앗기면 놈들이 강을 건너기 수월해진다! 죽기 살기로 버텨!”
3개의 뿔을 지닌 악마들은 그렇게 말하는 헌터들을 보며 킬킬대며 웃었다. 나약한 인간이 쏘아대는 무기의 위력은 위협적이었지만,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끄아악!”
그러는 사이 악마 하나가 빠르게 지상에 있는 헌터 한 명을 낚아챘다. 그는 발버둥 치며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뿔이 3개 난 악마의 힘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안 돼! 성한아!”
그 헌터의 친구로 추정되는 이가 이름을 애타게 불렀지만, 그 목소리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악마들은 강하고 잔인했다. 놈들은 헌터들을 상대할 때도 전투에 진심으로 노력을 쏟지 않았다. 그저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산채로 찢어서 죽였다.
지금 붙잡힌 저 헌터도,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악마들에게 팔다리가 뽑히고 조각나게 될 것이다.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는 분노에 <세계연합> 소속 헌터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허공에 새하얀 빗줄기가 그어지는 듯하더니 헌터 한 명을 끌고 올라갔던 악마의 목이 잘려나갔다.
“우아아악!”
떨어지는 헌터는 밑에서 대기하던 다른 동료들이 잘 받아주었다. 그들은 갑자기 악마의 목이 잘려나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그것은 다른 악마들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냐!”
“적인가!”
기습당했다. 동료가 죽었다. 악마들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그들의 손톱이 길어지고 몸통 주위로 검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갑옷을 둘렀다. 누구 짓인지 발견만 하면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였다.
그 자리에 있던 약 100여 마리의 악마는 모두 온몸이 토막 나서 바닥으로 시체가 쏟아졌다.
떨어진 시체는 낙동강에 휩쓸려 나갔다.
“괜찮으신가요 ”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은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용의 날개를 걸친 독특한 갑옷을 입은 남자였다. 용의 형상을 한 투구와 어딘가 세련돼 보이는 갑옷 형태의 슈트는 헌터들의 전의를 순간적으로 상실시키고 그에 관한 궁금증을 촉발하기에 충분했다.
“누, 누구십니까 ”
일단은 자신들을 도와줬으니 동료라는 걸 알았지만, 그 정체가 궁금했다. 이 장소에 지원군이 온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제가 급해서 이걸 입고 있었네요.”
남자,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갑옷을 해제했다. 몸에 딱 달라붙던 용 갑주는 수만 개의 조각으로 흩어져 허공에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제야 현찬을 알아보고 믿을 수 없는지 볼을 꼬집었다.
“가, 강현찬 헌터다!”
“그가 도우러 왔어!”
“우린 살았다!”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 이 부대를 담당한 책임자 헌터는 현찬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찬 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모두 여기서 저 괴물들에게 농락당하며 죽었을 것입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요. 작전 실은 어디에 있죠 ”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해 공항을 중심으로 둔 전진기지는 피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갑자기 주거지를 공격당해서 몸만 빠르게 피신한 사람들은 갈 곳을 잃은 채 근처에 텐트를 치고 고개를 푹 떨군 채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양 리화가 나타나서 기뻐했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양 리화가 싸움에 나가 큰 상처를 입고 돌아왔을 때 그리고 그것을 많은 사람이 보고 소문을 퍼뜨렸을 때 이곳은 그야말로 장례식장을 방불케 했으니까.
그런 김해공항에 또다시 새로운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현찬이 등장해서다.
“가, 강현찬 헌터가 왔다는 게 정말이야 ”
“우린 이제 살았다! 그가 왔으니, 저 괴물들은 모두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부정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가 온 게 뭐 중국의 오버랭크 헌터도 당했잖아.”
“저 괴물들은 우리가 감히 이길 수 없는 존재들이야. 당장 항복해야 한다고!”
두 파로 나뉜 피난민들을 보며 현찬은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경비를 지나 공항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낯익은 얼굴이 현찬을 반겨주었다.
“현찬아!”
“강현찬 헌터님!”
황설영과 이한율. 그녀들도 이곳에 와 있었다. 이미 한 차례 큰 혈전을 치렀는지 몸에 걸치고 있는 방어 구들은 매우 너덜너덜했다. 그녀들이 사용하는 방어 기구의 등급이 높은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치열한 싸움이었음이 분명했다.
연합 간부들도 속속들이 등장하며 현찬을 반겨주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중요했지만, 현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거였다.
“양 리화씨는요 ”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황설영의 안내를 따라 들어간 곳은 환자들이 머무는 장소였다. 그곳에는 중상을 입은 헌터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황설영은 그들을 지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현찬도 그 뒤를 따랐다.
긴 복도를 지나자 바쁘게 돌아다니던 사람들의 인기척이 거의 사라졌다. 복도의 끝에는 자그마한 방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료용 침대에 누워있는 한 여성이 이쪽에 시선을 주었다.
양 리화는 현찬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으신가요 다쳤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양 리화는 애써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런 양 리화의 등 뒤로 구천현녀가 침통한 표정으로 자신의 계약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가로지르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다행히 빨리 응급처치를 끝냈고 뛰어난 의료진들의 도움 덕분에 상처는 흉터 없이 전부 아물었습니다. 다만 이미 피를 많이 흘리셨고 체력을 너무 소진한 상태여서 이곳에서 쉬고 계시는 겁니다.”
양 리화는 대인 기피증이 있어서 이렇게 외진 곳에서 혼자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
“…….”
양 리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이며 자신이 직접 보고 느꼈던 상황을 현찬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녀가 설명하지 못한 부분은 구천현녀가 직접 말을 덧붙여주었다. 황설영도 이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었기에 얌전히 의자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을수록 황설영와 현찬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갔다.
양 리화의 이야기가 전부 끝났을 때 병실 안의 분위기는 훨씬 더 무거워져 있었다.
“대악마 루시퍼가…… 하계로 내려왔다…….”
악의 화신이자 신에게 대항했던 최강의 대천사인 그가 악신회의 힘을 빌려 현실에 강림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른 세계의 마왕들과 손을 잡았다는 게 문제겠지.”
<심마왕(深魔王) 겔루키스>.
<추혼마왕(追魂魔王) 옥사비누스>.
루시퍼는 현재 이 둘과 손을 잡았다.
다른 세계의 마왕 둘과 지구의 7대 마왕 중 하나.
적은 무려 ‘마왕’이 셋이나 되는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