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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80화 (180/265)

# 180화.

180화 업그레이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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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무구를 만들기 위해서 현찬은 작정하고 긴 시간을 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무구를 만드는 데 집중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공간이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가 가장 적합했다. 대한민국의 땅덩어리 안에서 그에 가장 적절한 공간은 현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로 찾아오셨다고요 ”

“예. 염치불구하고 실례 좀 하겠습니다.”

환몽촌 촌장 경루는 손사래 치며 정색했다.

“실례라니요. 은인께서 이렇게 찾아오신 것만으로도 저희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근방은 결계로 사람들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으니 원하시는 장소에서 마음껏 원하는 작업을 하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 밖에 혹시 필요한 일이 있다면, 따로 아이 하나를 붙일 테니 그 아이에게 시키시면 될 겁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무언가 따로 필요할 일은 없거든요.”

경루는 현찬에게 무언가 더 좋은 대접을 못 한 것이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도움을 극구 반대하는 현찬에게 강제로 밀어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경루는 ‘정말 필요한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말만 해달라’며 자리를 떴다.

완전히 혼자가 된 현찬은 산골짜기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헤파이스토스 공방을 소환하려면 상당히 넓은 장소가 필요했기에 장소를 물색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내고 현찬은 바로 <헤파이스토스>를 불러냈다.

[음. 공기가 맑고 아주 좋은 곳이구나.]

헤파이스토스는 주변 풍경에 만족하며 작업에 전의를 불태웠다. 주어진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열중하는 그의 성격은 현찬에게 큰 믿음을 주었다.

‘그래. 이렇게까지 나오지 않으면 일주일 동안 시간을 비운 게 허사가 되지.’

현찬은 외진 곳으로 떠나기 전에 <세계연합>의 간부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약 일주일 동안 외진 곳에 갈 거라고.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찾지 말라고.

지구에서 현찬이 일주일 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사실은 전력에 매우 큰 구멍이 뚫린 것과 같았다. 하지만 <세계연합>은 그런 현찬을 막지 않았다. 현찬에게 받아온 것이 지금까지 너무 많았으니 그도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쉬는 건 아니고 일주일 동안 작업을 하는 거지만 현찬은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현찬의 빈자리는 차기 오버랭크 생도들이 채워줄 것이다. 그들은 거의 훈련을 끝내고 게이트를 직접 다니면서 실전 감각을 쌓고 있었다. 가파른 성장 속도를 보면 얼마 가지 않아서 실전을 뛰어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노가다뿐이겠지.”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거대한 공방을 소환했다. 예전에 [테레이오스테]를 만들 때 보았던 것보다 더 거대해진 공방이 주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안쪽에는 용 재료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재료들을 안에 담아 놓기 위해서 공방의 크기를 키웠다.]

“대단하시네요.”

[뭘.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 이걸 재료로 무구를 다 만드는 것도 별로 오래 안 걸리시겠네요 ”

[…….]

‘아니 이놈이 ’

헤파이스토스는 어쩐지 자신이 무기를 만드는 공돌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서 따질수록 아쉬운 쪽은 헤파이스토스였으니까.

‘용의 재료를 손질하는 건 흔한 기회가 아니지.’

신으로서 지낼 때도 이만한 재료들은 만져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양도 실컷 써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대장장이의 신이자 모든 공돌이의 원조격으로서 헤파이스토스는 몸이 달아올랐다.

손이 근질근질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망치를 들고 휘두르고 싶었다.

타오르는 불길, 뜨거운 열기, 내뿜는 강한 숨결.

이 모든 것이 헤파이스토스의 삶을 이루는 그의 즐거움이었다.

‘뭐, 이만한 재료를 제공해주니 내가 관대하게 넘어가 주는 수밖에.’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안 그래도 예전에 현찬에게 검 한 자루만 만들어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헤파이스토스였다. 그의 뛰어난 장인정신은 자신이 그런 간단한( ) 무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했다.

아무리 시간과 재료의 한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잘 뽑아내고 싶은 게 욕심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시간도 충분하겠다, 재료도 차고 넘치겠다.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모든 삶을 통틀어 최고로 꼽히는 역작을 만들 생각이었다.

[계약자여. 기대해도 좋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만들지 못한 최고의 역작을 만들 테니까.]

[오오. 형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 대단한 물건이 나오겠는걸 ]

헤르메스도 헤파이스토스의 호언장담에 흥미를 가졌다.

과묵하고 우직한 헤파이스토스는 말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하겠다고 하면 정말로 하는 신이었다.

그것이 대장장이이자 장인의 자존심이었고 자부심이었다.

“어떤 물건을 만드실지 구상은 다 하셨나요 ”

[물론이지.]

예전부터 잔뜩 벼르고 있던 일이었다. 다른 신들이 현찬에게 불리고 지구에서 여러 일이 일어나면서 헤파이스토스는 언제 현찬이 다시 자기를 불러줄까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러는 도중에도 그는 끊임없이 무엇을 만들지, 무엇이 좋을지 계속 구상했다.

재료만 갖춰진다면 그가 만들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현찬이 가져온 재료는 무려 존재하는 모든 재료를 통틀어서 최상의 재료라고 손꼽히는 드래곤의 것이었다.

심지어 어린 용이 아닌, 성체가 돼서 그야말로 최대로 강해질 대로 강해진 용의 부위였다.

뿔은 신의 불에도 쉽게 녹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며 비늘은 가공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어지간한 방패로 써도 무방했다. 게다가 어떻게 추출했는지 드래곤 하트는 상처 하나 없이 매우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재료를 이렇게나 세심하고 깔끔하게 가져오다니!

재료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헤파이스토스에게 조금은 막막한 느낌이 들게 했지만, 그보다 기쁨이 더 컸다.

[기대하거라. 아주 대단한 것들을 만들어 줄 테니까.]

일단 먼저 만드는 건 현찬이 입을 방어 구였다.

[일어나거라. 나의 아이들이여. 일할 시간이다.]

헤파이스토스의 명령에 따라서 <황금 인형> 자매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각자 수건과 물, 장비들을 들고 헤파이스토스의 곁에 섰다. 현찬의 몸을 빌린 헤파이스토스는 손을 쥐었다 폈다.

‘대단하군. 그때 봤을 때 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어.’

이거라면 자신의 권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이거라면 그 어느 것에도 제한받지 않고 원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

헤파이스토스의 눈에 불이 켜졌다.

그것은 신의 불꽃이자 열정의 불길.

헤파이스토스의 오른손에 불길이 일어나며 망치가 쥐어졌다.

그가 왼손을 뻗자 수북이 쌓여 있던 드래곤 비늘들이 그대로 날아왔다.

화륵!

아궁이에 뜨거운 불길이 일어났고 헤파이스토스는 재료에 열을 가했다. 드래곤의 비늘은 엄청난 내구성을 지니고 있어서 어지간한 열을 가해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헤파이스토스가 누구인가.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이자 모든 대장장이의 신이다.

그가 다루지 못할 재료는 없었다.

화르륵!

불꽃은 온도를 높이더니 이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태양의 일부를 뚝 떼어내서 가져온 것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이것은 헤파이스토스가 다루는 신의 불. 오직 헤파이스토스와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만이 다룰 수 있는 그들의 권능이었다.

드래곤의 비늘이 점점 형상을 뭉개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말이 비늘이지 사실상 금속에 가까운 물체였다. 그렇기에 녹여서 다른 모양으로 만들 수 있었다.

‘좋구나.’

헤파이스토스의 입가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즉시 망치를 들고 뜨겁게 달구어진 비늘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카앙!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소리가, 공방 전체에 울려 퍼졌다.

&

“실패했다고 ”

“죄송합니다.”

에르카닐은 고개를 푹 숙였다. 드래곤들에게 바람을 넣어서 현찬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은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현찬이 그 드래곤들을 전부 죽일 정도로 강했다는 점이었다.

임무는 실패했다. 그는 실패에 따른 처분을 달게 받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주인인 악신회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 모습은 마치 그림자가 크게 일렁이는 것 같아서, 감히 고개를 들고 마주 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보는 순간, 마치 자신의 모든 것들이 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기에.

“고생했다.”

“실패의 책임은 묻지 않으시는 겁니까 ”

“이건 누구라도 실패했을 일이었다. 애초에 그렇게 강한 용들을 전부 쓸어버리는 인간에게 작전이 먹힐 리가 없겠지. 오히려 이번 일로 현찬이라는 인간의 강함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지 않느냐.”

“…….”

에르카닐은 입을 꾹 다물었다.

드래곤은 강한 존재다. 그의 세계에도 아주 적지만 드래곤들은 있다. 그들은 타고난 군림자였고 폭군이다. 그 강함은 에르카닐도 목격한 바가 있었다.

이번에는 성공할 거로 생각했다. 드래곤들 중에서도 온순한 자들을 꼬드겨 현찬을 적대하게 했다. 계약 조건 때문에 힘 일부를 제약받았다고 하더라도 드래곤은 드래곤. 무엇보다 수가 백이 넘었다.

그런데 졌다.

단 한 명의 인간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찬은 강하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현찬을 쓰러뜨리고 그의 고향을 이 땅에 재건하기 위해서는 더욱 철저하고 더욱 확실한 방법을 구해야만 했다.

“이만 들어가 보거라. 우리의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예.”

에르카닐은 고개를 숙이고 넓은 홀을 나왔다. 공간 마법으로 이루어진 이 장소는 모든 것이 검은 그림자로 이루어진 부정형이었다. 그곳에서 나오자 에르카닐은 겨우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는 긴 복도를 걸었다.

그러다 낯익은 얼굴과 마주했다.

“여. 이게 누구야. 이번 임무에 실패한 다른 세계의 열등한 녀석이잖아 ”

“오랜만입니다. 세트 님.”

일전 <아수라의 왕>을 잃은 책임을 지고 한동안 갇혀 지내다시피 한 <세트>였다. 그는 에르카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시비를 걸었지만 에르카닐은 그 어떠한 감정적인 대꾸도 하지 않았다.

“들었다. 이번에 실패했다면서  그 현찬이라는 녀석을 죽이는데.”

“그렇습니다.”

“킥. 이래서 열등한 녀석들은 안 되는 거야. 내가 갔으면 녀석은 분명히 죽었을 거라고.”

“…… 네.”

솔직히 지금 현찬의 힘을 보면 과연 그가 이길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에르카닐은 괜한 충돌은 피하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심심한 반응에 <세트>는 혀를 찼다.

“쳇. 재미없는 녀석.”

“세트 님은 어디를 가시는 길입니까 ”

“나  이번에 새로운 녀석이 우리 악신회에 들어온다고 해서 말이다. 지금쯤 소환됐으려나 ”

세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에 모래로 된 원의 고리가 생성되더니 고리의 안쪽은 다른 풍경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곳은 매우 축축하고 넓은 동굴이었다. 하지만 자연적인 동굴과 다르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조형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나 넓은 동굴의 중심에는 검푸른 마석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 주위에는 인간으로 추정되는 시체가 꽤 많이 있었다.

어디 인간뿐인가.

몬스터들의 시체도 가득했으며 마석 주위는 그야말로 피바다였다.

단지 풍경으로 보고 있을 뿐인데도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오. 이제 슬슬 나오려나 본데 ”

세트의 말마따나 제단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불길한 검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시체를 집어삼키고 마석마저 녹여버렸다. 동굴 전체가 검은 불길로 타오르길 몇 초, 불길은 순식간에 동굴의 중심으로 빨려들 듯이 모였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창백한 피부를 지닌 미남이었다.

하지만 겉모습과 다르게 그가 내뿜는 이상한 기운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의 등 뒤에 펼쳐진 검은 날개가 그 기분 나쁜 기운을 더하고 있었다.

새로운 악신이 하계로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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