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181화 업그레이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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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다. 보기만 해도 에르카닐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세트와 눈이 마주쳤다.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몰래 지켜보는 능력을 쓰고 있었음에도 붉은 머리의 남자는 이쪽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오. 내가 지켜본 것을 알고 있는 건가 ”
세트의 표정은 흥미로 가득 찼다. 악신회에 들어올 녀석이니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설마 자신의 기척을 꿰뚫어 보고 이쪽에 시선을 던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 순간 붉은 머리칼의 남자는 앞으로 걸었다. 그 걸음은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느리고 차분했다.
그리고 그는 모래 고리를 통과하여 세트의 앞으로 나타났다.
‘맙소사!’
에르카닐은 붉은 머리 남자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그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가볍게 발을 내디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남자는 공간을 뛰어넘어 이 자리까지 도달했다.
촤악! 남자의 검은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새의 날개처럼 생겼다. 마치 검은 먹물에 푹 담갔다가 뺀 것처럼 칠흑색이 감돌고 있었다. 그 불길한 기운은 <세트>의 기세에 눌려 흩어졌다.
“초면부터 너무 과격하게 나오는 거 아닌가 ”
“음. 너는…… ”
“피차 서로 원해서 불려온 입장에서, 사이좋게 지내자고. 앞으로 동료가 될지 모르는 처지에 말이야.”
“…… 이 기운. 모래까지 다룬다면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다. 이집트 신화의 신 <세트>인가 ”
남자의 말에 세트는 ‘뭘 숨기랴,’라고 생각하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악명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기에 딱히 숨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는 너야말로 꽤 유명한 녀석이 내려 왔구먼.”
“나에 대해서 아나 ”
“애초에 이 악신회에서 너를 모르는 녀석이 어디 있을까 머리칼은 붉게 만들었지만, 그 날개나 외모, 내뿜는 기운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보란 듯이 신에게 대항하려는 그 기운. 우리 악신들에게마저 불길함을 내뿜는 그 날개.”
세트의 입꼬리가 진하게 올라갔다.
그의 미소에는 참을 수 없이 재미있는 녀석을 만났다는 반가움이 깃들어 있었다.
“흠. 흥미롭군. 내 정체를 알아냈다 이건가 어디 한번 맞춰 보시지.”
“<루시퍼>.”
세트의 대답에 붉은 머리칼 남자, 루시퍼의 눈썹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너. 기독교 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녀석이잖아.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교만의 마왕 루시퍼>.
7대 마왕 중 하나이자 교만과 자만의 마왕이다.
한때는 능력이 좋아 신에게 가장 기대받던 천사였지만, 나락의 나락까지 떨어져 버린 타락 천사이자 악마들의 왕이다.
위대한 아버지인 신에게 반기를 들어, 자랑스럽던 12장의 새하얀 날개는 모두 검게 물들고 하늘 세계에서 추방당해 지옥으로 떨어진 지배자.
그가 바로 이 붉은 머리의 남자였다.
“그 검게 물든 날개는 당연히 다른 신들의 눈에도 띈다고 ”
“그렇다면 너도 잘 알고 있겠군.”
루시퍼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내가 신이라는 작자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세트는 악신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신이다. 루시퍼, 교만한 그에게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존재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최고는 늘 자신이어야 했고 교만한 자도 자신뿐이어야만 했으니까.
농밀한 어둠의 기운이 복도 전체를 잠식했다. 에르카닐은 황급히 마력을 일으켜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그의 주변 공간이 검게 물들며 빠르게 부식했다.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도, 벽과 천장을 장식하는 대리석도 전부.
“너무 그렇게 허세 부리지 말라고. 그러지 않으면…… 나도 화가 나려고 하잖아.”
“낼 수 있으면 내 봐.”
두 신의 기운이 충돌하자 공멸 현상이 일어났다. 세트와 루시퍼를 사이에 둔 바닥에 금이 가며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부서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힘에 억눌려 가루로 흩어지고 있었다. 저기에 끼어들면 A랭크 헌터라도 저항하지 못하고 죽어 나갈 것이다.
‘크윽! 마, 말려야……!’
에르카닐은 어떻게든 둘의 충돌을 막아야 했다. 둘 다 하계에 일부 권능을 가지고 강림한 신급 존재다. 저 둘이 싸우는 순간 주변은 돌이킬 수 없는 폐허가 되고 만다.
하지만 너무나도 농밀하고 무거운 기운에 에르카닐은 자신의 몸을 지키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두 기운은 점점 강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만하시죠. 이렇게 싸워봤자 남는 거 없습니다.”
“…… 너는 ”
둘의 기운이 최대치로 부풀어 올랐을 때 둘 사이에 한 남성이 끼어들었다.
어딘가 도마뱀을 떠오르게 만드는 남자였다. <오로치>와 닮았지만, 어딘가 그와는 여러 부분에서 달랐다.
세트는 그를 알아보았지만, 루시퍼는 그를 처음 보았다.
“소개하도록 하죠. 제 이름은 <아지 다하카>라고 합니다. 당신과 같이 이 악신회에 소속되었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의 예의 바른 언행에 루시퍼는 기운을 전부 회수했다. 그러자 세트는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차며 그 또한 기운을 회수했다.
“저희 악신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나는 뭘 하면 되는 거지 이유 없이 불러내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물론이지요. 그것은 차차 저희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쪽에 딱히 손해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조로아스터 신화 최악의 악룡 <아지 다하카>.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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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일주일 가까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헤파이스토스의 망치질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 하루 이틀은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그 이후로 시간이 흐를수록 작업 속도는 더뎌졌다.
그러나 마냥 느리다고 나쁘지는 않았다. 천천히 할수록 작업은 꾸준히 그리고 확실히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르는 땀을 곁에서 시중을 드는 황금 인형의 첫째가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물도 다른 황금 인형이 먹여주었다. 황금 인형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현찬의 몸을 빌린 헤파이스토스는 일주일간 쉬지 않고 망치를 휘둘렀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서 계속.
망치를 휘두른 것이었다.
피곤하지는 않았다. 이미 오버랭크 헌터 아니 그 이상의 존재가 된 현찬은 일주일간 잠을 안 자고 굶은 거로 피로해지는 인간의 수준을 넘어섰다.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낼 수도 있었다.
이미 그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뜨거운 불꽃이 사방으로 튀기고 쌓여있던 재료 산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일주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끝났다.]
헤파이스토스는 이 긴 작업의 끝을 고하며 공방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동시에 육체의 주도권이 다시 현찬에게 돌아왔다.
“드디어, 끝났네요.”
[그래. 일주일 동안 정말로 기나긴 여정이었지.]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드는 순간 초를 치는 목소리가 공방에 울려 퍼졌다.
[어라 끝났네 ]
[음. 그러고 보니 오늘이 딱 7일째 되는 날이었던가.]
그런 느긋한 말을 중얼거리는 건 현실에 육신이 소환된 헤르메스와 아테나였다. 둘은 조금 전까지 뭘 먹고 있었는지 입가에 양념을 묻힌 상태였다. 아테나는 특히나 실시간으로 손에 치킨 박스를 들고 치킨을 물어뜯고 있었다.
“왔냐. 내가 일하는 동안에 열심히 놀았나 봐 ”
[거 참. 솔직히 우리가 여기서 뭐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없는데, 방해꾼은 오히려 빠져주는 게 예의잖아.]
[그렇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고 기운을 충전하여,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옳은 일이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는 직접 나가지도 못했다. 도깨비들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먹는 거다.]
[맞아. 이 정도는 솔직해도 되잖아 우리니까 이런 찜통 속에서 기다려 준 거야.]
[맞다. 고마워하거라.]
“하여튼 변명하는 실력들은…….”
현찬은 허탈하게 웃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
“어쩌기는. 자 이걸 봐.”
현찬은 자신의 검 한 자루를 꺼내서 헤르메스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현찬이 이전에도 계속 쓰던 검 [테레이오스테]였다. 하지만 지금 [테레이오스테]의 모습은 예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제대로 업그레이드했어. 검의 성능을 아주 잘 키웠지.”
[그렇지. 게다가 멋들어진 갑옷도 만들었고, 다양한 기능까지 추가했다.]
“갑옷 갑옷이 어디에 있는데 아무것도 안 보여.”
[훗. 보면 알 거다. 계약자여.]
“알았어요.”
현찬이 눈을 감고서 조심스레 시동어를 읊었다.
“Τοποθ τηση(장착).”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현찬의 주위로 빛 입자가 생겨나더니, 그것이 자그마한 조각들로 변했다. 그 숫자가 무려 수만 개가 넘었다. 조각들은 의지를 지니고 움직이며 현찬의 몸에 다닥다닥 붙었다.
아주 자그마한 조각이었지만 그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현찬의 몸을 전부 덮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가벼운 옷차림의 현찬은 활동하기 편한 세밀한 갑옷에 덧씌워졌다.
[오오!]
[대단하구나!]
“어때 멋지지 마음만 먹으면 다른 모습으로 바꿀 수도 있어.”
이렇게.
현찬이 조금만 의지를 담아서 마력으로 신호를 보내면, 조각들은 모습과 재질을 빠르게 변형시켰다. 어느덧 현찬의 몸 위로는 새하얀 코드가 걸쳐졌다.
“겉모습은 이래도 전부 드래곤으로 만든 재료라서 내구성은 장난 아니야. 단순히 갑옷의 형태뿐만이 아니라, 천이나 가죽의 재질처럼 변할 수도 있지. 그러면서 본질은 그대로야. 그리고 무엇보다 무기도 제대로 강화됐어.”
[어디 무기뿐이겠냐 우리 막내 에크티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줬지.]
헤파이스토스는 그것을 증명하려는 듯 [테레이오스테]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검이 붉게 물들며 우웅 울더니 거기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순식간에 한 소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황금 인형의 마지막 넘버링 에크티는 다소곳이 선 채 등장했다.
헤르메스는 턱을 쓰다듬었다.
[겉모습은 딱히 변한 건 없는데 ]
[지금은 그렇겠지.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네. 에크티.]
[네.]
에크티의 자그마한 입술이 움직이며 무언가 읊자, 그녀를 중심으로 붉은 기운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에크티의 몸을 휘감으며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나자 불길이 사라지고 헤르메스와 아테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건…….]
[성장…… 아니, 설마.]
10대 중후반의 소녀로 보였던 에크티는, 20대 중반의 여성으로 성장해 있었다. 용과 비슷한 형상을 한 붉은 갑옷을 걸친 그녀는 찬란한 황금빛 머리는 그대로였지만 그 아름다움은 배가 되었다. 키도 커졌고 팔과 다리도 더 길어졌다. 무엇보다 확실히 성장했다는 게 보이는 몸매에 헤르메스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훌륭히 성장했구나.]
그러면서 옆에 있는 아테나에게 시선을 슬쩍 던졌다.
[누구랑은 완전 다르네.]
까득!
아테나의 입안에 들어갔던 치킨 뼈가 조각 났다.
그렇게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헤파이스토스는 둘의 그런 모습을 보며 웃었다.
[항상 높은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업무에 지친 아이들이, 이렇게나 자유롭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쁘구나.]
“뭐, 워낙 즐거워서 문제지만요.”
[하하! 이 또한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이번 일주일의 노가다처럼요 ”
[크흠. 이런 일은 앞으로 조금 자제했으면 하는구나.]
“킥킥.”
어찌 됐든 업그레이드는 전부 성공했다.
“뭐, 남은 재료로 많은 것들을 만들었으니까요.”
[뭐, 쓰일 일이 없는 것이 좋겠지만 말이다. 앞일은 모르는 법이니 잘 보관해 놓거라.]
“물론이죠. 쓰더라도 아주 잘 써먹을 겁니다.”
둘의 대화가 그렇게 끝나는 순간이었다.
멀리서부터 빠른 속도로 한 기척이 접근해왔다.
적인가 싶었지만, 그것이 낯익은 존재의 것이라는 걸 깨닫고 현찬은 공방을 나섰다.
“달걸 ”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달걸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매우 안색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죠 ”
“현찬 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바로 바깥 상황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그러시는데요 ”
달걸은 차오르는 숨을 꿀꺽 삼키곤 뒷말을 이었다.
“악마가…… 악마가 인간 세상을 침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